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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프로스페르 메리메 <카르멘>
대본 뤼도비크 알레비 및 앙리 메야크
초연 1875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배경 1830년대 스페인의 세비야와 그 주변
<2017년 7월 19일 브레겐츠 페스티벌 / 124분 / 한글 자막>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 브레겐츠 페스티벌 합창단 & 프라하 필하모닉 합창단 & 브레겐츠 어린이합창단 연주
파올로 카리냐니 지휘 / 카스퍼 홀덴 연출 & 에스 데블린(무대디자인)
카르멘...........집시.....................................가엘르 아르케(메조소프라노)
돈 호세..........하사.....................................다니엘 요한손(테너)
에스카미요.....투우사..................................스콧 헨드릭스(바리톤)
미카엘라........시골 처녀. 돈 호세의 약혼녀.....엘레나 찰라고바(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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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호수 위, 카르멘의 뜨거운 유혹
국내에서 지난 7월 14개의 상영관에서 상영되며 화제를 모았던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비제 <카르멘> 공연 실황물(7월 19, 21일)이다. 런던 로열오페라의 예술감독 카스퍼 홀텐이 연출을, 아델·U2·테이크 댓·펫샵 보이즈·카니예 웨스트 등 팝스타의 무대를 디자인했던 에스 데블린이 무대디자인을 맡았다. 지휘는 2015/16 시즌에 <투란도트>를 지휘했던 파올로 카리야니. 라모·륄리·비발디 등 바로크 레퍼토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메조소프라노 가엘르 아르케는 색다른 카르멘을 보여준다. 안정적인 목소리와 요염한 연기력이 인상적이다. 영상물은 현장의 거친 음향도 잘 걸러내어 담고 있다. 유럽의 여느 오페라극장과 마찬가지로 호반을 울리는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낭랑하고 또렷하다. 보너스 트랙(14분)에는 연출가 카스퍼 홀텐과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의 인터뷰(영어·독일어 자막), 그리고 세트가 지어지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영상이 담겨 있다.
2017/18 시즌,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비제 <카르멘>을 선택했다. 본 영상물은 개막하던 7월 19일과 21일 실황을 담은 것으로, 국내에도 지난 6월에 14개의 상영관에서 상영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번 프로덕션은 런던 로열오페라의 예술감독 카스퍼 홀텐이 연출을 맡았고, 아델·U2·테이크 댓·펫샵 보이즈·카니예 웨스트 등 팝스타의 무대를 디자인했던 데블린이 무대디자인을 맡았다. 지휘는 2015/16 시즌에 <투란도트>를 지휘했던 파올로 카리야니.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현재의 유명세보다는 세계적 명성을 갈망하는 젊은 성악가 위주로 캐스팅한다. 타이틀 롤의 메조소프라노 가엘르 아르케는 라모·륄리·비발디 등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명성이 높다. 이러한 그녀의 음반은 아르모니아 문디·알파·아파르테 등의 레이블을 통해 나와 있다. 하지만 <카르멘>의 무대 위의 그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안정적인 목소리와 요염한 연기력이 인상적이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무대는 성악가들이 마이크를 사용한다. 공연에서 음악은 무대 세트에 잘 숨겨진 대형 스피커를 타고 장내로 흘러온다. 때로 현장의 소리가 아니라며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지만, 이 영상물은 현장의 거친 음향을 잘 걸러내어 담고 있다. 유럽의 여느 오페라극장과 마찬가지로 호반을 울리는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낭랑하고 또렷하다.
카스퍼 홀텐의 연출은 콘스탄스 호수를 무대의 배경이나 소품처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1막에서 담배공장의 여공들은 호수가로 나와 물을 뜨고 목욕을 하고, 후반에 카르멘은 호세의 도움으로 탈출하며 호수에 뛰어들었다. 다소 밋밋하게 보이던 카드에 2막부터 영상과 조명이 더해지면서 변신이 시작된다. 3막 밀수꾼들의 합창은 모터보트를 타고 물 위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사랑을 거절당한 호세의 복수 장면 피날레도 호수가 사건 현장이었다. 호세는 카르멘을 호수 물에 빠뜨린 채 목을 조른다.
본 공연(124분)의 자막은 한국어·영어·독일어·스페인어·일본어로 되어 있다. 보너스 트랙(14분)에는 연출가 카스퍼 홀텐과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의 인터뷰(영어·독일어 자막), 세트가 지어지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주는 영상이 담겨 있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채한울 글>
카르멘
조르주 비제
사실주의 오페라, 베리스모 오페라의 효시라 불릴 만큼 하층민의 어두운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을 뿐 아니라 이전에 없던 여성 캐릭터로 다른 작곡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란 말도 있었지
군대의 하사관인 돈 호세가 마을 광장의 초소 당번병으로 근무하는 날 고향에서 약혼녀인 미카엘라가 찾아와 고향의 어머니 소식을 전해준다. 그녀가 광장을 떠나자마자 광장 옆 담배공장에서 싸움이 일어나 소란스러워지고 중위 주니가는 돈 호세를 시켜 이 소란의 원인인 카르멘을 포박하라고 이른다.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나고 둘만 남게 되자 카르멘은 돈 호세를 유혹하며 자신을 풀어달라고 하고, 처음에는 거절하던 돈 호세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유혹에 넘어간다. 그 둘은 얼마 후 릴리아스 파스티아라는 술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돈 호세는 그녀가 이송과정에서 달아날 수 있도록 손을 써준다. 그리고 그는 경비를 느슨하게 한 잘못으로 영창에 갇힌다.
며칠 후, 그들이 만나기로 한 릴리아스 파스티아는 투우사 에스카미요의 등장으로 매우 시끌벅적하다. 환영의 열기가 가시고 난 후 실내가 조용해진 틈을 타 밀수업자들이 카르멘에게 다가와 그녀를 오늘 밤 자신들의 사업에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카르멘은 오늘은 기다릴 남자가 있어서 안된다고 거절하고, 이내 영창에서 풀려난 돈 호세가 술집으로 찾아온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울리는 귀영나팔소리에 돈 호세는 돌아가려 하나 카르멘은 군대로 돌아가지 말고 자신과 함께 방랑생활을 하자고 꼬드긴다. 그 때 상관인 수니가가 돈 호세를 발견하고 소리치며 귀대할 것을 명령하고, 돈 호세는 화가나 칼을 빼든다. 밀수업자들의 중재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 사건으로 호세는 상관에게 칼을 빼든 탈영병 신세가 되어 밀수업자 무리에 가담한다.
그 후 돈 호세와 카르멘은 산 속 밀수업자의 은신처에서 지낸다. 어느 날 밀수업자들이 짐을 운반하러 나가고 호세가 혼자 망을 볼 적에 에스카미요가 그 곳에 찾아온다. 카르멘이 그와 정을 통하고 있는 사실을 눈치 챈 돈 호세는 그에게 달려들어 죽이려 하지만 카르멘이 달려와 에스카미요를 도와 도망치게 한다. 그 때 이미 이곳에 찾아와 바위 뒤에 숨어있던 미카엘라가 나타나 돈 호세에게 고향의 어머니께서 위중하시다는 사실을 알리고, 돈 호세는 질투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산을 내려온다. 시간이 흐르고 세비야의 투우장에서 에스카미요가 출전하는 투우경기가 열리던 날, 돈 호세는 에스카미요와 동행한 카르멘을 찾아간다. 사람들이 모두 경기장에 입장하고 둘만 남게 되자 호세는 그녀의 사랑을 애원하지만 그녀는 에스카미요가 있는 곳으로 가려한다. 불타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한 호세는 그녀의 가슴을 단도로 찌르고, 그 단도에 쓰러진 카르멘의 시체를 붙잡고 절규한다.
〈카르멘〉이 다음 주자들에게 쥐어준 배턴
오페라 〈카르멘〉이 처음으로 상연되었던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은 주로 가족단위의 관객들이 많이 찾아 함께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상연되었다. 그런 극장에 갑자기 계급이 낮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여 거친 연애 끝에 서로 죽고 죽이는 극이 걸렸으니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일반 대중들의 반응이 좋았을 리 없다. 하지만 동종업계의 예술가들은 모두 이 작품에 열광하여 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의 관현악법과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앞으로의 지형을 바꿔놓을 정도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관현악법을 공부하려면 버릴 음이 하나도 없이 정확한 곳에 놓여있는 〈카르멘〉의 악보를 꼭 봐야한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카르멘〉의 오케스트레이션은 곧 나타날 인상주의 관현악법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하층민들이 등장하여 환상 없는 어두운 삶 그대로를 보여줬다는 면에서 훗날 사실주의 오페라인 베리스모 오페라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카르멘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 캐릭터는 너무도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팜므 파탈 캐릭터의 어머니
아마도 이 카르멘만큼 오페라에서 구체적인 강한 이미지로 와 닿는 캐릭터도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원하는 대로 사는 이 자연주의적인 여성은 어찌 보면 개개인의 욕망에 비추어보았을 때는 부러울 수도 있지만 당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느 여인들의 덕목인 지조와 정숙함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으니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성은 〈카르멘〉이후로 곧 여러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비제는 이 특유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오페라의 여주인공으로는 드문 메조소프라노의 음역을 카르멘에게 부여했는데, 아직 이 역에 관해서는 ‘카르멘은 곧 누구다’라고 할 만큼의 적임자가 나타나지 못했다는 평이다. 간혹 소프라노 중에서 더 좋은 외모와 노래와 연기를 보여주는 경우는 있었으나 그래도 역시 이 경우는 비제의 의도에 완전히 부합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서로를 보완하는 연적들
메조소프라노인 카르멘과 커플을 이루는 돈 호세는 테너여서 사실 밸런스 면에서는 그리 좋은 궁합이 아니다. 무슨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유독 프랑스 오페라에서는 종종 서로 다른 음역을 가진 두 남녀가 주인공 커플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카르멘〉에서 서로 대립관계인 연적들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는 성격들을 가진다. 사실 원작에서는 돈 호세의 약혼녀인 미카엘라의 비중이 매우 작지만 정숙하고 순결한(당시 관객들이 원하는) 여인을 좀 더 등장시켜 도덕적인 비난을 좀 덜 받으려 했고, 또 이 캐릭터로 소프라노를 기용해 음향적인 균형을 맞추려했다. 이는 호세와 에스카미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카르멘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비교적 유약한(오히려 현대적인) 테너 호세와는 반대로 상남자의 매력을 가진 에스카미요는 바리톤(때로는 베이스)으로 캐릭터의 성격 면에서나 음역 면에서 호세와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가진다.
1막 카르멘의 하바네라 ‘사랑은 한 마리 들새 같아서’(L'amour est un oiseau rebelle)
정오의 광장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중에 단연 눈에 들어오는 그녀, 카르멘의 첫 등장곡이다. 이미 ‘하바네라’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이곡은 본래 ‘아바나(쿠바의 수도)의 노래’라는 뜻으로, 스페인이 아바나 항구를 경유하여 식민지의 물품을 받을 때 쿠바의 음악까지도 받아들였음을 보여주는 쿠바 민요풍의 노래다. 사랑이란 길들일 수가 없는 들의 새 같아서 잡으려하면 잡히지 않고, 오히려 기다리다보면 찾아올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노래 한 곡만으로도 카르멘이 어떤 사람인지, 카르멘이 연애와 인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노래이다.
2막 에스카미요의 아리아 쿠플레 ‘축배를 듭시다’(Votre toast)
2막이 열리고, 술집 안에서 사람들의 노는 모습을 보여준 뒤 밖에서 투우사의 합창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인기절정의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술집으로 들어와 노래를 한다. 이 노래 역시 너무나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노래로 ‘투우사의 노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에스카미요는 여자들에 대한 애정을 노래하며 여러 집시 여인들과 추파의 말을 주고받다가 카르멘과 마주치게 된다.
2막 호세의 아리아 ‘당신이 던져 준 이 꽃은’(La fleur que tu m'avais jetée)
약속대로 영창에서 풀려난 후 술집을 찾았던 돈 호세는 어느 새 복귀시간을 맞이한다. 이에 호세는 카르멘을 만난 날 그녀가 그에게 던졌던 그 꽃 (오래 간직해 시든)을 보여주며 역시 ‘꽃노래’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아리아를 부른다. 옥중에서도 이 꽃을 바라보며 그녀를 애증하며 견디어냈으니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은 카르멘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 노래 역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하바네라와 마찬가지로 돈 호세의 캐릭터를 분명히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노래이다. 카르멘속의 노래 한 곡 한 곡이 얼마나 극과 캐릭터를 엮어가는 데 기능적으로 훌륭한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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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0 1월 18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비제, 카르멘
전주곡과 집시의 노래, 투우사의 노래, 세기디야, 꽃노래가 특히 유명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을 바탕으로 한 알레비, 메리약의 대본에 의해 1875년에 작곡
1875년 3월 3일,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 Carmen]이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객석에는 유명 예술가들이 가득했습니다. 작곡가 들리브, 구노, 뱅상 댕디, 오펜바흐, 마스네뿐만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 2세 같은 문인들도 이 공연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지요.
비제는 뛰어난 신진 작곡가에게 주는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에 유학했고, [닥터 미라클](1857), [진주잡이](1863), [페르트의 아름다운 처녀](1867), [자밀레](1872) 등의 오페라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특별한 ‘히트작’이 없었기 때문에 이 작품 [카르멘]에 유난히 공을 들이고 열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쪽짜리 성공이었습니다. 음악가들과 평론가들에게서는 대단한 찬사를 얻었지만,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거든요. 브람스는 [카르멘]의 예술성에 감탄하며 공연을 20회나 관람했고, 철학자 니체는 “음습하고 우울한 독일적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찬란한 태양의 음악”이라고 말하며 “풍요롭고 정밀한 동시에 건축적으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카르멘]을 극찬했습니다. 훗날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카르멘]의 악보를 연구하라. 음표 한 개도 버릴 것이 없다”는 찬사까지 이 작품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음악적으로 탁월한 오페라가 대체 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까요?
전통적 여성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여자 카르멘
가장 큰 이유는 카르멘이라는 여주인공의 독특한 개성 탓이었습니다. 대체로 ‘청순가련형’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소프라노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이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소프라노도 부릅니다)은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인물이었거든요. 마리아 칼라스는 [카르멘] 전곡 음반을 남겼고 독창회에서 이 오페라의 아리아를 노래하기도 했지만, 카르멘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서는 일을 꺼렸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칼라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카르멘은 남자의 내면을 지닌 강한 여자죠. 하지만 저는 상당히 여성적인 성격이고, 여성적인 역할을 좋아해요. 그래서 이 배역으로 무대에 서는 걸 원치 않아요.”
게다가 당시 오페라 코미크 극장은 가족이 함께 공연 나들이를 하거나 맞선을 보는 데 주로 사용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시라는 하층민이 떼로 등장해 밀수를 하고, 점을 치고, 결투를 벌이다가 결국 치정살인으로 끝나는 오페라를 봐야 하니, 관객은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특히 초연 때 카르멘 역을 맡은 가수 셀레스틴 갈리 마리의 관능적이고 공격적인 연기는 관객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카르멘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도, 당시의 관객은 이런 여주인공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의 원작 [카르멘](1845)에 비하면, 오페라 속 카르멘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훨씬 순화된 캐릭터인데도 말입니다.
안달루시아의 집시, 최하층 노동자 계급의 여자 카르멘
집시는 유럽에서 유태인보다도 더 심하게 천대와 박해를 받아온 소수민족의 하나입니다. 본래 서남 아시아에 살던 인도 아랍계 유랑민족인 이들은 살던 땅에서 내몰린 뒤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나라에 따라 ‘신티/로마, 마누슈, 히타노’ 등으로 불리는 이들 집시는 어느 나라에서든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법적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밑바닥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도둑질, 암거래, 밀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도피, 유랑생활을 계속하게 된 것이죠.
신대륙을 정복하고 나서 남아메리카 선주민들에게서 담배를 배운 유럽인들은 유럽 곳곳에도 대규모의 담배공장을 지었는데,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1820년경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세비야 담배공장 노동환경의 열악함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한여름에도 통풍이 되지 않는 작업장 안에 5백 명쯤 되는 여자들이 빼곡이 들어앉아 담뱃잎을 말았습니다. 이 당시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란 신분 면에서나 보수 면에서나 최하층 노동자에 속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안달루시아의 집시들이었고, 카르멘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한 불러봐도 소용없지 /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 이렇게 시작되는 카르멘의 아리아 ‘아바네라(Habanera)’는 원래 1800년경 쿠바의 아바나 지방에서 태어난 유행한 춤곡입니다. 탱고와 비슷한 두 박자 리듬에 셋잇단음이 따라 나오는 것이 특징이죠.
카르멘의 불 같은 매력과 깊은 절망과 허무의 오페라
보수적이고 진지한 바스크 지방 출신의 하사 돈 호세는 아바네라를 부르며 자신에게 꽃을 던져준 카르멘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맙니다. 어머니 뜻대로 얌전하고 착한 고향 처녀 미카엘라와 결혼하려고 마음먹어 보지만 도저히 카르멘을 마음에서 몰아내지 못하죠. 그때 담배공장 여공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카르멘이 폭행죄로 체포됩니다. 그러나 카르멘은 호송 책임을 맡은 호세를 스페인 춤곡 ‘세기디야’로 유혹해 도주하는 데 성공합니다.
2막이 열리면 그 파스티아의 술집입니다. 다른 집시들과 함께 카르멘은 ‘집시들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느리고 나른하게 시작했다가 템포가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플라멩코의 ‘두엔데(duende: 강렬한 춤을 통해 영혼의 폭발을 체험하는 순간)’를 연상시키는 광기로 마무리됩니다. 이때 이 술집에 인기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자신의 숭배자들을 거느리고 찾아와 ‘투우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출옥한 호세는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서정적인 아리아 ‘꽃노래’로 카르멘에게 절절한 심정을 전합니다. 그러나 카르멘을 찾아 온 자신의 상관과 싸움을 벌이게 된 호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집시들과 함께 밀수의 길을 떠납니다.
3막에서 유랑 생활과 범법자 신세에 불안과 회의를 느끼게 된 호세는 가책에 시달리고, 카르멘은 호세가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한편 카르멘에게 반한 투우사 에스카미요는 집시들이 머무르고 있는 산 속까지 찾아와 카르멘을 투우장에 초대하고, 미카엘라도 ‘두렵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이라는 투명한 아리아를 부르며 이곳까지 찾아와 호세에게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전합니다. 질투와 원망과 증오로 마음이 일그러진 호세는 카르멘을 위협하고 고향으로 갑니다.
4막 도입부에 나오는 투우장의 합창과 파소도블레(paso doble) 음악이 사용된 ‘투우사들의 입장’은 활력과 색채감이 넘치는 장면입니다. 카르멘은 투우장에 입장하는 에스카미요와 사랑을 확인합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투우장에 찾아온 호세는 카르멘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애원하다가, 카르멘의 차가운 거절에 이성을 잃고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이 오페라 여주인공의 독특한 매력은 관객을 사로잡는 불같은 열정과 넘치는 에너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절망과 허무에 있습니다. 카르멘이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려 했던 것은 결국 투우사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집시의 유일한 재산인 자유였습니다. “관능을 무시하지 말라. 늘 모차르트를 곁에 두어라”라고 말했던 비제의 말 속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카르멘]의 성공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카르멘 / 돈 호세 / 미카엘라 / 에스카미요 순
[음반] 마리아 칼라스 / 니콜라이 게다 / 안드레아 기요 / 로베르 마사르 등, 조르주 프레트르 지휘, 파리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964년 녹음
[음반] 마릴린 혼 / 제임스 맥크라켄 / 톰 크라우스 / 아드리안 말리폰테 등,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맨해튼 합창단, 1973년 녹음
[DVD] 마리아 유잉 / 루이스 리마 / 레온티나 바두바 / 지노 킬리코 등, 주빈 메타 지휘,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누리아 에스페르트 연출, 1991년 실황
[DVD]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 / 요나스 카우프만 /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등,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프란체스카 잠벨로 연출, 2006년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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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2월 11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
비제 <카르멘>
이 오페라가 초연 된 지 3개월 만에 비제는 죽었다. 이 작품은 그의 음악의 총결산이며 그의 모든 것이 투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초연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이 작품이 온 세계를 석권하게 된 것은 그 해 가을 빈에서 재공연되어 큰 인기를 끌면서였다. 원래 오페라 꼬미크(Opéra comique) Bohêm 풍으로 쓴 것을 빈 공연 당시 비제의 친구 기로오(Ernest Guiraud)가 대사 부분을 레치타티보(recitativo=서창 敍唱)로 바꾸고 발레를 추가하여 그랜드 오페라 풍으로 개정했다. 오늘날은 이 판본이 주류가 되었다. 전4막, 대본 메이약과 알레비, 원작은 메레메(Prosper Mérimée)의 소설이다.
돈 호세를 사로잡은 카르멘의 야성미
모랄레스 상병과 부하 위병들이 길 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곧 시골처녀 미카엘라가 조심스럽게 찾아 들어와 모랄레스에게 돈 호세 하사를 찾아 왔다고 말한다. 모랄레스는 교대 시간이 되면 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녀는 수줍은 듯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난다. 멀리서 나팔 소리가 울려 펴지고 위병들이 정렬하면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교대 위병행렬이 대장 수니가 소위와 돈 호세 하사의 인솔 아래 나타난다. 모랄레스가 돈 호세에게 아가씨가 찾아왔다고 알리고,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기 대원을 인솔하고 퇴장한다. 돈 호세는 좀 전에 찾아왔다는 처녀는 고향의 아가씨이며 자기는 미카엘라를 사랑하고 있다고 수니가에게 말한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거리의 젊은이가 하나 둘 모여들고 담배공장의 여공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 젊은이들이 환성을 올리며 맞는다. 여공들과 함께 나타난 카르멘은 문득 돈 호세에게 이끌린다. 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에게 요염한 ‘하바네라’를 불러 유혹한다. 그래도 무관심한 돈 호세에게 카르멘은 쥐고 있던 장미꽃을 면전에 던지고 담배 공장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바네라는 영국의 컨트리 댄스가 스페인을 거쳐 쿠바로 건너가 흑인의 감각이 추가된 춤곡이다.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
아무리 애써도 길들지 않아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어
한번 싫다면 그만이야
겁 줘도 달래도 소용없어
저쪽이 지껄이면 이쪽이 입 다물죠
이 쪽 분에게 마음이 있어
말은 없어도 좋아져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타고난 보헤미안
법도 규칙도 없어
날 안 좋아 한다면 내가 좋아해 주지
내가 좋아 하면 조심해야 돼
*날 안 좋아 한다면
날 안 좋아 한다면, 내가 좋아해 주지
내가 좋아 하면,
내가 좋아 하면, 조심해야 돼*
(* 부분 반복)
새를 잡았다고 생각해도
날개가 있어서 날아가 버려
시랑이 멀리 있다면 기다리겠지만
기다릴 것 없어요 여기 있는 걸
당신 둘레를 요리 저리로
왔다 갔다 돌아 와서
잡은 줄 알았는데 도망가고
도망 간줄 알았지만 붙잡혔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타고난 보헤미안
법도 규칙도 없어
날 안 좋아 한다면 내가 좋아 해주지
내가 좋아 하면 조심해야 돼
(* 부분 2회 반복)
어두운 운명을 예언하는 카르멘의 냉소
‘하바네라’의 가사는 사랑이라는 것에 매우 냉소적(冷笑的)이다. 순진한 청년을 희롱하는 카르멘의 노래는 결국 그 여자 때문에 신세를 망치게 되는 이후의 결과를 예언하고 있다. 그것을 상징하는 말투는 첫 줄의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oiseau(새)와 rebelle(반역의, 길들일 수 없는)의 두 마디로 요약된다. 결국 “사랑은 반역의 새”라고 직역할 수 있다. 한 여성이 나타나서 자기가 어떤 여자인가를 사내에게 지껄이는 이 ‘유혹’의 말 첫 서두에 “반역”이라는 말을 내뱉는 데에는 앞으로 전개될 둘의 운명에 대한 강한 암시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추천할 만한 음반과 DVD
[CD] 카라얀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합창단(1963) 프라이스(S) RCA
이 음반은 카라얀의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설계의 지휘에 압도 되는 연주이다. 오페라를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만든 예는 전무후무하다. 가수진도 거의 완벽하며 후레니(프레니), 코렐리(Franco Corelli), 메릴(Robert Merrill) 등 3인은 각기 실력을 최고로 발휘하여 각기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다. 그랜드 오페라 풍의 공연 중 최고의 명연이라고 할 수 있다. 녹음 상태도 아주 풍성한 스테레오이다.
[CD] 죠르쥬 쁘레트르 지휘, 빠리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르네 뒤끌로 합창단(1964) 칼라스(Ms) EMI
이 전곡 녹음에서는 누구보다도 칼라스(Maria Callas)의 노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카르멘의 음악과 성격 속에 깃들어 있는 드라마와 감정을 가장 날카롭게, 또 누구보다도 출중하게 음악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아무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겟다(니코라이 게다, Nicolai Gedda)의 돈 호세도 그의 많은 노래 중 뛰어나게 힘차고 풍부한 명창을 들려준다. 또 쁘레트르의 다이내믹한 활력과 긴장감 넘치는 지휘도 유의할 만하다.
[DVD] 클라이버 지휘, 빈 국립오페라단 관현악단/합창단(1978) 오브라쪼바(Ms) 제휘렐리 연출 TDK
오브라쪼바(오브라초바, Elena Obraztsova)라는 요염한 꽃이 활짝 핀 열기 찬 노래, 막힘없이 뻗어나가는 절정기의 도밍고의 상대역, 이 둘의 주역은 이 오페라를 아찔할 정도의 감동으로 몰아 넣는다. 여기에 러시아에서 초청한 마주로크(Yuri Mazurok), 그리고 제휘렐리의 미술과 연출에다 유려하고 격정적인 클라이버(Carlos Kleiber) 지휘의 빈 오페라단 하면 누구나 기대할 수밖에 없다. 제2막에서의 남녀의 대결은 마지막으로 통하고 타고난 여자의 운명에 끌려 다니는 카르멘은 그 불길을 끄려고 몸부림치며 스스로 죽음에 이른다. 여자의 숙명을 지켜보는 연출에 음악이 완전히 바짝 붙어서 따라가는 기백은 장렬하기 그지없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공연 실황 녹화이다.
[Blu-ray]파파노 지휘, 로이얼 오페라단 관현악단/합창단(2008) 안토나치(Ms) 후란체스카 잠벨로 연출 DECCA
최근 영국에서 있은 [카르멘]의 공연 실황이다. 매우 신선하고 발랄한 출연진으로 꾸민 폭발적인 노래와 연기가 돋보이는 연주이다. 카르멘 역의 안토나치(Anna Caterina Antonacci)의 무대에서의 모습은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이다. 아울러 뛰어난 연기력을 갖추었고 노래도 일급이다. 1987년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로 입상하였고 1990년대 중엽부터 레퍼토리를 메쪼 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로 바꾸어 스칼라 극장을 비롯하여 전세계 오페라 극장을 누비고 있다. 또 투우사 에스까밀료 역의 달칸젤로(Ildebrando D'Arcangelo)는 1999년 스칼라 극장에서 무티 지휘[돈 죠반니]의 레포렐로 역으로 데뷔했으며 그 깊이 있는 풍성한 음성과 현대적인 모습 및 압도적인 베이스의 박력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때 돈나 엘비라 역을 맡은 메쪼 소프라노가 안토나치였다. 그 밖에 돈 호세 역의 카우후만(Jonas Kaufmann)과 돈 호세의 시골 애인 미카엘라 역의 암셀렘(Norah Amsellem)도 신인답지 않은 팽팽한 목소리로 열연을 펼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 - 비제, [카르멘]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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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1월 3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투우사의 노래
비제 <카르멘>
[카르멘]공연 방법으로 크게 나누어 보면 오페라 꼬미끄(오페라 코미크) 형식과 그랜드 오페라 형식이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일이 있으나 이번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 1875년 3월 3일 빠리의 오페라 꼬미끄 극장에서 초연된 것이 대사가 들어 있는 오페라 꼬미끄 형식의 원전판(原典版)이었다. 이를 출발점으로 하여 이 작품에 갖가지 추가하여 여러 판이 나오게 된다. 먼저 초연한 직후에 비제 자신이 손을 댔다. 제3막의 돈 호세와 에스까밀료(에스카밀료)의 대결 장면이 단축(短縮)되는 등에스까밀료의 성격이 좀 애매(曖昧)해졌다. 같은 해 10월에는 빈에서 그랜드 오페라 형식으로 고친 뒤 공연하려 했으나 그 사이에 작곡가가 갑자기 죽었다. 하는 수 없이 친구 작곡가 기로(Ernest Guiraud)가 대사 부분을 극히 간단한 레치타티보로 말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바꾸었다. 그 때문에 특히 준 주역급인 등장인물이나 조연급의 존재감이 희박(稀薄)해져서 드라마 속의 인과관계(因果關係)가 뚜렷하지 않은 부분이 생겨났다. 기로는 제2막의 주막집 장면에 비제의 다른 작품을 추가했으나, 직후(直後)에 마지막 막(본래는 제3막 제2장) 서두로 옮기고, 대신 비제가 직접 쓴 ‘길거리 장사치들의 합창’을 빼는 공연 방법이 습관화되었다. 그랜드 오페라 판은 큰 호평을 받아 세계적인 인기의 길을 열었다. 오페라 꼬미끄 형식의 원전판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것은 1964년에 카셀의 알코어 출판사가 에저(Fritz Oeser)가 교정한 판을 그랜드 오페라 판과 양면으로 대조시켜 출판한 뒤부터이다. 유럽에서는 에저 판을 기초로 한 오페라 꼬미끄 형식의 공연이 주류가 되고 있다. 이 에저 판에도 작곡자의 뜻을 살린 복원판이 나오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씩씩한 '투우사의 노래'
위세당당(威勢堂堂)한 전주(前奏)를 따라 씩씩하게 노래하는 이 아리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아리아 후반의 경쾌한 리듬을 타고 노래하는 민요풍의 멜로디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자연스러움과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여러분의 건배에 삼가 잔을 돌려 드리겠소”(Votre toast, je puux vous le rendre)라고 첫 줄을 곡 제목으로 달아야 되지만 흔히 ‘투우사의 노래’로 널리 알려졌으므로 그대로 따랐다.
'투우사의 노래'
여러분의 건배에 삼가 잔을 돌려 드리겠소.
세뇨르, 당신은 군인이니까
우리 투우사와는 기분이 잘 통하죠,
싸움의 동료로서 즐기기 위해.
투우장은 오늘 축제로 대만원,
투우장은 위아래 층까지 초만원,
구경꾼은 정신없이
서로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부르고 외치치고 손뼉을 치며
미친 듯이 밀고 당기고,
그도 그럴 것이 배짱의 축제!
용감한 사나이들의 축제니까!
자, 대비하라, 아!
투우사여, 대비하라!
투우사, 투우사!
꼼꼼히 생각하라, 싸우면서 생각해,
검은 눈동자가 너를 지켜보고,
사랑이 너를 기다리고 있음을.
투우사, 사랑이,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모두가 조용해진다.
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외침 소리도 안 터지는 그 순간!
투우가 튀어 오르고
대기실 밖으로 돌진한다!
뛰어 나온다, 들어온다, 부딪친다, 말은 쓸어지고
투우사가 끌려간다.
“아, 장하다 소야”고 울부짖는 군중,
소는 가고.....왔다가 다시 부딪친다!
등에 꽂힌 장식창(裝飾槍)을 흔들고
미쳐 날뛰며 소는 달린다!
투우장은 피로 물든 바다!
도망가는 놈, 울타리를 뛰어 넘는 놈!
이제 네가 나갈 차례다!
자! 대비하라! 아!
추종자들과 선술집에 나타난 에스까밀료가 술꾼들과 함께 건배하며 씩씩한 투우의 모습을 노래한다. 노래 속에 “세뇨르, 당신은 군인이니까”하고 은근히 돈 호세를 의식하여 말한 것은 앞으로 벌어질 카르멘과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가사 속의 “여러분”(toréador), "즐기기 위하여"(pour plaisirs), "관중들"(les Spectateurs), "자!"(allons), "대비하라"(en garde) 등 단어가 되풀이 되고, 제4절의 “투우사여, 대비하라”(Toréador; en garde!) 이하 6행은 마지막에 한 번 더 되풀이된다. 또 오페라에서는 그 술집에 모인 사람들이 도중과 마지막에 합창으로 화답하여 한층 더 기분을 추켜세운다.
이후의 이야기
‘투우사의 노래’는 돈 호세가 ‘네가 던진 이 꽃은’을 부르기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귀대 나팔 소리가 울려 돈 호세가 잠시 흔들리다 카르멘과 같이 있기로 동의(同意)하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호소한다.
결국 카르멘의 매력에 사로잡혀 선술집에서 만난 도적 일당과 생활이 시작되지만, 카르멘은 술집에서 만난 투우사 에스까밀료를 잊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도적들의 거주지인 바위산에 돈 호세를 찾아 한 젊은 여성이 찾아온다. 어머니의 위급함을 알리려는 돈 호세의 약혼녀 미카엘라였다. 카르멘이 그에게서 에스까밀료에게로 마음이 기울고 있음을 눈치챈 돈 호세는 산을 내려가는 일이 꺼림칙했으나 어머니가 위독(危篤)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별 수 없어 그곳을 떠난다. 둘이 다시 만나는 장소는 돈 호세가 염려했던 대로 에스까밀료가 나타나는 투우장이었다. 이제 곧 투우로 향하는 연인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고 홀로 그 자리에 남은 카르멘 앞에 홀연히 나타난 돈 호세는 자기와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고 애원하나, 당신하고는 이미 옛날에 끝났다며 잘라 말하고 지난날 그에게서 받은 반지를 던져주는 카르멘 앞에 이제는 끝났음을 깨닫고, 투우장에서 들려오는 환성(歡聲)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에게 다가 가 격분한 돈 호세는 단도(短刀)를 그녀 가슴에 꽂는다.
추천음반
[CD] 끌뤼땅스 지휘, 빠리 오페라 꼬미끄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0) 미쉘 당(Br) EMI
빠른 리듬과 예리한 액센트, 몰아치는 듯한 직선적인 표현 등은 젊은 날의 기백 넘치는 끌뤼땅스(André Cluytens, 클뤼탕스)의 지휘를 실감케 해준다. 캐스트는 당시 오페라 꼬미끄 극장의 일급 가수가 다 망라되었다. 이 작품은 원래 불란서 오페라 꼬미끄 양식을 따라 노래와 노래 사이를 대사가 이어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한동안은 그 대사를 레치타티보로 바꾸어 그랜드 오페라 풍으로 공연했다. 카라얀 지휘도 쁘레트르 지휘도 모두 그런 연주였다. 그러니 끌뤼땅스 반은 정확하게 대사를 넣어 오페라 꼬미끄의 양식을 지킨 연주이며 비제가 작곡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헤아릴 수 있는 녹음이다. 순수한 불란서적인 향기와 분위기를 이만큼 물씬 풍기는 음반도 없다. 귀중한 역사적 명반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투우사의 노래 - 비제, [카르멘]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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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0월 6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네가 던진 이 꽃은(꽃의 노래)
비제 <카르멘>
[카르멘]은 가장 인기가 높은 불란서(프랑스) 오페라로서 변함 없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이 오페라의 주역, 카르멘 역에는 사람들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카르멘을 연기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래서 이 역에는 메쪼(메조) 소프라노이건 소프라노이건, 훌륭한 목소리를 지닌 가수나 청중을 감동시킬 연기력 있는 가수들을 줄곧 끌어들였다. 어떤 가수는 카르멘을, 남자를 유혹하는 마성(魔性)을 지닌 여자의 원형(原型)으로 연기했다. 또 다른 가수는 어린애 같은 성격이며 푼수없는 카르멘을 돋보였다.카르멘은 찰나적(刹那的)이어서 그녀의 사랑이 남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카르멘을 정치적인 존재, 즉 가난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학대받는 층의 대변자로 연기한 가수도 있다. 또 자살을 바라는 정신이상을 가진 여성으로 그린 것도 있다. 이 카르멘은 돈 호세가 위험한 남자이며 마치 자기를 죽이고 싶어하는 듯이 보인다는 이유로 그에게 끌리고 있다. 한편 뚱뚱한 어느 메쪼 소프라노 가수는 자기 주변의 어린애 같은 사나이들에게 넌덜머리가 나서 역겨워하는 모성 본능의 카르멘을 연기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카르멘]은 갖가지 방법으로 사랑에 대한 정반대의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제1막의 유명한 하바네라의 아리아에서 카르멘이 노래하고 있으나, 그녀에게 사랑이란 짚시(집시)의 후손답게 언제나 기분파이며 즐길 때는 철저히 즐기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돈 호세에게는 사랑이란 영원한 진리이다. 그는 일단 누구인가를 사랑하면 상대방에게 성실하게 대하고 또 상대에게도 그러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카르멘은 그것을 견딜 수 없다. 실수로 라도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이 극적인 오페라가 공연될 때 관중의 흥미를 끄는 것은 항상 이번 카르멘과 돈 호세는 어떻게 연기할까 하는 점이다.
다양하게 표현되는 카르멘의 매력
담배공장 안에서 여공들이 싸움을 일으켜 카르멘이 감방에 가게 된다. 카르멘은 호송을 맡은 돈 호세를 유혹하여 도중에 그를 떠밀고 도망 친다. 교외의 한 선술집에서 카르멘과 밀수업자가 모여 있다. 모두의 환성(歡聲)을 받으며 인기 있는 투우사 에스까밀료가 나타난다. 가게가 문을 닫은 뒤 카르멘을 놓친 벌로 영창에 갇혔다가 풀려난 돈 호세가 들어온다. 카르멘은 자기 때문에 고생한 보상으로 노래와 춤으로 그를 환대하고 자기들 일당에 참가하려고 애쓴다. 그때 부대에서 귀대(歸隊)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정신이 돌아온 듯 부대에 돌아갈 채비를 하는 돈 호세를 보고 기분이 상한 카르멘에게 난처해진 돈 호세는 안주머니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 자기에게 던져준 다 시든 꽃을 꺼내 손에 쥐고 감방 속에서 언제나 바라보며 너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지극한 사랑을 노래한다.
'네가 던진 이 꽃은'
네가 던진 이 꽃은
감방 속에서도 놓지 않았지만,
시들고 말랐지만 이 꽃은
달콤한 향기를 계속 지니고 있어,
몇 시간이건 여러 시간을
감은 두 눈 위에 놓아두면,
그 향기에 나는 멍해져서
한밤중에 네 모습이 보였지.
너를 저주하자, 미워하자고
생각하며 나는 자신에게 묻기도 했다,
어째서 운명은 그 여자 따위를
내 앞길을 가로 막았느냐고.
그런 뒤 내 저주를 스스로 나무라며,
나는 내 속에서 느꼈다,
내겐 하나의 소원, 하나의 소원 밖에 없음을.
너를 다시 만나는 것, 오 카르멘, 다시 만나는 것을.
나를 단 한번 보고,
눈길을 준 것만으로
내 모든 것을 빼앗을 수가 있고,
오 나의 카르멘!
그리고 이미 나는 네 것이었다!
카르멘, 나는 너를 사랑한다!
돈 호세가 “나는 너를 사랑한다”(je t'aime)고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담배 공장 앞에서부터 영창을 나와 선술집을 찾아왔을 때까지이다. 그러나 이 호소는 남자의 조심성 없는 자기중심의 기분을 고백한 데에 지나지 않는다. 카르멘이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엇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다”가 아니라, “사랑한다. 지금부터 함께 무엇을 하자”이었다. 그 동안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던 카르멘이 “산으로 가자”고 하지만 “산에 가자”는 말은 돈 호세가 해야 했다. 카르멘이 결단을 내린 것은 앞으로 올 파멸의 결단이고 사랑에 건 맹세에 실패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추천 음반 및 DVD
[CD] 비쳠 지휘, 불란서 국립방송 관현악단/합창단(1959) 니콜라이 겟다(T) EMI
옛날 녹음이기는 하지만, 비쳠(토마스 비첨, Thomas Beecham)이 퍽 긴 시간에 걸쳐 녹음한 음반이다. 그는 이 오페라가 제일 좋다고 하며 200회 이상 지휘한 작품이다. 결코 자극적으로 강렬하지는 않지만 대하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연주이다. 로스 앙헬레스(Victoria de los Angeles), 미쇼(Janine Micheau), 겟다(Nicolai Gedda), 블랑(Ernest Blanc) 등 초일류의 가수를 망라한 출연진이 매력적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맛이 나는 연주이다. 비쳠의 오페라 녹음이 많지 않은 것인만큼 귀중한 음반이다.
[DVD] 마젤 지휘, 불란서 국립 관현악단/불란서 국립 방송 합창단(1984) 도밍고(T) 로지 연출 Columbia
마젤(Lorin Maazel) 지휘의 연주는 비제의 원본에 가장 가까운 알코어 판과 같은 오페라 꼬미끄(오페라 코미크) 형식에 의거했다. 이 [카르멘]의 매력은 로지(Francesco Rosi) 감독의 영상이다. 19세기의 모습을 짙게 간직한 안다루시아 산속의 작은 도시 론다에서 로케이션한 영상이 지방색이 풍부한 이 정열적인 리얼리즘 오페라를 무대에서 해방하여 새 생명을 인상 깊게 불어넣음과 동시에 영상과 음악을 일체화하여 이상적인 오페라 영화로 만들었다. 불란서 국립 관현악단의 밝은 음향과 색채를 잘 살린 마젤 지휘도 그러한 아름답고 사실적인 영상에 알맞은다. 출연진도 거의 만족한 기량을 발휘하여 도밍고(Placido Domingo)의 돈 호세는 최상의 노래와 연기를 돋보이고 있고 미게네스(Julia Migenes)는 그 용모와 교묘한 연가로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짚시 여자를 선명하게 구현(具現)하여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네가 던진 이꽃은 (꽃의 노래) - 비제, [카르멘]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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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9월 16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소설 『카르멘』과 오페라 <카르멘>
불온한 탈주자의 오페라
“모든 여자는 쓸개즙처럼 쓰다. 하지만 달콤한 순간이 둘 있으니 하나는 침대에 있을 때고, 다른 하나는 죽었을 때다.”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erimee, 1803~70)의 소설 『카르멘』은 5세기 그리스 시인 팔라다스의 수수께끼 같은 경구로 시작한다. 그리스어로 쓰인 이 구절은 언뜻 해독 불가능한 암호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이 작품에서 사랑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맞물린 것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비제(Georges Bizet, 1838~75)의 오페라가 [카르멘]이다. 이 오페라의 남자 주인공 돈 호세에게는 애당초 탈영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보수가 넉넉하진 않지만 군대라는 안정된 직장이 있었고, 고향에서는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으며, 자신을 연모하는 순수한 여인 미카엘라도 있다. 하지만 모든 비극은 작은 흔들림에서 시작한다. 돌멩이 하나가 잔잔한 호수에 물결을 일으키듯이.
원작 소설가, 메리메와 스페인의 인연
메리메의 원작 소설은 1830년대 스페인 안달루시아를 답사하던 고고학자인 작중 화자가 우연히 탈영병 돈 호세와 만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첫 장면부터 돈 호세는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도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소설의 설정에는 26년간 프랑스 문화재 위원회 감독관으로 재직하면서 이탈리아와 그리스, 스페인을 탐방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이 녹아 있다. 메리메는 프랑스가 남다른 경쟁력을 지닌 문화재 복원과 보존의 선구자로 꼽힌다(메리메의 업적을 기려서 프랑스의 문화 유산 목록은 ‘메리메 데이터베이스(base Mérimée)’로 불린다).
스페인 귀족 이달고(hidalgo)와 투우사 피카도르(picador), 사법권을 가진 시장인 코레지도르 (Corregidor)까지 스페인과 연관된 소설의 표 현은 150여 개에 이른다. 작가 메리메는 1824년부터 스페인의 공연과 박물관, 문학에 대한 글을 프랑스 잡지에 꾸준하게 기고했다. 그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을 처음으로 방문한 프랑스인 가운데 하나였다. 1845년 작품 출간 당시에도 그는 스페인을 답사하던 중이었다. 처음엔 직업적 이유로 스페인에 관심을 쏟았지만, 스페인 방문은 작가에게 문학적 재능을 펼칠 계기가 됐다.
메리메를 낳은 풍부한 예술적, 정치적 환경
작가의 아버지인 레오노르 메리메(1757~1836)는 당대의 유명한 화가이자 파리 이공과 대학교수를 지낸 교육자였다. 어머니는 『미녀와 야수』를 쓴 여성 소설가 장 마리 르 프랭스 드 보몽(Jeanne-Marie Le Prince de Beaumont)의 손녀로 초상화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다. 천혜의 예술적 환경에서 자라난 작가는 그림에 대한 관심과 재능을 물려받았고, 유년 시절은 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틈날 때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크로키를 하거나 수첩과 노트의 여백에 스케치를 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메리메는 동료 스탕달(Stendhal)에게 “형식이나 색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이야기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타박하기도 했다. 메리메가 화가라면, 『카르멘』은 그가 그린 그림과도 같았다.
예술과 역사 이외에 작가가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분야는 언어였다. 그는 영어와 스페인어, 그리스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했고, 러시아 문학을 프랑스에 소개한 번역가였다. 푸시킨(Aleksandr Seraggvitch Pushkin)의 『스페이드의 여왕』과 투르게네프의 소설 등이 그의 번역을 통해 프랑스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작가는 바스크 지역과 집시 언어에도 관심을 쏟아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하지만 파리 코뮌 봉기 당시인 1871년에 일어난 화재로 그의 집에 소장된 작가의 원고와 희귀 서적, 자료들은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고고학과 언어, 문학과 미술까지 작가의 다재다능함은 오히려 문학적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있다. 메리메는 1865년 투르게네프에게 “나를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고 싶었고 해야 했던 게 아니라 다른것을 하면서 일생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나는 머리에 쓸 만한 것을 담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이라고 후회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메리메의 소설에서는 카르멘이 돈 호세의 칼에 찔려 죽음을 택하는 결말 이후에도, 스페인 집시의 기원과 풍습, 언어와 종교에 대한 해설을 부록처럼 덧붙이고 있다. 액자식 구성이었던 소설도 다시 현장 관찰기로 변한다.
“스페인은 오늘날 유럽 전역에 흩어져있는 집시를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들은 보헤미안, 지탄, 집시, 지고이네르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대부분은 안달루시아나 에스트라마루다 같은 남부와 동부에서 유랑 생활을 한다. 카탈루냐의 보헤미안들은 자주 프랑스를 지나가기 때문에 프랑스 남부의 장터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남성들은 말 장수와 수의사, 노새 털 깎는 일을 하거나 냄비나 구리 연장을 고치는 일에 종사한다. 밀수와 다른 불법적인 거래도 물론이다. 여성들은 점을 치고 구걸을 하거나 온갖 약을 판다.”
- 메리메, 『카르멘』
메리메는 1831년 상공부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다르구 백작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면서 현실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파리에서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는 방역 조치를 책임졌다. 메리메는 1834년 문화재 위원회의 조사관으로 임명됐고, 5년 뒤에는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관심과 역할을 문화 영역으로 한정 짓고자 했지만, 현실 정치는 한번 붙잡은 그의 발목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스페인 답사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던 몬티호 백작 부인의 딸 외제니가 나폴레옹 3세와 결혼하면서, 메리메는 황실의 측근으로 급부상했다. 1853년 메리메가 상원의원이 되자, 프랑스 문단에서는 “말없이 길을 뚫는 야심 많은 두더지”라고 비난하며 등을 돌렸다. 청년 시절부터 교유했던 작가 빅토르 위고와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소설의 서늘한 냉기
소설 『카르멘』은 화자의 입장에서 돈 호세와 카르멘의 파멸적 사랑을 지켜보는 관찰기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화려하고 감상적인 낭만주의와 거리를 취하고, 시종 차갑고도 건조한 어조로 일관한다.
“메리메는 독자들의 마음에 즉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영향은 오히려 독서가 끝났을 때 시작된다. 그는 빈약하게 보일 만큼 건조하게 묘사한다. 등장인물의 행위를 빠르게 묘사해서 인물상은 가리워진다. 그들은 짧은 묘사 후에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꼭두각시와 같으며 카드놀이의 패와도 같다”
- 프랑스 작가 발레리 라르보
이처럼 소설의 서늘한 냉기는 오페라의 뜨거운 열기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오페라와는 달리, 원작 소설에는 돈 호세를 연모하는 순수한 여인 미카엘라가 등장하지 않는다.
고향에서 돈 호세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언급도 없다. 반면 원작 소설에서 단역에 불과했던 투우사 뤼카는 오페라에서 카르멘을 사이에 두고 돈 호세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에스카미요로 전면에 부각된다.
파멸적이고 어리석은 사랑
오페라와 달리,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카르멘은 전통적 미인상이 아니다. 기존 관습과 도덕의 굴레에서 벗어나 남성을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팜 파탈(femme fatale)’은 언제나 전통적 미인상에서 한걸음 비켜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이하고 야만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처음 볼 때는 놀라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특히 눈은 사나우면서도 관능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인간의 시선에서도 느낀 적이 없었다. 보헤미안의 눈, 늑대의 눈. 스페인 속담은 좋은 해답을 준다. 늑대의 눈을 보기 위해 식물원에 갈 시간이 없다면, 참새를 노리는 고양이의 눈을 떠올려보라.”
- 메리메, [카르멘]
파멸적 사랑은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기분 좋은 설렘이 아니다. ‘나쁜 남자’나 ‘팜 파탈’인 줄 알면서도 끝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에 가깝다. 본디 모든 사랑은 조금씩 어리석음을 내포하고 있다지만, 이 사랑은 ‘어리석다(癡)’는 의미에서도 전형적인 치정(癡情)이다.
돈 호세는 카르멘의 간청에 못 이겨 호송 도중에 풀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 갇힌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돈 호세는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여자들 중에서도 여전히 카르멘의 흔적을 더듬는다. 감옥에서도 그녀가 던져준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고 행복에 잠긴다. 오페라 2막에서 돈 호세가 부르는 노래가 흔히 ‘꽃노래’로 불리는 아리아 [그녀가 내게 던진 꽃 한 송이]다. 어찌 보면 팔자를 망친 신세 한탄의 노래이지만, 카르멘 앞에서 영락없이 흔들리고 마는 돈 호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당신이 던진 이 꽃은 감옥 속에서도 내 곁에 있네. 시들고 말랐지만, 달콤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몇 시간이건 눈을 감으면 이 향기에 나는 취하네. 한밤중에는 당신이 보여. 너를 저주하고 미워하자고 결심하고 나 자신에게 되묻기도 했어. 어째서 운명은 내 앞길을 가로막았는지. 그리고 내 저주를 스스로 뉘우쳤고 나 스스로 느꼈어. 단 하나의 욕망, 단 하나의 소망밖에 없다는 걸. 너를 다시 만나는 것, 오 카르멘, 너를 다시 만나는 것이었지.”
- 아리아 「그녀가 내게 던진 꽃 한 송이」
"10년 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질 오페라"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비제의 오페라가 초연된 건 1875년 3월 3일이었다. 낭만주의 오페라의 홍수 속에서 집시와 탈영병, 하층민과 도적이 전면에 등장하는 이 작품은 관객이나 비평가들을 적잖이 불편하게 했다. 당초 “청중의 취향에 맞춰 즐겁고 쉬우며 행복한 결말을 지닌 작품”을 희망했던 극장 측의 충격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미 협심증과 후두종양, 류머티즘이 겹쳐서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었던 비제는 초연 3개월 뒤인 6월 3일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성 트리니테 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작곡가의 때이른 타계를 애도하는 추도객 4000명이 운집했다.
하지만 작곡가의 죽음은 작품의 진가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비제가 3개월만 더 살았다면 오스트리아 빈을 필두로 유럽 전역의 오페라 극장에서 불기 시작한 [카르멘] 열풍을 지켜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빈에서 이 작품을 보았던 브람스는 “비제를 포옹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연 이듬해 파리에서 [카르멘]을 관람한 차이콥스키도 “앞으로 10년 뒤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1904년에 이르면 [카르멘]은 세계 전역에서 1,000회 공연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찰리 채플린과 장 뤽 고다르, 카를로스 사우라 같은 영화감독도 [카르멘]을 자신의 필름에 담았다. [카르멘]은 낭만과 반항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화해를 거부한 탈주자의 오페라
[카르멘]에 숨어 있는 사랑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누구보다 일찍 간파했던 철학자는 니체였다. 청년 시절 니체는 바그너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했지만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을 본 뒤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앞에서 침몰했다”라고 비판하고 결별을 선언했다. 바그너의 그늘에서 벗어난 니체가 피난처이자 탈출구로 여기며 환호했던 오페라가 비제의 [카르멘]이었다.
“젠타(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의 여주인공)의 감상주의적 흔적은 없다! 오히려 사랑은 가혹하고 운명적이며 냉소적이고 순진무구하면서도 잔인하다. 그래서 사랑은 자연적이다. 싸움은 사랑의 수단이고, 남녀의 철저한 증오가 사랑의 근저에 놓여 있다. 나는 사랑의 본질을 이루는 비극적 정서가 이처럼 격렬하게 표현된 경우를 알지 못한다.”
- 니체, 「바그너의 경우」
바그너 오페라의 주인공들에게 비극이나 파국은 이미 예정된 것이다. 특히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종교적 숭고함이나 남성의 구원을 위해 묵묵히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그의 드라마가 훗날 융기한 파시즘과 은밀히 공유했던 비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르멘]의 비극은 정반대다. 기존 질서의 외부인이자 이방인인 등장인물들은 삶이든 사랑이든 화해와 정착을 거부하고 기꺼이 죽음을 택한다. 이런 점에서 [카르멘]은 무엇보다 탈주자의 오페라이며 불온한 음악극이다. 이 작품이 여전히 우리를 흥분시키는 건, 낡은 질서와 고정 관념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설 『카르멘』과 오페라 [카르멘] - 불온한 탈주자의 오페라 (문학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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