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어느 교회 청년회에서 몇 형제들이 양로원을 방문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모두들 좋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선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해서 청년들은 곧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크리스마스가 되어서는 양로원 방문은 커녕 놀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는 1년이 지났습니다. 또다시 연말이 다가오자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번에는 꼭 가게 될 거라고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청년회의 리더는 이번에는 꼭 방문하자고 청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기도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에도 고아원을 방문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말만하고 행하지 않은 일은 없는지요.
믿음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마음에서만 머물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함께 걷고, 믿음은 전화를 걸게 하고, 먼저 편지를 쓰도록 합니다.
또 믿음은 찾아가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믿음은 자라며 우리의 삶은 변합니다.
당신의 행함의 정도는 어떠한가?
정작 기도한 시간보다는 기도하겠다고 결심한 횟수가 더 많은 것은 아닌가?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약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막 10:35-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중요시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어떤 직위를 얻고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하고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언젠가 한경직 목사님이 신문기자와 인터뷰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려고만 하는데 사실은 먼저 좋은 나무가 되려고 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놓고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박사 학위를 얻었느냐, 사업이 얼마나 번창했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진정 우리가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바로 알 때 보다 가치있고 바른 삶을 살 수 있기에, 여기에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문제를 놓고 우리 성도들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교훈들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1.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앞에서 소개드린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대로 먼저 좋은 나무가 되면 따라서 좋은 열매는 많이 맺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열매를 많이 따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자랑하려고만 애쓰지 먼저 좋은 나무가 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되는 것이 먼저이며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위대한 일을 많이 하려고만 하지 먼저 훌륭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과 노력은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먼저 되느냐에 중요성을 더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크고 위대한 일을 하고 의미있는 선행에 힘쓴 사람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지 못하면 그 모든 일들이 허사가 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도 인격과 사람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이 큰 책임을 맡거나 많은 것을 소유했을 때는 오히려 심각한 폐해를 가져옵니다.
우리들이 먼저 사용할 만하고 축복받을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보다 큰 일을 하게 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더 큰 관심과 중요성을 두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얼마나 소유했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느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 얼마나 큰 권세를 잡았느냐를 중요시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이 소유한 것을 얼마나 가치있게 쓰느냐를 귀중히 보십니다. 그래서 누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버는 돈을 계산하시지 않고 쓰는 돈을 계산하신다'고 했습니다.
수십 억의 재산을 벌었어도 자기와 자기 가족만 위해 썼거나 술먹고 도박하고 방탕한 생활에 다 써버렸다면 차라리 엽전 두푼이라도 값있게 쓴 가난한 과부보다도 훨씬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작은 돈이지만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정성스럽게 바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가장 값있게 보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기만 위해 쌓아둘 줄 아는 어리석은 부자를 향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 21)고 했습니다.
수백 억의 재산을 가졌어도 자기만 위해 사는 사람보다 꽁보리 밥에 된장찌게만 먹으면서도 자신의 전부를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도우며 사는사람이 더 가치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능과, 물질과, 직업과, 권세를 소유하게 하신 것은 그것으로 우리 자신만 만족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보다 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자는 것이므로 우리가 진정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우리의 소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3.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생활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섬김을 받는 것에 더 가치가 있는 줄 알지만 실상은 섬김을 받는 것보다 남을 섬기는데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섬기다 못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시려고까지 하시는데 세베데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간청하기를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형제가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좌정승, 우정승 다 하겠다는 말입니다. 이 눈치를 안 다른 제자들은 이 야고보와 요한을 미워하면서 분이 가득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 10:45)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 예수님의 말씀을 한낱 지나가는 말이나 헛된 교훈으로만 아는 이들이 많습니다.
믿음이 깊을수록 더 겸손해지고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에서 중한 직분을 맡으면 세도나 부리고 대접이나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참으로 의롭게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높아도 낮은 자같이, 있어도 없는 자같이, 부자라도 가난한 자같이, 벼슬이 있어도 없는 자같이 겸손히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에서 세상에 권세있고 큰 사람들은 권세를 부리려고만 하지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 44)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높아지는 비결은 섬기는 것이며 참으로 으뜸이 되는 비결은 종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때가 되면 높여 주시고 섬김을 받게도 해주시고 존경을 받게도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가장 귀하게 따라야 하는 우리 성도들은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삶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4. 육신보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신을 수박의 껍질에 비한다면 영혼은 수박의 알맹이 같고, 육신이 식물의 잎과 같다면 영혼은 식물의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육신보다 더 중요하고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고 했습니다.
육신의 건강이 먼저가 아니고, 사업이 잘되는 것이 먼저가 아니며 영혼이 먼저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더욱 가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육신도 평안하나 육신이 잘된다고 영혼도 잘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신은 잠깐 있다가 늙고 시들고 썩어 없어지는 것이요 영혼은 지금부터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도 잘되기를 원하시고 건강하기를 원하시지만 그보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영혼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 육신의 고통도 허락하시고 사업의 실패도 허락하십니다.
플로리다에 나울린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교회에는 아주 신앙이 돈독한 청년이 있었는데 교회학교 총무로 충성스럽게 일하는 교인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의 사업을 위해 자주 축복해 주었고, 축복 받은대로 그의 사업은 자꾸 번성하기 시작해서 십일조를 한 주일에 수백 만원까지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빠서 교회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또 다른 도시에 지점들을 내자 거기서 주말을 보내느라고 교회에 출석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그를 찾아가서 '죤, 나는 자네를 걱정하고 있네. 자네는 예배에 계속 불참했어. 자네는 하나님의 일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으며 온전한 십일조도 바치고 있지 않네'라고 충고하자
'목사님 한 주일에 몇 십 만원도 많은데 몇 백만원이나 십일조 하는데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게들 때문에 교회에 출석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죤, 우리 기도드립시다' 하고 둘이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주께서 이 형제에게 지나친 번영을 주셔서 지나치게 성공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 형제는 당신께 너무 많은 십일조를 드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그를 위하사 그의 상점 몇 개는 불태워 주옵시고, 상점 몇 개는 실패하여 문을 닫게 하여 주옵소서. 이 형제로 하여금 그렇게도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 충성되게 일했던 옛날의 사람으로 되돌아오도록
그의 사업의 얼마를 빼앗아 주옵소서.'
기도를 마치자 죤은 떨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이곳에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그는 죄를 완전히 고백했고 목사님도 함께 그의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그 전과 같이 충실한 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육신보다 영혼이 잘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로 영혼이 잘 되기 위해 힘쓰고 애쓰는 것이 육신을 위한 것보다 더욱 많고 열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 항상 보다 가치있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