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어떤 특수한 영역의 존재자(存在者)를 구성하는 원리를 관찰이란 방법으로 탐구한다. 예컨대 경제학은 경제사상을 성립시키는 경제법칙을 연구하고, 물리학은 물리 사상을 성립시키는 물리법칙을 연구한다. 특수성은 과학적 인식의 본질에 의거한다. 과학은 어떤 특수한 시야(視野), 즉 영역(領域)을 고정시킴으로써 그 대상과 방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체 존재자(세계)의 궁극적 실재근거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이다.
과학은 관찰에 의거하는 반면 철학은 사유의 힘으로 진리를 찾는다. 철학의 분야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사유에 의존하는 분야가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게서 비롯된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순서를 정할 때 먼저 우리가 볼 수 있고 감지할 수 있는 존재에 관한 학문인 자연학(physika)을 먼저 공부하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존재 일반에 관한 즉 근본 원리를 다루는 제1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제1철학이 바로 형이상학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연과학’을 먼저 공부하고, 그 다음에 보이지 않는 존재자를 있게 하는 원리나 본질을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원전 1세기 그리스의 철학자인 안드로니코스(Andronicos of Rhode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정리하면서 제1철학을 자연학의 뒤에 놓으며 메타피지카(metaphysika)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말은 자연학(physika)의 뒤(meta)에 있다는 뜻이다. 자연학의 뒤에 있는 원리의 학문이 곧 형이상학이다.
이 점은 형이상학이라는 한자 말이 생겨난 유래에서도 확인된다. 유학의 경전인 『주역(周易)』 「계사(繫辭)」에는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도(道)라 하고 형이하자(形而下者)를 기(器)라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형이상자란 형태가 있는 그 위의 것을 가리키는데 이를 도(道)라 하고, 형이하자는 형태가 있는 그 아래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를 기(器)라 한다는 뜻이다. 도는 보이지 않는 어떤 원리나 이치를 가리키고, 기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질적인 요소를 가리킨다. 이는 서양의 메타피지카를 적절히 대변하는 용어임을 알겠다. 결국 형이상학이란 물질적 존재를 이루는 근본 이치나 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이다.
형이상학은 세상 일체 만물의 근원을 찾았던 초기 그리스 철학의 맥을 정통으로 잇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밑둥이 되는 본질이나 원리를 찾는 것이다. 피지카의 세계, 감각의 세계 배후에는 경험과 관찰로는 알 수 없고 순수한 사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메타피지카의 세계, 진리의 세계가 있다. 이곳이 바로 인간의 영혼이나 선(善), 신과 같은 존재의 영역이다.
과학은 개별 사물을 탐구 대상으로 한다. 물리학은 사물의 이치를 말해주는 법칙을 찾고 사회학은 사회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개별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총체,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다루므로 부분적 지식이 아닌 전체적 지식,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을 추구한다. 과학은 경험 세계에 국한되지만 형이상학은 경험 세계를 초월한다.
초기 형이상학자인 플라톤(Platon)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형상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이데아나 형상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역의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거의 신의 영역으로 간주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을 움직이되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형상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변화하는 자연물 배후에 그 존재근거로서 영원불멸의 실재(實在)를 구하려는 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 철학은 형이상학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전 세계의 창조자로서 영원한 신을 인정하는 그리스도교에서도 적합한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의 형이상학은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 체계에도 대표적으로 수용(受容)되어 거기서 한층 심화 발전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 중세의 철학자들은 모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이용해 그리스도교 신학을 정립하고 신을 논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신학의 권위가 실추되는 상황에서도 형이상학은 전혀 힘을 잃지 않았다. 데카르트(Descartes)에서부터 헤겔(Hegel)에 이르기까지 대륙에서 전개된 합리론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형이상학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성립은 이 고대·중세를 일관하는 통일적인 세계상(世界像)을 파괴하고, 특수과학의 방법에 따라 얻어지는 것만이 유일한 실재인식(實在認識)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것은 형이상학의 붕괴이며, 칸트는 이론적인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을 부정하였다.
중세의 철학적 전통이 약했던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현실적인 사유 양식이 자리를 잡았고 이것이 특유의 경험론으로 발전했다. 경험론의 극한을 추구한 흄(David Hume)은 감각을 통하지 않은 인식이란 없다면서 순수한 사유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이러한 경험론의 전통에 힘입어 근대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자 형이상학은 거센 도전을 받았다. 형이상학은 근거도 없고 실용성도 없는 순수한 사유 체계일 뿐이며, 철학을 위한 철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헤겔은 이성의 절대화 곧 절대정신을 통해 형이상학을 완성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진지한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의 성과를 등에 업은 실증주의의 비판에 맞서 형이상학의 본래 권위를 회복시키고자 했다.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이 그 첫 성과였고, 그의 뒤를 이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식론으로 일관하던 근대 형이상학적 전통에 존재론을 포함시켜 약점을 보완했다.
첫댓글 "형이상자를 도(道)라 하고, 형이하자를 기(器)라 한다."라는 말이 주역 계사에 나온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여러 번 읽었으나 어렴풋한 의미도 잘 들어오질 않습니다. 공부가 약해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대학을 새로 간다면 반드시 철학과를 가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런 마음이 좀 남아 있긴 하지만, 다음 생을 기다려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