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마태오 28,8-15
여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워하며 그분의 무덤으로 발길을 옮긴 것은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이었습니다. 거기서 뜻밖에 천사를 만나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벅찬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가던 그들에게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어 이렇게 인사하십니다. "평안하냐?"
예수님의 이 부활 아침 인사가 제 마음에 잔잔하게 퍼집니다. 그 편안함과 감미로움이 문득 제 안에서 성토요일 아침의 분위기를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성토요일의 아침은 흔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의 극적인 주님 수난 예식 뒤 부활 성야까지는 고요함만이 자리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교회의 전승으로는 이때 예수님께서 저승에 내리시어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하여 천국 문을 여셨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그 위대한 일을 하시는 동안 지상에는 침묵의 시간만이 흘렀다는 것에 그저 놀랄 때가 더러 있습니다.
더 의아했던 것은 조용한 성토요일 아침 제 마음에는 슬픔과 착잡함, 허탈함보다는 오히려 은은한 평화가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며 마음이 격렬하게 움직인 것이 바로 전날인데도 말입니다. 성주간을 수도원에서 피정하며 지낸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이러한 기분이 더욱 생생했습니다. 성토요일 아침, 수도원 마당과 주변 들판을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마시며 몇 시간이고 걸으며 느꼈던 가벼운 마음과 해방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성토요일은 '상중'(喪中)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다 지고 가신 그 구원 사건의 은총을 고요함 속에서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무덤의 문을 열어젖히는 '알렐루야!'의 웅장한 합창 소리로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미 부활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조용한 이른 아침, 우리 마음에 찾아온 이유 없는 평화의 향기에서 시작합니다. "평안하냐?"라고 물으시는 참으로 일상적이고 별스럽지 않은 예수님의 이 인사말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듯이 말입니다. 아마도 부활의 은총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우리의 삶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퍼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