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인생
文 熙 鳳
기업이 연일 부도 처리되고 있다. 경제상황이 최악이다. 높은 원유가 덕분에 원자재 가격이 올라 중소기업들은 정문에 자물쇠를 채운 지 오래다. 이제는 대기업들까지 그렇다.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치유가 없다면 앞날은 계속 어두울 것이란 전망이다.
‘부도’, 아주 듣기 싫은 역겨운 단어다. 녹슨 신음소리가 나는 단어다. ‘번창, 성장’, 얼마나 듣기 좋은 이름인가? 발음할 때 입안을 부드럽게 해주는 단어들이다. 해맑은 꽹과리 소리를 내는 단어들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들 곁에는 부드러운 단어들을 물리치고 역겨운 냄새를 발산하는 단어들이 활개치고 있다.
기차레일은 곧게 뻗어있다. 두 레일 사이의 거리는 항상 일정하다. 곡선일 때도 역시 그렇다. 일정하지 않으면 기차가 탈선한다. 달릴 수 없다. 어두운 밤에는 이마의 라이트에 환한 장식을 하고 달린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산기슭을 유희하듯 돌아 달린다.
그리고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쉰다. ‘퓨우’…. 이 단어가 주는 의미 속에는 성공이, 성취가 녹아 흐르고 있다. 지금 이 시각도 졸음 쫓으며 기본에 충실하고자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오늘 보도된 검찰청에서 타이핑 작업을 했다던 여직원의 얘기가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법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검찰을 퇴직한 후 사법고시에 합격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여인의 인생 역전 드라마였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보다 좋은 환경과 안정된 조건하에서도 이루어내기 어려운 일을 학원비가 없어 강의테이프를 들어가며 어렵게 공부하여 일구어낸 합격이라 더욱 값지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음식점에서 일도 하고, 보험회사 상담원으로 일하는 등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루어낸 쾌거다. 그의 일성이 가슴을 울린다. “꿈과 기회는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그렇다.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가 합격한 것보다, 내 자식이 합격한 것보다도 더 기쁘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성실과 정성이 들어 있을 터이니 그렇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삼거리에서 좌회전할까, 우회전할까, 고민될 때가 있다. 초행길인 경우 더욱 그렇다. 네비게이션이 있는 경우야 갈 길을 확실하게 제시해주니 그럴 염려가 없다.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는 수고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견고한 건축물을 지으려 한다면 그건 과욕이다. 철저한 준비 없이 지어진 집은 얼마 가지 못한다. 곧 붕괴되고 만다. 서울의 ‘삼풍’이 그랬고, ‘성수대교’가 그랬다.
꿈이란 잡는 것이 아니라 간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행복이란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겠지.
퇴근길 새들도 깃들지 않는 가난한 빈 가지가 나를 반기고 있다. 나는 이 빈 가지에게 무얼 선물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이 나무뿐이겠는가? 그보다 나 자신을 위해 충실을 기해야 하리라. 힘 빠진 건전지엔 충전이 필요하다. 제 때 충전을 하지 않으면 기계를 돌릴 수 없다. 수많은 밤을 뒤척이며 썼다가 또 지우고 다시 고쳐 쓴 사랑이 어디 한두 개이던가 말이다.
나비에게도 그리움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슬픔이 있다. 그리고 용서가 있다. 나비뿐이겠는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다같이 통용되는 얘기다. 덧없는 사랑 앞에 인생은 연극이라 했다. 그 연극을 멋지게 연출하기 위해 정성스런 준비가 있어야 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듯, 진지한 준비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나무도 하늘 가까이 안간힘으로 기어오르지만 정녕 나무를 하늘로 기어오르게 하는 힘은 세상 밖으로는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뿌리의 힘이 아니었던가. 나무도 꿈을 지닐 때가 팽팽하다. 뿌리 내린 것들은 중심을 잡기 위해 모두 그렇게 애쓴다.
보람과 긍지를 지닌 자신의 일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빨리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부도 인생을 만드는 일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내 유일한 안식처에 온 종일 찬바람만 들게 할 것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운명의 골짜기는 빨리 뛰쳐나오는 게 상책이다.
미지의 세계가 없으면 뻗어나갈 생도 없다. 이미 죽어있는 생물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어두운 질곡의 골목길을 내가 반드시 따라 걸을 필요는 없다. 용기를 가지고 밀쳐내야 한다.
동산을 넘어오는 송아지 걸음마가 흥겹게 느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