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11:11~19
설교말씀: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하시며 아이들이 장터에서 놀이를 하는 것을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터에 동무들을 불러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을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장터에서 결혼하는 놀이나 장례식 놀이를 해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고 피리도 불렀지만 그들이 쳐다보고 구경만 하지 하나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희가 춤을 추지 않고 곡하지 아니한다 마치 아이들이 장난으로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전혀 기쁨이 기쁨으로 들리지 않고 슬픔이 슬픔으로 들리지 않는 그러한 시대라는 거예요.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인 세례요한이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는데도 전혀 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소식을 말해도 무감각한 시대였습니다. 무감각증에 걸린 사람들 즉 기쁨이 기쁨으로 느껴지지 않고 슬픔이 슬픔으로 느껴지지 않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통해서 해방과 기쁨의 복음을 선포해도 받지 않고 무감각증에 걸려 세례요한을 멸시하고 예수님도 철저히 부정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었읍니다. 반응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놀이를 구경하듯이 관심없고 복음으로 하나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때에 “이 세대를 어떻게 비유할꼬”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더욱 무감각하고 회개가 없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회개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 디모데의 믿음이라고 했는데 회개가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영혼에 구원의 감격도 없이,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한 사죄의 마음도 없는 것이 거짓 믿음입니다. 우리도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적인 무감각증에 걸려서 영적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해고 실천해야 하는지요. 기도생활이 무감각증에 접어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에 따라 하셨지만 그 습관이라는 것이 다른 한 편으로는 타성에 젖은 습성이 되어버리고 감각을 잃어 버린 것이 된다면 좋지 않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습관을 들일 때에 영적으로 더욱 민감한 습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새벽기도할 때에 한 주간을 목표로하고 했는데 그 기간 동안에 기도를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동안에 새벽기도에 대해 담력을 얻고 새벽기도 하지 못하던 사람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번에 백 일 기도로 작정하고 기도했는데 이것이 좋은 습관이 되어서 새벽기도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좋은 일에 습관이 드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영적인 감각을 잃어 버린 습관성에 빠진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바리새인입니다. 복음을 들을 줄 모르고 죄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고 회개가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어떤가요? 죄를 죄로 여기지조차 않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기분 나쁘게 건드리지 않고 비유를 맞추면서 조심성있게 다뤄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시골교회에서는 시험에 들든지 안들든지 그 교회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이 “이 교회 안 나오면 돼”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도록 하게된 것입니다. 정착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희생의 사랑을 하지 않으며 회개를 외치지 않는데도 목회자가 그러한 것을 회복하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진짜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교회에 나와 형식적으로 고백하고 구원을 받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애통함이 없는 믿음, 죄에 대해 돌이킴이 없는 것은 참믿음이 아니지요. 애통해 하시면서 예수님이 “이 시대를 어떻게 비유할꼬”하신 것입니다. 구경꾼들과 같이 되어버린 오늘의 신앙을 말씀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기도하면서 주님과 나와의 대화와 교제속에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귀해서 눈물이 나고 불순종한 것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잘못한 것에 대해 죄적인 요소에 대한 회개가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래서는 안되겠다”하는 회개가 선포되고 죄악에 대해 애통해 하며 모든 행동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가슴 아파하면서 통회할 수 있는 그런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으로 돌아 가고 신앙이 회개로 회복된 참신앙이어야 합니다. 이 말세에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그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기도할 때에 예배하는 모든 분들이 애통할 수 있고 주님이 슬퍼하실 때에 슬퍼하고 주님이 기뻐 하실 때에 함께 기뻐하는 그런 신앙생활 하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처음 회개 했을 때에 죄에 대한 애통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샘솟는 감격으로 누리는 그 기쁨이 기억났습니다. 그러한 은혜의 감격과 기쁨이 우리 예배를 통해서 샘솟게 해주세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영혼이 모두 이 감격을 느끼고 죄에 대한 회개로 기쁨을 얻기를, 그리고 교회에서 이 회개 운동과 성령 운동이 일어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