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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태어나다
LG 트윈스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부터 1989년까지 80년대 프로야구에 참여한 MBC 청룡 구단의 인수를 받아 새로이 역사를 쓰게 됩니다. LG(당시 럭키금성)는 충분한 자금력을 보유한 대기업으로서 그 전부터 야구팀 창단에 힘을 기울여 왔으나 번번히 기회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MBC 청룡은 공영방송이라는 방송사 홍보효과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구단의 정통성 결여 및 투자성 부족으로 인해 팀을 내놓게 됩니다.
LG(럭키금성)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사실상 정해진 수순에 따름) MBC와 구단 양도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LG 트윈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참고로 LG의 모태는 Lucky(럭키화학)와 Goldstar(금성사)가 결합된 명칭입니다. LG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는데, 하나는 80년대 후반 MBC의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팀 주요선수들의 전력은 상위 클래스에 랭크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LG구단은 선수연봉을 아낌없이 인상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선수단 분위기를 업 시킵니다. 또 다른 행운은 재벌기업으로서의 정권의 수혜를 받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서울 입성에 골인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모 재벌그룹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되지만......
1990년에서 1993년까지의 프로야구는 그 어느 때보다 상위권 순위다툼이 치열했습니다. 강팀 해태와 삼성에 이어 어느덧 빙그레까지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우승후보 팀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고 그 외의 팀들도 기존의 팀전력에 변화를 주면서 강팀 반열에 오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 노력의 산실은 1990년 LG 트윈스의 창단 첫우승이라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LG의 우승은 한국시리즈 5연패를 노리던 해태왕조의 기록을 끊게 하는 동시에 새로 창단된 팀이 그 해 우승하는 기록을 세움으로써 야구계에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킵니다.
선발투수 선동렬과 구원투수 송진우의 투수부문 타이틀 싹쓸이.. 이강돈, 장종훈, 한대화가 타자부문 타이틀을 거의 휩쓸었던 빙그레와 해태의 막강 투타에도 불구하고 엘지는 특유의 팀웍으로 팀 타율 1위, 팀 평균자책점 2위를 기록하며 우승을 거머쥡니다.
LG가 극강전력으로 2번째 우승을 차지한 1994년과 1995년에 이르는 2년간을 LG야구의 황금기로 보는 야구팬들이 대다수일거라 여겨집니다만 개인적으로는 1990년의 LG전력도 이에 못지않았다고 봅니다.
백인천 감독의 지휘아래 신인포수로서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김동수, 특급 내야수 김재박, 김상훈, 외야수 신언호, 윤덕규, 최훈재 등 우승 주역들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LG가 우승하는데는 76만8천 여명이라는 최고의 관중동원에도 힘을 얻었으리라 봅니다.
해태 vs 빙그레
해태와 빙그레... 두 팀은 참 질기고도 질긴 관계였습니다.
88년부터 92년까지 무려 5년간 양팀은 순위가 항상 위아래로 붙어있었습니다. 양팀이 1~2위를 나란히 차지한건 세 차례, 2~3위 한 차례, 3~4위 한 차례.... 이전 글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빙그레가 해태에 한이 많은 이유가 매번 해태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5년 동안 빙그레는 다섯 해 중 네 차례 해태보다 한 계단 순위가 낮았으며 각각 1,2위를 차지한 세 시즌은 해태가 모두 1위로 우위를 점하면서 독수리의 천적으로 부각이 되었습니다.
비단 포스트시즌이 아니더라도 페넌트레이스에서 줄곧 사자에 물렸던 독수리 인지라 오죽하면 웃던 빙그레팬 아이도 해태의 빨강,검정 유니폼만 보만 정색을 표했을 정도니 그만큼 빙그레팬에게는 해태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1인...
선.동.렬
1991년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만난 해태와 빙그레!!
해태 공포증, 선동렬 공포증에 사로잡혀있던 빙그레는 당시 17승 6패, 방어율 2.23을 기록했던 에이스 한용덕을 차마 1차전에 내놓지 못했습니다. 선동렬과의 맞불을 피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그러한 작전이 실패하고 맙니다. 2차전 선발 한용덕이 크게 무너지면서 1,2차전을 해태에 쉽게 내주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3차전, 4차전은 빙그레가 리드하는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후반 내리 실점을 하며 빙그레는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며 4전 전패로 또 다시 해태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합니다. 특히 3차전의 선발 송진우는 8회 2사까지 해태 타선을 퍼펙트로 봉쇄하며 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으나 대타 정회열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홍현우, 장채근에게 안타를 내리맞으며 역전을 당하며 패전투수의 멍에를 쓰게 됩니다. 빙그레팬으로서 매우 안타깝던 기억으로 남는 경기였습니다.
91년도에는 전북을 연고지로한 쌍방울레이더스가 창단을 하며 처음으로 프로야구가 8개구단으로 시즌을 맞이했고 경기수도 6게임 늘어 126게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몇 해를 제외하고 만년 하위팀에 머물며 결국은 IMF사태의 영향을 받아 기업의 재정난으로 2000년에 해체되었습니다.
빙그레가 길고 긴 악연 끝에 해태를 따돌렸던 1992년!!
81승 2무 34패라는 높은 승률을 거두고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에 부푼 빙그레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는데 그건 바로 롯데 자이언츠였습니다.
정규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를 거치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롯데의 저력은 매서웠습니다. 특히 명장 김응룡 감독이 이끄는 해태와의 플레이오프는 명승부였습니다. 해태는 선동렬, 이강철, 김성한, 장채근, 이순철, 한대화, 김정수 등 화려한 플레이어들이 포진함에 있어 롯데로서는 승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롯데는 투수진의 힘으로 해태를 3승2패로 따돌리며 대망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됩니다.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렸던 롯데는 결국 4승1패로 팀 두번째 챔피언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고 극적이였기에 정말 값진 우승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특히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는 5차전 중 세 차례가 한 점차 승부였고 두 차례가 두 점차 승부였던 점을 감안하면 역대 한국시리즈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명승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봅니다.
염종석, (故)박동희, 윤학길 등이 이끄는 롯데 마운드와 송진우, 정민철, 한용덕 등이 이끄는 빙그레 마운드의 싸움도 치열했고 전준호, 박정태, 김민호 등이 이끄는 롯데 타선과 이정훈, 이강돈, 장종훈이 이끄는 빙그레 타선의 싸움도 역시 치열했던 1992년 한국시리즈 명승부였습니다.
6년만의 해후
1993년은 해태와 삼성이 6년만에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습니다. 빙그레에겐 해태가 천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면 삼성은 준우승 징크스가 생길만큼 한국시리즈와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간 해태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선동렬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면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등장은 와룡과 봉추를 둘 다 얻은 만큼 그 위력이 무시무시 했습니다. 그 둘 뿐만 아니라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등 10승대 투수들이 무려 6명이 포진한 투수 왕국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삼성 투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마운드를 이끄는 김상엽, 김태한, 박충식, 성준 이 4명의 투수가 모두 10승대에 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해태에 절대 꿀리지 않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타선에서는 오히려 해태를 압도하는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해태에 이종범이 무섭게 등장했다면 삼성엔 양준혁이 라이온즈의 돌풍을 일으킵니다. 특히 양준혁-김성래-강기웅 등으로 이어지는 클린업은 해태로서는 공포의 대상이였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단기전은 투수놀음이 지배적이였을까..투수 왕국 해태의 막강 피칭에 눌려 삼성은 준우승에 그치고 해태는 2년만에 다시 우승을 차지합니다.
92년 나란히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롯데와 빙그레는 93년 빙그레 5위, 롯데6위로 동반 하락하고 그사이에 OB와 LG가 4강에 합류함에 따라 서울팀의 분전이 눈에 띈 시즌이였습니다.
90~93 각구단 진기록
<해태 타이거즈>
최다탈삼진-선동열 1991. 6.19 광주 빙그레전 18개(13이닝)
최다탈삼진-선동열 1992. 4.11 잠실 OB전 16개(9이닝
시즌 최고 방어율-선동열 1993. 0.78(규정이닝 이상)
9회말 최다 점수차 역전승-1990. 6.3 광주 롯데전 5점차
1경기 최다도루-이종범 1993. 9.26 전주 쌍방울전 6도루
<OB 베어즈>
DH 연속 패전투수-홍길남 1990. 7.12 대구 삼성전 DH
팀 최다연패-1990. 5.31~6.18, 1990. 7.9~7.22 11연패 2회
싸이클링 히트-임형석 1992. 8.23 잠실 롯데전
<롯데 자이언츠>
시즌 최다 3루타-이종운 1992. 14개
노히트노런-박동희 1993년 5월 13일 쌍방울전 6회 강우콜드 노히트노런
역대 팀 최소홈런-1993. 29개
<삼성 라이온즈>
노히트노런-이태일 1990. 8.8 사직 롯데전
신인 최다연승/최고 승률-오봉옥 1992. 13연승, 승률1.000
<LG 트윈스>
한 이닝 2홈런-김상훈 1992. 4.5 대전 빙그레전
한 이닝 최다득점-1992. 4.23 잠실 OB전 1회 13득점
노히트노런-김태원 1993. 9.9 잠실 쌍방울전
<빙그레 이글스>
싸이클링 히트-강석천 1990. 8.4 대전 태평양전
원정경기 연승-1992. 4.8(해태)~5.16(롯데) 15연승
팀 최다연패-1993. 6.5~6.16 10연패
<태평양 돌핀스>
연타석 삼진-구윤 1993. 8.18~8.22 8연타석 삼진
팀 최저 출루율-1993. 0.290
<쌍방울 레이더스>
노히트노런-김원형 1993. 4.30 전주 OB전
응원 횟수 0
첫댓글 노히트노런-김태원 이경기는 지금도 기억나요 급궁금해지네..........
이문세 닮은 김태원선수는 근데 지금 모하시지
그러게요....캬...키큰 이문세의 노히트 노런....멋졌습니다..
제가 알기론 대구 상원고 코치 하시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 김태원선수 노히트 노런 할때 그 경기장에 있었던 1人 ㅎㅎㅎ 관중 천명도 안됬었는데 ㅎ
아 대구에 계시는구나.. 궁금중을 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경기때 야구장에 계셨다니, 부럽기도 하지만.. 관중 천명도 안되고 너무 일방적인 경기라 그닥 재미는 없으셨겠어요
1990 저한텐 참 의미 있는 한해였다는^^......암튼 저1990때 잠실구장에서 해태하고 엘지하고 붙었었든 5월 어느날~.....저때 부터 지역 감정 하나 없이 순수하게 해태가 싫었던 1인!! 고로 지금에 기아도 싫다는~~T,T왜이렇게 됐는지 정말 전 지역 감정이런거 없는 스탈인데,,,,갸들은 왜그럴까요? 역사적으로 올라가서 전라도 지방이 설움이 많다는건 압니다~그래도 그건 그거고 그냥 아주 싫다는~~응원하는 꼬라지 하구는 ㅉㅉ
김태원 선수아마도 지금 전라도 지역의 고교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계시지여.. 한기주를(광주 동성고일꺼에여) 키운데 김태원 코치일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다행히 야구인으로 남아계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