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는 법의 공정성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디케(dike), 혹은 아스트라이아(astraea), 유스티치아(justitia :로마신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으로 오른쪽엔 칼을, 왼쪽엔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하고, 칼은 그러한 기준에 의거한 판정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의의 여신은 이외에도 눈이 먼 시각장애인입니다. 이는 정의와 불의의 판정에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상징입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에도 '디케의 여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법원은 오른손에 저울, 왼손은 책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도 가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의 공평과 정의, 엄정함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법부가 공평과 정의, 엄정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대법관 구성은 모든 면에서 다양성을 가져야 합니다

서울대와 남성 그리고 법관 아니면, 대법관은 못해...
'대법관'. 대한민국 판사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자리입니다. 단순히 대법관이라는 '직'이 아니라 자신들이 내린 최종심은 대한민국 시민들 삶 구석구석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정의와 공평을 이루는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법관은 도덕성과 자질 능력만 아니라 사상과 이념에서 다양성을 두루 갖춘 이들도 구성되어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 중도가 함께 해야하지 않으면 편향된 판결이 내려져 우리 사회를 한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그런데 지난 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한 대법관 후보자 13명 면면을 보면 '그들만의 리그'였습니다. 추천된 13명 가운데 6명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50대 남성 법관'으로 9명이 현직 고위 법관입니다. 현직 검사로 추천된 3명 가운데 2명도 서울대 출신입니다. 서울대가 아니면 대법관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성 법조인은 눈을 씻고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서울대와 남성 중심 대법관 구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대법관 구성 다양성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마 이를 무시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 주 중 이들 가운데 4명의 대법관을 내정합니다. 다음 대법관 인사는 2014년 3월에 있어니 대법관 다양성은 2년이나 더 기다려야 합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 9명을 임명했습니다. 나머지 4명까지 추가로 임명하게 되면 대법관 14명을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하게 됩니다. 정말 복도 많습니다. 대법관 임기가 6년이고, 대통령은 임기는 50년입니다. 참고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임명제청이 들어와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
MB, 무려 대법관 14명 교체... 보수와 남성만
문제 이 대통령이 임명한 이들이 대부분 보수성향입니다. 그리고 임명한 사람 중 도덕성이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한 대법관도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신영철 대법관입니다. 신 대법관은 서울지방법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08년 10월~11월 촛불집회 사건에서 담당판사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을 수차례 보냈습니다.
"집중 배당으로 달성하고자 하였던 보편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노력해 달라"(8월 14일)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0월14일) "적당한 절차에 따라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떠하냐"(11월 6일)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려달라"(11월24일)-(오마이뉴스 <'압력행사'가 아니면 '첨삭지도' 인가?>, 2009.03.06)
공평과 정의, 엄정함은 다 팔아먹었습니다. 임명한 사람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쪽으로 편향된 이들만 대법관으로 임명하면 우리 사회 다양성을 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 논리만 대변하는 대법관을 임명하고 홀연히 떠나버릴 이명박 대통령, 그가 임명한 그들이 우리 사회 사법부 마지막 보루를 보수 판결만 내린다면 사법정의와 공평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권만 아니라 그 동안 대법관은 서울대와 남성 그리고 법관이 거의 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겨레>가 보도한 대법관 출신대학을 보면 '서울대'만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법대가 어디 서울대만 있습니까? 서울대를 나오지 않으면 판사 자격과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까.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한겨레>
노무현, 임명한 '독수리 5형제'... 모두 떠나
그래도 노무현 정부는 '서울대'편향은 있었지만 여성과 진보성향 법관을 임명해 다양성을 세웠습니다. 2004년 8월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여성으로는 처음 대법관에 임명됐고, 2005년 11월에는 진보 성향 박시환 대법관, 노동법 전문으로 비서울대(원광대) 출신인 김지형 대법관이 임명됐습니다. 2006년 7월 중도 개혁 성향의 이홍훈 대법관, 여성이자 개혁 성향의 전수안 대법관이 임명됐습니다.
노 대통령은 여성 대법관 2명을 임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보와 중도 성향 대법관을 골고루 임명했는 데 법조계와 언론은 이들을 '독수리 5형제'로 불렀습니다. 이들이 임명됨으로써 '보수 8 : 진보 5'로 대법관이 구성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보수에 기울어졌지만 진보성향이 5명이나 되어 다양성에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독수리 5형제 김영란·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 대법관<한겨레21>
보수와 진보 균형이 이루어지자 그 동안 소외되고, 약자를 위한 판결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2007년 3월 민주노동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전국공무원노조 파업에 참여한 공무원들을 승진시키자 한나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이 이를 취소한 사건에서, "헌법에 보장된 지방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다"며 나머지 대법관 모두에 맞서 소수의견을 냈다. 같은 해 5월, 비리로 퇴진한 김문기 전 상지대 재단 이사장이 낸 소송에서도, 비리사학 쪽을 옹호한 대법관 8명에 맞서는 소수의견을 냈다.
5명이 다수의견에 힘을 몰아주며 의미 있는 결정을 이끌어낸 경우도 있다. 2010년 4월 치열한 법리 싸움 끝에 학내 종교 자유를 요구하는 강의석씨의 손을 들어줬다. 마지막 합체는 2010년 7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볼 수 없다는 소수의견으로 나타났다. -<한겨레21> 대법 ‘독수리 5형제’의 성적표 [2012.05.21 제911호]
그리고 지난해 3월 "단순 근로 거부는 업무 방해로 볼 수 없다"며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옥죄는데 악용돼온 업무방해죄를 좁게 해석하는 소수의견, 같은 날 이뤄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에서도, 이를 보도한 언론인을 처벌할 수 없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두 사건에는 이인복 대법관이 힘을 보탰다. 지난해 4월 4대강 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에서도 이들 4명은 “집행정지가 타당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고 <한겨레21>은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따르지 않았고, 결국 서울대와 남성, 법관 출신을 대법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 차한성·양창수·신영철·민일영·이인복·이상훈·박병대·김용덕 대법관은 전원 서울대 법대 출신의 남성이고, 지난해 말 임명된 박보영 대법관만 여성에 비서울대였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대법원? 아니지 그들만의 리그일뿐
대법원 누리집에는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법원, 대법원'이라는 문구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서울대, 남성, 보수성향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대법원이 과연 국민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열린 법원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들만의 리그'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자신들과만 소통하고, 자신들에게만 열려 있는 대법원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이유를 조국은 다음과 같은 주장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양심과 사상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없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뿌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민주주의 체제의 존속과 발전 역시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법률의 외피를 쓴 '불법국가' 가 등장했을 때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단초는 시민의 양심과 사상적 결단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정신적 기본권 중 가장 근원적인 것'이며, '최상급기본권 Supergrundrecht'라고 할 수 있다." (본문 11쪽)
법은 천재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
그런데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보호받고 지켜지기 위해서는 바로 대법관 구성원들이 다양성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아직도 저열한 수준이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와 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국방부 '붉은서석'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결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가 대한민국이 아직도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저해하고, 시민 의식도 저열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이 대법관 다양성인데, 이명박 정권은 끝내 이를 저버렸습니다. 디케의 저울을 저버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스가 남긴 명언하는 소개를합니다.
"법은 천재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