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츠 4 -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에우프라시우스 성당을 구경하다!
2022년 5월 3일 풀라 Pula 에서 로비니 Rovinj 를 지나 Poreč (포레츠) 에 도착해 내일 슬로베니아
를 거쳐 트리에스테 로 가는 버스표 를 끊은 후에 호텔 Hotel Porec 에 체크인을 합니다.
그러고는 보트와 요트가 빽빽하게 늘어선 부두를 걸어서 넵튠신전 Neptunov Hram 을
구경하고 “BAR” 라는 이름을 붙인 큰 원형탑을 지나 레스토랑에서 피자와
파스타에 빠에야 라고도 불리는 리조또(리소토) 에 맥주를 시켜 오랜만에 포식을 합니다.
다시 옛날 로마인들이 걷던 돌길인 데쿠마누스 거리 Decumanus
를 걸어서 서쪽 로마네스크의 집 과 동쪽 고딕의 집 을 발견합니다.
그러고는 마라포르 광장 Trg Marafor 을 지나 향토박물관 Zavicajn Muzej Poreč 을 보는데 1884년
에 설립됐으며 바로크 양식의 신치치 궁전 안에 있는데 로마 시대의 조각상 등이 볼만합니다.
50 쿠나를 내고 옛날 비잔틴시대에는 바실리크 라고 불린 에우프라시우스 (Euphrasius)
성당을 찾아 들어 가는데....... 하도 오래된 지라 고고학 유적 을 보는 것 같습니다.
포레츠(Poreč 포레치) 는 기원전 2세기 부터 형성된 로마 도시 로 리조트 도시로 인기를 얻거 있으며
13세기 베네치아공화국 시대에는 파렌조 Parenzo 라고 불렸으며 19세기 합스부르크 시대에는
이스트라 반도의 주도로 행정도시 였으며 구시가지는 로마시대 도시 계획 구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4세기에 형성돼 543년 포레츠 주교 에우프라시우스 에 의해 재건 되었는데 에우프라시우스
(Euphrasius) 성당은 고전주의 요소와 비잔틴 요소 가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예배실, 기도실, 세례당과 주교궁이며 로마지역 무니키피움 파렌티움 (Municipium Parentium))에는 4세기 초
부터 6세기 중반에 걸쳐 4개 이상의 교회들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여기 에우프라시우스 성당 만 남아 있습니다.
순교자 마우루스의 유골 이 안치되어 있는 기도실은 313년에 축조되었으며 4세기에 두 번째 홀(게미나 성당)
을 추가했고 5세기에는 이스트리아(Istria) 와 노리쿰(Noricum) 과 같은 독특한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6세기에 에우프라시우스가 지은 성당에는 통로가 세 군데 있으며 내부를 분할하는 9개의 기둥 이
두 줄로 늘어섰는데 기둥은 반대편 짝과 동일한 기둥머리가 무늬 없는 기둥 위에 얹혀 있습니다.
15세기의 프레스코화 는 서쪽 벽과 남쪽 애프스의 아치형 채광창에 또렷하게 남아 있으며 벽의 하단
부분은 유색의 석조와 진주로 꾸며져 있고 그 위에는 치장 벽토 띠가 4개의 창문, 반원형 내부
와 앞면 벽의 주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자이크 아래에 있으니 원형 돔 내부에는 동정녀
마리아와 아기 예수, 천사와 지역의 순교자 들, 우프라시우스 주교가 측면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남쪽 애프스의 바닥에는 원 모양의 모자이크 일부가 남아 있으며 외벽은 회반죽으로 칠해져 있고
우축 벽 기둥(pilaster mass) 중에서 작게 돌출해 있는 부분으로 나누어 지고 블라인드
아케이드 (blind arcades) 로 연결되어 있으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통치 비잔틴 황금 시기의
호화로운 전통에 따라 모자이크, 설화 석고, 대리석, 진주와 치장벽토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유적을 보다보니 문득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에 “고~요한 밤” 울려퍼진 전쟁터… 10만명은 총을
내려놓았다 라는 제목으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의견을 참고한 조선일보 기사가 떠오릅니다.
지난 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농업 대국 이자 세계 10대 경제 강국 이었다. 한반도 면적의 2배
가 넘는 비옥한 곡창 팜파스에서 대두와 옥수수를 재배해 수출했다. 소가 사람보다 많아 가난해도
소고기 만큼은 배불리 먹었다.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아르헨티나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떠나는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 가 이 시대적 배경에서 나왔다. 남미의 스위스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이 나라 이름에도 풍요가 깃들어 있다. 아르헨티나는 라틴어 은(銀) 을 뜻하는 아르겐툼
(argentum) 에서비롯됐다. 풍부한 광물 자원 덕에 스페인 식민지 시절 부터
스페인어 ‘라 플라타(La Plata·은)’ 라 부르다가 독립 후 지금 이름을 택했다. 이젠 옛날 얘기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40년간 국가부도를 9번 겪었고 올해 10번째 국가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 IMF
에서 받은 구제금융만 20번 이 넘는다. 경제학자들은 이 나라를 초 (超) 인플레이션과 외환 위기
가 반복되는 파탄 국가로 규정한다. 자원에 기대어 복지를 남발 하고 미래 산업을 키우지 않은 탓이 컸다.
올해 물가 상승률이 90% 를 넘은 이 나라에서 가장 무의미한 것이 내일을 위한
저축이고, 돈을 가장 잘 쓰는 방법은 오늘 다 써버리는 것 이라고 한다.
정치 불신도 극에 달해 대통령 지지율이 7.9% 에 불과하다. 다만, ‘축구에 진심’ 이다.
내일이 없는 국민은 축구장 에서 오늘을 즐긴다. 최고 인기 클럽인 CA 보카 주니어스와 CA
라 플라타 간 경기가 열리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 흥분하면 공포탄 까지 쏘아 댄다. 축구
선수는 이 나라의 세계 수출 1위 품목 이다. 피파(FIFA) 랭킹 1위 브라질 보다도 많이 내보낸다.
메시의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조성한 오벨리스크
광장엔 수십만 인파가 쏟아져 나와 우승 기쁨을 만끽 했다. 하지만 행복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수 없다.
월드컵에서 처음 우승한 1978년 에도 아르헨티나 경제는 곤두박질 쳤다. 그해 물가가 170% 넘게 뛰었다.
메시는 대회에 나가면서 “지금 아르헨티나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다. 국민이 축구라도 보면서 위안 을
얻어야 한다” 고 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끝내 이 약속을 지켜냈다. 월드컵 결승전을 지켜본
세계도 아르헨티나 축구의 높은 경지와 그들의 헌신에 감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공기’
라는 뜻이라고 한다. 36년 만의 월드컵 우승 으로 들이켠 좋은 공기가 나라 곳곳으로 번져나가길 빈다.
이 오래된 유적을 둘러보고 나오니 하도 오래된 지라 고고학 유적 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문득 몇년 전에 엣날에 안티오크, 성경에는 안디옥
이라고 불리었던 터키 동남부 하타이에서 본 고고학박물관 이 떠오릅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 에 터기 동남쪽에 옛날 안티오키아(한글 성경에는 안디옥) 라고 불렸던 하타이주
에서 터키 고고학자들이 상류층의 거실 이라 여겨지는 방에서 새로운 모자이크 를 발굴 했습니다.
와인 주전자와 빵 몇 덩어리 옆에는 해골 이 그려져 있고 문자는 “힘을내, 인생을
즐겨 ” 라고 씌여 있는데.... 하타이 박물관의 데밋 카라 씨는 이탈리아
것 보다 다양하다며 BC 3세기 것으로 본다고 하니 여기도 그런 느낌이 납니다.
첫댓글 아르헨티나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군요.
다른산업을 육성햇어야햇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목축으로도 잘 살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