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고졸,대졸을 망라한 신인들이 프로무대에 첫발을 내딛게 되고 각 구단의 스카우트들은 저마다 옥석을 고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매 시즌마다 신인 농사의 흉,풍작의 여부는 곧바로 팀의 성적과 직결되며 또한 참신한 신인 선수들의 활약은 프로야구 흥행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느덧 2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게 된 국내 프로야구에는 어떤 신인선수들이 돌풍을 일으켰을까.연도별로 한번 되짚어 보고자 한다.
1.83년 - 대형신인들의 대거 입단
역사상 가장 많은 대형 신인들이 입단한 해로 기억될 수 있다. 82년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에 대비해 프로입단이 대거 유보되었던 거물급 선수들이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되고 초창기 프로야구의 폭발적 흥행에 큰 공헌을 한다.
팀별로 살펴보면 삼성의 김시진,장효조 롯데의 최동원,박영태,유두열, OB의 한대화,박종훈,장호연, MBC의 김재박,이해창,오영일, 삼미의 이선웅,김진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대형 신인들이 대거 선을 보이게 된다.
기록으로 살펴보면 투수부문에서 김시진,최동원등이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에 비해 타자 부문에서는 장효조가 천부적인 타격감을 과시하며 타격왕에 오른 것을 비롯 박종훈,김재박,이해창 등이 팀의 주축선수로 맹활약을 펼친다.
초대 신인왕은 예상을 뒤엎고 박종훈이 차지하는데 기록상으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장효조가 수상하지 못한 것을 두고 한동안 화제거리로 인구에 희자되기도 하였다.
2.84년 - 최초의 전문 구원투수 윤석환의 돌풍
84시즌에는 투수부문에선 OB의 윤석환,타자부문에선 MBC의 김상훈 이 두명의 좌투수,좌타자가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윤석환은 국내 프로야구에 최초로 마무리 투수로 선을 보이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다. 윤석환의 돌풍은 이듬해 삼성의 권영호, MBC의 김용수라는 전문 구원투수들의 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
3.85년 - 잘 치고 잘 달리는 이순철
85시즌에는 신인타자들의 활약이 유난히도 돋보였는데 이들은 타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였다. 해태의 이순철을 비롯하여 삼성의 이종두·김용국, 롯데의 한영준 등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순철은 입단과 동시에 주전 3루수를 꿰찼으며(이듬해 한대화에게 3루수 자리를 내주고 중견수로 전향)또한 재치있는 주루 플레이와 정교한 타격 거기에 장타력까지 겸비하여 김일권을 제치고 단숨에 팀내 톱타자로 활약하며 신인왕까지 거머쥐게 된다.
4.86년 - 투고타저
86시즌에는 83년 못지않은 대형 신인들이 대거 선을 보였다. 고교야구 선린상고 돌풍의 두 주역 박노준과 김건우가 나란히 OB와 MBC의 유니폼을 입었으며 경북고 전성기의 주역 성준이 삼성에 입단한다.
무엇보다도 관심의 초점은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었는데, 시즌 초에 아마와 프로의 스카우트 분쟁으로 인해 후반기부터 선을 보이게 되었다. 신인 사상 최고액인 1억 3천만원의 계약금을 받으며 우여곡절 끝에 해태에 입단한 선동렬은 명성에 걸맞게 해태 우승의 주역으로 맹활약한다.
유난히도 투고타저 현상이 심했던 86시즌은 18승6패에 방어율 1.80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일약 MBC 의 에이스로 우뚝선 김건우가 신인왕의 영예를 차지한다.
반면에 입단당시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박노준은 처음엔 투수로 선을 보였으나 5승7패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며 타자전향을 시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