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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6)ㅡ최금진 시인 <복숭아뼈>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6)
「복숭아뼈」, 최금진 시인
복숭아꽃 피던 시절
도시락을 싸서 너와 소풍 가던 기억 단단하다
너와 먹던 복숭아 조각이 어떻게 발목까지 내려가
복숭아뼈 화석이 되었을까
나는 너의 발뒤꿈치를 가만히 물었다
노리기 좋은 희디흰 발목이었으니까
달콤한 독 잔뜩 오른 독사가 되어
우리가 나뭇가지에 물컹물컹한 몸을 쪼개어 열려
거꾸로 익어갈 때
너무 오래 걸어와 돌아가는 길을 잊은 한 사람은
기꺼이 그 과실을 따먹었으니
너의 발목에 족쇄처럼 사랑은 자취를 남겼나
복숭아뼈엔 복숭아 먹던 흔적이 있어서
네 희고 향긋한 발목을 보면
죄는 익어가고
아름다운 기억은 이렇게 모든 여정을 걸어와 발목에 모여 고였나니
그 굳어버린 호수의 뼈여, 둥근 바닥이여
복숭아꽃 피는 시절에 우리는 한 나무에 달려
우리의 유방과 엉덩이와 발그레한 얼굴을 나누어 가졌나니
그 무게의 하중이 찬찬히 미끄러져
가장 낮은 곳으로 쌓인 채 굳어갈 것을 알면서도
꿀벌처럼 달콤한 것을 탐했으니
내 이빨엔 독이 깊어가고
네 눈알엔 벌겋게 슬픔이 여물어
툭, 가장 낮은 아래로 떨어져 오래 굳어갔으니
-「복숭아뼈」, 『문학과 사람』 2020, 봄호, 전문
최금진 시인 약력: 충북 제천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2001년 제1회 창비 신인시인상에 당선, 시집으로 『새들의 역사』, 『황금을 찾아서 』,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외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있다. 2008 제1회 오장환 문학상 수상, 동국대, 한양대 출강
인간의 사랑은 지극히 아름답다. 사랑은 생명을 이어가는 원천이고,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가장 따뜻하고 원활하게 해주는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모든 인간이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런데 이런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 혼자 힘이나, 너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둘 사이 존재의 동일성이 잘 유지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인간의 심리 안에는 욕망, 욕정, 질투 이런 것들이 있어서 변하지 않는 절대 존재의 동일성이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탄생과 함께 성장하고, 늙어간다. 이처럼 물질이 변화하고, 영혼도 변화한다. 결국 인간의 사랑도 존재의 동일성에서 보면 변하기 마련이다.
최금진 시인의 「복숭아뼈」에서 나는 모든 인간처럼 물질과 영혼이 미끄러지고 변화한다. 육체적 성체인 물질이 급격히 발달하고, 나의 심리 안에 있는 비물질적인 성욕망 역시 잠재기를 거쳐 “복숭아꽃 피는 시절”에 이르면 급격히 변화한다. 이 시기 나는 반쪽인 너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걸어서 한 몸의 사랑을 얻고자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원래 인간은 ‘남’과 ‘여’가 한 몸을 지닌 원통형 사랑이었다고 한다. 나의 사랑 역시 “한 나무에 달려/우리의 유방과 엉덩이와 발그레한 얼굴을 나누어 가진다.” 이 둥근 사랑의 비유적 표현은 ‘유방’, ‘엉덩이’, ‘발그레한 얼굴’로 나타나는데, 이는 복숭아로 치환되는 성의 흘러넘침이고, 과잉된 주이상스이며, 신성이다.
그러나 나의 사랑은 상승 상태에만 놓여있지 않고 변하거나 미끄러진다. 너와 나의 고조된 사랑이 발목까지 미끄러져 복숭아뼈에 닿는 것이, 곧 사랑의 하강이다. 그 원인을 나는 “발뒤꿈치를 가만히 물고 있는 데서”, “희디흰 발목”을 노린 데서 찾고 있다. 그 점에서 “독오른 독사”가 된 나의 사랑 행위는 가학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광적인 사랑은 사랑의 열병에 의해서 발병하는데, 그 열병이 독인 줄 알면서도 나는 “복숭아뼈엔 복숭아를 먹던 흔적이 있어서”, 너의 “희디흰 다리를 보면 달콤해서” 죄를 짓게 된다. ‘희디흰 다리’와 ‘복숭아뼈’는 사랑의 위치와 달콤함이라는 너의(여자의)인접성이다. 그런데 나의 가학적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너는 신성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한다. 결국 너와 나 한 몸이 되기 위해 “모든 여정을 걸어왔던” 나는 “네게 사랑의 족쇄”인 복숭아뼈의 화석만 남기게 된다. 가장 낮은 ‘복숭아뼈’ 즉 ‘둥근 바닥’이란 말은 환원주의 에 입각해서 보면 그 속에 도약을 함의하고 있다.
최금진 시인은 ‘사랑의 상승과 하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존재의 동일성에 대해 천착해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존재에게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의 사랑 역시도 상승과 하강의 풍경을 그리며 변화한다. 상승에는 인간 생명력이 활력으로 넘치지만 하강은 고통이며, 상처이고, 도약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결국 최금진 시인의 ‘사랑’은 시적 상상력의 원천이다. 또한 “어디서 끊긴 지도 모를 현들이며”(「잔혹한 사랑의 연주법」), “집을 갖기 위해 집을 버린 나무”(「연리지목을 보러 가다」) 와 같은 마음이다. 사랑에 대한 그의 시쓰기는 두 지점의 중간, 그러니까 안개 지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랑은 어느 시인이나 다 쓸 수 있는 주제다. 한국 시단의 대부분 시인은 아름다움과 위대함으로 상대를 지키려는 미학적 사랑에 관해 쓴다. 그러나 최금진 시인은 인간의 정신성 안에 운집해 있는 파토스적인 면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가운데 빛을 바라보는 사랑시를 썼다. 완전 심미적이기를 바라는 사회적 초자아의 저지를 뚫고 파토스적 사랑시(『사랑도 없이 개미귀신』)를 썼다는 것은 시인이 미학적 터전을 확장하기 위해 불투명한 세계와 갈등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이후 시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경북 안동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전 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두레문학》편집인, 문예비평지『창』편집위원, <시인뉴스> 편집위원
□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