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시골에 시사를 지내기 위해 다녀왔다.
금년에는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조금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제시 음식까지 다 장만해 놓고 확진자가 생기는 바람에
시사도 취소되었다. 산 사람이 살아야 죽은 귀신도 제삿밥이라도 밥을 얻어 먹지 팬데믹이 일어나 온 동네가 난리통인데 죽은 귀신 돌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집안에서는 음력 시월이 시작되면 여러 군데서 날을 잡아 시사를 지내왔다. 진성에서는 음력 13일과 14일에 지낸다. 조상중에 진성으로 내려 온지는 약 500년전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제물을 마련해서 지게에 지고 산소에 올라가서 제물을 차려놓고 시사를 지냈는데 1980년대에 동네에 재실을 따로 짓고 가까운 집안만 9대조까지 시사를 모시고 있다. 그 위의 조상들은 한식날 의령과 영양에 가서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시사철이 되면 산에 흰두루마기를 입고 산소에서 시사를 지내는 모습이 눈에 띄면 산꼭대기라도 달려 갔다.
시사를 다 지내고 나면 떡을 나눠 주기 때문이었다. 딸아이들은 어린 동생들을 등에 업고 따라왔다. 어린애도 한몫으로 주기 때문에 힘이 들어도 떡을 얻기 위해서 악착같이 따라 다녔다. 날이 쌀쌀하기 때문에 나눠 주는 떡이 굳어서 딱딱한데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먹을 게 없으니까 돌을 주워 삼켜도 소화가 될 정도였다.
날이 갈수록 시사에 참석하는 후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시간보다는 제사나 시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이든 우리들보다는 대수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중에는 제사도 집에서 모시지 않고 절에다 모시는 집도 더러 있다고 한다. 우리 세대가 지나가고 나면 유교식 제사는 아마도 전통이 끊기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우리집만 하여도 자식이 지방과 축문 쓰는 법을 배우려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으례 애비가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서 배워서 제사때는 먹을 갈아서 내가 썼다.
첫댓글 그냥 우리 세대로 제사도 끝난다고 생각하면 편해.종산 종토있어면 전두환 시절 특별 농지법 생겨 ,팔아먹은 장손들도 많고/ 재실도 가꿀 사람도 없고/가진 재산 있어면 실컨 쓰고 부모 거역하면 불우 이읏돕기 하면 되고/요즘 일찍 증여 상속하면 사위 며누리 좋은일 만들어 이혼은 즐기는 세대 같아.내자식은 착하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똑 같은 이기적 젊은층들 즐기고 보자식 미래 생각 안해 /손자 손녀 장래은 안중에도 없어/ 다 빤쯔 팔아 대학 보냈겠다던 부모들 잘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