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장 17-24절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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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님이 저녁에 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나무를 붙잡고 산이 떠나가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소나무 한 그루를 뽑았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새벽녘에 산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벼랑 끝에서 나무뿌리를 붙잡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살고 싶으면 뿌리를 놓아라.” 그때 목사님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거기 하나님 말고 사람 없어요.”
뿌리는 뽑아도 가지는 못 놓는 게 인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기드온의 상태입니다. 16절에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고 하십니다. 다음 17절에서 기드온은 “만일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 자체보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표징을 구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대단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신앙생활을 힘들어합니다. 뭔가 ‘앗싸리’한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진리는 너무나 평범합니다. 하나님은 일상에서 나와 함께하십니다. 죽기를 각오하며 순교자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말씀 앞에서 나를 포기하는 믿음이 먼저입니다. 지금을 살지 않으면서 미래의 순교를 계획하는 건 100% 실패합니다. 신앙은 언제나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표징을 구하고 증거물로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잡고 떡을 만들고 국을 싸서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20절에 말씀하십니다.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그리고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이를 내밀자 제물들이 모두 태워졌습니다.
여기서 유심히 볼 부분이 있습니다. 불은 지팡이가 아닌 바위에서 나왔습니다. 바위에서 불이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이 말씀을 통해서 기드온이 지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불은 하나님이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스팩이 아니라 스토리다.’란 말이 있습니다. 스팩은 기능이고 스토리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스팩이 필요 없을까요? 아닙니다. 스팩은 반드시 필요한 자질입니다. 실무에 필요한 능력은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도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도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팩 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스토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스토리는 삶의 향기입니다. 기능만 좋고 향기가 없는 사람은 조화와 같습니다. 조화와 생화는 다릅니다. 조화는 오래가지만 죽은 겁니다. 생화는 짧지만 살아있습니다. 조화는 향기가 없고, 생화는 향기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화려하지만 죽은 삶보다 싱싱하게 살아있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초라해도 좋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면 나만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하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