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의 ‘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칼럼을 4주 간격으로 싣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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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를 규탄하며 각 지역의 교구에서 봉헌되는 시국미사를 뒤쫓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시국미사의 지향에 맞추어 함께 기도하기 위해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의 회원들이 시국미사를 뒤쫓고 있다.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시국미사가 봉헌되는 성당 앞에서 “종북사제 물러가라” 외치면서 미사 참례자와 사제들을 위협하고 미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당 안에서도 강론 때에 큰 소리를 지르며 미사를 방해한다.
이들은 이른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의 회원들이다.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시국미사를 방해하는 것이 힘겨운 것인지 언제나 군복 차림의 어르신들과 함께한다. 이 단체는 천주교 신자들에겐 참으로 어색하다. 호국불교라는 말도 있으니 차라리 호국천주교모임이라고 하지, 대한민국수호는 또 뭔가. 천주교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대수천에서 전국으로 배포하는 유인물을 보면, 정의구현사제단은 물론이고 천주교 전체가 온통 “종북”과 “좌빨”이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국미사 또는 지난 정권의 4대강 공사를 반대하는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한 주교들, 그러니까 그들의 셈으로 여섯 분의 주교들은 이른바 “종북주교”다. 이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의 15개 교구 중에 대여섯 교구가 이른바 “종북세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도 그러하고 메시지의 표현 방식도 그렇고, 대단히 폭력적이고 허위적이다.
이미 여러 차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보도했듯이 이 단체의 구성원들은 이미 예전부터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몸담았거나 극우적인 단체를 이끌어온 사람들이다. 김진호의 분석(‘그리스도교 애국주의, 도대체 왜 이러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3년 12월 16일자)에 의하면, 이들이 더 이상 확산되거나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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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7일 경남 거제시 고현성당에서 봉헌된 ‘국가기관 대선 불법개입에 대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 도중, 강론 내용에 항의하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들 (사진 제공/ 서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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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 관여하는 교회가 싫은 신자, 신자들이 싫어할 말은 피하는 사목자
이미 여러 차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보도된 내용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조직으로서 대수천은 더 이상 확산되거나 지속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현상으로서의 대수천은 한국 교회 안에서 당분간 지속될 것 같기 때문이다.
많은 본당 신부들이 하소연하듯이, 언제부터인가 사제가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강론을 하면 목소리 큰 신자들의 항의에 부딪치기도 하고, 어떤 본당에서는 신부가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지 아닌지 신자들이 궁금해 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 전체의 이념적 보수화, 교회의 중산층화, 신자 수에 기초한 선교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분석해볼 수 있겠으나, 이러한 원인 분석은 또 다른 차원의 논의를 필요로 하기에 일단 접어두자.
문제는 ‘대수천 현상’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첫째로, 대수천 회원들처럼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많은 신자들은 교회(또는 사목자)가 세상의 일에 이래저래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브라질의 까마라 대주교가 말했듯이, ‘빵을 나누어주면 성자라고 불리지만 가난의 원인을 물으면 공산주의자로 불리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목자들은 굳이 신자들이 싫어하는 목소리를 낼 이유도 없고, 교회가 분열하는 듯한 인상을 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우에는 언제나 사목자의 말은 두루뭉술한 ‘좋은 말씀’으로 채워진다.
‘신자는 많지만 신앙인은 없는 교회’가 될 것인가
이러한 두 가지 현상을 세속화와 종교의 시장화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종교사회학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세속화란 “종교적 사고, 행위 및 제도가 사회적 의의를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자들의 수는 엄청나게 들어났지만,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신앙인은 사실상 줄어들고 있다. 신앙적 사고와 행위는 일주일에 단 한 시간 주일 미사 시간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세속화 과정은 신앙과 교회를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축소하려는 경향”(<복음의 기쁨> 64항)이 있다고 하시며 세속화를 오늘날 교회에 대한 세상의 도전으로 여기고 있다.
두 번째로 종교의 시장화(marketization)이다. 이는 종교다원적 상황에서 기인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여러 종교들이 자신들의 신자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각 종교들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전통을 내세우기보다는 소비자들의 선호에 맞추어 상품을 내놓게 된다. 시장경제의 원칙이 이제 종교의 영역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고 말했던 <무지개 원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물신숭배가 마치 종교의 모습을 갖추어 가듯이, 어느새 종교의 모습은 시장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은 그 말과 행동을 비추어볼 때 지금보다 더 확장되거나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일은 신자들 사이에서는 세속화, 그리고 사목자들 사이에서는 종교의 시장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의 교회(또는 종교)가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도전이다.
이 도전에 교회가 성실하게 응답하지 않는다면, 신자들은 많지만 신앙인은 없는 교회, 욕망을 숨김없이 기도하는 교회, 외면과 침묵의 교회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교회는 교회로 존재하기 힘들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화 신부 (타라쿠스)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