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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면 생각나는 곤충이 있다. ‘이솝 우화’로 잘 알려진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다. 이 이야기에서 개미는 부지런함의 모범으로, 베짱이는 게으름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는 서양의 시각이고,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밤새도록
베를 짜는 부지런한 일꾼으로 생각해서 붙여준 이름이 ‘베짱이’다.
가을밤이 깊도록
“쓰윽잭 쓰윽잭” 하며 우는 소리가 마치 베틀질을 할 때 나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이런 베짱이를 ‘배짱이’로 잘못 적는 일이 흔하다. 이는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담은 아동 도서들이 하나같이 베짱이를 배가 불룩 튀어나온 모습으로 그려 놓은 탓일
듯하다. 하지만 실제 베짱이를 보면 배가 그렇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아울러 배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게으르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그릇된 선입견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 아주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현실에서는 개미가 땀 흘려
일하는 한여름에 베짱이의 소리를 듣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 때나
베짱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솝 우화의 원제 역시 ‘개미와 베짱이’가 아니다.
‘개미와 매미’였다.
이래야 좀 말이 된다. 한여름에 노래(매미로서는 종족 번식을 위한 처절한 구애의
울음이지만)만 부르는 매미와 겨울나기 준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뚜렷이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터키어로 매미와 베짱이는
표기가 같은데, 이야기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오역됐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베짱이는 ‘여칫과’ 곤충이다. 그런데 백과사전 등에서는 이를 ‘여치과’로 잘못 쓰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순우리말 뒤에 ‘과(科)’가 붙을 때 앞말에 받침이 없는 경우
사이시옷을 받쳐 적어야 한다. ‘메뚜깃과’ ‘고양잇과’ 등처럼 말이다. 하지만 문어(文魚)
처럼 한자말 뒤에 ‘과’가 붙을 때는 ‘문어과’로 사이시옷을 적지 않는다. 숫자·횟수·셋방·
찻간·곳간·툇간을 제외하고 한자와 한자 사이에는 사이시옷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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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숟가락’의 표기는 앞말의 받침 ‘ㄹ’이 ‘ㄷ’으로 변화하는 과정임을
함께 알아본 적이 있다(2021년 12월 24일자 우리말 톺아보기 참고). 그러면 숟가락과 짝꿍인
‘젓가락’은 왜 ‘ㅅ’ 받침으로 적어야 할까? 젓가락은 단어 구성을 따져 보면, ‘저(箸)+-ㅅ+
가락’으로 분석된다. 한자어 ‘箸(젓가락 저)’에 ‘가락’이 붙었을 때, 발음이 [저까락]으로 나는데
사잇소리가 첨가되었다. 이 사잇소리를 역사적으로 ‘ㅅ’으로 표기해 왔기 때문에 ‘ㅅ’으로 받치어
적는 것이다.
한글맞춤법 제30항 2. (1)에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은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도록 한 규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이시옷 표기에 대한 한글맞춤법 제30항은, 어문규정 중 가장 헤아려 공부할 것이 많은
조항이다. 두 개의 단어가 결합하는 합성어 조건에, 한자어인지 순우리말인지를 구별해야
하는 한자 지식이 필요하다.
사이시옷으로 결합하여서는 언중이 어떻게 발음하는지에 대한 음운론적 현상도 알아야 한다.
한자어끼리의 결합은 사이시옷 표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숫자(數字)’처럼 두
음절로 된 한자어 중, 단 6개는 언중들이 너무나 많이 사이시옷을 적어 예외로 두기도 하였다.
이와 달리 발음이 변하는 대상도 아니고, 합성어가 아닌 파생어로서 명사 ‘해’에 접미사 ‘님’이
결합한 ‘해님’은 [*핸님]으로 잘못 발음하고 ‘*햇님’으로 적어 ‘ㅅ’을 남용하는 예이다. ‘ㅅ’을
적거나 적지 않았을 때, 어색한 것은 국어사전을 꼭 찾아보도록 한다.
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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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 입력 2022.07.25 10:00 수정 2022.07.27 10:00 생글생글 764호
Getty Images Bank‘약 400만 건 대(對) 15만 건.’ 대략 26배 차이다. 최근 구글 전체에서 검색된
‘올레길’과 ‘올렛길’의 빈도수다. ‘둘레길’과 ‘둘렛길’은 어떨까? 그 차이는 더 일방적이다. ‘1100만
건 대 1만1000건’이다. 둘레길 빈도가 둘렛길보다 1000배 정도 많다.
지난 7월 초 국립국어원 회의실. 올레길과 둘레길의 표기 문제가 현안으로 올라왔다.
한글맞춤법에서 사이시옷을 규정(제30항)한 정신에 따르면 ‘올렛길[올레낄], 둘렛길[둘레낄]’로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표기 사례는 ‘올레길, 둘레길’로 사이시옷 없는 형태가
압도적으로 많다. 규정과 현실 어법이 다르다 보니 널리 쓰이는 말인데도 표기를 정하지 못해
아직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실횻값’ 등 규정 따르면 표기 어색해져사이시옷은 우리말 적기의
두 기둥인 ‘소리적기’와 ‘형태적기’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나온 완충장치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전세’와 ‘값’이 결합할 때 누구나 [전세깝] 또는 [전섿깝]으로 발음한다. 이를 발음대로
적자니 원형이 무너지고, 반대로 원형을 살려 ‘전세값’으로 적자니 표기가 실제 발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전셋값’은 그런 고민 사이에서 찾아낸, 일종의 절충형으로 이해하면 된다. 사이시옷을
덧붙임으로써 ‘전세’의 말음을 막아 뒤에 오는 ‘값’을 자연스럽게 [깝]으로 발음하게 한 것이다.
시옷(ㅅ)은 마찰음이지만 받침으로 쓰일 때 폐쇄음인 ‘ㄷ’(대표음)으로 발음돼 뒤에 오는 자음을
된소리로 나게 한다.
하지만 사이시옷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비교적 새로 쓰이는 말 가운데는
시각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게 꽤 많다. 가령 신문 보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동산)
실거래값’ ‘원화값’ 같은 말을 사이시옷 정신에 따라 쓴다고 ‘실거랫값’ ‘원홧값’이라고
적기는 쉽지 않다. 이미 사전에 오른 단어 중에서도 ‘북엇국, 우윳빛, 대푯값, 공붓벌레,
막냇동생, 실횻값’ 따위는 개인에 따라 여전히 친해지기(?) 쉽지 않은 표기들이다. 그래서
사이시옷은 우리말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킬레스건(腱)’이기도 하다.
‘~길’ 합성어, 사이시옷 안 쓰는 사례 많아‘올레길/올렛길’ 논란은 20여 년 전 있었던
국어심의회 회의 결과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2001년 정부는 ‘새 주소 부여사업’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 이름 붙이는 도로가 사이시옷 문제로 큰 혼란을 겪었다. 맞춤법 규정을
따르면 ‘OO여곳길’ ‘경찰섯길’ 식으로 적어야 하는데, 이는 너무 어색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당시 회의에서는 새로 명명하는 도로명 ‘~길’에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OO여고길’ ‘경찰서길’ 표기가 공식적으로 규범의
옷을 입고 등장한 순간이다.
사이시옷 용법에 관해 당시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올레길/올렛길’의
처리에서도 방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새로 이름 붙이는 도로명이라 현실 발음이
된소리[올레낄]라고 단정하기에는 확실치 않다. 둘째, 복합어에서만 된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句)에서도 된소리 발음이 날 수 있다. 특히 새 도로명 ‘~길’은 개나리길, 개나리1길,
개나리2길 식으로 ‘△△+길’로 분리돼 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길’은 한글맞춤법
제49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고유명사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되
붙일 수도 있다. ‘△△+길’도 ‘소라아파트, 소망교회, 동대구시장, 청마루식당’ 등처럼
보통명사와 보통명사가 결합해 고유명사로 된 유형으로 보인다.” 합성어인 듯, 구인 듯한
새말 ‘~길’은 이런 까닭에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기로 했다.
저자·前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올레길/올렛길’의 경우는 좀 더 확실한 근거가 있다.
한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애초 상품명으로 개발해 널리 알려진 말이다(<두산백과>).
그런 만큼 고유명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 말의 표기가 어떻게 정해질지 지켜볼 일이다.
향후 새로 나올 각종 사이시옷 표기에 시금석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어쩌다 텔레비젼 자막에 나오는 사이시옷 받침을 보고 " 참 부자연스러운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리 귀찮게 그런 규정을 만들었을까. 순대국, 올래길이 어떼서?
‘북엇국, 우윳빛, 대푯값, 공붓벌레,막냇동생, 실횻값’ ‘ 어떠세요? 원칙, 참 좋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