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5부 23
리지야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한창 젊고 열정적인 처녀였을 때 부유한 명문가 출신의 선량하고 방탕한 익살꾼에게 시집을 갔었다. 시집간 지 두 달째 접어들었을 때 남편은 그녀를 버렸고, 열정적이고 확신에 찬 그녀의 다정다감한 태도에 오로지 조롱으로, 심지어 적개심으로 응답하였다. 백작의 선량한 심정을 잘 알고, 열정적인 리지야에게서 그 어떤 결점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조롱과 적개심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비록 이혼은 안 했지만 각자 떨어져서 살았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만날 때면 변함없이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독기 어린 조소로 그녀를 대하는 것이었다.
리지야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이미 오래전에 남편에 대한 흠모의 정을 거두었지만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흠뻑 빠져 지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몇몇 사람들한테 느닷없이 흠뻑 빠졌는데, 그 대상은 남자이기도, 여자이기도 했다. 무언가 특출한 점이 있는 사람이면 그녀는 거의 다 열렬히 사모하곤 했다. 황제 일가와 친족 관계를 맺으면서 새롭게 출현한 모든 공주들과 왕자들을 흠모했으며, 어느 대주교와 부주교, 어느 사제에게 반하기도 했다. 어느 언론인을 사랑하기도 했고, 슬라브인 세 명과 꼬미사로[Osip Komissarov, 1838-1892. 실존 인물로 농노 출신의 모자 직공이었다. 1866년 4월 우연히 뻬쩨르부르끄의 여름 정원에 들른 그가 그곳에서 알렉산드르 2세에게 총을 쏴 암살하려 했던 인물을 저지했다는 풍문이 돌면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를 열렬히 사랑한 적도 있었다. 어느 장관, 의사, 어느 영국인 선교사, 그리고 까레닌을 그녀는 사랑했다. 그 모든 사랑은 약해지거나 강해지면서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웠고, 그녀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했으며, 엄청나게 넓게 포진된 궁정과 사교계의 복잡한 관계들을 건사하는 일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행이 까레닌을 덮치고 그녀가 그를 자신의 비호 아래 둔 시점부터, 즉 그녀가 까레닌의 집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그의 안녕을 돌보게 된 이후로, 그녀는 그 모든 나머지 사랑들은 진짜가 아니었으며 이제 까레닌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 빠졌다고 느끼게 되었다. 지금 까레닌에게 느끼는 감정이 예전에 겪었던 그 모든 감정들보다 강렬한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고 그것을 예전의 것들과 비교하면서, 그녀는 만일 꼬미사로프가 황제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며, 만일 슬라브 문제[러시아와 유럽 전역에서 1870년대에 첨예하게 제기된 이슈로, 오스트리아와 터키의 지배에서 슬라브 민족을 해방시키고 연방제를 실현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가 없었더라면 리스티치-쿠지츠키[세르비아의 정치가. 자국을 향한 터키와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에 맞서 투쟁한 인물로 당시 그의 이름은 러시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를 흠모하지도 않았으리라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반면에 까레닌의 경우, 그녀는 그를 그 자체로서 사랑했다. 그의 고결하고 오묘한 영혼, 그녀에게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길게 끄는 억양과 가느다란 목소리, 노곤한 눈빛, 그의 성품, 힘줄이 불거져 나온 희고 부드러운 손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와의 만남에서 기쁨을 느꼈을 뿐 아니라, 그의 얼굴에서 자신이 그에게 불러일으킨 인상의 징후들을 찾곤 했다. 그녀는 말뿐만 아니라 존재 전체로서 그의 마음에 들고자 했다. 만일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가 독신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몽상에 잠겨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가 방으로 들어올 때면 가슴이 설레어 얼굴을 붉혔고, 그가 무언가 듣기 좋은 말을 할 때면 환희에 찬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벌써 며칠째 리지야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안나가 브론스끼와 뻬쩨르부르끄에 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그녀와 만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런 끔찍한 여자와 한 도시에 있으며 어느 순간이고 그녀와 마주칠 수 있다는 괴로운 자각에서조차 그를 구해 내야만 했다.
리지야 이바노브나는 지인들을 통해서,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저 혐오스러운 작자들’이 뭘 하려고 하는지를 탐색하는 한편, 자신의 벗이 그 며칠 사이에 그들과 마주치지 못하도록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려 애썼다. 리지야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의 정보통이 되어 줌으로써 이권을 얻고자 했던 브론스끼의 친구이자 젊은 부관이 전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볼일을 다 보았고 다음 날 떠날 예정이었다. 따라서 리지야 이바노브나는 이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튿날 아침 전갈이 왔다. 그 필체를 알아본 그녀는 경악했다. 그것은 안나 까레니나의 필체였다. 봉투는 나무껍질처럼 두꺼운 재질의 종이로 만든 것이었다. 길다랗고 누런 종이 위에 커다랗게 이니셜이 젹혀 있었고 편지지에서는 감미로운 향기가 났다.
“누가 가져왔나?”
“호텔 급사가 자기고 왔습니다.”
리지야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앉아서 편지를 읽으려 했지만 한참 동안 뜻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고질병인 흥분으로 인한 발작적 호흡 곤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웬만큼 진정된 뒤에 그녀는 프랑스어로 씌어진 다음과 같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Madame la comtesse(백작 부인), 당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심성을 믿고 감히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들과 떨어져 있기에 저는 불행합니다. 떠나기 전에 단 한 번만 아들을 볼 수 있게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저의 존재를 상기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아니라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건, 저의 존재를 상기시킴으로써 그토록 관대한 분으로 하여금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에 대한 당신의 우정으로 미루어, 저를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세료자를 저에게 보내 주실는지요, 아니면 정해진 시간에 제가 집으로 갈까요? 혹은 집 밖에서, 언제 어디서 볼 수 있다고 일러 주실는지요? 이 일의 결정권을 갖고 계신 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잘 알기에 거절하시리나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저의 열망이 큰지 모르실 테죠. 그러므로 당신의 도움이 저에게 얼마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실 겁니다.
안나
편지에 담긴 모든 것이 리지야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편지의 내용도, 관대함에 대한 암시도, 특히 건방지게 느껴지는 말투가 그러했다.
“답장은 없을 거라고 전하게.” 리지야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이렇게 이르고는 곧바로 압지첩을 열더니, 12시경 궁전에서 열리는 축하연에서 만나고 싶다고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게 적어 보냈다.
“중요하고도 서글픈 일에 관해서 당신과 의논을 해야겠습니다. 어디서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는 그곳에서 만나 정하기로 하죠. 제일 좋은 곳은 저의 집입니다. ‘당신’이 마실 차를 준비하라고 이르겠어요. 꼭 만나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십자가를 지워 주십니다. 또한 견뎌 낼 힘도 주시지요.”
마지막 부분은 까레닌이 조금이나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덧붙이 내용이었다.
리지야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보통 하루에 두세 통의 쪽지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게 보내곤 했다. 그러한 소통 방식이 그녀는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그녀의 다른 사적인 관계들에게는 결여된 우아함이나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