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8대 명혈에 대한 단상(斷想)
1. 목록
보통 아래의 여덟 묘를 8대명혈로 친다.
강원 춘천 방동리823 평산신씨 시조 신숭겸---927死-----56만(2015년)
경기 남양주 덕소리 산5 안동김씨 김번-------1544死---문과급제136명
충북 청원 가산리산18 청주한씨 시조 한란---- 916년死--70만(2000년)
전북 순창 마흘리 산36 김극뉴--------------1496년死--문과265명
부산 양정1동 464-1 동래정씨 정문도-------1031년死-- 48만(2015년)
경북 예천 도장리 산38 동래정씨 정사--------1453년死---정승13명
경북 영천 도유리 광주이씨시조 이당---------1370년----16만(2000년)
경북 고령 산주리 산38 고령신씨시조 신성용---1259년死--13만(2015년)
2. 풍수적 평가
여러 사람이 8대명혈로 치는 만큼 좋은 혈임에 틀림 없으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부처님 얼굴밖에 없으니 결함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김극뉴墓는 아래로 내린 옆가지에 혈이 있다는 견해, 정사墓는 다리를 벌리고 정안이 없으므로 의문이라는 소수의견이 있다. 나는 대전 위에 있는 3묘를 제외하고 나머지5묘는 모두 보았다. 그중 영천에 광주이씨 이당의 묘는 넓적하고 아름다운 보살면에 위치하고 있어서 재혈이 어렵지만 제일 좋았다. 김극뉴묘는 천마시풍이라는 사람도 있고 갈마음수라는 사람도 있는데 높지 않아서 천마시풍은 아닌 것 같고 사전지식 없이 탐방한다면 여러묘 중 어느 묘가 진혈인지 알기 어렵다. 예천 정사묘는 玉女開脚形(옥녀가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양)또는 玉女醉臥形(옥녀가 술에 취하여 누워있는 형)이라 하여 다리에 해당하는 內청백이 벌리고 있어서 기운이 모이지 않을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낮게 두른 안산까지 합쳐서 조금 넓게 보면 기운이 새어나가지 않는다. 7~8년전 갔을때 보니 백호끝 부분에 트렄으로 흙을 날라 다리를 길게 연장시키는 공사를 하고 있었고 가슴 양쪽에 얕은 봉분모양의 흙무덤이 있었다. 말하자면 의족을 끼우고 유방성형수술을 하여 우습게 되었다. 기혈이므로 원형이 괜찬은데 뱀다리를 그려 넣은 꼴이다.
3 평가기준
정승벼슬은 한 임금밑에 여러명이 있을 수 있으니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승벼슬은 한 임금밑에 여러명이 있을 수 있으니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훌륭한 정승을 배출하였나를 따져야 된다. 황희정승 한명이 평범한 정승 열명보다 낫다. 부마와 왕비는 권력다툼의 소산이므로 높이 평가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타당한가? 오늘날과 같은 인구 급감(急減)시대에는 후손 번식력을 제일의 덕목으로 보아야 된다. 만세영화, 부귀겸전, 장상수십대, 왕비부마연출이라는 것도 후손이 많이 퍼진 이후에 비로소 누릴 수 있는 복(福)이다. 그러므로 백자천손(百子千孫), 천자만손(千子萬孫)을 최고의 복으로 처야된다. 머리수가 많으면 우수한 인물도 태어나는 법이다. 옛날에도 손세(孫勢)를 우선 순위로 보았기에 8대 명당중 5개가 姓氏의 시조묘이다.
4. 姓氏의 실상
* 신라에는 진골계급 위주로 성씨가 있다가 고려때 성씨개념이 희박해져서 조선초에는 전체인구의 10%인 양반계급이 성씨를 가졌고 천민과 평민은 돌쇠등 姓없이 이름만 불렀다. 조선중기에 평민들도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고(전란으로 주거지이동과 가족분산이 심해져 가첩형태의 족보가 필요했다.) 임란이후에 전란으로 계대(系代)가 불명한 경우가 많음을 기화로 남의 가계에 몰래 끼어들거나(投託) 어떤 가계에 돈을 주고 그 가계소속인양 가장하는 경우(假託)가 많았다. 1909년 일제때 천민들에게 성씨 선택권을 주는 제도를 실시하자 김씨등 흔한 성씨가 선호되었다. 다만 족보심사가 엄격한 전주이씨 경주이씨 그리고 인구수가 적은 성씨는 끼어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 그러므로 혈연 관계는 동일한 성씨만으로는 부족하고 본관까지 같은 동성동본이라야 동일한 혈통이라 하수 있다.(예전에는 투탁시비가 심심찮게 있었으나 養子쯤으로 여기고 포섭함이 옳다) 동성동본(同姓同本)혼(婚)을 금하였던 종래의 법률은 우생학적으로 볼 때 대단히 좋은 법이었다.
5. 조선8대명혈을 재조정 해야
* 우리나라의 성씨를 인구순으로 보면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의 순이다. 그러나 후손의 수를 기준으로 명묘의 순위를 판정하려면 동성동본을 기준으로 정해야 된다. 그런데 경주이씨와 같이 원시조는 신라 이알평인데 900년간 系代를 실전하였고 고려말 익재 이제현(1287~1367)이 출생하여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7남2녀를 낳아 후손이 번창하여 경주이씨80만명중 30만명이 익재공파라고 한다. 공의 묘소는 개성 대덕산 감응사 동남쪽에 있으므로 답사가 어렵다. 이와 같이 파시조가 다른 성씨시조를 능가하는 경우에는 파시조의 묘소를 답사해보아야 할 것이다.
*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김해김씨(2015년 450만) 시조 김수로왕릉(金龜沒泥形)이 단연 제일의 명당이다. 온갖 계층을 두루 점하고 있어 우리민족의 줄기세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로왕능을 명혈 논의에서 배제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함안조씨는 2015년 인구 28만명이나 시조 조려의 생존시기(1489년死)를 보면 생산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경주이씨는 익재공(이제현1287~1367)파인(派人)이 多數인데 묘소가 개성에 있어서 간산불가하고,
남평문씨는 나주시 남평읍을 본관으로 하는 단일본으로 시조 문다성이하 계대를 일부 실전하였으므로 윗대의 명모를 추적할 필요가 있고,
창녕 성씨는 고려중엽 토호 성인보를 시조로하는데 인구18만명으로 경남 명문이고 시조묘는 창녕 모산리 맥산재에 있다.
반남박씨는 나주시 반남면을 본관으로 하고 인구는 2015년 16만명이다. 고려토호 박응주(1296년)를 시조로 하는데 묘소는 나주시 반남면 흥덕리산2-1(벌명당)에 있다
* 더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므로 풍수 석박사가 담당할 문제인 것 같다. (202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