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네이버사전에서 찾아보니까... 영예와 치욕이라는군요.
미당 서정주에게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다큐 보는 동안 마음이 씁슬하데요.
친일시인이면서 그렇게 불리워지기를 거부하고
말년에 병상에서도 끝내 참회를 하지 않고 2000년 12월 24일 타계한 친일시인 서정주
여러 평론가들에게 천재시인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서정주를 가리킬 만큼 필력이 뛰어난 시인이라죠.
작품속에서 황국국민, 창씨개명을 권하고 가미가제를 찬양했으며 해방 후에도 신군부 세력에 의해 정권이 바뀔때 마다 축시를 불러줬던 서정주
해방이 된 직후 그는 '나는 이렇게 빨리 일본이 패망할지 몰랐다. 100년, 200년 갈줄 알았는데..' 라는 말을 했데요.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이런 사람의 시를 배워야 한다니..
타계한 후에도 그의 과거 친일행각에 대해서 쉬쉬하는 이유가 아직까지도 국어학계에 행사하는
그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라는군요.
그가 우리 국어와 문학사를 발전시킨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른도 넘지 못해 생체실험의 희생량이 된 '잊지 못할 윤동주' 앞에서 서정주는 너무나도 부끄런운 이름입니다.
그는 저승가서 만난 윤동주, 한용운, 이육사... 들에게 뭐라고 했을까요?
정병욱
이 글은 윤동주의 학교 후배인 정병욱 씨가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윤동주의 삶과 인품, 그의 시와 창작 과정 등에 대해 수필 형식으로 쓴 평전이다.
작가에 대한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접근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접근을 꾀하고 있는 글이라 볼 수 있다. 글쓴이는 성숙한 인격과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윤동주'라는 시인과 젊은 날을 함께 했던 것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 갈래 : 수필, 전기문(평전)
* 성격 : 회고적, 예찬적
* 주제 : 윤동주에 대한 회고를 통한 창작 활동 및 성격
동주의 주변에도 내 주변에도, 별반 술꾼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술자리에 어울리는 일은 별로 없었다. 가끔 영화관에 들렀다가 저녁때가 늦으면 중국집에서 외식을 했는데, 그 때 더러는 술을 청하는 일이 있었다. 주기가 올라도 그의 언동에는 그리 두드러진 변화가 없었다. 평소보다 약간 말이 많은 정도였다. 그러나 비록 취중이라도 화제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의 성격 중에서 본받을 점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본받아야 할 것의 하나는 결코 남을 헐뜯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들의 입에서는 으레 남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이 오르내리게 마련이지만, 그가 남을 헐뜯는 말을 나는 들어 본 기억이 없다.
1941년 9월, 우리의 알차고 즐거운 생활에 난데없는 횡액이 닥쳐왔다. 당시에 김송 씨가 요시찰 인물이었던데다가 집에 묵고 있는 학생들이 연희 전문 학교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감시하는 일제의 눈초리는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일본 고등계 형사가 무시로 찾아와 우리 방 서가에 꽂혀 있는 책 이름을 적어 가기도 하고, 고리짝을 뒤져서 편지를 빼앗아 가기도 하면서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는 다시 하숙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마침, 졸업반이었던 동주는 생활이 무척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진학에 대한 고민, 시국에 대한 불안, 가정에 대한 걱정, 이런 가운데 하숙집을 또 옮겨야 하는 일이 겹치면서 동주는 무척 괴로워하는 눈치였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중요한 작품들을 썼다.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서시' 등은 이 무렵에 쓴 시들이다.
동주는 시를 함부로 써서 원고지 위에서 고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즉, 한 편의 시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주일, 몇 달 동안을 마음 속에서 고민하다가, 한번 종이 위에 옮기면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의 시집을 보면, 1941년 5월 31일 하루에 '또 태초의 아침', '십자가', '눈 감고 간다' 등 세 편을 썼고, 6월 2일에는 '바람이 불어'를 썼는데, 동주와 같은 과작의 시인이 하루에 세 편의 시를 쏟아 놓고, 이틀 뒤에 또 한 편을 썼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머릿속에서 완성된 시를 다만 원고지에 옮겨 적은 날이라고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수긍이 가는 일이다. 그는 이처럼 마음 속에서 시를 다듬었기 때문에, 한 마디의 시어 때문에도 몇 달을 고민하기도 했다. 유명한 '또 다른 고향'에서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라는 구절에서 '풍화 작용'이란 말을 놓고, 그것이 시어답지 못하다고 매우 불만스러워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그대로 두었지만, 끝내 만족해하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자기의 작품을 지나치게 고집하거나 집착하지도 않았다. '별 헤는 밤'에서 그는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로 첫 원고를 끝내고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그에게 넌지시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드네요." 하고 느낀 바를 말했었다. 그 후, 현재의 시집 제1부에 해당하는 부분의 원고를 정리하여 '서시'까지 붙여 나에게 한 부를 주면서 "지난번 정 형이 '별 헤는 밤'의 끝 부분이 허하다고 하셨지요. 이렇게 끝에다가 덧붙여 보았습니다." 하면서 마지막 넉 줄을 적어 넣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처럼, 나의 하찮은 충고에도 귀를 기울여 수용할 줄 아는 태도란, 시인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생각하면, 동주의 그 너그러운 마음에 다시금 머리가 숙여지고 존경하는 마음이 새삼스레 우러나게 된다.
첫댓글서정주가 친일시인이었군요.. 몰랐네요--;; 작가의 배경을 모르고 그냥 시 자체만 알았을때 전 서정주의 시들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했는데.. ^^* 특히 <내리는 눈발 속에서> 구절 중에서 "괜찬타 괜찬타" .. 영화 청춘에서도 나왔던거^^공부하면서 힘들때마다 속으로 읊조리곤 했었는데..^^;;
첫댓글 서정주가 친일시인이었군요.. 몰랐네요--;; 작가의 배경을 모르고 그냥 시 자체만 알았을때 전 서정주의 시들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했는데.. ^^* 특히 <내리는 눈발 속에서> 구절 중에서 "괜찬타 괜찬타" .. 영화 청춘에서도 나왔던거^^공부하면서 힘들때마다 속으로 읊조리곤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