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라에서 2박을 하고 마지막 여행지인 히바로 떠나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입장에서 한 군데서 2박을 하는 것은 안도감을 준다.
매일 가방을 싸는 것이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2박을 하면 제일 먼저 나가기 전에 간단한 빨래부터 해서 실내에 널든가 밖에 널든가 하고 외출 준비를 한다.
랴비 하우스 부근 관광지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가이드가 만든 부하라 관광지도를 들고서 각자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을 한다.
젊은 사람들은 혼자서도 빠리빠리하게 스스로 잘 다니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서
어울려 가기도 하고
어울려 간다고 하더라도 목적지를 한 방에 찾아가지도 못한다.
그런데 자유여행의 목적지를 같이 간다고 하더라도 걷는 속도도 다르고 관심분야도 다르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다시 흩어지게 되면서 끝까지 혼자 구경을 하거나 아니면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 다시 만나게 된다.
오늘의 목적지는 라비하우스로 약도를 보니 목적지까지 걸어서 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데 가는 길목에
새 건물을 짓느라고 도시 전체가 공사중인 느낌이다.
2천년에 가까운 도시이기 때문에 땅 속에는 문화재들이 많을 것인데 이렇게 공사를 막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허물고 새로 짓고... 전 시가지가 이런 모습인 것 같다.
그런데 건축방법이 아직 전근대적이다.
니소미 스트리트라고 부하라 시내의 주요 도로 주변...지하에 유물들이 있지 않을까...
랴비 하우즈로 가는 길에 보이는 Мавзолей Дахмай Бехиштиён으로 나와 있는 건물..
랴비 하우즈 가까운 곳에는 이렇게 거리가 장식되어 있다.
밤에는 네온싸인도 하려할 것 같은 거리
옛날 건물들이 호텔로 변경되어 있다.
보이는 옛날 건물들이 다 호텔이다....
가는 길에 보이는 호텔들...
지도도 보고 묻고 하면서 오늘의 목적지인 라비 하우즈(Lyabi Hauz Complex)에 도착을 했는데 Lyabi Hauz는 페르시아
말로 '연못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라비 하우즈를 중심하고 볼거리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부하라를 찾는 관광객들은 일단 이곳에서부터 부하라 관광을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가이드가 없이 개별 관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재 등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가 없지만 다행히 가이드가 지도와
단체 톡으로 부하라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어서 구경을 하는데 불편은 없다.
부하라의 볼거리들은 랴비 하우즈를 중심으로 시작되는데 큰 인공연못을 중심으로 북쪽에 부하라 최대의
'마드라사' (이슬람 학교)인 Kukeldash Madrasah, 서쪽에 이슬람 수도자들의 숙소인 Khanaka Nadir Divan-begi,
하나카 뒤에는 마고키 앗타리 마스지드(Magoki Attori Masjidi), 동쪽에는 Nadir Divan-begi Madrasah,
그 앞에는 호자 나스루딘(Hodja Nasruddin) 동상이 있다.
그리고 칼란 모스크를 가는 길에 Toqi Telpak Furushon Bazaar를 거치면 Abdulaziz Khan Madrassah와
Mir-i-Arab Madrasa, Kalan Mosque가 있고 칼란 모스크를 지나면 Ark성이 나오고 왼쪽으로 더 가면
구약성서의 욥기의 주인공 욥의 셈과 무덤인 Chashma-Ayub Mausoleum이 나온다.
우선 라비 하우즈 주변부터 둘러보기로 하는데 결국 부하라에 있는 동안 이곳을 두 세 번 이상을 오게 되었다.
이곳이 부하라의 볼거리의 시작이고 끝이기 때문이다.
랴비 하우즈...
'나디르 디반베기' (Nadir Divan-begi)는 당시 부하라의 최고 통치자로 랴비하우즈 건설을 지시한 사람으로
그당시 지금 랴비하우즈 연못이 있는 자리에는 유대인 과부가 살았다고 한다. '나디르'가 이곳에 호수를 파고 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유대인 과부에게 토지 매각을 종용했으나 팔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곳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고 이슬람 율법상 그들에게 토지매각을 함부로 강요할 수도 없어서 일단 당초 계획보다
조그맣게 호수를 파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결국은 그녀가 다른 곳에 유대인 기도원을 건설할 토지를 주면 자기집을
팔겠다고 하여 이사를 내 보내고 현재의 큰 호수를 조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랴비 하우즈 동쪽의 Nadir Divan-begi Madrasah
봉황 그림이 그려져있는 Nadir Divan-begi Madrasah.. 지역의 행정 책임자를 디반베기라 불리는데
나디르 디반베기는 카라반사라이였던 이곳을 1622년 마드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마르칸트의 쉐르도르 마드라사의
출입문 피쉬탁에 그려진 사자 그림처럼 이곳 피쉬탁 위에도 사람의 얼굴이 있는 태양과 조로아스터교를 상징하는‘후모’가
장식되어 있으며, 쉐르도르 마드라사보다 훨씬 먼저 살아있는 동물을 묘사한곳이라고 한다.
내부..내부는 공연장과 기념품 가게들이 있다.
기념품 가게들
우즈베키스탄에서 자주 보는 할아버지인형
이곳에서도 황동 세공을 하는 곳이 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모녀들...부하라에서 보는 여자들의 의상 색깔이 참으로 세려되고 화려하다.
Nadir Divan-begi Madrasah 앞에 있는 나귀를 탄 호자 나스레딘 동상
익살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신발은 걸치다가 말았다.
호자 나스루딘(Hodja Nasruddin)은 13세기 터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호자(Hodja)는 스승을 의미하는 명칭이라고
하며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귀족들을 풍자하고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 해주었던 호자 나스루딘의 상징인 당나귀를 타고
손을 흔드는 동상은 바보같은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으로 친근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나스루딘의 익살스러운 동상은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터키나 이란 같은 곳에도 있다고 하며 나스루딘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도 알려져 있는데 '팔러가는 당나귀이다'
부자(父子)가 당나귀를 시장에 팔러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냥 끌고 가는 것을 보고 혀를 차면서 타고 가지 그냥 끌고 간다고
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타라고 한다.
그러고 마을을 지나가는데 나무 그늘에 있던 노인들이 젊은 아들이 타고 나이 든 아비가 걸어간다고 불효한 놈이라고 비난을 한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을 내리게 하고 아버지가 타고 가는데 우물가에서 여인들을 만났다. 그러자 그 여인들이 어린 아들은
걷게 하고 아비가 타고 간다고 비난을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보고 너도 타라고 하여 둘이 타고 가다가 시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상인들이 한 마디 한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둘이타고 가는 인정머리 없는 인간들이라고 비난을 하자 결국은 장대를 구해와서 다리를 묶어서
부자가 당나귀를 메고 장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랴비 하우즈 주변
낙타들이 연못가에 만들어져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연못가에서 휴식도 하고 식사도 한다.
사람들은 낙타위에 올라가서 사진도 찍고 한다.
랴비 하우즈 서쪽
라비 하우즈 서쪽의 Toqi Sarrofon Bazaar입구
내부...
마고키 아토리 모스크 (Magoki Attor Mosque)가는 길의 건물터
가장 오래된 무슬림 사원 중 하나, 마고키 아토리 모스크 (Magoki Attor Mosque)
기존 자리에 원래 불교사원, 조로아스터교 사원이 존재했고, 뒤이어 12세기쯤 무슬림 사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각 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마고키 아토리 모스크 (Magoki Attor Mosque)근처의 카펫 들을 파는 곳
패션쇼 선전 간판도 걸려 있고...
Toqi Telpak Furushon Bazaar입구가 보인다.
Toqi Telpak Furushon Bazaar 내부
옷과 모자 등을 파는 아주머니들... 2일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얼굴을 익혀서 오며가며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Toqi Telpak Furushon Bazaar를 지나면 울루그벡 마드리사와 칼론 모스크 등이 나온다.
천막의 색깔과 문양이 우즈베키스탄의 대표 문양이다.
Toqi Zargaron...보석 세공업자들의 집이라는 뜻이라고..실크로드 시절 부하라에서 가장 큰 교역장소였다고 한다.
울르그벡 마드리사 ...입장료를 받는데 구태여 들어갈 필요가 없어서 밖에서만 보았다.
Abdulaziz Khan Madrassah..17세기 부하라의 왕인 압둘라자 칸은 울루그벡 마드리사보다 더 화려한 마드리사를 지었다.
지금은 상점들로 사용되고 있다.
Madrasa Mirzo Ulughbeg 각자 숙소에서 출발하였지만 대부분 이곳에서 만난다.
Kalan Mosque로 가는 길
그 유명한 칼란 미나렛으로 이곳에서 비치는 빛으로 대상들이 부하라를 찾아 왔다고 하여 부하라를 초원의 등대라고 하였다고 한다.
칼란 모스크에 대한 안내판...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서 파괴디었다가 1514년에 지어졌다고...
칼란 모스크...입장권을 사가지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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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는 사막의 동서 교역로에 터를 잡고 있었으며, 기원전 4세기의 고대 문화에서부터 17세기 중세 문화까지 2500년의
역사가 쌓여 있는 도시이다.
우즈베키스탄의 현재 수도는 타슈겐트이지만 부하라는 9세기 사만 왕조가 처음 수도로 정한 곳이었었다. 그리고
사만 왕조를 이어 터키계 왕조인 카라한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세계적인 교역 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부하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상업과 수공업이 크게 번성하고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여 당시 세계 문화의 한 축을 이룰 정도였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하라는 1220년 봄 몽골의 칭기즈 칸의 침입을 받았고 당시 하레즘 왕조의 도시였던 부하라의 지배자는
“여기는 알라를 모시는 성스러운 왕국이다! 한낱 유목민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 라며 칭기즈 칸의 지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몽골에 대항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본보기로 칭기즈 칸은 건물을 모조리 부수고 귀중한 유물을 약탈하면서
부하라를 철저하게 파괴하여 붉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땅 위에 부하라는 폐허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14세기 티무르가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승자로 등장을 하면서 부하라는 다시 재건되기 시작을 하였다.
거대한 성벽과 요새가 만들어지고, 동서남북으로 곧게 도로가 뚫리면서 화려한 왕궁이 지어지고 이슬람 사원과 학교,
병원, 도서관, 공중목욕탕, 주거지 건물들이 아름답게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성채 바깥에도 시장과 대상들의 숙소인 카라반사라이, 종교 학교인 메드레세가 즐비하게 줄지어 세워졌으며,
전성기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360여 개, 메드레세 113개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티무르제국이 1506년 우즈베크의 샤이반 왕조에게 멸망당하면서 부하라는 16세기 중엽부터 그들이 세운 부하라 칸국의
수도가 되었다.
1868년 부하라 칸국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부하라 시는 부하라 칸국 대신 세워진 부하라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의
수도였으나, 1924년 우즈베키스탄에 흡수되면서 타슈겐트에게 수도의 자리를 내 주고 말았다.
부하라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건물들은 티무르제국 시대와 부하라 칸국 시대의 건물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덕분에구경잘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