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맥'은 한자로 '菽麥'이다. 한자 뜻 그대로라면 '콩과 보리'를 의미한다. '콩과 보리', 이것과 과연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 관계를 밝히려면 '숙맥'이 본래 어떤 말이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숙맥菽麥'은 본래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문장에서 '불변不辨'이 생략된 말이다. '숙맥불변'은 중국 문헌인 <좌전左傳>에 나오는 표현이다. 주자周子라고 하는 사람에게 형이 하나 있었는데 지혜가 없어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숙맥불변'은 본래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다'의 뜻이다. 우리 옛 문헌에 "숙ㅁ.ㅢ(고어라 표기가 어려움:옮긴이 주)을 분변치 못한 즉"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을 직역한 것이다.
'숙맥불변'은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다'는 뜻에서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한다. 사물을 분간하지 못한다는 점이 의미 변화의 촉매제가 된 셈이다. "숙맥불변이라더니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느냐?"에 쓰인 '숙맥불변'이 변화된 의미로 쓰인 예이다.
'숙맥불변菽麥不辨'은 '불변不辨'이 생략되어 '숙맥菽麥'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형은 달라졌어도 그 의미는 그대로 계승된다. 생략형 '숙맥菽麥'이 생략되기 전 '숙맥불변'이 지니던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띠는 것이다. "숙맥이 상팔자"라는 속담 속의 '숙맥'이 바로 그와 같다. 이로 보면 '숙맥'에는 '콩과 보리'라는 본래의 뜻으로 쓰이는 것과, '숙맥불변'에서 '불변'이 생략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물론 두 번째의 경우이다.
'숙맥불변'에서 '불변'이 생략된 '숙맥'은 표면적으로는 '콩과 보리'라는 의미이지만 심층적으로는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므로, '숙맥' 자체로만 본다면 의미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생략'에 의한 의미 변화이다.
'숙맥'만큼 많이 쓰지는 않지만 '고희古稀', '태두泰斗', '인조人造' 등도 생략에 의한 의미 변화의 예가 된다. '숙맥菽麥'처럼 한문에서 생략된 어형이라는 점도 같다.
'고희古稀'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는 뜻"라는 문장에서 '고古'와 '희稀'만 취하고 다른 한자는 생략한 것이다. '고희古稀'는 한자 뜻 그대로 '예로부터 드물다'를 뜻하는데, 실제로는 '70세'라는 의미로 쓰인다.
'태두泰斗'는 '태산북두泰山北斗'라는 한자 성어에서 '산山'과 '북北'이 생략된 말로, '큰 산과 북두칠성'이라는 의미에서 '권위자'라는 의미로 변형되어 쓰인다.
'인조人造'는 '인조견사人造絹紗, 천연 섬유소로 명주실 비슷하게 인공적으로 만든 실'라는 실 이름에서 '견사 絹紗'가 생략된 말인데, '사람이 만듦'이라는 의미에서 '인조견人造絹'이라는 의미로 변하여 쓰인다.
이렇게 해서 '숙맥菽麥'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온 것인지가 분명해졌다. 아울러 '숙맥'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과정도 밝혀졌다. '숙맥'은 '숙맥불변'이라는 한자성어에서 '생략'이라는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단어이다.
글_ 조항범
출처_<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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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범
현재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의미론을 전공하였으며,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지만 그 뜻을 정확히 모르는 말의 어원에 관한 책을 여럿 펴냈다. 주요 저서로는 <국어 어원론>, <지명 어원 사전>,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1, 2>, <선인들이 전해준 어원 이야기>, <청주 지명 유래>, <국어 친족 어휘의 통시적 연구> 등이 있다.
첫댓글 정확한 뜻은 몰랐는데 이젠 알게 되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