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리아는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요셉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한다고 설득이 됐을까요?
시간이 지나 결국 마리아의 임신은 겉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요셉은 그것을 알아 차리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마리아는 이 상황을 직접 정리하려 들지 않았고 오직 주께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요셉의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이 어려운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주십니다.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십니까? 설명을 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꼬이고 관계는 더 엉망이 되어가는 경험이요. 그럴 때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걸!'하는 생각이 듭니다. 꼭 입을 벌려 말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요셉의 꿈에 주의 천사가 나타났듯이 말입니다. 내가 비로소 입을 다물고 잠깐의 침묵, 가벼운 미소에 소통을 맡기면 침묵의 시간을 통해 성령께서 더 깊은 소통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성령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라는 것을. 사실, 마리아의 입장에선 자신이 남자를 모르는 여자였으니 자신의 임신이 동정녀 잉태라는 것을 믿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요셉이 동정녀 잉태를 믿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마리아를 신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배가 불러 오기 전에 엘리사벳과 함께 있으며 3개월이나 집을 비웠습니다(눅 1:56)! 그랬던 약혼녀가 배가 불러 오는데 그것이 동정녀의 잉태라는 것을 믿어 줄 남자가 정말,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개역개정에서는 18절을 '잉태 된 것이 나타났다'고 번역 했지만 영어로는 '들켰다'에 가까운 found를 썼습니다. 요즘 말로 "딱 걸렸다"의 뜻이지요. 즉 마리아 배가 불러 왔을 때 요셉에게 임신 사실이 "들통 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말 하지 않았던 마리아의 이러한 점은 정말 배우고 싶은 덕목입니다.
요셉은 어땠을까요? 19절을 보면 요셉이 천사에게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듣기 전에, 자신이 직접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냥 조용히 혼인 약속을 파기하는 것으로 끝내려 했습니다. 보통 남자들 같았으면 최소한 약혼녀에게 화라도 한번 냈을 겁니다. 하지만 요셉은 마리아의 체면을 위해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지요(마 1:19). 믿음을 떠나, 인격도 훌륭한 남자입니다.
저는 여기서 영적인 원리를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내 주변을 컨트롤 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나 자신을 컨트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면 교회에 나가면 되듯이, 항상 소망을 말하는 멋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면 자신도 소망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말 안타까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항상 문제와 고민만 늘어놓으면서 상대방에겐 항상 해답과 위로를 바랍니다. 한두 번은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한 쪽은 오직 문제와 고민을, 다른 한 쪽은 항상 해답과 위로를 주는 그런 관계는 진정으로 건강한 관계도 아니며 계속해서 유지될 수도 없습니다. 항상 문제, 고민, 불평을 쏟아 낸다면 어느새 내 주변에도 동일한 문제와 고민을 가지고 동일한 불평을 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이게 될 것입니다.
동정녀 잉태이긴 하지만, 약혼한 여자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약혼 남에게 들켰을 때 이러고저러고 변명하지 않고 입을 다물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신앙 안에서 뿌리 깊은 인격의 소유자였다는 뜻이 아닐까요? 설명해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침묵으로 일관한 마리아,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한 요셉, 이 둘은 반드시 부부로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