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검토보고서에는 “조례 개정 통해 충돌 해소”…실제로는 시행규칙 변경
2024년 3월 시행규칙 개정, 한 달 뒤 여주교도소와 업무협약
윤석열 정부 때도 ‘시행령 통치·국회 패싱’ 논란…쟁점은 입법부 견제 존중 여부
이충우 시장 집행부, 조례 개정 포기한 경위와 법률검토 과정 공개해야
“법과 조례가 불편하면 하위 규정을 바꾸면 되는 것인가.”
[배석환 기자]=여주교도소의 100억 원대 원인자부담금 문제를 제기한 진선화 여주시의회 부의장의 자유발언이 단순한 부담금 납부시기 논란을 넘어 이충우 시장 집행부의 행정절차와 의회 존중 문제로 번지고 있다.
핵심은 여주시가 조례와의 충돌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인지하고 ‘조례 개정’까지 검토했으면서도 실제로는 의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는 조례를 고치지 않고 집행부가 개정할 수 있는 시행규칙을 변경했다는 진 의원의 주장이다.
이 같은 방식은 과거 윤석열 정부 당시 정치권에서 거센 논란을 불러왔던 이른바 ‘시행령 통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국가의 법률·시행령 관계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시행규칙 관계는 법적 체계와 권한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두 사안을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입법기관의 심의가 필요한 상위 규범을 개정하지 않고 행정부가 상대적으로 손쉽게 변경할 수 있는 하위 규범을 활용했다는 논란의 구조에서는 비교해 볼 대목이 있다.
내부에서는 “조례 개정”…왜 실제로는 시행규칙이었나
진 부의장이 자유발언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여주시는 2023년 11월 6일 ‘여주교도소 원인자부담금 부과 검토보고’를 작성했다.
진 의원은 해당 문건의 향후 계획에 “조례 개정을 통해 납부기한 예외규정을 두어 조례와의 충돌을 해소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주시 내부에서도 기존 조례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조례 개정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 이후 진행된 절차는 달랐다.
여주시 자치법규 기록상 「여주시 하수도사용 조례 시행규칙」은 2024년 3월 14일 개정됐다.
진 의원에 따르면 개정된 시행규칙에는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준공 이후까지 원인자부담금을 납부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이 포함됐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인 4월 23일 여주시와 여주교도소가 공공하수도 연결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 진 의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충우 시장 집행부가 답해야 할 질문은 간단하다.
내부 검토단계에서는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왜 실제 집행단계에서는 조례를 그대로 둔 채 시행규칙을 변경했느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때 불거진 ‘시행령 통치’ 논란과 닮은 지점
윤석열 정부에서도 비슷한 ‘절차와 권한’ 논쟁이 있었다.
2022년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와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 조정 등을 추진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시행령 통치’, ‘국회 패싱’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검수원복’ 시행령을 놓고 야당은 국회가 법률을 개정한 취지를 시행령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정부·여당 측에서는 법률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시행령을 정비한 것이라는 취지로 맞섰다.
경찰국 설치 과정에서도 법률 개정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시행령 등 하위규범을 활용한 것을 놓고 국회 심의를 우회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당시 논쟁의 핵심 역시 행정부가 법률의 위임 범위 안에서 권한을 행사한 것인지, 아니면 입법부가 만든 법률의 취지를 하위법령을 이용해 사실상 변경한 것인지에 있었다.
여주시 사안도 규모와 법체계는 전혀 다르지만 질문의 본질은 유사하다.
여주시의회가 의결한 조례에서 정한 원칙을 시행규칙으로 어디까지 변경하거나 예외를 둘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국회 패싱’ 비판하면서 지방에서는 ‘의회 패싱’인가
조례는 시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다.
반면 시행규칙은 조례에서 위임한 사항이나 조례 시행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집행부가 정하는 하위규범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단순히 ‘조례냐 시행규칙이냐’라는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다.
진 의원의 주장대로 집행부 스스로 조례와의 충돌 가능성을 인식하고 조례 개정 필요성까지 검토했다면, 이후 왜 시의회에 조례 개정안을 제출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특히 원인자부담금 규모가 100억 원대에 이르고 납부시점 변경에 따라 여주시의 재정적 이해관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민 입장에서는 “의회 심의를 받기 어려워 시행규칙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만으로 여주시가 의회 심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시행규칙을 개정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혹을 해소할 책임 역시 여주시에 있다.
‘행정 무능’ 비판 피하려면 과정부터 공개해야
이충우 시장에게도 책임 있는 설명이 요구된다.
현재까지 진 의원의 자유발언에서 이 시장이 시행규칙 개정을 직접 지시했다거나 여주교도소에 특정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지시했다는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시장 개인의 직접적인 지시나 특혜 제공으로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시장은 여주시 행정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집행부 내부에서 ‘조례 개정을 통한 충돌 해소’를 검토했던 사안이 이후 시행규칙 개정으로 바뀌었다면 그 정책결정 과정과 법률적 근거를 시민과 의회에 설명할 행정적 책임이 있다.
특히 시행규칙 개정이 적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면 당시 법률검토 자료와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반대로 충분한 법률검토와 재정적 영향 분석 없이 중요한 부담금 납부조건을 하위규정 변경만으로 처리했다면 이는 이충우 시장 집행부의 행정관리 능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중앙정부의 ‘시행령 통치’를 두고 국회의 견제 기능과 입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던 이유도 행정의 편의보다 권한과 절차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정부의 시행령을 통한 입법부 우회 가능성을 견제하기 위해 국회의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까지 발의된 바 있다.
지방정부라고 원칙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여주시가 이번 논란을 단순한 정치적 공방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2023년 내부 검토보고서 원문, 조례 개정 방침을 시행규칙 개정으로 변경한 경위, 시행규칙 제19조의2 제3항 신설 당시 법률검토 내용, 결재·보고 과정, 여주교도소 업무협약과 시행규칙 개정의 연관성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이유다.
진선화 부의장이 던진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조례 개정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검토했던 여주시가 왜 의회를 거치는 조례 대신 시행규칙을 택했는가.”
여주시가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꼼수 행정’과 ‘의회 패싱’이라는 비판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