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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순종하는 온전한 믿음으로 성숙하는 달☜
온전(穩全)하게 행(行)하는자가 의인(義人)이라. 그의 후손(後孫)에게 복(福)이 있느니라
잠28:15-28절) 무지(無知)한 통치자(統治者)
몇 년 전 미국에서 어느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엔진에 이상이 생겨서 불시착하게 되었을 때, 조종사가 비행기를 허드슨 강에 불시착시켜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안전하게 피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 조종사가 아주 노련한 기술을 가진 조종사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행기는 아주 고도의 기술을 가진 조종사가 운전을 해야 승객들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습니다.
또한 큰 배(船)를 운전하는 것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배는 자동차처럼 쉽게 좌우로 움직여지거나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船)는 좌우로 움직이려고 해도 큰 원(圓)을 그려서 움직이게 되고, 멈출 때에도 엔진을 멈추고 한참 뒤에 멈추게 됩니다.
더욱이 큰 풍랑이 일거나 태풍이 불 때에는 많은 지식이나 경험이 있어야 배(船)를 침몰시키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로 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나라나 어떤 큰 단체의 책임자가 되는 것은 거대한 배(船)를 운전하는 선장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할 수 있으면, 서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더 많은 권력과 혜택을 누리려고만 생각하지, 그 자리가 요구하는 책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들이 서로 움직이지 않는 고장난 자동차에 서로 운전석에 앉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국가나 단체에 위기가 닥칠 경우 서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할 것입니다. 고장난 자동차의 운전수가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낭떠러지를 향하여 돌진하고 있는 자동차를 잘 운전해서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면, 그것은 정말 멋진 운전수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덴만에서 해적들에게 배(船)를 빼앗겼지만, 배에 총탄을 맞아가면서 배를 천천히 가게 해서 결국 해적들을 모두 체포하게 만든 선장이 세계에서 최고로 훌륭한 선장 상(賞)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돈을 많이 벌고, 많은 지식을 가지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을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유리한 그 자리에서 도대체 남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미련하고 악(惡)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자리에 불만을 갖고, 더 안정되고, 높은 자리로 오르려고 하지만, 전혀 남을 위해서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Ⅰ.악하고 무지한 통치자
사람들은 모두 더 많은 돈을 가지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를 원하지만, 무엇 때문에 자기가 더 돈을 가져야하며,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악(惡)하고 무지(無知)한 통치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려운 시험에 잘 합격할 정도로 머리가 좋고, 또 관운(官運)이 좋아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을 자신의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운전석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전혀 운전할 줄 모르는 운전사와 같고, 아주 큰 배(船)의 선장을 맡았지만, 실제로는 배를 운전할 실력이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기가 배(船)나 자동차를 운전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밑에 있는 사람들의 조언과 권고를 따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즉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에 의해서 통제를 당하고, 조종을 당해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아주 사나운 맹수(猛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28:15절)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높은 직책에 올라가는 중요한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높은 자리에 앉게 하시는 것은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관리(官吏)가 사람들을 너무 온정적으로 대한다면, 사람들은 너무나 안일해져서 자기들이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국가에서 모든 것을 다 해주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요즘 남부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국가경제 파탄의 한 요인입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너무나 심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해주니까 결국 국가 재정이 파탄이 나서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공의(公義)가 없는 현상입니다.
국가의 관료(官僚)는 공의와 사랑을 함께 실천해야 합니다. 공의(公義)란 각자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위대한 백성은 결코 공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느 민족이든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게으르게 되어 있고, 게으른 백성들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관료(官僚)들은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게 자기 일을 해서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불의(不義)를 막기만 해도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런 통치자만 봐도 존경하고, 신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관료(官僚)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무리 일어서려고 해도 너무나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자들을 돌보아 준다면, 그는 정말 사랑을 베푸는 훌륭한 통치자가 되는 것입니다.
국가나 어떤 단체의 책임자에게 필요한 우선적인 자질은 공의(公義)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대하고, 불필요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정의를 지켜주는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목적을 모르는 관료들은 사나운 짐승과 같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나 주린 곰*같다고 하였는데, 사자나 곰은 아주 사납고, 위험한 짐승입니다. 아마 사람이나 가축이 이런 짐승에게 걸려들었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짐승들이 존재하는 목적은 굶주린 자기 똥배를 채우려는 것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여기서 가난한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자기 힘으로 일어서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목자(牧者)도 제 힘으로 일어서기 어려운 어린 양들을 언제나 자기 팔에 안고, 젖을 먹이거나, 혹은 따로 양 우리에 넣어서 보호해야 합니다.
보통 성경에서 가난한자라는 이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도 있지만,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가 고난당하는 성도들의 생활을 전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손에서 비싼 도자기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축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만 해도 고난당하는 성도들은 충분히 일어설 수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관원들은 가난한 성도들을 인생의 실패자로 무시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심한 패배감을 느끼게 합니다. 고난의 가치를 모르는 관원들은 실제로 무능한 자들이며, 배나 자동차를 운전할 실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자기 똥배나 채우려고 하지, 위기 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가게 할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관원들이나 책임자들의 자리가 이런 무능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28:16절)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무지한 치리자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가치를 모르는 통치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포학을 무기(武器)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는 방법은 두려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통치자가 법과 힘을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리게 됩니다. 세상 사람은 아무리 잘해주어도 만족을 모르고, 아무리 선하게 대해도 반항하고, 대드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성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양이 목자를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자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정직한 것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풍성하게 공급받게 해주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도자가 정직하고, 말씀만 붙들고 가면,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데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해주는 것인지도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높은 자리와 돈, 그리고 많은 지식을 주시는 것은 그를 시험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잘난 체하거나, 다른 사람을 억압하지 않고, 잘 도와줄 수 있느냐? 는 것을 테스트 해보시는 것입니다.
막상 내가 가진 돈이나 지식이나 위치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고,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지식이 있고, 힘이 있다고 해서 큰 소리를 치고, 다른 사람에게 대어드는 사람은 무식(無識)한 맹수(猛獸)와 같아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합니다. 또 부르짖는 사자나 굶주린 곰은 눈앞에 있는 먹이만 보지, 감추어져 있는 함정이나 덫이나 숨어 있는 사냥꾼의 총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자기가 관원(官員)이 되어야 하며, 장관(長官)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죽자고 출세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막상 차가 움직이거나, 위기가 닥치면, 자기가 먼저 도망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조건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고 할 것이 아니라, 왜 그 자리에 올라가야 하는지, 거기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는 결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자리에 내가 오르게 되었다면, 자신 있게 그 배(船)나 자동차를 운전해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한 곳으로 그 단체를 끌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감각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하며,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보면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탐욕(貪慾)이란 눈앞에 있는 이익에 집착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욕심 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주신 것은 위기를 잘 극복해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곳으로 데리고 가라는 것이지, 자기 똥배를 채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좋은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부터도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불신당하는 것보다 더욱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어서 탐욕(貪慾)은 미워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언제나 공의를 생각해야 하고, 또 너무 사랑이 많다고 무능해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위기를 뚫고 나갈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약(弱)한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믿어주실 것이며, 백성들도 그를 믿어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믿어주는 가치가 얼마나 엄청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28:17절)사람은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모든 사람은 다 좋아할 수 없고, 또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누구든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線)이 있습니다. 즉 결코 다른 사람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망(亡)하도록 짓 밝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살다보면,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구별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실력으로 이기면 되는 것이지, 굳이 상대방에게 피를 흘려서 망하게 하면서까지 이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름 경기를 하면서 이긴 사람이 넘어지는 사람을 붙잡아서 다치지 않게 하거나, 혹은 진 사람의 손을 잡아서 일으켜 주기도 하는데, 승자의 이런 모습은 신사적이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기를 하면서 상대방을 다치게 하거나, 아니면 반신불수가 되게 해서 이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에는 자기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정신적인 후유증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기를 하거나 경쟁을 할 때, 작은 점수 차이라도 이기면 되는 것이지, 싹쓸이를 하거나 상대방을 완전히 망하게 하면서 이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도 그런 면이 있는데, 어느 정도 교회가 커지고 부흥하면 되는 것이지, 교인들을 싹쓸이 하듯이 다른 개척 교회들을 모두 다 무너지게 하면서 초대형 교회를 만드는 것은 탐욕적인 목회라고 비난받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인격이 존중될 필요가 있으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힌 자는 다른 사람의 행복이나 인격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완전히 파멸시키는데, 만족감과 쾌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자기 자신이 함정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분노는 한두 사람 망하게 한다고 해서 그치지 않고, 천국 끝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린 사람은 자기도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해서 많은 사람들을 의심하며, 공포 정치를 하게 됩니다. 그들의 함정을 언제나 올바로 생각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악(惡)한 자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지 아니하시면, 바로 그 순간이 망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성경이*이런 사람을 막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런 사람을 끝까지 도와주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면 이런 악(惡)한 사람에게 충성을 하는 것은 결국 함께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Ⅱ.충성된 자는 복을 받는다.
세상을 보면, 기회를 잘 포착하고, 행동이 재빠른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충성된 자가 성공하는 것이고, 기회주의적이며, 자기 꾀를 믿는 자는 실패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축복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이 있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붙들고 따라가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은데, 결국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28:18절)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여기서 두 종류의 사람이 구별되고 있는데, 한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굽은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굽은 길이란 정직하지 못하고, 굽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보다는 비록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아첨(阿諂)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라도 위에 있는 사람이나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관심을 끄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융통성 없이 죽어라고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은 별 볼일 없이 빛도 보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 때*가 많습니다.
여기서 *풍요한 것*은 그냥 성실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에 대하여 성실한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하고, 또 자기를 고용한 사람에게 성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성실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람이나 일의 관계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모든 중요한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성실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하나님에 대하여 성실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성실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의 가치나 필요성 자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으려고 하면, 우리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으로 가는 길을 막으시고, 강권적으로 하나님을 붙들게 하십니다. 그때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맛을 보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얼마나 섬세하게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가치를 알고, 그 맛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눈에 보이는 복이 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향하여 뜨겁게 기도하게 하시는데, 그때 심령의 부흥이 오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명예라든지, 물질적인 복은 추가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실한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성실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외부적인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십니다.
우리에게 부흥이 일어날 때, 우리는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모든 시험으로부터 보호받고, 모든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그러나 굽은 자는 하나님과 그의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인기나 인간적인 성공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성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동물적인 본성에 따라서 눈앞에 있는 이익을 움켜잡으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인기에 목을 매답니다. 사람들의 인기라는 것이 얼마나 허탄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 충성될지,몰라도 하나님에게는 충성되지 못합니다. 자기는 정직하게 살았다고 강조하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세상 자체가 비틀어져 있고 굽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자기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죄를 이기지 못해서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돈이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100% 타락하는 길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28:19절)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 함이 많으리라”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자기 땅이 어느 정도 있는 부유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쉽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기 땅이 있나? 없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공짜로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무엇인가 생산을 해서 먹고 살려고 합니다.
즉 토지를 경작하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옛날에는 토지를 경작하려고 하면, 황무지를 개간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농사를 짓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거의 자급자족의 형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에서 너무나도 할 일이 많았고, 여자나 남자들의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미국의 개척시대 생활을 적은<로라 잉걸스>의 책들입니다. 거기에 보면, 남자나 여자는 농사도 지어야 하고, 소나 다른 가축들도 돌보아야하며, 집도 지어야 했습니다.
또 봄이 되면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해서 설탕을 만들고, 돼지를 잡아서 햄이나 소시지도 만들어야 합니다. 대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냥이란 그야말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지, 생활의 여유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번 씨를 뿌려서 가을에 잘 결실하기만 하면, 뿌린 것의 수백 배는 거둘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농사가 상업화되면서 오히려 농사지어서 망치는 경우가 생겼지, 옛날에는 흉년이 들지 않는 이상 농사보다 더 확실한 투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고생을 하지 않고, 놀면서 먹고 살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서 쓰려고 하든지, 아니면 부모의 유산이나, 아내의 결혼 지참금을 가지고 먹고 마시면서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으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을 더욱 좋아합니다. 토지(土地)를 경작하는 자는 쓰는 것보다 일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방탕한자는 노력은 하지 않고, 앉아서 남의 것으로 편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위대한 백성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위대하게 만들어야지, 공짜로 주는 것으로 편하게 사는 게으른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의 뿌리를 찾기까지 고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이 세상이 주는 달콤한 열매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서 영원히 시들지 않고,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을 캐내어야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28:20절)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여기서 충성된 자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충성된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충성된 자는 일단 시대의 변화에 느리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성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파고 들어가는 것보다 더 확실한 농사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파고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농사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든다 해서 당장 물질적인 복이 쏟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농사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농부가 씨를 뿌린다고 해서 당장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알곡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기다리면, 비가 오고, 온도가 올라가면서 싹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도 때가 되면서 심령 부흥이 일어나게 되고, 하늘의 복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 일이 잘 되려고 하면, 하늘의 복이 쏟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속히 부(富)해지려고 하는 자는 눈에 보이는 세상 이익을 향해서 달려가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당장은 유익을 거둘지 몰라도 결국 더 큰 가뭄을 이기지 못해서 망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형벌을 면치 못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복을 찾지 않은 벌(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복을 찾지 않으면, 세상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당할 벌(罰)입니다.
28:21절)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정치를 하고, 재판을 할 때, 자기가 거기에 있는 목적을 알지 못하면,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낯을 봐주고, 또 별것 아닌 뇌물(賂物)을 받고, 일을 해주게 됩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 전체가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아는 사람을 봐주고, 약간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유리한 것 같지만, 이 사람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공무원들이 뇌물(賂物)을 먹었다고 해서 구속되는 것을 보면,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에 자기 인생 전체를 팔아먹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높은 자리에 있는 목적은 사회 전체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되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공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해서 손해를 보지 않게 함으로써 그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게으를 때, 열심히 일해서 축복을 창조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자기편이라고 해서 특별 우대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적(敵)으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한 조각의 떡을 먹고 자기 직책을 팔아먹는 것은 너무나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28:22절)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악(惡)한 눈이 있는 자*란 다른 사람이나 어떤 일을 볼 때, 악한 동기나 마음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중요하게 보아야지, 모두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한다면, 만사가 자기 욕심을 위한 수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볼 때, 인격체로 보지 않고, 돈 버는 수단으로 볼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돈을 버는 수단으로 보일 때, 결국 사고가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이런 사람은 돈 벌이에 급급하기 때문에 안전이나 위생 같은 것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신뢰를 잃게 되어서 나중에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직장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Ⅲ.사람 됨됨이의 중요성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람의 됨됨이보다 어떤 주어진 일을 잘하는 기능인을 키워왔습니다. 이런 기능인의 문제점은 가슴이 뜨겁지 않다는 것과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나 외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적으로 우수한 사람들 중에서 가슴이 너무나도 냉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모나 사회가 사람들을 키우는데, 가슴이 넉넉하고, 따뜻한 사람을 키우지 않고, 머리만 좋도록 키운 결과, 너무나도 가슴이 차갑고, 냉냉한 엘리트들이 많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인생은 차가울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니까 나중에는 가정조차 파탄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어린 아이밖에 되지 못합니다. 즉 지식이나 경력을 보면, 어른인데, 자기문제에 빠졌을 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내는 사람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능인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이 있는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내야만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28:23절)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조각가(彫刻家)는 대리석 덩이를 구해서 자기가 구상하는 모양으로 상(像)을 새깁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작업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작가가 하나의 위대한 작품을 만들려고 하면, 여러 차례 실패도 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도 돌덩이를 가지고, 사람 모양을 조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을 경책(警責)한다는 것은 단순히 잘못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꾸준히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꾸준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지게 되는데, 이 사람에게는 가슴에 불이 있고, 머리에는 하나님의 지식(知識)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죄를 이기고, 위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혀로 아첨(阿諂)한다는 것은 돌에 새기는 것이 고통스러우니까 끌로 깎지 않고, 페인트로 그림만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돌에 황금으로 도금을 하는 것입니다. 본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빨리 멋진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 이 사람은 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시간만 낭비한 것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자녀들의 인생이 실패로 끝나게 되었을 때, 자기가 고통스럽더라도 말씀으로 때려주지 않은 것을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때문에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또 늦게 성공하기 때문에 원망을 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가르쳐준 사람에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28:24절)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기도 하고, 또 나중에 재산이 있으면, 유산으로 물려줍니다. 그러나 자식은 아무리 부모의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모든 죄는 자기 것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데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땀을 흘려서 번 것을 말합니다. 사람도 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한 평생을 주기로 약속하고, 결혼한 사람을 말합니다.
자녀들 중에서 정직한 자는 부모의 것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손을 대지 않습니다. 정직한 자식은 결코 공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자녀는 부모의 재산에서부터 손을 대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일가친척들의 돈을 모두 다 끌어와서 주식투자나 혹은 자기 사업에 털어 넣고, 망하는 것입니다.
자식들 중에서 사업에 미친 사람은 부모든, 친척이든, 돈만 보면, 모두 다 끌어들이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남이 잘사는 것을 시기할 필요도 없고, 남의 것을 자기에게 끌어오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이 한 구절의 말씀을 몰라서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집을 담보로 잡혀서 결국 집도 없는 신세가 되게 하는지 모릅니다.
28:25절)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욕심이 많다는 것은 제한된 물건을 가지고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것은 모두 다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보물이 있는데, 그 보물은 곧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보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것은 곧 하나님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려고 하면, 싸울 수밖에 없지만, 더 큰 것을 가지면, 작은 것을 가지고 아웅다웅하면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붙든다고 해서 당장 잘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우리가 아프지 않게 하셔서 돈이 쓸데없이 낭비되지 않게 하십니다. 또 우리 인생길에서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막아주십니다.
하나님은 희한한 지혜로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나중에는 좋은 것은 전부 다 주십니다. 예수님은 눅11:13절)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28:26절)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여기 *자기 마음을 믿는 자*란 자기 머리나 자기 노력을 믿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를 믿는 이유는 자기 머리로 얼마든지 성공할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위기들이 많습니다. 마치 양들이 이동할 때, 무서운 골짜기나, 맹수들 때문에 목자의 인도가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 머리를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지 못합니다.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자기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를 말합니다.이런 사람은 일단 자유가 없고, 자기 마음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목자(牧者)가 되어주셔서 모든 위기를 피하게 하시고, 모든 시험에게 이기게 하십니다. 여기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위기에서 지켜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한 때, 성공했다 하더라도 한번 실패하면, 인정사정없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자는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어야 할 이유는 평소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서 보호받기 위해서입니다.
28:27절)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다시 가난한 자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돈도 벌고 좋은 자리에 승진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공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가 할 것은 자기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약(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결국 이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정책(政策)을 만들어야 하고, 자신의 권한 안에서 자비를 베풀어야 선한 관리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악(惡)한 사람들 중에는 그런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돈을 모으지 못하는 것은 바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돈보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고, 특히 하나님의 신임을 얻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그들을 못 본 체하는 사람은 저주를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이 관리를 원망하게 될 텐데, 결국 무능한 관리나 악(惡)한 관리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입니다.
28:28절)악인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악인이 일어난다는 것은 악인이 권력을 잡는 것을 말합니다. 악인은 무능한 통치자이기 때문에 바라는 것은 뇌물(賂物)과 아첨(阿諂)밖에 없습니다.
악(惡)한 자는 너무나도 변덕스럽고, 포학(暴虐)하기 때문에 그 밑에서 아무리 충성을 해도 결국은 미움을 받든지, 아니면 악(惡)한 자와 함께 망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악(惡)한 통치자 밑에서 한 자리 하는 것을 아주 수치스럽게 생각해서 숨어버립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그런 악(惡)한 통치자 밑에서라도 한 자리 하려고 충성을 다하는데 나중에는 악(惡)한 자에게 충성한 것이 욕이 되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악(惡)한 자에게 아첨(阿諂)해서 인정받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악(惡)한 자가 통치할 때가 의인에게는 고난의 시대입니다. 이때 우리는 죽도록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영적인 부흥을 일으킬 때입니다.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면, 이상하게 악(惡)한 통치자가 물러나게 되고, 사람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는 때가옵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심히 사회에 봉사를 하면 됩니다. 악한 통치자가 물러나게 하는 것도 영적인 부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권력을 잡은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영적인 부흥이 시대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실력 있는 운전자가 되어야 하는데, 무조건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명성을 얻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공의(公義)를 실천하고, 사랑을 베푸는 선한 지도자들이 많이 되시기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571장 *역사 속에 보냄 받아*
추계(秋季)성례전은 년중 순종 행사로(11월초-12월말)축복대심방(국내-국외)스마트폰으로 (지역. 장소.날짜.시간을 조정하여 초청하는 셀(cell)가족 순으로 출장 시행합니다.(댓글 이메일, 또는 전화로 초청) 시간은 30분이내로 후계자 정현흥 목사가 동행하며.냉수 한 잔 외는 부담을 주지않습니다.
☞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 셀(cell)자격으로 다함께 자립 새 출발 할 수 있습니다(비소속 가명 스파이 먹튀는 제외).
▽소속 조건 ▽
행정서식. 정착완료. 양식보존. 새벽기도. 교갱원설립후원. (春)(秋)심방.신뢰.실명 소통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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