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성주 서진산/선석산에 올라 세종대왕자 태실이 봉안돤 태봉으로 내려오다!
2024년 7월 12일
쇠 똥 구 리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세종대왕자 태실이 봉안된 태봉을 품고 있는 산의 이름을
칠곡 사람들은 서진산棲鎭山이라 부르고 성주사람들은 선석산禪石山이라 부른다.
<사진1> 신유장군유적지 주차장에서
이곳은 칠곡,
경북 칠곡군 양목면 남계리, '영암지맥 등산 안내도'를 보니, 역시 서진산(선석산)이라 표기하였다.
1팀이 비룡산을 거쳐 서진산(선석산)에 오르기 위해 내린다.
지금 시각이 11시 20분이다.
보통 때처럼 8시에 광주역에서 출발하였다.
1시간 정도 일찍 출발하였으면 좋을 뻔 했다.
2팀은 성주군의 세종대왕자 태실 주차장에서 선석산에 오를 계획이다.
그러기 전에 잠깐 신유장군 유적지에 들러 보려 하였으나 시간이 늦어 그럴 수가 없다.
아쉽지만 신유장군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신유申瀏 장군(1619∼1680)은 1646년(인조 24)에 무과에 급제하고
1658년(효종 9) 함경북도 병마우후兵馬虞候로 있을 때 청나라의 요청을 받아 영장領將으로서
조총군鳥銃軍 200여 명을 인솔하고 나선정벌羅禪征伐에 참여하였다.(※나선羅禪=러시아)
당시 흑룡강黑龍江 부근에 침입한 러시아의 지휘관 스테파노프Stepanov 와
그 휘하 270여 명을 전멸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신유장군의 유적지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2> 비룡산을 향하여
1팀은 두만지 저수지의 둑을 타고 비룡산에 오르기 위해 저수지 방향으로 오른다.
우리는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의 세종대왕자 태실로 향한다.
구불구불 가는 길은 15km 정도 였으나 시간은 많이 걸린다. 12시가 다되어서야 도착한다.
<사진3> 세종대왕자태실 주차장
세종대왕자 태실로 오르는 길 옆에 세워놓은 태 항아리 모형과 안내문을 잠깐 살피고는
먼저 선석산에 오르기로 하고, 오른쪽으로 선석산 오르는 길을 찾아 오른다.
<사진4> 선석산으로 오르는 길은
잘 포장된 임도를따라 오르면 된다.
그 임도는,...
<사진5> '선석산 정상 1.80km'라는 이정표가 서있는 곳까지
이어지다가 그 끝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산으로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장마의 한 가운데인지라 습도가 높아 몹씨 무덥다.
그런데 이정표에 '입구4.28km'라는 입구는 어디?
<사진6>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면서는
발 아래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 덕에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해준다.
<사진7> 그 다리를 지나고 보니
우리가 건너온 다리가 바로 '일광교' 였음을 이정표가 알려준다.
<사진6> 오르는 길 주변에
숲이 많이 우거져 깊은 산을 오르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무덥긴 하여도.
<사진7> 모두 씩씩하게
잘도 오른다.
<사진8> 여기 비비추가,....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니, 작은 능선 위에 이른다.
바람이 산들 분다.
'시원하다' 느껴진다.
미산님, 이정표 아래 꽃대가 넘어진 비비추를 세워주고 있다.
비비추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는다.
오후 1시를 넘긴 시각이다.
<사진9> 비비추
자줏빛이 도는 흰색을 띤 꽃을 피운 꽃대가 넘어져 있다.
장마철 비에 꽃이 무거워졌나보다.
비비추 꽃의 꽃말은 '좋은 소식, 신비로운 사람, 하늘이 내린 인연' 이다.
<사진10> 비룡산 삼거리
우리가 주차장에서 약 1.2km 올라온 지점이다.
비룡산까지는 1.85km의 거리이다.
비룡산을 거쳐 올라오는 팀은 지금, 어디 쯤 올라오고 있을까?
전화를 해서 알아보니, 이 삼거리를 지나 정상을 향하여 오른단다.
이미 우리를 앞섰다.
빠르기도 하여라!
<사진11> 태봉바위
안내문이 서있는 온쪽으로 소나무가 보이고, 그 바로 뒤에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 위에 서서 태봉자리를 살펴보았다는 설이 있어 '태봉바위'라 부를다고.
해발 740m에 위치한 이 바위 앞은 영남의 영산 가야산과 천년고찰인 선석사, 그 사이의 성주 참외밭인 비닐하우스 단지가 호수처럼 펼쳐진다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볼 수가 없다.
<사진12> 용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른다.
<사진13> 정상바로 아래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사진14> 선석산 정상
1팀이 먼저 올라와 있다.
여기서 잠깐!
원래 서진산이 왜 선석산이 되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말사인 선석사는
692년(효소왕 1)에 의상義湘이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여 신광사神光寺라 하였으나,
1361년(공민왕 10)에는 나옹懶翁이 신광사 주지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런데,...
당시 '새 절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하여 터 닦을 ‘선禪’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禪石寺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는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나와 있다.
(선禪의 쓰임 - 1. 선, 좌선坐禪 2. 봉선(封禪: 산천에 제사 지내던 일) 3. 선종禪宗 4. 불교佛敎와 관련된 것 5. 좌선坐禪하다 6. 터 닦다 7. 전수傳授하다, 물려주다 8. 양위讓位하다 9. 선위禪位하다)
그 뒤로 선석사 禪石寺의 영향을 받아 서진산棲鎭山을 선석산禪石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그렇지만 칠곡 사람들은 옛이름 그대로 서진산이라 부른단다.
<사진15> 이제 정상을 뒤로하고
<사진16> 산을 내려간다!
양산을 쓴 멋쟁이랑!
이정표를 보니 입구2.48km라 표기되어 있다.
<사진17> 도대체 어디를 '입구'라 하는 겨?
위의 안내도를 보니,
불광교 아래 돌목재와 불광교 삼거리 갈림길을 입구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았으면 알았을 것을!
<사진18> 내려가는 길은
부드러운 흙길이다.
영암산 방향으로 정상에서 약 1km 정도 내려가면 들목재갈림길이 나온다.
이곳 들목재갈림길에서 왼쪽 '입구'방향으로 내려간다.
세종대왕자 태실 주차장에서 불광교 방향으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왼쪽의 들목재로 오르는 포장되지 않은 넓은 임도와 갈라지는 바로 그 갈림길이 '입구'이다.
<사진19> 입구로 내려가는 길도
낙엽이 쌓여 폭신폭신한 부드러운 흙길이다.
<사진20> '창령조씨와 충주 석씨 부인'의 묘를 지나
주차장에 다달은다.
<사진21>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안내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세종 20년(1438)에서 세종 24년(1442)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세종의 아들 18명과 손자인 단종을 합쳐 모두 19기의 태실이 모여 있다.
<사진22> 태봉을 오르면서 올려다본 선석산
능선 중앙의 왼쪽 높은 봉우리가 선석산 정상이다.
<사진23> 세종대왕자 태실로 오르는 길
<사진24> 세종대왕자 태실 전경
오른쪽 맨 앞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태조의 태실이다.
<사진25> 세조의 태실비 앞에 세워진 가봉비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 놓았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은 훼손되고 대석만 남아 있다.
<사진26> 세종대왕의 손자 단종의 태실
단종의 태실은 세종대왕자의 태실 맨 끝에 떨어져 모셔져 있다.
장마로 인하여 1주일을 연기한 후 다녀온 산행이었다.
계속되는 장마로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지만 다행히 비가 멈춰주었다.
다행이다.
먼 거리를 운행하신 최기사님,
장마철 무더위가 계속되었음에도 참석해주신 회원님들 고맙습니다!
회원 모두위 안전을 지켜주신 하느님, 고맙습니다!
♡ 다7월 19일(금)에는 임실 성수산(상이암)에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