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번째 편지 - Leave No Man Behind
지난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이 43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21시간에 걸친 종전 협상이 진행됐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 전쟁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 가운데 유독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은 미국 전투기 조종사 구출 작전에 관한 보도였습니다. 지난 4월 3일 이란 미사일에 의해 미 공군 전투기가 격추되었습니다. 조종사와 무기체계장교는 비상 탈출을 하여 이란 영토 서로 다른 지점에 착륙하였습니다.
조종사는 수시간 만에 구조되었지만 산악지대에 고립된 무기체계장교는 부상을 입은 채 심한 출혈 속에서 이란군의 추격을 피해 약 48시간 동안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구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는 통신 장비로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구하기 위해 무려 155대의 항공기를 투입하는 전례 없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폭격기 4대, 전투기 64대, 공중급유기 48대, 구조 전용기 13대, 그리고 다수의 전술 드론이 동원되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실제 구조 지점이 아닌 가짜 지점에서 동시에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이란 수색대가 혼란에 빠진 사이, 특수부대는 무기체계장교를 구출해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한 공동체란 적을 얼마나 많이 쓰러뜨리느냐로 증명되는 집단이 아니라, 자기 사람을 단 한명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가 아닐까.
4월 6일, 이 작전에 대한 백악관 브리핑에서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We do these things so that others may live and we will never leave anyone behind.”(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전우를 구하기 위함이며, 그 누구도 홀로 뒤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Never leave anyone behind(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문구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헤그세스 국방장관 역시 같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대통령, 국방장관, 합참의장이 한목소리로 되풀이하는 이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공동체를 떠받치는 하나의 신조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철학의 기원은 18세기 프렌치-인디언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버트 로저스 소령의 ‘28개 수칙’ 제11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Never leave any of your people behind if they are wounded. (전우가 부상을 입었다면 결코 뒤에 남겨두지 마라.)”
이 정신을 군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한 곳은 제75레인저연대입니다. 1974년에 작성된 ‘레인저 신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담겼습니다. "I will never leave a fallen comrade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enemy. (나는 쓰러진 전우가 적의 손에 떨어지도록 결코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이 정신이 “Leave No Man Behind”라는 네 단어로 압축되어 전 세계적인 군사적·문화적 슬로건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93년 모가디슈 전투를 다룬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영화의 메인 카피이자 포스터 문구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2003년 미 육군은 엘리트 부대의 전사 정신을 전 장병에게 확산시키기 위해 ‘병사의 신조’를 개정했습니다. 이때 레인저 신조가 반영되어 “ I will never leave a fallen comrade (나는 결코 쓰러진 전우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라는 구절이 지금의 모든 육군 병사의 공식 신조가 되었습니다.
저는 과문하게도 “Leave No Man Behind”라는 표현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접한 순간 이것은 단지 군인의 구호가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품격을 가늠하는 문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이런 정신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체 여행 중 누군가 늦어지면 그 사람을 두고 먼저 출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다립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 정신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2001년 제정된 낙제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입니다. 공교육에서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이나 소외 계층의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모든 학생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 목표에 도달하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Leave No One Behind”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의 대원칙입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의 빈곤을 퇴치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인종과 성별,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하겠다는 국제사회의 약속입니다.
물론 원칙에는 비용이 따릅니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열 사람을 잃어도 되는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산 사람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가. 결코 가볍게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에게 동료들이 자신을 끝까지 되찾으려 할 것이라는 확신만큼 든든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유가족에게 사랑하는 이의 유해를 품에 안고 안장할 수 있다는 확신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위로일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다려 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감각, 내가 소외되지 않고 함께 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그 공동체를 건강하고 단단하게 만듭니다. 가족에게도, 직원에게도 그러한 확신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울타리가 되어 줄 것입니다.
저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또 한 회사의 대표로서 이 신조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공동체의 품격이란 언제나 앞서가는 이들의 빛남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뒤처진 한 사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 역시 ‘남겨지는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 나를 찾아오는 사람, 나를 홀로 두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깊고도 조용한 위로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또한 이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는 앞선 사람들을 더 빨리 달리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뒤처진 사람을 기다리며 마침내 함께 목적지에 이르도록 이끄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진정으로 강한 공동체는 가장 앞선 사람의 속도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뒤에 선 사람의 손을 끝내 놓지 않는 책임감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Leave No One Behind'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6.4.13 조근호 드림 <조근호변호사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