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대 초에 아내와 결혼하여, 반세기 이상을 함께 살면서, 두 아들이 이미 50대 중반에 이르렀으니, 신께 감사한 마음입니다만 청장년기 시절에 직업 상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채, 특히 두 아들이 모두 거의 엄마의 손에서 성장해 왔기에 아내와 두 아들에게 많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부터 어른들께서 자식을 두고,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종종 들었었는데 자신은 자주 실감하고 있는 터입니다.
나름대로는 청년기에는 항공대에서 조종사로서 지휘관 및 참모 장교로서 열심히 소임을 감당한다고 최선을 다하였고, 전역 후에는 박사과정을 마친 후 대학에서 교수생활, 또한, 잘 감당했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이지만 큰아들은 학업과는 거리가 멀고, 작은 아들은 만년에 지방대에서 교수생활을 한 아비와는 달리 최고의 명문대 교수로 근무를 하고 있으니,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게도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리는 상류층은 못된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남편과 아들을 박사로 만든 공로의 당사자라고 종종 말하면서, 벌써 17년 동안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신 장애자 생활을 하다가 보니, 아내 자신과 남편인 자신에게도 환자와 보호자의 체험을 하고 계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내심, 내조의 덕이 부족한 탓인지 한 두 달 정도에 한 번씩은 큰소리로 말다툼을 하게 되는데, 어제는 워크숍 관계로 내방한 작은 아들과 한 2년 전부터 같은 지역에서 혼자, 돌싱으로 생활하고 있는 큰아들이 모두 함께 한가운데 부부 싸움에 아들 둘까지 합세하게 되니, 마치, 모자 셋을 혼자 상대하는 상황이 또, 전개되어, 언제나처럼, 아내와 자식들의 공격으로부터 속이 상한 마음이 오늘까지도 풀어지지가 않아서 은퇴생활 중에 멀리 섬나라에 외톨이 신세가 된 기분으로 너무 외롭고 쓸쓸한 게 사실입니다.
평상시에도 자신이 무슨 말이라도 좀 하게 되면, 당신은 입을 좀 다물고 있어 하고는 성화이기에 그나마 모처럼, 작은 아들이 오면 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여기는 터인데, 말꼬리를 잡아서 짜증을 나게 만드니, 정말, 늙은 나이에 점점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환자의 처지라서, 가능한 참고, 인내심을 발휘하고자 노력은 하지만, 어린 성장기에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많이 부족한 탓인지 다툼이 벌어지면, 거의 자연스럽게 3:1로 전개가 되니, 화가 더 많이 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년기에 접어든 은퇴자들은 공통적으로 당하는 처지겠지만 본인이 사용하던 모든 물건들은 모두 스스로 정리를 하고 떠날 채비를 하라고 하면서, 각종 상패는 물론이고, 훈표창장 등과 앨범이나 옷가지 등도 볼 때마다 빨리 없애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리니, 자신도 공감하지 않는 바는 아니나, 멀리 예전에는 최악의 유배지로 자리한 곳에서 외롭게 지내다가 보니, 근처에서 좋은 친구라도 한 사람 만나서 자신이 아직은 가끔씩 보고 싶은 물건들을 피신시켜 두고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우선적인 것은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지만요!
바다를 보면서, 함께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이것저것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그렇게 소중하게 다가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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