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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덕골님의 "제2회 금뎅이 고,김 완 식님의 농기구 전시회 및 13주년 추모회기간"을 맞아 아래와 같은 금데이의 역사를 만날 수 있어 퍼다 올려 봅니다.
〔위치〕금동(錦洞)은 동구 산내동인 장척동(長尺洞)을 경계로 구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중구 목달동과 서쪽으로는 정생동과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 어남동과 만난다.
〔유래〕금동은 금동천의 맑은 물이 흘러 산세가 비단같이 아름다운 곳으로 금뎅이, 초댕이, 금동이라 불리던 곳이다. 금(金)동으로도 쓰였다.
〔연혁〕백제시대는 우술군(雨述郡)에 속하였으며, 신라 때는 비풍군(比豊郡)에 소속된 지역으로 고려와 조선조에는 공주목에 편입되었다. 그 후 금동이라 하여 공주목 산내면(公州牧 山內面)에 속하였다가 조선 말 고종 32년(1895)에는 회덕군 산내면에 편입되었고, 1935년 10월 1일부로 부제(府制) 신설로 회덕군이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면서 대덕군 산내면에 편입되어 금동리라고 하였다. 그 후 1989년 1월 1일로 대전직할시 중구 금동이 되어 산서동에 편입되었다. 행정동은 산서동이다.
이 금동의 연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주목 산내면 금동(조선시대, 영조)→회덕군 산내면 금동리(1985년 5월 26일)→대전군 산내면 금동리(1914년 4월 1일)→대덕군 산내면 금동리(1935년 10월 1일)→대전직할시 중구 금동(1989년 1월 1일)이다.
<지명> 괴봉산(굉이산)〔마을〕 〔위치〕굉이산 아래에 있다. 〔풀이〕괴(고양이)에 봉우리를 뜻하는 봉(峰)과 합성어를 이루어「괴봉」이 되고, 중복에 의하여 산이 첨가되었다. 우리말과 한자어의 융합에 의한 지명이 되었다. 굉이산(괴봉산)〔산〕 〔위치〕양지말 북쪽으로 붙은 뒷산이다. 〔유래〕고양이 형국의 산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지형의 조형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범, 용두, 봉황 등과 같은 유형이다. 〔풀이〕고어 ''''괴''''에 접미사 ''''-이''''가 첨가되어 ''''괴이''''로 되고, ''''ㅇ''''첨가로 인하여 다시 ''''굉이''''가 되며 산과 합성어를 이루어 굉이산으로 불려진 듯 하다. 그러다가 한역화 과정에서 괴봉산이 되었다. 국사봉〔산〕 〔위치〕모링이(모랭이)뜰 동쪽으로 붙은 산이다. 금덩이(금뎅이, 긍딩이, 금동(금洞))〔마을〕 〔위치〕모링이를 지나 금동이 고개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부락으로 양지말, 음지말이 있다. 〔풀이〕금덩이가 금뎅이로 전설모음화가 이루어지고, 다시 폐구조모음화로 금딩이로도 변화한다. 〔특이사항〕마을 앞으로 금동천이 흐르고, 금동이고개 아래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이다. 금동경로당〔노인정〕 〔위치〕금동 139번지에 있다. 금동침례교회〔교회〕 〔위치〕금동 94번지, 정생3교와 모룡교를 장척동으로 넘어가는 도로 중간의 음지뜸에 있는 교회이다. 금무사(錦茂祠)〔사당〕 〔위치〕송씨네 사당이라고 하며 금동리물(금동천) 상류 양지뜸 도로변에 있다. 금당산〔산〕 〔위치〕다라니산 남쪽으로 붙은 산이다. 김감사〔산〕 〔위치〕다라니산의 북동쪽에 위치한 조그만 봉우리다. 〔유래〕옛날 감사를 지낸 김씨 묘소가 있다고 한다. 다라니산〔산〕 〔위치〕모링이 남쪽의 뒷산이다. 〔유래〕말이 길마를 벗어 놓고 달아나는 형세라 한다. 닥밭골(답밭골, 닥박골)〔골〕 〔위치〕동구 장척동 쪽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이다. 〔유래〕종이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가 많았다 한다. 지역 생산물인 닥나무가 있는 밭이라는 특성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풀이〕닥밭에서 /ㄱ/이 /ㅂ/을 닮아 수의적으로 답밭이 되었다. 또한 닥밭골의 /ㅌ/은/ㄷ/으로 중화되고 다시 /ㄱ/을 닮아 /ㄱ/으로 발음되어 닥박골로도 불린다. 달걀바우(달걀바위)〔바위〕 〔위치〕달걀봉에 있는 바위이다. 〔유래〕바위가 마치 여러 개의 달걀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형물에서 차용한 지명이다. 달걀봉〔산〕 〔위치〕김감사 북쪽에 바로 붙은 조그만 봉우리다. 〔유래〕달걀바우(위)와 벼실바우(위)가 있으며,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라고 한다. 역시 지형의 구조물을 상징하여서 유래된 지명이다. 당골〔골〕 〔위치〕큰돗골의 동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다. 도리고개(도레고개)〔고개〕 〔위치〕금동에서 어남동 도리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도리미고재(도레미, 큰덕재)〔고개〕 〔위치〕모링이 동쪽에 있는 고개다. 〔특이사항〕금동에서 상소동(上所洞) 뒷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어남동 사람들이 장보러 넘어 다니던 고개라고 한다. 두루봉〔산〕 〔위치〕산익이(사내기) 골짜기 동쪽 끝에 위치한 큰산이다. 〔유래〕산의 모양이 둥글둥글하게 생겨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듬바우(아랫뜸바우)〔산〕 〔위치〕김감사와 달걀봉 사이에 있는 산이다. 모룡교다리(모링이다리, 모렝이다리)〔다리〕 〔위치〕정생3교에서 음지뜸(은저뜸)에 이르기전 모링(렝)이 아래 마을 앞에 있는 작은 돌다리로 1977년도에 만들어졌다. 모링이(모렝이, 모랭이)〔마지〕 〔위치〕양지말 남쪽에 위치했으며, 6호 정도가 거주하는 마을이다. 모링이(모랭이)〔산〕 〔위치〕모링이 고개 부근의 산이다. 모링이 고개(모렝이고개, 금동이고개)〔고개〕 〔위치〕모렝이 산에서 금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도로가 나있다. 금동이 고개라고도 한다. 모링이뜰〔들〕 〔위치〕모링이 북쪽 바로 앞에 있는 들이다. 벼실바우〔바위〕 〔위치〕달걀봉에 있는 바위이다. 〔유래〕그 바위가 닭의 벼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며, 자연의 구조물을 상징하여서 차용한 지명이다. 복골〔골〕 〔위치〕금동에서 장척동으로 가는 말랑들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산익이(사내기)〔골〕 〔위치〕큰돗골에서 당골쪽의 골짜기다. 〔특이사항〕모링이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져 있는 여러 골짜기들을 총칭한다. 샹골(샴골, 샘골)〔골〕 〔위치〕석태산 바로 밑의 샘이다. 〔풀이〕/ㅐ/가 충남 방언에서 /ㅑ ya/로 발음되고, 수의적 동화에 의하여 /ㅁ/이/ㅇ/ 으로 변하여 샹골이 되었다. 서낭골〔골〕 〔위치〕국사봉 북쪽에 붙은 골짜기다. 석담(석태산(石太山))〔산〕 〔위치〕괴봉산의 서쪽 바로 옆에 붙은 산이며, 작은 범랑골 안쪽의 산이다. 〔특이사항〕스님이 적삼을 입고 목탁을 두들기는 형상이라 하여 자연의 조형물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솔고개〔고개〕 〔위치〕모링이 동쪽에 위치한 고개로 도리미고개 못미처 있다. 솔고개들〔들〕 〔위치〕솔고개 북서쪽 앞의 들로서 소나무가 많았다 하며, 식물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쇠점〔들〕 〔위치〕모링이 서쪽의 들이다. 양지말(양지촌(陽地村))〔마을〕 〔위치〕금동 음지마을의 도로 건너쪽편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향에 위치하는 마을로 공간적 위치에 따른 지명이다. 양지뜸〔들〕 〔위치〕양지마을 남쪽 앞에 있는 들이다. 웃뜸바우〔산〕 〔위치〕서낭골 북쪽으로 붙은 산이다. 웃말(상촌(上村))〔마을〕 〔위치〕양지마을에서 동쪽(장척동쪽)으로 지대가 높은 쪽에 있는 마을이다. 음지뜸〔들〕 〔위치〕양지마을 남쪽 앞에 있는 들이다. 음지말(은저골, 음지촌(陰地村))〔마을〕 〔위치〕양지말의 남서쪽 금동천 건너편에 있다. 〔유래〕북동쪽으로 붙은 산에 햇볕이 가려 그늘이 많이 지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현지 주민들은 은저꼴이라고도 한다. 작은돗골(작은터골)〔골〕 〔위치〕음지말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골짜기로 작은터골이라고도 불린다. 작은범낭골(소호생곡(小虎生谷))〔골〕 〔위치〕장척동 가는 길에서 말랑들의 북쪽에 있는 웃말 동쪽의 골짜기이다. 〔유래〕작은 범이 나타났었다고 한다. 설화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전기봉〔산〕 〔위치〕당골과 두루봉 사이에 있는 산이다. 〔특이사항〕옛날에 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절골〔골〕 〔위치〕석태산 서남쪽 바로 밑의 골짜기다. 〔특이사항〕정월 초이튿날마다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좁은골〔골〕 〔위치〕작은범낭골 바로 남쪽에 있다. 〔유래〕골짜기가 좁아 붙여진 이름이다. 질마바우(질마바위, 길마바위)〔바위〕 〔위치〕양지말 서쪽 다라니산에 있는 바위다. 〔유래〕바위가 말의 길마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풀이〕''''질마''''는 ''''길마''''의 사투리로, 고어(古語)의 ''''기 마''''에서 어중모음(語中母音) 탈락에 의하여, ''''길마''''로 변화하였다. 다시 ''''길마''''는 구개음화현상에 의하여 ''''질마''''로 발음된다. 그리고 ''''바위''''의 ''''위''''는 단모음화하여 ''''우''''로 발음되고 있다.「기 바위>길마바위>질마바위/질마바우」로 변화하였다. 〔특이사항〕정월 초사흗날이면 여기서 거리제를 지냈는데, 지금은 도로가 나서 크게 부서지고 바로 남쪽의 정자나무가 남아 있다. 참상골〔골〕 〔위치〕웃뜸바우 동쪽으로 붙은 골짜기다. 큰돗골〔골〕 〔위치〕작은 돗골 바로 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다. 큰범낭골(대호생곡(大虎生谷))〔골〕 〔위치〕작은범낭골 서쪽 바로 옆에 있는 골짜기다. 〔유래〕큰 범이 나왔었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작은 범낭골과 대조를 이룬다.
<토속>
금동의 석태산(石泰山) 금동은 윗말, 양지말, 음지말의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산신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매년 올리는 산신제는 정월 초이튿날 자정에 지낸다. 이 곳에서는 상·중·하탕의 제장이 있어 각각의 장소에서 제를 올리는데, 대상신은 모두 석태산 산신령이다. 이 곳의 산신제는 옛모습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산신제를 지내면서 기원하는 내용에는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 축원이 담겨 있고, 아울러 천재지변을 막아주고 질병을 차단하며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산신제를 모시면서 부정이 있거나 신심이 부족하면 마을에 우환이 있다고 한다. 이때에는 가축이 피해를 입고, 주민이 질병에 상하는 등 좋지 못한 일이 발생하며,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죽어나가기도 한다고 한다. 제장은 처음에는 마을 앞산의 중턱에 자리잡았었으나 지금은 당집을 지어 이 곳에서 제를 지낸다. 제관은 돌아가면서 하고, 제사에 필요한 경비는 동네기금으로 하며, 일정한 절차에 따라 제를 지낸다. 산신제를 다 지내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후일담을 나누며 산제음식을 음복한다. <권양원, 남, 53세, 본동에 거주>(펌) |
첫댓글 고향에 가십니까? 따님과 함께 즐거운 여행되세요.
아우라지 산 선배님께선 과연 이 시대 산 분님 이십니다. 이곳에 살고있는 저도 모른것을 이곳서 배우고 갑니다... 감소ㅑ~~ 합니다^^ 근디요, 큰덕골과 작은덕골은 제가 태어날때부터 불리워 젓으며 현제도 그리 불리고 있어요... 지금에 금동버스종점은 버스종점이 아니하고 윗 마을 즉 음말에 있었습니다 근디, 이곳 송씨들이 이장을 뻬놓지 않고 단독으로 바톤을 이으다보니 송씨들이 말하면 기냥" 그렇게 되는 곳입니다 즉" ``삼인성호``를 좋아라 하지요,,,, 그런결과 지금의 버스종점도 양지뜸 이장집앞이 금동종점으로 어처구니 없이 표기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것 입니다! 이곳 송씨들은 사람하나 뱅신 만드는데 ``도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