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중성이 보여주는 강화도성의 실체
기록 속 강화도성은 성곽과 궁궐은 물론이고 사회기반시설을 두루 갖춘 도시로 묘사되어 있지만, 오늘날 이곳이 개경을 대체한 고려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현 시점에서 강화도성의 실체를 가장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강화중성’을 꼽을 수 있다. 강화중성은 강화읍 일대를 둘러싼 산 능선을 따라 ‘⊂’ 형 태로 축조된 토성이다.
강화 천도 이후 조성되었다고 전하는 외성과 중성, 내성 중 거의 유일하게 변형되지 않은 상태로 잔존해 있어 오래전부터 강화도성의 성곽체제를 방증하는 유적으로 여겨졌다. 기록에 따르면 강화중성은 규모 2,960칸이며, 17개의 크고 작은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성곽은 1250년 축조되었으며, 1259년에 몽골간 화의에 따라 헐린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중성은 강화도의 중심부를 넓게 감싸고 있어 도성의 경계이자 울타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강화중성의 완공은 수도의 범위를 확정하고 새로운 수도의 경관을 완성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강화중성으로 둘러싼 도성의 규모는 현재 남아있는 길이 약 11.5km를 포함해 약 16k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한양도성(약 18.6km)과 맞먹는 규모이다. 강화중성 발굴조사는 2009년부터 진행되어 현재까지 총 8개 지점에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토성의 규모와 지형에 따른 축조기법이 확인되었다.
토성은 폭 4.5m 내외로, 판축1)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석축기단을 만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기둥을 세운 다음, 나무 판재를 결구해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성질이 다른 흙을 여러 겹 다져 쌓아 완성 했다. 토성 주변에서 다량의 기와편이 출토되었는데, 기와를 사용한 상부 구조물이 설치되었을 개연성도 있다. 한편 성문이나 등성시설2), 방어시설 같은 성곽 시설물도 확인되었다.
처음 확인된 강화중성의 대규모 성곽 방어시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에서 2021년에 추진한 제3차 발굴 조사에서는 지금까지 확인된 성곽의 방어시설 중 가장 큰 규모의 시설물이 발견되어 주목받았다. 강화중성의 남성벽 구간인 대문고개 일대를 대상으로 진행된 제3차 조사지역은 성문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 되는 현 대문고개 도로의 서쪽 능선부에 해당한다.
야트막한 능선 정상부와 대문고개로 이어지는 동쪽 사면부를 따라 성벽이 설치되었으며, 이에 잇대어 방어시설인 대규모의 치성3)이 돌출되어 있었다. 치성은 길이 19m, 너비 4.5~4.7m, 남은 높이 1.3~2.6m로, 성벽 축조기법과 동일한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치성 주변에서도 다량의 기와와 함께 문확석4), 초석5) 등 문과 건물 부재로 보이는 유물이 다량 출토되어 망루와 같은 구조물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치성과 잇대어진 성벽 안쪽에는 성벽과 치성으로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이 설치되었다.
제3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치성은 수도 강화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강화중성에서 처음 확인된 대규모의 성곽 구조물이다. 이는 강화도성 내·외부를 연결하는 교통로를 관리하고, 성문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번 발견은 도성을 둘러싼 성곽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학술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발견이 이어져 강화도성의 실체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 판축(版築): 판으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흙이나 모래 등을 넣어 단단하게 다져 흙을 쌓아올리는 기법
2) 등성시설(登城施設): 성벽 위에 올라가기 위해 설치한 시설
3) 치성(雉城): 성벽의 바깥에 돌출시켜 방어에 유리하게 만든 성곽 시설물
4) 문확석(門確石): 문을 고정시키는 돌
5) 초석(礎石): 건물 기둥을 받쳐주는 돌
글, 사진. 문옥현(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2-3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