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십분.
송달지; 살아가느냐 없어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중생; 그럼 제 이차루 들어가 자살허면 어떤 방법으로 헌다요.
최 변호사; (목을 싹둑 자르는 시늉을 하고) 물론 면도칼이 제일이죠. (하주에게) 마님두 나오시라구 하십쇼.
하주, 안으로 들어간다. 극이 진행하는 동안에 하주, 그리고 훨씬 뒤떨어져 하연도 등장.
최 변호사; 면도칼이 뒤탈두 없구 제일입네다. 자, 이리 누십쇼. 면도칼을 오른손에 쥐시구, 이젠 이 순간부텀 영감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유서는 이렇게 고스란히 책탁 위에 놓였구 방안은 왼통 피바다…… 붉은 잉크 없나? 없으면 씻쳐버렸다 허구, 피비린 냄사가 코를 찌르는 피바닥이 올씨다. 자, 그럼 여러분, 놀래서 뛰어오십쇼. 마님의 남편 되시는 이, 아가씨의 아버지, 송 선생의 장인, 아니 일찍이 우리 한국이 낳은 위대한 사업가 영웅 이중생씨의 최후올씨다.
우씨와 하주는 방안으로, 송달지는 툇마루 앞에 엉거주춤하고 어쩔 줄 모른다.
최 변호사; 제이차루 장삿날을 결저해서 부고를 인쇄헙시다. 성복장두 상스럽고 그저 칠일장이 상식적이죠. 법률상은 이십사 시간만 지나면 내다 묻어두 괜찮지만 어디 이런 대가에서야 그렇습니까? 어떻습니까, 상주께선? 그럼 칠일장 결정했소. 발인은 오전 다섯 시, 아침 일찍이 해야만 조상객이 없을 게니……
이중생; (벌떡 일어나며) 최 선생, 한주일 동안이나 어떻게 죽은 시늉을 허우? 그 좁은 속에서…… 삼일장으루 허지.
최 변호사; 그럼 절충해서 오일장, 영감께설랑 움직이지 말구 누워 계십쇼. 결정헙니다. 상주께선 이의가 없으시겠지. 영결 장소는 자택. (종이에다 일일이 적으며) 묘지는 명성골, 장지를 칠십 리 밖이나 되는 명설골루 정하는 것두 이유가 있읍죠, 헛헛…… 누가 진새벽 탈것두 없는 칠십 리 길을 따라 나옵니까? 헛헛…… 명설골, 상주두 이의 없으시겠죠. 그럼 결정헙니다. 송 선생, 이걸 어서 인쇄소에 돌리슈. 한 천 장만 곧 백이라구.
이중생; (다시 일어나며) 천장으룬 모자라지. 관청관계만 해두.
최 변호사; 허…… 돌아가신 인 가만 계시라니까요, 어디 섞갈려 일이 됩니까, 온. 그럼 이천 장 결정했습니다. 상주께서두 이의가 없으시겠죠. 그럼 송 선생은 상주구 또 헐게 있어. 이리 올라와서 진단서 한장쓰슈. 경동맥 절단, 다량 출혈이 사인입니다. 그러구 아범, 아범.
아범 안에서 나온다. 하연이도 뒤따른다.
최 변호사; 아범은 이 종이를 가지구 인쇄소로 가서 제일 좋은 종이루 이천 장만 백여 와. 돈은 많이 낼 테니 오늘 중으루 찾아오기루 맡기란말야. 그러구 오는 길에 널을 한 틀만 사 오우. 백자두 좋구 추목두 좋으니.
용석 아범; 널 입쇼?
이중생; 비싼 것 살 게 없어. 백자두 좋으니 제일 싼 걸루……
용석 아범; 널은 갑자기 뭣에 쓰십니까?
최 변호사; 아랑곳할 게 아냐. 자 이걸 가지구, (돈지갑에서 지전 몇 장을 뽑아 준다. 아범,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용석 아범; 마님, 이게…… 정말 사오랍쇼?
우씨; 최 선생 분부대로 할 게지 웬 참견야.
용석 아범; 네에. (아범 나간다. 하연 깔깔대고 웃는다)
최 변호사; 아씨, 웃을 일이 아닙니다.
하연; 호, 호…… (송을 제외한 일동 눈을 흘긴다)
최 변호사; 송 선생 사만진단선 됐소?
송달지; 그걸 어떻게 제가 씁니까, 뻔히 살아 있는 사람을.
최 변호사; 못 쓰신다구요?
송달지; 뻔히 살아 있는데……
이중생; (벌떡 일어나며) 뭐이 어쩌구 어째. 못써?
송달지; 거 위반입니다. 사기죄두 되고……
이중생; 그럼 자넨 내가 정말 죽어야만 진단서를 쓰겠단 말인가? 내가 죽어야 위반이 아니란 말이지.
송달지; ……
하주;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리유, 그게.
우씨; 아무리 원수 치불했끼로소니 제 장인보구 아주 돌아가시라니 정신이 있어 하는 소린가.
이중생; 응, 괘씸허군 그래.
하주; 여보! 대담해요.
이중생; 못 쓰겠나? 그래.
최 변호사; 송 선생, 끔벅 눈 한번 감어요. 쯧쯧……
하주; 뭘 멍청허구 있어요, 여보!
최 변호사; 송 선생.
송달지; 그것만은…… 안 됩니다.
하주; 에그……
멀리 행진곡 들린다.
하연; 벌써 지나가네요. 형부, 시민대회에는 안 가셔요? 네, 난 아까부텀 기다리고 있었는데.
송달지; 어! 어!
하연, 하수로 나간다. 달지도 꿈에서 깬 듯 뒤를 따른다. 일동, 멍청이 바라보고 있다. 애국가가 고요히 들려온다.
최 변호사; …… 영감, 어떡하실 작정이슈?
하주; 못난 녀석.
이중생; 뭣을 어떻게 해? 이 이중생이가 한번 허기루 결심했던 걸 변하는 위인인 줄 알어? 그래 내 사위 놈이 사망진단서에 도장 안 찍었다구 까딱할 내야? 한 번 내쳤던 걸은은 촌보두 물러서지 않는 게 이중생의 주의 주장이야, 내 결심을 누가 꺾는단말야. 결행해야지. 암 결행허구말구. 얘, 하주야, 너 냉큼 병원에 가서 <송달지 내과의원> 도장과 네 남편 도장을 가뎌 오너라.
하주; 네.
하주, 하수로 나간다. 행진곡 점점 높이 들려온다.
일동 저도 모르게 귀를 귀울인다.
2-2부에 이어
제 3 막
전막에서 삼, 사일 후 저녁, 같은 장소. 다다미방에는 거꾸로 둘러친 병풍 한끝이 보인다.
항연이 피어오르고 북소리와 함께 봉사들의 독경소리가 높으락낮으락 들려온다. 경은 우리들이 일상 레코드로 들어오던 저 경쾌하고도 유머스러운 축원경이다.
바깥사랑과 후원 정자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도무지 초상집답지 않다.
막이 열리면 굴건제복을 한 상주 송달지가 혼자 온돌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동리 부인 박씨, 우씨와 함께 안에서 나온다. 박씨는 무엇인지 가득 넣은 이남박을 들었다.
박씨; 그럼 형님, 집엣 것들 저녁상이나 차려주군 곧 오리다. 집에서 들은 명일날이나 온 줄 알겠군. 호호…… (다다미방을 들여다보고) 그저, 세상 떠난 분 하나 불쌍하지. 조곰만 참으셨던들 아드님두 만나실 걸. 그래두 천도가 무심치 않지. 돌아가신 아버님이라두 한번 보라구 장례 전으로 들어서게 되니 이게 하느님 인도가 아니구 뭐유. 에그 저 사위 양반은 얼마나 고단하길래 저렇게 앉은 채 꾸벅꾸벅 조을구 있을까.
우씨; 그럼 곧 다녀와요. 난 아우님 없인 못 살어. 내 이 은혜는 꼭 갚을 테니.
박씨; 에그 형님두 ― 그런 말 허실 테면 난 아주 발길 안하겠수. (하수로 퇴장, 우씨 방으로 올라가서 송을 깨운다)
송달지; 어? 어…… 경읽는 소리가 맹랑한데. 슬그머니 졸음이 오니.
우씨; 어젯밤도 늘어지게 자구 그렇게도 졸릴까. 정신 채리구 있어. 오늘은 관청 손님이 조사 나온다는데.
송달지; 어이 졸려. 하식이 아직 도착 안했어요?
우씨; 하식이야 하연이가 마중 나갔으니 곧 들어슬테지만 관청 손님들이 걱정이군 그래. 말썽이나 없을는지 온. 정신 채리구 있다가 손님들 오시걸랑 지체 말고 알려요. 술상 준빈 다 됐으니.
(상수로 퇴장. 송, 자기 입은 의복을 둘러보고 하품. 이중건 김 주사, 변 주사, 홍주사와 함께 후원에서 나온다. 다들 만취했다)
이중건; 자, 우리들 이리 올라와 마른 안주로 다시 한잔허지.
김 주사; 아 이젠 전 만취올씨다.
변 주사; 그만두시죠. 우리두 가 봐야겠수.
이중건; 어…… 초상난 집에 왔다 그렇게 승겁게 가는 법이 어디 있어.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홍 주사; 애련하고 폼이 있게 경을 읽는 중이 아마 저 도렴골서 온 중이지요.
김 주사; 그예 본래 풍성풍성한 댁이니 어디 하나 소홀한 게 있을려구, 아마 저 봉사가 도림골서 왔읍죠.
이중건; 글쎄 소리깨나 하는군…… 여, 아범. (아범, 주안상을 들고 나온다)
용석 아범; 불러 계십쇼?
이중건; 거 어디 가져가는 거야?
용석 아범; 아까부텀 바깥 사랑손님이 찾으십니다.
이중건; 여기도 정갈히 한상 봐 오게.
홍 주사; 아아 온 그만두십쇼, 오늘만 날입니까, 인젠 매일같이 와 뵙겠습니다.
용석 아범; 영감마님, 도련님이 오늘 돌아오신답니다 그려. 저 우리 용석이 놈만 죽었습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하수로 퇴장)
이중건; 그야 팔자소관인걸 너무 상심할 게 아냐.
김 주사; 저번 백참판댁 상가에두 저 중이 왔었어……
변 주사; 백참판 대감이니 이대감이니 아까운 분들이지. 세상에서는 인색하다거 니 모리배라거니 별별 말두 많었구 실없는 사람의 입술에두 오르내렸지만 진실로 국보적 보물이었어. 하옇든 무슨 일을 했던 간에 이만 재산을 벌어 놓았으니 훌륭하지 뭡니까. 모리배라면 어때? 사기꾼이라면 어때? 공범이 어떻구 아님 또 어떻단 말요? 우선 벌고 보는 거지.
홍 주사; 그야 자결허시는 것만 봐두 범상한 어른이 아니지. 누가 이 좋은 세상을 두고 한 번가면 그만인걸 성큼 헌단 말요. 춘추가 몇이더라.…… 송 선생.
송달지; 쉰?……
홍 주사; 갑인 을묘 정유니까 쉰 넷이겠군.
송달지; 쉰넷……
변 주사; 일생을 두구모은 재산을 덤석 이 사위 양반에게 물리구 가신 건 어떻구, 예삿 사람이야 아들이 없으시면 딸에게 물릴 것이구, 마누라에게 줄 게 아니요. 그걸 왼통 사위 양반에게 주셨습니다 그려. 그것두 억 만 환 하나 둘은 내리지 않으리다.
김 주사; 온 정신 없는 소릴…… 가옥만 해도 둘이 되고 남지. 이집 한 채만두 집 지으실 때 구경했지만 건평이 삼백팔십 평이……넘죠?
송달지; 글쎄올시다. 아직 그런데는……
이중건; (혼자말로) 그런 걸 이눔이 단돈 삼백만환.
변 주사; 암 그러실 테죠. 오죽이나 상심하셔서 그럴 여가가 있겠습니까, 쯧쯧……
홍 주사; 그래 자결하시기까지는 별루 태도엔 이상한 점이 없으셨죠.
김 주사; 그야 여부가 있소. 태연자약 허셨겠지.
이중건; (책상 서랍에 면도칼을 꺼내며) 이 면도칼로 경동맥을 싹둑 끊어버렸어.
변 주사; 에그 쯧쯧……
이중건; 그러니 괄괄 솟는 피가 뽐뿌수도 같을 수밖에…… 여기두 피, 저기두 피.
왼통 방안이 피바다가 됐지. 앉은 데가 다 핏자리야.
홍 주사; 이 자리가요…… ?으째 으시시허다. 술이 깨는 모양이군. 이거 으째 두고 보니 좌불안석인 걸……
김 주사; 홍 주사, 인젠 일어서 보지 않으려우. 난 집에 조카 놈이 온다고 한걸.
홍 주사; 어 나두 참 깜박 잊었군. 오늘 반상회가 있는 걸.
이중건; 왜 한잔들 더 안 하시려우?
김 주사, 홍 주사, 변 주사; 네. 다, 다……다시 뵙겠습니다. (하수로 퇴장)
이중건; 어두운데 조심허우.
그때 다다미방을 거쳐 나오던 봉사 이인, 자기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봉사1; 우리는 어둡고 밝은 걸 별루 가리질 않습니다.
이중건; 그야 그럴 테지. 어서들 들어가서 좀 주무시지, 오늘두 밤새 수고 허셔야 겠으니……
봉사2; 소경 잠자기루 그것두 별루 가리질 않습니다.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중생, 병풍 위로 목만 내놓고 끼웃끼웃 살피더니 슬그머니 미끄러져 나온다. 수위에 행건 친 차림이 과연 초현실적이다.
이중건; 너 여기가 어디라구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송달지; 손님들이 많으신데! 어쩌실려구……
이중생; 형님, 웬 손님들이 사랑에 두 방 방이구 정자에두 있구 이러시는 거요? 무슨 잔칫집인 줄 아십니까, 누구 쌀을 축내시느라구.
이중건; 삼춘댁부터 십이춘, 사돈의 팔춘, 집안이란 집안은 콩나물대가리꺼정 다 모였구나.
이중생; 관청에선 아무도 안 왔지?
송달지; 아직 아무도……
이중생; 예끼 고약한 놈들, 올 놈들은 아니 오고 ― 엥이 제 아무리 인정이 백짓장 같기루 내가 죽었다는 통지를 받구도 한 놈 얼씬 않는다? 어디 두고 봐라. 엊그제꺼정두 내 앞에서 알쫑거리구 꼬리를 쳤던 놈들이 오늘에 와서는 딱 돌아선다? 인젠 알아볼 때가 있으렷다. 내가 다시 살아나구 볼 지경이면…… 에익 괘씸한지구. 하식이두 아직 안 들어오구.
송달지; 네, 하연이가 마중 나갔습니다만.
이중생; 하식이에게두 전후사를 잘 타일러두게. 탈짐이 나지 않게.
그때 전화 벨소리. 이중생, 깜짝 놀라 옆으로 굴러간다. 송달지 전화를 받는다.
송달지; 네 네, 잠깐 기다리세요. 아버지 전화……
이중생 엑끼…… 죽은 내가 전화를 받는단 말이냐?
송달지; 아이참, (전화를 계속 받으며) 네 네 알겠습니다.
이중생; (옆방에서) 누구한테서 온 거야?
송달지; 임선생님허구 최 변호사허구 곧 오신다구요. 국회 특별조사위원회의 김의원 한 분이 같이 오신답니다.
이중생; (다시 나온다) 휘유…… 그 좁은 델 드러누워 손가락 발가락 달싹 못허구 있으려니 신경이 칼날같이 되는군 그래. 그래 김의원 한 사람밖엔 안 온댔어?
송달지; 딴 이 얘긴 없는데요.
이중건; (중생에게) 너 어서 들어가거라. 수의 입은 놈과 상복한 놈을 마주 놓고 보기가 으째 으시시허구나.
이중생; 어 참 내 잊었군. 형님 금방 여기 앉았던 것들이 홍 주사, 변 주사, 김 주사 아니요?
이중건; 글쎄 초면 인사에 기억이 잘 안 된다.
이중생; 얼굴 긴 놈이 흥가 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코 아래 기미 있는 놈이 김가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대머리가 변가 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다시 오거들랑 아예 술상 내지 마슈. 나 죽기를 기다리던 놈들이야. 흥가 놈은 전쟁 전에 오푼변으로 삼만 원 가져가구는 오늘까지 이자 한 푼 안 들여 놨습니다. (달지에게) 자네 잊지 말구 기억해둬. 김가놈은 금전판인 종로에 있는 내 가게를 쓰구 집세라군 다달이 오천 환 들여놓군 시치미를 떼는 놈이구, 변가 놈은 어물 판 구전 오만 환을 논아 먹기루 약속허군 두 달째 얼씬도 않던 놈이라우. 유서에 써 넣을 걸 깜박 잊었군. (달지에게) 기억해 두었다가 이 후에라도 다시 오거들랑 채근해 받어. 알았어?
송달지; 제가…… 그런 걸……
이중생; 그러구 또 한 번 얘기하네만 유산이니 재산이니 그런 얘길랑 딱 잡아 떼구 말 말어. 내가 옆방에서 듣고 있지만 서두 도시 모른 척하구 잠자쿠 있으란말야. 자넨 그런 것 아랑곳할 리두 없지만 대꾸허단 큰일 저지를 테니, 알았어?
이중건; 쉬잇 누가 나온다.
이중생; 익크! (황급히 옆방으로 가다가 책상에 걸려 넘어진다. 옆방으로 가서 병풍 뒤에 숨는다. 소경 안방에서 나오며 중얼중얼 경문을 외치며 다다미방을 거쳐 사라진다)
용석 아범; (하수에서 황급히 나오며) 관가 손님이 오십니다.
이중건; 응, 벌써 와. 아범은 어서 들어가 주안상을 탐탁히 봐 내오게. 술은 저 뭐라구 했지? 양인들이 먹는 거 그게 상등이라니 그걸 내오구 안주도 선별해서 입맛에 당기는 거루 챙기라구 쥔 마나님 보구 여쭤.
용석 아범; 네, 네, 걱정 마세요. 아침부텀 채려 놓구 기다리는 걸요. (안으로 들어가자 최 변호사, 임표운, 김의원 등장. 이중건, 버선발로 마중 나간다)
이중건; 공사간 분망허신데 이처럼 오시니 황송합니다.
최 변호사; 어서 올라 가십시다. 돌아가신 분두 퍽 영광으로 생각허실 겝니다. 아 참 소개하죠. 이분이 바루 고인의 친형이신 이중건씨, 이분은 국회특별조사위원회의 김 선생님, 이분이 상주되시는 송달지 씨.
이중건; 잘 보시구 잘 처분해 주십시오. 온 이 일 때문에 늙은 게 잠도 잘 못 잔답니다. (인사를 바꾼다)
김 의원; 망극합니다.
송달지; 뭐…… 괜찮습니다.
김 의원; 영구 모신 데가……
송달지; 저 방이올씨다.
이중건; 그리 급할 게 있습니까. 우리 술이나 한잔 나누시구…… 게 누구 없느냐?
김 의원;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소향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송달지; 네, 이리 들어오시죠.
김 의원; 그럼 잠깐…… (2인 옆방으로 들어간다. 우씨 뛰쳐나오며)
우씨; 임 선생이 왔다지, 응. 관가에서 나왔다지? 어서 우리들 얘기를 좀 그럴 듯하게 해요. 과히 억울치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영감두 돌아가신 거루 됐구.
최 변호사; 쉿.
우씨; 에그 참 정신두 없어라. 영감일랑 완전히 돌아가셨으니 남은 식구들일랑 어떻게 굶주리지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임표운; 마님께선 들어가 계십쇼. 최 선생님이 요량해서 잘 처리허실 테이니.
최 변호사; 쓸데없는 걱정일랑 덮어 놓십쇼, 헛헛. 모두가 수완 나름이죠.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만히 놓치겠어요. 헛헛.
우씨; 그럼 꼭 믿습니다. 술일랑 얼마든지 있으니 애들에게 일르슈. 삐루두 있구 영감 자시는 양국 술두 아직 몇 상자 남았다우.
임표운; 어서 들어가십쇼, 나오십니다.
우씨; 그럼 최 선생님, 꼭 믿구 있습니다. (우씨 들어가자 송과 김, 다시 나온다)
최 변호사; 이리 앉으시죠. 주안상이 나왔으니 목이나 축이시구.
김 의원; 아니올씨다. 곧, 실례 허겠습니다.
최 변호사; 상가에 오셨다 그냥 가시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김 의원; 그럼 잔칫집처럼 뛰다니구 놀아야 합니까?
최 변호사; 헛, 헛, 그런 게 아니 와요. 저, 어서 한잔 드십쇼.
김 의원; (마지못해 술잔을 든다) 고인의 아들루 해방에 학도지원병 간 이가 있었죠?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최 변호사; 그러니 말씀입니다. 영감두 삼대독자로 눈에 넣어두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식인데 십년 동안이나 화태에서 억류되었다가 오늘이야 돌아온다는 소식이 어제서 왔습죠. 며칠간 더 참으셨던들 이런 변이 없었을지도 모를 게 아닙니까.
이중건; 죽는 순간까지 우리 하식이 우리 하식이 허문 설랑 차마 눈을 못 감더군요.
김 의원; 그럼 영감께서는 운명하시는 걸 보셨구먼요?
이중건; 그럼요, 내가 눈을 감겼죠. 경동맥으로 면도칼을 싹둑 잘러 버렸는걸.
김 의원; 경동맥으로 면도칼을 잘러요?
최 변호사; 헛 헛…… 취하셨군. 면도칼로 경동맥을 끊었지.
이중건; 어 참……
최 변호사; 그래서 여기가 왼통 피바다가 됐더랍니다. 유설랑 고시란히 책탁 위에 놓여 있었죠. 송 선생…… 유서는 벌써 전에 꾸며 놓으셨죠, 네?
김 의원; 유언엔 전 재산을 송 선생께 양도하기루 됐다죠?
최 변호사; 글쎄 이 점이 또 고인이 대범하시구 출중허신 점이죠. 보통 인간같구 볼 지경이면 제 아무리 열 사위 미운데가 없다구한들 아들딸을 한 구둘 두구 어떻다구 사위에게 전 재산을 양도헌답니까? 들어보십쇼. 돌아가신 어른의 의견이…… 돈이란 건 그걸 잘 이용할 줄 알구 나라에 유익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법이다. 저 혼자 잘먹구 흥청거리구 놀라구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인 사업을 하자구 귀하기두 하구 필요두 한 것이란 말이죠. 그러니깐 돈이란 벌기보담 쓰기가 힘든 물건이라…… 하식 군으로 볼 지경이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아직 입에 젖비린내 나는 삼십 살 풋내기야 나라를 위해 적당히 쓸 줄 알 리 없을 터이구, 백씨 영감이니 세상 물계를 아실리 없으니 이루 두말할 필요조차 없구 보니, 예라 모르겠다, 그래두 믿을 만한 위인은 문중을 둘러봐두 여기 계신 송 선생밖엔 없으려니…… 그래서 유서두 그렇게 쓰셨죠. 그렇습죠? 고인의 유지가…… 송 선생……
송달지; 네 ― 글쎄 뭐 그렇겠죠.
이중생, 병풍 위로 머리를 내밀고 극이 진행하는 동안에 후수 막까지 나와 귀를 기울인다.
최 변호사; 그나 그뿐이겠습니까. 유언엔 가로되 「황천은 굽어 살피소서.」이랬겄다요.「소생은 죽음으로써 전생의 모든 과오를 청산하나이다.」이랬겄다요.「개과천선은 고 성현도 용납하시는 바이오니 황천은 이중생을 긍휼히 여기사 용서, 용서하옵소서……」 이 정신이야말루 과연 결백하다구 하겠습니까요, 숭고하다구 허겠습니까요.
이중건; 내가 초 잡은 게 어떻소?
김 의원; 네? 뭣이라구요. (옆방의 이중생 기절하듯)
최 변호사; (당황해서) 영감께서는 사랑으로 나가 계시죠.
이중건; 옳지 옳지…… 그런 게 아니었다! 저 저 사랑손님이 있어서 전 실례합니다. (후원으로 나가면서 독백) 어 참 큰 코 다칠 뻔했군. 기와집과 삼백만환이 제물에 살짝 녹을 뻔했지. 달지, 아범더러 후원으로 한상 채려 오라구 이르게.
최 변호사; 영감이 동생 잃은 후론 그만 뒤죽뒤죽입니다.
김 의원; 그러실 테죠.
최 변호사; 암 그렇구 말구요. 고인의 생전에는 모리배이니 인색가이니 많은 시비두 받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기간에는 각별했습죠. 이번 유서에두 당신의 백씨 일을 가장 걱정했습니다. 훌륭허시죠. 보통이 아니에요. 자기가 과오를 범했다구 자결하는 그 용기만 보아두 범인이 아닙네다.
김 의원; 양심의 가책대루 행동허신 게죠. 그래 송 선생의 희망이라구 헐까, 의견이라구 헐까, 어떻습니까?
송달지; 의견이요?
최 변호사; 희망? (이중생 긴장한다)
김 의원; (달지에게) 조용히 선생을 찾아 말씀드릴 일이지만 고인의 유지두 그러시다니, 우리두 그 유지를 존중하는 의미루 송 선생의 의사를 충분히 참고하여 행정 당국과 사법 당국에게도 댁에 유리하도록 의견서를 제출할 아량이 있습니다. 돈이라든건 필요하게 쓰구 유익하게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최 변호사; 아량?
김 의원; (그냥 달지에게) 보건 시설 같은 것은 어떻습니까, 선생이 의사라구허시니 말씀입니다만……
최 변호사; 보건 시설?
김 의원; 네, 우리나라처럼 보건 시설이 불충분한 나라도 없지요. (이중생 펄펄 뛴다) 그야 그럴 것이, 지금꺼정은 저마다 도회지서만 개업할랴했구 주사 한 대두 돈 있는 이만 맞게 생겼구, 돈 몇 환 있구 없구루 귀중한 생명이 왔다 갔다 하지 않었습니까. 무료루 치료해 주는 국립병원이 있지만, 아주 시설이 불충분하거든요.
송달지; (의외로 흥분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의사공부를 시작한 것두 그런 의미에서 한 것이죠. 의사랑 상업이 아닙니다.
김 의원; 잘 알겠습니다. 판결 결과가 이렇다 저렇다 경솔히 말할 수 없으나 송 선생의 생각을 관계당국에 보고해서 고인의 재산일랑 특별히 이방면에 쓰지게 하시죠? (이중생 곤두박질한다)
최 변호사; 고, 고인의 재산을 어데다써요. 헤헤…… 아, 아니올씨다. 고인의 생각은 그렇잖습니다. 좀 더 찬찬히 의논해 가지구설랑 결정허시지…… 헤헤!
김 의원; 그야 물론 당국에서 가부간 집행할 일이지 여기서 결정지를 성질의 것이 아니죠.
최 변호사; 아, 아니올씨다. 그런 의미가 아니구 고인의 가족, 이를테면 고인의 마누라…… 그러니까 바루 여기 앉은 상속인의 송 선생의 장모두 계시구 그의 딸, 다시 말할 것 같으면 송 선생의 부인두 있꾸, 아들두 있구 안 그렇습니까. 그 가족들의 생각두 알아봐야죠. 그렇게 됐지, 아마 송 선생?
송달지; 네, 제 의견만으룬……
최 변호사; 암 그렇구 말구. 가족의 의사두 참작해야지.
김 의원; 잘 아실 분이 일부러 오해하시는 것 같구먼요. 사기, 배임, 공급횡령, 탈세, 공문서 위조 등을 법적으로 청산하면 고인에게는 아무런 재산두 남지 않는 것을 잘 아실 텐데……
최 변호사; 그렇겠지만 개인 재산이야 침해할 수 없잖아요? 더욱이 이 양반에게 양도된 이상……
김 의원; 그렇기에 우리는 이중생 자신이 이미 자기의 죄를 자각하고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였으므로 고인의 소유였던 재산을 법적으로 처리하기 전에 우선 상속자인 송 선생의 의견을 참고하겠다는 게 아닙니까? 만일 가족 가운데 불만이 계시면 자기 죄과를 자인하고 입증하는 고인의 유설랑은 없애버리구 이중생을 다시 살려내가지구 상속자인 송달지 씨를 걸어 고소라두 하시죠.
이중생, 옆방에서 「그럴 법이.」하고는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송과 최, 어쩔 줄을 모른다.
김 의원; ……
최 변호사; 아, 아니올씨다 제 목소리가 갈려서…… (헛기침을 하고) 그럴 법이 있습니까, 헤헤. 그럼 이중생이가 다시 살아나야 상소라두 해볼 여지가 있단 말씀이죠?
김 의원; 다시 살아날 수도 없지만 기적적으로 부활한다해두 유서를 자신이 번복할 수야 있겠소? 저지른 자기의 죄과는 어떻구? 사기, 배임, 횡령, 탈세……
최 변호사; 가, 가 가만.
김 의원; 농담은 그만하시구, 하하…… 그럼 송 선생님의 의견이 그러시면, 진정서라구 할까 의견서라구 할까, 특위에 한통 제출해 주십쇼. 참고하겠습니다. 무료병원 설립은 정부의 방침과도 합치되니까요, 그럼.
최 변호사; 잠, 잠깐만…… 김 선생.
김 의원; 매우 불만이신 모양이군요. 선생은 상속법의 권위이시니까, 법적으로 따지고 싶은 모양이시니 그럼 법적 장소에서 정식으로 뵙죠, 실례합니다. (최, 어안이 벙벙해 있다. 임표운, 전송한다. 김이 하수로 나가자 이중생 튀어나온다)
이중생; 달지!
송달지; ……
이중생; (두 팔을 휘두르고 두발을 궁그르며) 달지! 자네는 누구의 허락을 받었길래 독단적 행동을 헌달말야? 응. 누가 자네더러 무료병원 세워 달랬어? 응. 대답 좀 해봐. 나느 그래 무료병원 세울 줄 몰라서 이 지경인 줄 아나? 내가 뭐랬어. 유산이니 재산문제는 일체 함구불언하라구…… 자네 그래 무슨 원한이 있어서 우리 집안을 망치는 게야. 응, 천치면 천치처럼 말 챙견이나 말 것이지, 뭐이 어쩌구 어째? 내 의견은 그렇습니다만, 의견이 무슨 당찮은 의견이란말야. 내 재산, 내 돈가지구 왜 염치없이 제 의견을 말해…… 응. 의견이 또 도대체 자네 같은 위인에게 무슨 의견이야. 일껀 의견이랍시구 내세운 게 장인 재산 물에 타버리는 종합병원? 예끼 고약한 놈 같으니라구, 어디서 배운 의견이야? 자넨 살아 있는, 아니 죽어있는! 아니, 아니 살아 있는 이중생…… 죽어 있는 이중생의 재산 관리인의 이외는 아무것도 아닌 걸 왜 몰라, 응. 이 천치! 어서 없어져! (달지 묵묵히 일어난다) 어디를 가! 앉어 있지 못허구. 그래 어떡헐셈인가, 응, 나는 그래 어떡허면 좋단말야. 이집은 토지는 현금은 어떡허란 말이야. 그래 자네 의견대루 배라먹을 무료병원에 내놓으란 말인가? 어디 의견 좀 말해 보겠나. 응? 이 재산이 내 재산이 어떤 건 줄이나 알구 그래. 이 사람 왜 말이 없어. 일 처리 그렇게 잘하니 끝을 맺어야지.
최 변호사; 영감, 그만두십쇼. 또 좋은 방법이 서겠죠. 철머리가 없어서 그렇게 된 걸.
이중생; (최에게) 뭣이 어쩌구 어째? 그래 자넨 철머리가 있어서 일껀 맹글어 논게 이 모양인가?
최 변호사; 고정하십쇼. 저보구꺼정 왜 야단이슈.
이중생; 자네가 뭘 잘했길래 왜 날더러 죽으라고 해, 응. (면도칼을 휘두르며) 여보, 최변호사.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걸로 목 따는 시늉까지 하구 나흘 닷새를 두고 이 고생, 이 망신을 시키는 거냐아! 유서는 왜 쓰라구 했어! 내 재산을 몰수하는 증거가 되라고! 고문변호사라구 믿어온 보람이 이래야만 옳단 말야. 이 일을 다 망쳐버린게 누구 탓야, 응? 유서는, 저 사람에게 책잡힐 유서는 왜 쓰랬어! 왜 내 입으로 발명 한마디 못하게 죽여놨냐말야, 나를 왜 죽여! 이 이중생을……
최 변호사; 영감 왜 노망이슈. 누가 당신 서사구 머슴인 줄 아슈. 누구게 욕설이구 누구게 패담이야!
이중생; 예끼 적반하장두 유만부동이지. 배라먹을 놈 같으니라구! 은혜도 정리두 몰라보구 살구도 죽은 송장을 맨들어 말 한마디 못하구 송두리째 재산을 빼앗기게 해야 옳단 말인가!
최 변호사; 헛 헛…… 영감 말씀 좀 삼가시죠. 영감이 환장을 해두 분수가 있지, 내게다 욕지거리라니 당찮은 짓 아닌가 말일세, 임군!
이중생; (벌벌 떨며) 예끼 사기꾼 같으니라구, 아직두!
최 변호사; 사기꾼? 영감은 무엇이구 응, 영감은 뭐야!
독경소리 처량히 들려온다. 일동 무거운 침묵과 긴장한 공기 가운데 싸였따. 용석 아범 륙색을 손에 총총히 등장.
용석 아범; 영감마님! 도련님이 돌아오십니다, 도련님이. 이런 경사로울 데가 어디 있습니까. 어서 좀 나가 보십쇼. (달지, 방에서 뛰어 내려와 하수에서 등장하는 하연과 하식과 만난다)
송달지; 오! 하식이!
하식; 형님…… 아버지.
임표운; 하식 씨.
하식; 임 선생.
최 변호사; 영감, 내일 사무원에서 청구서를 보내드릴 테니 잘 생각허슈. 괜히 그러시단 서루 좋지 않지! 살구두 죽은 척하는 죄는…… 헛 헛 참, 이거 무슨 죄에 해당하누? 형법인가 민법인가! (퇴장)
이중생; 하식아!
하식; (비로소 아버지의 의상을 보고) 아버지, 이게 웬일이십니까?
이중생; 하식아, 네가 살아왔구나. 네가…… (상수로부터 우씨, 하주, 옥순 등장)
우씨; 에그 네가 웬일이냐. (운다)
하주; 하식아!
하식; 어머니! 누나 잘 있었수?
우씨; 에그…… 네가 살아 돌아올 줄야……
하주; 얼마나 고생했니? 자, 어서 들어가자…… 아버진 나와 계셔두 괜찮수?
이중생; 다 틀렸다, 틀렸어! 네 남편 놈 때문에 다 뺏기구 말았어. 네 남편 놈이 내 돈으로 종합병원 세우고 싶다구 했어.
하주; 네?
이중생; 하식아, 최가 놈의 말을 들었지. 내가 죽어서라두 집 재산이나마 보전하려던 게 아니냐. 그런걸 예끼, (달지에게) 내가 글쎄 자네에게 뭐랬던가, 응? 난 무료병원 세울 줄 몰라 자네 내세웠나? 자네만 못해 죽은 형지꺼정 하는 줄 아나? 하식아, 글쎄 그놈들이 나를 아주 모리꾼, 사기횡령으로 몰아내는 구나. 그러니, 죽은 형지라두해야만 집 한 칸이라두 건져 낼 줄 알았구나. 왜 푼푼이 모아 대대로 물려오던 재산을 그놈들에게 털꺼덕 내 주냐말이다. 그래 갖은 궁리를 다 했다는 게 이꼴이 됐구나. 에이 갈아 먹어두 션치 않을 놈! 최 변호사 그 놈두 그저 한몫 볼 생각이었지. 하식아, 인제 집엔 돈두 없구 아무것두 없는 벌거숭이다. 내겐 소송할 데두 없구 말 한 마디 헐 수도 없게 됐구나. (흐느낀다) 네 매부 놈이, 매부 놈이 다 후려 먹었다. 저놈들이 우리 살림을 뒤짚어 엎었어! 하식아.
하식; 아버지!
이중생; 오냐, 하식아.
하식; 제가 하식인 걸 아시겠습니까? 제 이 얘긴 왜 하나도 묻지 않으십니까?
이중생; 오 참! 그래 얼마나 고생했니?
하식; 일본 놈에게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다가 그것두 모자라 우리나라가 독립된 줄도 모르고 화태에서 십년이나 고역을 치르고 돌아온 하식이올시다. 화태에서는 아직두 아버지 같은 사람이 떠밀다시피 보낸 젊은이와 북한에서 잡혀온 수많은 동포가 무지막도한 소련 놈 밑에서 강제 노동을 허구 있어요.
하주; (달지에게) 여보, 당신은 뭣이 잘났다구 챙견했수.
송달지; 누가 하겠다는 걸 시켜 놓구 이래? 이런 탈바가지를 억지로 씌여논건 누군데? (상복을 벗어 내동댕이친다)
하주; 누가 당신더러 무료병원 이 얘기 하갰소?
송달지; 하면 어때? 난 의견두 없구 생각두 없는 천치 짐승이란말야? 난 제 이름 가지구 살 줄 모르는 인간이구? 왜 사람을 가지구 볶으는 거야.
하주; 그러구두 잘했다구 되려 야단이야. 우리 집 망치구 뭣이 부족해서, 천치!
하식; 누님!
하주; 천치지 뭐야. 바본 바본 척 입이나 다물구 있으문 좋지 않어!
송달지; (하주의 뺨을 갈기며) 이것이!
하연; 어마 형부가!
송달지; 하식이, 내가 왜 자네 집 재산을 물에 타버리겠나. 재산두 귀하구 아버님의 명예와 지위두 소중하지만 어떻게 나라를 속이구 법을 어긴단 말인가. 옳다구 생각하는 처사를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까지 해서야 되겠나 말일세. 우리가 그러면 누가 국가의 사업을 돕구 우리들의 후배는 어떻게 되느냐 말일쎄. 아버지일 만 해두 한사람의 욕심과 주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젠가? 더구나 나 같은 위인이 가운데서 무은 일을 하구 묘한 꾀를 부리겠나? 또 아무리 내, 내 장인이래두 그럴 필요가 어딨겠나? 나는 구변이 없어 말을 잘 못 하네만 하옇든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떠들 때도 아니구 장차로두 어떤 세력을 믿구 저 혼자의 이익을 위하여 날뛰어서는 안 될 게 아닌가? 그 사람들은 좋겠지만 진정으루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냐 말이지. 하식이, 자넨 내가 장인을 두호허지 않는다구 나를 미워할텐가. 그렇다구 장인을 고발 할 수도 없는 놈이지만. 하식이, 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잘못이 있거들랑 기탄없이 일러주게나. 광대같이 상복을 입구 꾸벅꾸벅 조을수 있는 내 신세가 가련허구두 미련하지?
하식; 형님, 고정하십쇼. 잘 알겠어요. 아버지 시대는 이미 지났어. 형님두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가지구 번민할 게 뭐 있수. 형님, 우리 앞엔 우리를 새로운 권력과 독재자에게 팔아먹으려는 원수가 있어요. 나는 골고루 보고 왔어요. 할빈, 장춘, 홍남, 그러군 화태! 어 몸서리가 칩니다. 형님, 우리 나라가 독립된 줄두 모르구 있는 친구들…… 어서 들어갑시다. 할 이 얘기가 산더미같이 쌓였어요. 집안일은, 아버지일은 순리대로 돼 나갈 테죠.
우씨; (중생에게) 여보, 당신은 어떻게 할테유? (우씨와 하수도 망설이다가 들어간다. 사이, 이중생. (묵념)
이중생; 하식아.
하식; ……네?
이중생; 나는 어쩌란 말이냐. 네 애빈 그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하식; ……아버지, 어서 그 구차스러운 수의를 벗으십쇼, 창피하지 않아요?
하식 퇴장. 무대에서는 이중생 혼자 넋 잃은 사람처럼 서 있다. 독경소리 커진다.
후원에서는 「아범, 아범! 아까부텀 술상 봐오라는데 뭣하구 있어?」하는 중건의 소리와 지껄이는 조객의 소리. 박씨, 혼자 중엉거리며 하수로부터 등장.
박씨; 내가 뭐라구 했수. 형님은 참 유복두 허시지, 자기 아버지 장사전에 생시조차 모르던 아드님이 돌아오셨다가 천우신조로 하느님이 인도하였지.
박씨; 귀, 귀신, 귀신이야! (온 길로 달아 뺀다. 이중생, 다시 나와 사방을 살피고 방안에 떨어져 있는 면도칼을 무신코 들여다본다)
이중생; 귀신? 헛 헛! 그럼 내게는 집두 없구 돈두 없구 귀신이란 말이냐. 하식아…… (이윽고 후면으로 살아진다. 독경소리와 달빛이 처량하다. 무대는 잠시 비었다)
용석 아범; (술상을 들고 후원으로 가며) 용석이가 우리나라 광복군으로 가다가 일본 놈들에게 맞어 죽었다구…… 그럴 테지, 그래야지. 용석아, 잘했다, 잘했어. 도련님이 인젠 네 대신 날 돌보아 주시구 네 몫까지 나랏일을 하신다는구나. 용석아…… 그래야 허지. 우리들 늙은 것들은 다아 죽어두 좋아, 암 어서 죽어야지. 서방님이나 도련님 같은 분들이 씩씩허게 일해야지, 헛 우리들이야 뭐 관속에 한 발 들여 놓은 송장들인걸, 헛 헛…… (후원으로 가자마자 「악!」소리와 함께 「영감마님!」「영감마님!」하며 아범 뒷걸음질 쳐 나온다)
용석 아범; 영감마님, 영감마님, 시첼 누가 널을 헤치고 뜰루 끌구 나왔어요. 마님, 아이구머니, 이런 흉변이……
술상을 땅에 떨어뜨린다. 전 가족이 놀라 뛰어나와 못에 박은 듯이 한 곳에 정립한다.
후원과 사랑에서도 중건이와 조객들이 뛰어나온다. 달빛은 유난히 밝고 독경소리 점점 커진다.
― 막.
하3-(4)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李重生閣下)[앞 부분의 줄거리]
<br>
2. 3막 4장으로 된 이 희곡은 동일한 장소를 무대로 하여 전개된다. 무대는 이중생씨의 안사랑채로 온돌방에 연달아 오른쪽에 일본식 다다미방이 조금 보이며 왼쪽은 바깥 사랑이며, 그 뒤로 후원(後園)으로 통하는 울타리 길이 조금 보인다. 8·15 이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주택 구조로 이른바 일본식과 한국식의 절충식이다. 이 방의 배경으로 석등(石燈)과 정자까지 바라보이는 정원, 호화로운 집으로 방안에 놓인 화초분 등 모두가 값나가는 것이지만 격조는 없어 보이는 집이다. 이러한 무대 설정은 사건이 벌어지는 시기가 광복 직후의 사회상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br>
<br>
제 1 막은 이중생의 집에 손님이 오게 되어 있어 분주하게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준비 과정에서 이중생의 가족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 관련된 사정들이 드러난다. 이중생은 일제 시대에는 친일을 하여 돈을 벌었으며 해방 후에는 목재 회사와 산림 산업을 맞아 거드름을 부리며 살지만 본디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인품의 인물이라는 것, 이중생의 아내 우씨는 남편을 대단한 존재로 알고 부자인 것만 뻐기는 여인으로 집안 하인들에게조차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것, 현재 이 집안에는 첫째 딸 하주와 사위인 송달지가 함께 사는데, 본업이 의사인 송달지는 생활력도 없고 착하기만 하여 교양이 없어 보이는 아내 하주에게 핀잔을 받아 가면 처가에 얹혀 지낸다는것, 이중생의 아들 하식과 머슴의 아들인 용석이 이중생의 친일 행각 때문에 지원병으로 일본 군대에 들어가 그 때가지 소식을 모른다는 것, 둘째 딸 하연은 이중생이 사업상 관계를 맺고 있는 란돌프라는 외국인과 함께 인천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 등이 드러난다. 손님 맞이 준비에 한창 분주한 집에 들어온 이중생은 비서 임표운과 함께 장차 일이 잘 풀리면 산림 회사를 불하받아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물론이고 장차 장관까지도 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을 한다. 그러나 일은 불길하게 전개된다. 시경의 형사가 이중생을 체포하러 들이닥치고, 인천에 가 있던 둘째 딸 하연은 인천 별장이 아버지 것이 아니라 관리인을 속여 뺏은 것이 탄로나서 쫓겨났으며, 란돌프란 자는 미국 원조 기관 직원을 사칭한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br>
제 2 막 제 1 장은 한 달쯤 지난 뒤다. 이중생은 배임 횡령, 공문서 위조, 탈세 등의 혐으로 체포 수감되었고, 그 형인 이중건은 땅 팔아 산 집이 이중생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 이번 사건으로 집을 빼았겼다며 집 찾아 내라고 이중생의 집에 드러누웠다. 집안 식구들은 걱정을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고, 둘째 딸 하연은 아버지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언니 하주와 매사에 충돌하고 자기 나름으로 회사에 취직을 한다. 이중생은 최 변호사의 도움으로 가석방되어 나오고, 이중생과 최 변호사는 이중생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것처럼 꾸며 재산을 보호하려는 모의를 한다.
<br>
제 2 막 제 2 장은 그 다음날 저녁이다. 이중생이 재산 관리인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사위 송달지는 천성이 착하기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죽지 않은 이중생이 죽은 것처럼 하여 송달지 행세를 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는 없는 거나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