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한 무한 전생 / 지명스님
지구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것 가운데 최고속도를 내는 것은 빛이다.
빛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린다. 이 이상 빠른 것은 없다.
이렇게 빠른 빛이 태양으로부터 지구까지 오는 데는 8분 19초가 걸린다.
그런데 은하계에 있는 많은 항성(恒星)에 비하면 태양은 지구와 아주 가깝게 있는 편이다.
가장 가까운 항성이 지구로부터 40조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빛이 1년 동안에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약 9조 4천 6백억 킬로미터이다.
최근거리의 항성에서 발사된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4.3 광년(光年)이 걸린다. 어떤 항성은 수억만 광년의 거리에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보는 태양의 빛은 8분전의 것이요, 무수한 항성들의 빛도 수억만년 전의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억만년 전에 발사된 저 별들의 빛을 보면서 ‘불가사의(不可思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 별은 이미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별 빛만 기나긴 여정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이 과거를 갖고 있다고 가르친다.
사람의 몸, 인상, 행동이나 생각의 습관 등이 바로 눈앞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뒤에 무한한 역사가 있다.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은, 별 빛이 수천만 년에 발사되었던 것처럼, 이미 무량억겁 전에 발사된 것이다.
목전의 현상이 긴 과거의 배경에서 나온다는 설명이 바로 업설(業說)이요 전생설(前生說)이다.
법화경 제바달다품에 나오는 전생담을 하나 들어보자. 제바달다는 아난존자의 형으로, 속세 관계로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요, 출가 승단 관계로는 부처님의 제자이다.
그런데 그 제바달다가 교단 최고 지도자로서의 부처님 자리를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몄다.
제바달다는 마갈타국의 왕자인 아사세에게 충동질을 해서 아버지인 빈비사라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게 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목숨까지 위협하며 교단주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나라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승단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제거하려 한 것이다. 아사세는 성공했지만, 제바달다는 실패했다.
그러니 불교에서 제바달다는 극악인의 표본처럼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과거 전생담으로 악인을 선인으로 바꾸어 버린다.
무량겁 전의 전생에, 부처님은 여러 겁 동안 몸을 바꾸며 거듭 왕으로 태어나 법화경의 가르침을 갈구한다.
그 때 한 신선이 있어 그 왕에게 법화경이라는 대승법을 알고 있는데 배우겠느냐고 묻는다. 왕은 그 신선을 따라 공부해서 오랜 생을 닦은 후에 마침내 부처가 된다.
그 전생의 신선은 바로 현생의 제바달다요, 그 전생의 왕은 지금의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제바달다는 미래세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얻는다.
법화경은 나쁜 사람 제바달다를 좋은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서 일정한 과거의 전생담만을 끌어다 썼다.
그러나 그 전생을 말하기로 한다면, 왜 꼭 저 때의 전생만 말해야 하는가. 그 이전 무한 과거에 있었던 무한의 전생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무한의 전생을 찾아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고정된 악인이나 선인이 없어진다. 오직 기나긴 업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만나게 된다. 만약 눈앞의 현상이 지금 당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량겁 전부터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숙명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의 업이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 숙명적인 것은 없다.
단지 나의 선의와 노력만으로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금생이 세계의 출발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한 전생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 짧은 노력으로 지금 당장 보상을 얻으려는 한탕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 뿌린 씨앗이 내는 결실을 미래세에 천천히 거두겠다는 여유 있는 원을 세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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