전날까지 비를 뿌리던
하늘은 57회째 대회를 축하하듯 맑게 갠 하늘로 청룡기 첫날을 맞이했다. 최고의 권위를 지닌 대회답게 선린인터넷고와 충암고의
개막전은 1회부터 몸을 사르지 않는 양교 선수들의 패기넘친 플레이로 관중들의 박수를 자아냈다.
○…개회식은 참가교 26개팀 선수들이
왼쪽 외야펜스쪽에서 질서정연하게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대회 부회장인 안병훈 조선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대회사를
통해 “청룡기는 배움과 예절, 근검의 야구를 지향하면서 한국야구 발전을 위한 튼튼한 시금석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해 청룡기 가족이 된 각 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과 스포츠 정신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올해도 염광여자정보교육고
고적대 110명이 장식했다. 염광 고적대는 흥겨운 음악과 율동으로 참가팀들의 입장을 이끌었으며, 식후행사로 멋진 공연을
선보여 탄성을 자아냈다. 관악예술과 황홍연 지도교사는 “월드컵 개막 전날 상암구장 주변에서 열리는 전야제 등에 참여키로
돼 있어 주로 스포츠 관련 곡으로 프로그램을 짰다”고 설명.
○…시구에 나선 충암고 이홍식 학원 이사장은
노바운드로 직접 포수 미트에 스트라이크를 꽂아 관중으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청룡기 시구만 이번이 세 번째”라는
이 이사장은 “어제 가볍게 연습했다”고 여유를 보였으며, 처음 시타의 영예를 안은 선린인터넷고 천광고 교장은 ‘예의상
헛스윙’을 한 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야구는 어렸을 적부터 취미였다”며 “타석에 서니 기분좋았다”고 말했다.
○…개막전의 주인공
선린인터넷고와 충암고는 경기 내내 외야 좌우 펜스에서 치열한 응원대결을 선보였다. 충암고측은 꽹과리를 동원하고 ‘월드컵
구호’를 응용한 응원전을 펼쳤고, 남녀공학인 선린은 파도타기와 어깨동무 등 다채로운 응원으로 맞불을 놨다. 한편, 충암고
출신 인기연예인 이휘재씨는 지난해에 이어 동대문야구장을 찾아 모교에 대한 애정을 과시.
○…국내외 프로 스카우트들이 ‘스타의
산실’ 청룡기를 놓칠 리 없다. 국내 8개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LA 다저스의 팻 켈리 아시아담당 스카우트,
보스턴 레드삭스의 존 데블 스카우트가 스피드건과 메모장을 들고 유망주 고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프로야구 등 프로스포츠의 전·현직
의무트레이너들로 이뤄진 ‘한국 선수 트레이너협회’가 처음 의무지원에 나서 눈길. 작년 12월 회원 101명의 참여로
발족한 트레이너 협회는 대회 중 응급처치와 상해 예방에 힘쓸 예정이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전 트레이너인 임승길(하늘
스포츠 의학클리닉)씨는 “선수들에게 부상치료는 물론, 재활 등에 대한 심리 상담도 해 줄 작정”이라고 밝혔다.
윤희상은 3―4로 뒤지던 7회초 9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개막 1호 축포.
윤희상은 마운드에서 더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등판 상황은 좋지 않았다. 0―4로 뒤지던 3회 1사 2루 상황서 세 번째 투수로 나왔는데, 뜻밖의 초반 대량실점을
했기 때문에 자칫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하지만 윤희상은 후속 타자들을 범타와 삼진으로 요리, 급한 불을 끈
뒤 역투를 거듭했다. 1m90, 80㎏의 좋은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140㎞ 가까운 직구와 낙차 큰 커브를 무기로
‘비장의 카드’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6―4로 앞서던 8회말, 다소 방심하다 솔로 홈런 한방을 맞은 게 유일한
아쉬움. 윤희상은 “1980년 이후 팀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꼭 청룡기를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해마다 봄이 오면 최고 권위의
청룡기 대회를 기다리곤 했다. 필자는 선린중학 시절부터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졸업 때까지 6년 연속 청룡기에
참가했다(중학부는 98년부터 폐지). 76년 중학교 1학년 때는 4강전에서 대구의 강호 경상중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고
탈진해 쓰러졌던 기억이 영원히 남을 듯 싶다. 또 고 1때인 79년엔 대통령배 우승에 이어 청룡기서도 결승에 올라
한창 자만심에 가득차 있다가 부산고에 패하고 말았는데, 패자의 쓰라림이 얼마만큼 아픈 것인지를 깨닫게 됐고, 또한
그로 인해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신 무장을 새롭게 한 우리는 다음해 마침내 대망의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당시 나는 2학년이었지만 3학년 선배들의 양보로 우수선수가 됐는데, 진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고교 선수들은 체격도 커졌고 기술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어렸을 때부터 수준 높은 국내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 운동했던 선배들에 비해 정신력이나 근성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내’가 아닌 ‘우리’를 앞세웠던 선배들의
정신자세를 후배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야구라는 종목은 단체 종목이면서도 개인운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료들과의 팀워크에
신경 쓰면서도 개인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비어있는 관중석이다.
수업 시간에 라디오 리시버를 귀에 몰래 꽂고 듣다가 모교가 홈런을 때리면 만세를 불러 선생님까지도 수업을 중단하고
같이 들었던 일화는 옛 기억으로나 남아 있다. 봄·가을 두 차례의 전국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고교 야구 열기를 부러워 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야구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스타를
발굴해 내고 팬들도 일본 최대의 프로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젖줄이 바로 학생야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본 국민들은 예절과 희생 정신을 먼저 가르치는 고교야구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며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현재 대한야구협회와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행정 통합이 성사되기 직전이다. 프로야구와 아마야구가 하루 빨리 한 마음으로 뭉쳐 홍보와
마케팅을 새롭게 정비, 일본과 같이 고교 야구 붐이 다시 일어나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