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어 보는 성어
아사리판(阿闍梨判)
[요약] (阿: 언덕 아. 闍: 사리. 고승 사. 梨: 배 리. 判: 판단할 판)
질서 없이 어지러운 상태
[출전] ?
[내용] 국제신문 안병화의 시사 한자성어 阿闍梨判의 글.
질서가 없고 제 주장만 난무하는 어지러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많다. 먼저 속된 표현으로 개판을 가장 많이 쓴다.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이른다.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몰골사납게 싸우는 泥田鬪狗(이전투구)는 처음에는 강인한 함경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옛날 과거를 보는 마당에서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어 뒤죽박죽이 된 亂場(난장)에서 온 난장판도 있다. 이렇게 드러난 말뜻도 알 수 있고 유래도 뚜렷한 말과 달리 아사리판은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말이면서도 일상에서 흔히 쓰인다.
어원이라며 주장하는 몇 가지 중 우리말에서 왔다는 것을 먼저 보자.
빼앗거나 가로채다는 '앗다'의 줄기 '앗-'에서 매김꼴씨글인 '을'이 붙고 그 아래 사람을 나타내는 '이'가 붙어 '앗을이'가 변해서 됐다는데 빼앗을 사람과 빼앗길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했단다.
이런 주장보다 더 솔깃해지는 것이 불교에서 왔다는 이야기다.
수행을 중시하는 小乘佛敎(소승불교) 종단에서 교육을 담당할 만큼 덕이 높은 스승, 또는 도가 높은 승려를 말하는 阿闍梨(아사리)에서 유래했다고 밝힌다. 아사리를 한역할 때 阿牀利(아상리), 혹은 阿遮利夜(아차리야)라고도 한단다. 사리 闍(사)는 '담 도'로도 읽힌다.
불교에서 나온 말 중에서 원 뜻과는 많이 변한 말이 상당히 많다.
학승과 사무를 맡은 승려 理判事判(이판사판)이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말하거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악신의 이름인 阿修羅(아수라)가 난장판인 아수라장이 된 것 등이다.
덕이 높은 스승 아사리가 많으면 다양하고 깊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토론하는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이 모습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인 데서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을 말하게 된 것으로 변했다고 보는 것이다.
100만 명의 촛불집회를 불러온 최순실 국정농단은 어느 곳 하나 법대로, 시스템에 맞춰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서 국민의 분노를 불렀다. 이화여대 입학 부정에서 불거진 정유라 문제에서 승마협회 등 체육계 비리로 이어졌고, 뒤를 봐준 문화체육부의 거대한 관권까지 원칙과 정도는 무시됐다. 대통령의 위세를 업은 狐假虎威(호가호위)는 예산을 마음대로 끌어오고 장관급 인사까지 손대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이 문제로 수면 아래 가라앉았지만, 다른 분야도 순리를 따른다고 자신할 곳이 드물다. 총체적인 무질서 시대라 할 만하다. 언론인·한국어문한자회
이하 민족대백사전의 아사리[阿闍梨]
불교 교단의 스승에 대한 총칭.
범어 아사리아(a-ca-rya)의 음역(音譯)으로, 궤범사(軌範師) 등으로 의역되며 흔히 계사(戒師)라고 한다. 규칙·규범을 가르치는 모범적인 스승이라는 뜻에서 궤범사라고도 하며, 바른 행동을 보여준다 하여 정행(正行)이라 하기도 한다.
또 선법(善法)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옷을 단정히 입고 걸식(乞食)을 법답게 하며, 항상 제자들을 자식처럼 여기는 승려를 아사리라고 하였다. 그 자격은 10회 이상의 안거(安居)를 마쳤고 계율에 밝으며, 지혜와 복덕을 겸비해야만 한다.
이 아사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출가·수계(受戒)·교수(敎授)·수경(受經)·의지(依止)의 5종 아사리가 있는가 하면, 갈마(羯磨)·위의(威儀)·의지·수경·십계로 분류되는 5종 아사리, 삭발·출가·수경·교수·갈마·의지 등의 6종 아사리가 있다.
이 중 삭발아사리는 머리를 깎아 준 스승이고, 출가아사리는 십계아사리라고도 하는데 출가의식인 득도식(得度式) 때 10계를 일러주는 스승이며, 수계아사리는 갈마아사리로서 구족계(具足戒)를 주는 스승이다. 교수아사리는 위의아사리라고도 하며, 구족계를 받을 때 위의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수경아사리는 불경을 독송하게 하고 그 뜻을 가르치며 사구게(四句偈) 등을 수습하도록 하는 스승이며, 의지아사리는 제자의 숙식을 돌봐주는 스승이다.
이와 같은 아사리는 현재 우리 나라에서의 수계식(受戒式) 때 모두가 참석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사리라고 하면 은사(恩師)·법사(法師)·계사(戒師) 중 계사를 지칭하게 된다. 이들 아사리는 13덕(德)을 갖추어야 한다.
즉, ① 보리심(菩提心)을 발한 자라야 하고, ② 묘한 지혜와 자비가 있어야 하며, ③ 제자들을 이끌 능력이 있어야 하고, ④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수행하여야 하며, ⑤ 삼승(三乘)에 통달하여야 하고, ⑥ 능히 진언(眞言)의 진실한 뜻을 알아야 하며, ⑦ 중생의 마음을 잘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⑧ 제불보살(諸佛菩薩)을 신앙하여야 하며, ⑨ 전교관정(傳敎灌頂) 등을 얻어 미묘한 만다라(曼茶羅)를 잘 알아야 한다.
또 ⑩ 성품은 유연하고 화목하여 아집이 없어야 하며, ⑪ 진언행(眞言行)에 있어서 능히 잘 결정할 줄 알아야 하고, ⑫ 유가(瑜伽)를 잘 익혀 알아야 하며, ⑬ 용맹심이 있어 보리심에 능히 머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이 아사리들에게는 율보(律譜)가 있고, 그들은 율원(律院)을 통하여 교육받은 뒤 율맥(律脈)을 전승하게 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몇 갈래의 율맥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