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생인 K씨는 19세 때 징병 신체검사에서 2급 현역병 입영 판정을 받았다. 유학을 준비한다며 입대를 미루던 K씨는 96년 신검에서 5급 판정을 받아 제2국민역이 됐다. 3년 뒤엔 아버지가 군의관에게 뇌물을 준 사실이 발각돼 현역병으로 훈련소에 들어갔고 '담낭염'을 이유로 귀가 조치됐다. 12번이나 신체검사를 받으며 17년간 군복무를 피하던 그는 4년 전 병무청에 소송을 걸어 '36세 넘는 고령'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해외 체류로 입영을 연기하고 부대 신체검사에서 이상이 있으면 재검을 받는 제도를 이용해 시간 끌기로 면제를 받은 사례다.
▶병역기피 수법은 1950년 1월 6일 첫 징병 신체검사 이후 끝없이 교묘해졌다. 간장을 마시면 엑스레이 사진이 결핵에 걸린 것처럼 하얗게 찍힌다며 신체검사소 앞에서 간장을 병째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몇달 동안 형광등이나 촛불을 쳐다봐서 시력(視力)을 나쁘게 하거나, 총 방아쇠를 당길 수 없게 손가락을 자르는 극단적 사례도 나왔다. 항문에 힘을 줘 순간적으로 혈압을 높여 고혈압 판정을 받기도 했다.
▶징병 신체검사 기준도 시대 환경을 반영해 수십 차례 개정됐다. 치질·치루는 75년부터 간단한 수술로 치료할 수 있을 정도면 면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2008년엔 비루관(鼻淚管)이 막혀 눈물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오는 비루관 협착이 면제 대상에서 보충역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바뀌었다. 저혈압은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고 보고 면제 대상에서 뺐다.
▶국방부가 내년부터 신검 기준을 크게 강화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력이 아무리 나빠도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로 교정이 되면 현역병으로 입영하게 한다. 이 28개 중 9~10개가 없으면 면제 판정을 내리던 것도 16개쯤이 없어야 되도록 했다. 일부러 이를 뽑아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연예인 MC몽 사건의 여파다.
▶얼마 전 인기그룹 2PM 멤버 택연이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현역 입대를 하려고 다시 신체검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2년 전 신체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에 해당하는 4급 판정을 받았지만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병역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징병 신체검사 기준을 보다 엄정하고 투명하게 적용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