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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대문인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한
단편소설(短篇小說)
스테파노 이야기
김광한
내가 스테파노란 사내를 알게 된 것은 모곡(牟谷)이란 마을의 어느 천주교 기도원에서였다. 스테파노는 그의 영세명이었다. 모곡은 강원도 홍천군에 속한 면소재지였는데 홍천강의 지류가 흐르고 팔봉산이 비스듬히 눕혀져 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이었다. 가끔씩 보는 동양화의 어느 한 구석처럼 모곡면은 그렇게 한가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그 마을을 찾기 시작한 것은 아내가 살아있기 훨씬 전부터였다. 물론 아내에게는 그곳에 갈 때마다 작품을 쓰러간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했다. 남들처럼 번듯한 서재라든가 다른 장소를 정해두고 작품을 쓸 형편도 못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두 사람을 알게 되었다. 유동인구가 많아 상대적으로 목회(牧會)가 잘되질 않아 신도수가 점차 줄어들자 기도한다는 핑계로 일주일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는 K목사가 그 한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서울의 여자 대학 미술 강사인 최관두 화백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나온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서 나머지 인생 역시 뿌듯한 희망과 성취감이 있을 것 같지 않아 차라리 그쯤 되면 가족을 부양하거나 하는 책임에 벗어나 멋대로 살아가려는 의도로 이곳에 온 사람들이었다.
마누라의 그악스런 잔소리라든가, 잔소리에 실린 무능 하고 융통성 없다는 자식들의 되퉁 맞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두 사람은 유독 별난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그곳의 젊은이들이 야망을 품고 대처(大處)로 돈벌러 나간 빈집에 대신 들어와 희망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농촌의 늙은이들과 섞여 살면서 상당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 재미란 첫째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엄청난 자유였다. 배고프면 아무거나 찾아 먹고 아무데서나 잠자고, 배설하고, 맘 껏 취하고, 실컷 욕설하고, 듣는 사람 없고, 또 거기에 맑은 공기와 많은 공간, 그들을 나는 평소에 부러워했었던 것이다.
나는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지낼 날이 있을 것이란 생각과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희망이란 것이 불행히도 아내의 죽음으로 가깝게 현실로 다가선 것이다.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게 되자 오히려 나는 허탈감에 빠져버린 것이다.
상봉터미널에서 진흥여객 시외버스를 타고 청평과 설악을 거치면 널마재란 큰 고개가 나오는데 고개입구엔 기분 나쁘게 검은 색으로 해골바가지가 그려진 표지판에 "위험"이란 글씨가 붙어 있어 이곳이 사고다발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시간쯤 달리다 보면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 같은 강과 높은 산들이 치마처럼 둘러쳐진 곳이 나오는데 그곳이 이 버스의 종점이었다.
모곡은 종점이었다.
흔히 농촌의 풍경을 묘사하자면 집 앞에 소가 한 마리 매어 있고, 그 소가 여물을 씹으며 조는 듯 드러누워 있으며 방정맞은 강아지가 뛰어다니며 컹컹 짖고, 새마을 사업으로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낮은 슬레이트집이 옹기종기 붙어 있고, 새마을 모자를 쓴 검게 탄 얼굴의 젊은이들이 경운기를 몰고 먼지를 일으키며 휘파람을 불고 가는 모습을 연상 시키나 그곳은 이런 것들과는 전혀 분위기가 걸맞지 않았다.
웬지 살벌하고 전쟁이 한차례 지나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듯한 마을이었다. 대부분의 집에서는 굴뚝 쪽이 밖에 설치돼 있었으나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빈 집들이었다.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려 활기가 없어진 마을. 가끔씩 노인들이 허리를 구부리고 밭에 나가 감자밭을 가꾸거나 고추밭을 가꾸다가 낮선 사람들이 간혹 지나치면 수상쩍은 눈초리로 쳐다보는 어색 한 분위기였다. 아무튼, 나는 김목사와 최 화백이 이곳에 틈입(闖入)해와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알차게 계획하고 있고 또 어떻게 보람 있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가끔씩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들의 삶에 동참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루쯤 묵어 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곤 했었다.
이곳에서 K목사는 몇 푼 안 되는 돈, 그 돈이라면 도시에서 하루 저녁 그럴 듯한 룸살롱의 술값에 불과한 돈을 주고 원주민이 떠나버린 빈집을 사들여 "모곡 선교원"이란 제법 거창한 간판을 붙여 놓고 있었다. 간판이 너무 커 썩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선교원으로 통했다.
선교원이라고 해서 누구를 선교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개척교회에서 굴러다니던 간판을 옮겨 붙여 놓은 것에 불과 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선교원이 어디냐고 물으면 곧잘 K목사의 낡은 초가집을 가르쳐 주곤 했다.
최 화백 역시 그 맞은편 집에 "모곡화실"이란 음각된 간판을 붙여 놓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나 방문객들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알게 했다.
목사와 최 화백은 몇 년 전부터 이곳에 와서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존경과 선망을 받고 있었다. K목사와 최 화백은 처음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라 우연하게 이곳에 와서 사귀게 되었는데 그것은 앞으로 그들의 자질구레한 계획이 서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었다.
K목사는 그것이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의 땅을 2만여 평쯤 사서 신학대학교를 건설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미 신학대학교의 조감도가 완성돼 있어 선교원의 곰팡내 나는 안방에 걸어놓고 있었다. 두어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두엄 냄새가 나는 방 한가운데 신학대학교의 조감도가 화려하게 걸려 있어서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K목사가 계획하고 있는 신학대학교가 그의 생전에 이뤄질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았다.
한편, 최 화백은 여자대학의 미술 강사로서 그곳 몇 명 안 되는 국민 학생들의 미술지도를 무료로 해주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사람으로 칭송 받고 있었다.
그러나 최 화백의 지도를 받고 있는 학생들이 최 화백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진 않았다.
K목사는 학력이 낮은, 그리하여 무속신앙에 젖은 마을 사람들의 신앙상담이라든가, 인생 상담 또는 중매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가끔 신앙상담을 통해 예수를 믿겠다고 선교원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특이 한 예였다.
내가 그곳에 도착한 것은 첫 해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무척 추운 날 저녁나절이었다. 상봉 터미널에서 미리 전화로 소재파악을 한 다음 출발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잘못이었다.
종점에서 내려 그들이 살고 있는 십리쯤의 제법 가파른 언덕배기를 오르다보면 중간쯤에 언제나 개점휴업 같은 우체국이 하나 있고 그 옆에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곡물창고 같은 건물에 의용소방대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런 피폐된 농촌에 불이 날 일이라곤 없겠지만 소방법에 따라 형식적으로 만들어 논 것이 분명했다. 의용소방대 건물 맞은편에 개신교의 교회건물이 첨탑을 높이하고 있었는데 그 곁에 작년 까지만 해도 없었던, 이런 곳에선 보기 드문 제법 큰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건물 입구에 성모 마리아상과 각종 천사상, 그리고 예수 상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서 관상기도원이란 간판만 없었다면 여지없이 석재물 전시장으로 느꼈을 정도로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다.
"관상기도원"
입간판 옆에 늘 보아왔던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 곳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가-
그 건물들을 지나 K목사 자신이 쓰고 걸어놓은 선교원 간판이 붙은 그의 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쪽마루와 붙은 방 앞에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대문은 아예 없었다. 하긴 이런 곳에 대문이 붙어있는 것이 이상했다. 대문이란 뭔가 훔쳐갈 물건이 있어야 붙여놓는것인데 훔쳐갈 물건이 있을리 없었다. 오래전에 이곳에서 살았을 성싶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변소가 서까래만 남긴 채 들어져 있었고 깨진 간장독이 한둘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나는 그의 방문 앞에서,
"K목사 있소! "
하고 크게 불렀다.
그러나 아무 소리가 없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전등불은 그대로 켜진 채 있었으나 사람은 없었다. 방안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이부자리가 때에 절어 방바닥에 깔려 있었고 피난민 보따리처럼 간장병과 라면박스 등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K목사는 몸만 빠져나간 것 같았다.
눈을 씻고 한참 방안을 살펴보니 방바닥에 종이 쪼가리가 한 장 떨어져 있었다.
"김 형, 오시느라고 수고했소. 볼 일이 있어서 모곡선교원을 잠시 비우니 양해하시오. 라면은 뒷편에 있고 거기 따지 않은 경월소주가 두 병 있을 거요. 추운데 드시고 뒷마당에 얼지 않은 약간의 식수가 있으니 라면 몇 개 끓여 먹으시오." 라는 글을 편지 끝에,
"모곡 선교원장 白"이란 제법 우람한 글씨가 쓰여져 있어서 모곡선교원에 대단 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 쓴 글이었는지 모르나 그는 내가 언젠가는 올 것이 라는 생각에서 미리 써두었던 것 같았다. 방 모서리에는 플라스틱 그릇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속에는 말라서 못 먹게 된 된장과 고추장이 약간 들어 있었다. 또 풍로에는 석유가 반쯤 들어있어서 그의 말대로라면 몇 개 끓여 먹을 정도는 됐다.
눈발이 날려 나는 잠시 습기로 가득 찬 이부자리 속에 누워 있다가 아무래도 그대로 있다간 무슨 일이 날 것 같아 이번엔 최 화백의 집으로 향했으나 그 역시 외출 중이었다.
마루를 온통 비닐로 칸을 막아버린 화실에는 찬바람이 스며들어 몸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얼른 보아 알 수 없는 비 구상화들이 완성되지 않은 채 마루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그 주위는 역시 다 써버린 물감 통이 굴러다녀 그의 최근 생활을 짐작케 했다.
그리고 그 곁에 마시다 남은 소주병이 비스듬히 놓여 있어 냄새를 맡아보니 알콜기가 가셔져 있어 외출한 지 꽤 오래 됨을 알 수가 있었다. 서울로 간 것이 분명 했다.
방문은 그대로였다.
하긴 열쇠로 잠가 놓는다고 해도 이런 시골구석에 그림을 아는 도둑이 있을 리 만무한 일이었다.
방문을 여니 야릇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줌 냄새였다. 최 화백은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오줌이 마렵자 바깥에 나가기 싫어 신문지와 화장지를 방바닥에 깔아 놓고 내 갈긴 것이 분명했다. 오줌은 방바닥의 온기로 축축히 젖어 있어 냄새가 고약하게 풍겼다.
나는 그걸 대충 걷어치우고 그들이 올 때까지 몸을 녹일방을 생각해 보았다.여관까지 가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문득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눈에 띄었던 기도원 생각이 났다.
"천주교 관상 기도원"
십자가의 길 14처(處)가 낮은 구릉에 걸쳐 가지런히 축성돼 있고 성모상과 예수상이 서 있어 마치 서울의 여늬 성당과 흡사했지만 질서가 잡혀 있지 않았다.
내가 그 기도원을 찾았을 때 유리창 바깥으로 부녀자들의 열띤 기도소리가 들렸다.
주모경이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니 묵주신공 중이었다. 나는 아랫층의 사무실 겸 식당으로 쓰이는 큰 방의 미닫이를 살그머니 열었다.
이때 인기척을 느껴졌는지 관리를 맡고 있는 아주머니가 별 거부반응 없이 맞았다.
"뉘신지요?"
"신자입니다. "
"지금 기도 중이니까 함께 기도하시죠. 2층으로 올라가시죠."
하며 그제서야 내 아래, 위를 훑어 보는 것이었다. 그 눈길이 흔히 보는 도피에서의 여관집 주인 여자의 이기적인 눈길과는 분명히 달라보였다. 신앙이 그녀의 몸에 얽혀져 있기 때문일까. 나는 그녀에게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져 간단한 이력을 소개했다.
서울서 왔고 영세한 지는 6년 됐으며 글을 쓰러 왔다가 들렸노라고 하니까 그녀는 반색을 하면서 2층의 빈 방 하나를 치워 주었다.
"이곳에선 천주교 신자를 만나기가 힘든데 부담 없이 며칠이고 쉬어 가십시오."
하며 그녀는 자신을 소개했다.
"이루시아라고 합니다. 건물이 축성되기 전부터 와 있었죠"
손가락마디가 굵은 것으로봐 과거지사가 그리 단순한 것 같지가 않았다. 둘째 손가락에 은제 묵주반지가 돋보였다.
그녀는 방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을 섰다. 기도실로 마련한 옆방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들리는 인근 교구의 신부를 위한 방이었다.
"마침 이 방이 비어 있어서‥‥‥‥"
내가 엉거주춤 겸연쩍어 하자 그녀는,
"그럴 필요 없어요. 이곳은 모두 무료예요. 걱정 마시고 묵어가세요. 웬만하면 기도실에 가시죠. "
하며 기도회에 참석할 것을 권유했다.
2층의 모든 방이 비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도실로 모인 것 같았다. 그녀의 인도를 받아 기도실의 문을 조용히 열자 방문 가까이 앉아서 기도하던 40대의 사내가 힐끗 나를 쳐다 보았다.
눈 꼬리가 쳐져 있고 왼쪽 뺨에 데인 자국이 있는 과히 좋지 않은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내가 머뭇머뭇 하자 일어서서.
"신자십니까?"
하고 의례적인 질문을 했다.
그렇다고 하니까 어려워하지 말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기도의 내용으로 보아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아 사내의 기도실 안에 대여섯 명의 권유로 기도실 안으로 들어갔다 부녀자들과 할머니 한 분이 열심히 무슨 한맺힌 것이 많은지 침을 튀기며 통성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적인 것은 이런 곳에 있을 성싶지 않은 20대 초반의 처녀의 모습이었다. 유난히 하얀 얼굴에 어딘지 수심이 가득 차 백치미를 풍기고 있었는데 처녀는 기도 말미에 "아바바" 소리를 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걸로 보아 농아이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가씨 같아 보였다. 아버지 소리를 혀가 잘 움직여지지 않아 아바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아바바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바바의 하늘에서와 같이 ‥‥‥‥
기도회가 모두 끝나자 나를 안내했던 이루시아가 내게 귀뜸을 했다.
형제님, 여기 모인 사람들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녀는,
제 정신 온전히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요."
그 40대의 사내가 자기 방으로 가고 없었기에 내가 물었다.
"아까 그 남자는 누굽니까?"
그 분도 내가 보기엔 조금 이상해요. 그 사람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하며 머리를 갸우뚱했다.
나는 그녀가 마련해준 저녁을 뒤늦게 먹고 내 방으로 들어와 누워 있는데 누군가 노크를 했다. 밤 10시가 지나서였다.
방 미닫이를 여니 기도실에서 만났던 40대의 사내였다.그는 복도에 서 있다가 내가 문을 열자,
"잠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형제님 "
하고 양해를 구했다.
첫 보기보다 무척 상냥한 말투였다.
"그러시죠. 들어오십시오. "
그는 내 말에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잠바 안에서 경월 소주 한 병을 꺼내 놓았다.
"날씨도 춥고 해서 ‥‥‥“
하며 그는,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나 하죠."
하고는 자기소개를 했다.
"먼 길에 오시느라고 고생했겠습니다. 이 기도원에 아시는 분이라도 계신지요?"
내가 없다고 하자 그는 이상하다는 듯,
"일하는 아줌마가 워낙 쌀쌀해서‥‥‥‥"
하며 내가 모르는 소리를 했다. 뭔가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탁동태 스테파노라고 합니다. 아줌마한데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글을 쓰신다고 했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
"무명이죠. "
하자 그는,
"글 쓰는 분을 만나 영광입니다. "
하며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서 내게 한 잔 권했다. 내가 잘 못한다고 하자 그 잔을 홀짝 마시면서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탁동태라고 합니다. "
"이름이 특이하십니다. "
"다들 그러지요. 이름이 품위가 없어서 그냥 탁 스테파노라고 하죠. 아버지가 붙여주신 이름이라 고치지 않고 있죠.동태라면 명태를 연상시킨다나. 사실은 어릴 동자에 클 태 자인데 ‥‥‥"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작가 선생님이 이해하신다면 영광이죠."
하며 악수를 청했다.
사내가 자는 방은 바로 옆이었다.
사내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언제 이곳에 왔으며서울에선 무엇을 했으며 어떤 병이 있어서 이곳까지 굴러 들어왔는가를 이 야기했다.
험상궂은 얼굴에 비해 무척 사교적인데가 있었다.
그가 물었다.
"세례명이 어떻게 되시죠?"
"안드레아라고 하죠. 얼떨결에 붙여진 이름이죠."
"참 좋은 이름이십니다. "
"이름만 좋으면 뭣합니까? 그렇게 살도록 해야죠, "
나는 영세 날 성인들의 축일에서 세례명을 딴 것이 아니라 부르기 쉽고 거의 대중화된 이름을 교적에 올 렸었다. 그것이 고기잡이 어부인 안드레아였다.
나중에 그 세례명이 다른 이름, 즉 베드로나 바오로 성인보다 어감이 약한 것 같고 또 평소에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안드레 뭐란 디자이너가 생각나 교리 담당 수녀에게 본명 정정을 요구했었다.
그랬더니 그 나이 들고 고집이 센 것 같은 수녀는 화를 털컥 냈다.
"영세명이 이브셍 로랑이나 피에르가르뎅 같은 상품명입니까? 영세명을 멋으로 달고 다닙니까?"
하며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신자들 사이에서 나는 본명보다도 내 이름을 불러주길 원했었다.
영세명이 안드레아나 베드로라면 그 성인들과 같은 삶은 살진 못하겠지만 내라도 내면서 살아야 할 텐데 대부분의 신자들은 어디 그런가. 세례명을 가톨릭 신자로서의 입지 간판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 나는 그게 싫었던 것이다.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달려있는 사람이 본명은 베드로이고 부동산 투기와 고리대금을해 남에게 상처를 많이 입힌 자가 본명은 번첸시오 같은 자비를 상징하는 성인 명을 따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싫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대화는 주로 세례 명 에 대 한 것으로 시작됐다.
내가 사내에 게 물었다.
"스테파노란 본명도 좋죠. 추기경께서도 그 본명이죠. 특별한 사유라도 있는 본명 입니까?"
"뭐 그런 건 없습니다. 예수 시절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스테파노 그 분을 존경했죠. 그래서 딴 이름이 스데파노가 됐죠. 그 분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사람들을 용서하셨죠. 존경하고 있습니다. "
사내의 얼굴에선 스테파노 같은 구석은 한군데도 없었다. 물론 내가 스테파노란 성인의 얼굴을 직접 대하거나 또는 그림조차 본적은 없었으나 스테파노라면 점잖은 서양식 미남에다 약간의 턱수염이 달려 있고 선량한 눈을 갖고 있으며 웃음도 인자할 것이라는 내 상상에서 그의 얼굴은 훨씬 벗어나 있었다.
그는 내가 묻기도 전에 자신의 지나본 신상명세를 모두 이야기했다. 아마도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결코 손해가 나지 않을, 들어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야기 도중 참회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형제님, 전 이런 놈입니다. 이렇게 죄를 졌어도 되는 일입니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7"
하는 말을 중간 중간에 끼어 넣었다.
무척 부담이 되는 말들이었다.
나는 그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인자하신 하느님이 용서하시 겠지요. "
하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내가 말을 막았다.
"죄 안 짓고 사는 사람 몇 이나 되나요. 사는 것이 다 죄가 아닙니까?"하는 상투적인 말로써 끝내려 했으나 사내는 집요하게 말꼬리를 길게 梁다.
"그러나 말입니다. 그 내용과 질이 아주 나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민망할 정도거든요. "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그의 길게 쳐진 눈꼬리에 이슬이 맺혀져 있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그럼 지금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
하며 심호흡을 쉬었다. 그럼 지금까지 지리 하게 이야기한 건 서두에 지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다간 날이 샐 것 같았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낙태의 죄, 도박의 죄 그리고 남들에게 물질로서 인색하게 대했던 인색의 죄, 이것들 모두가 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이 곳까지 와 보속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
사내는 못된 자기 자신에게 호통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물었다
"이 담배 얼마짜린지 아십니까? 이백 원입니다. 형제님은 이런 싸구려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값을 잘 모를 겁니다. 남들은 이천 오백 원짜리 에세이나 이천 원짜리 한라산을 피우지만 저는 청자입니다. 왜 이 담배를 피우는 줄 아십니까?"
그는 내게 답변을 요구하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말 사이에 침묵이 들어 있어서 이번엔 내가 답변할 차례였다.
"글쎄요?"
"아마 모르실 겁니다. 제가 돈이 없어 이 싸구려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닙니다. "
하며 한 가치를 꺼내 내게 피워보라고 권했다. 피워 보니 역시 독해 기침이 났다. 나 역시 형편이 어려울 때 가쯤씩 피웠기 때 문에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맛이었지만 사내가 내민 담배 맛은 지독히 썼다.
"쓰죠? "
"약간. "
"그럴 겁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저는 도박을 했습니다. 십계명에도 있지요. 남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고. 도박은 한 마디로 남의 재산을 공짜로 얻으려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죄를 받은 거죠. 고스톱을 하다가 포카로 판을 바꿨죠. 한 십억 날렸습니다. 아직도 재산은 좀 있습니다만‥‥‥‥ "
"그럼 사업을 크게 하셨군요?"
내가 묻자 그는 그제서야 빙그레 웃으면서,
"서울에 가면 신림동이라고 있죠. 재개발지역에서 부동산에 손을 했죠. 딱지를 사 수십 채의 아파트를 사다가 다시 되파는 거 있잖아요. 그땐 양심의 가책 같은 것도 몰랐습니다. 돈 좀 만졌죠. "
나는 그의 체구에서 돈 냄새 같은 것을 결코 맡을 수가 없었다.빈약한 체구에 얼굴 역시 돈 같은 것이 붙어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돈 붙는 얼굴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의 얼굴은 빈상(貧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긴 요즘 돈이 사람 얼굴을 보고 붙겠느냐만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래서 천민자본가란 말이 생겨나지 않았던가.
"돈이 좀 모아지자 이것을 사업에 재투자하지 않고 도박에 손을 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화가 나셨겠지요. 내 치셨죠.안 그렇습니까?"
그는 말끝마다 내게 답변을 요구 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한 것 같았다. 나는 의례적으로 그렇죠, 그렇겠죠, 맞습니다란 말을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붙여 주었다.
"맞습니다. "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는 말에 힘을 얻었는지 또 다른 말을 이 어 갔다.
"그리고 형제님, 저는 장손입니다. 장손이라면 자식을 많 이 두어서 조상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의무거든요. 손이 귀한 집이라서 더욱 그랬습니다. 자식을 넷을 두었습니다. 요즘 세상엔 즘 많은 편이지요. 아내가 더 낳자고 하는 걸 그만 낳자고 다섯째 아이를 낙태를 시켰습니다. 이것도 큰 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렇죠?"
"글쎄요."
"낙태의 죄란 것이 있지 않습니까? 형제님도 그럼 낙태를 시킨 일이 있습니까?"
"한 번 있죠. "
그러자 그는 얼굴에 밝은 빛을 내면서,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 그럼 같은 죄인 아닙니까?"
"그렇겠죠."
"그런데 제 경우는 달랐어요. 아내를 강제로 병원까지 끌고 갔거든요. 더 낳겠다고 애원하는 아내를 말입니다. "
하며 그는 진정으로 회개를 한다는 표시인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내 생각 같아서는 그렇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회개할 범죄 같지는 않아 보였다. 요즘 세상에 고스톱 안 해보고 낙태시키지 않은 사람 어디 있는가. 내 마모된 양심을 움직이기엔 그의 죄란 보잘 것 없이 보였다.
그런데 그는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다. 그의 고백이 사실 이라면 요즘같이 험난하고 양심과 도덕이 행방불명된 시대에 그는 보기 드문 양심의 소유자 같아 오히려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이번엔 내가 먼저 물었다.
"그것 말고도 또 있단 말입니까?"
나는 은근히 사내의 이야기가 이쯤에서 끝났으면 하고 바랬다. 몸도 피곤했고 사내의 이야기에 새로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쉬고 싶었다. 그러나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또 있습니다. "
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또 뭔가요?"
"사실 그동안 저는 부동산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을 남들을 위해 쓴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써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말씀에도 그렇게 나와 있죠. 그렇다고 뭐 제가 고리대금을 했거나 여자들을 유혹했거나 못된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 역시 큰 죄겠죠?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그의 말에 답변할 것 같지 않자 그는 자청해서 말씀해 달라는 단서를 붙였다.
"글쎄요."
"글쎄요 가 아니라 확실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사내는 "큰 죄"라는 답변을 듣고 싶은 모양 같아 얼른,
"큰 죄겠죠. "
하고 말하니 그제서야 안심이 됐는지,
"그렇죠."
"그럼 신부님에게 고백성사를 받아 보시죠. 그럼 조금 후련 해질게 아니겠습니까?"
"고백성사요? 그것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너무 큰 죄를 진 것 같아 엄두를 못 내고 주저를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라서 형제님을 용서해 주실 겁니다. "
내가 아는 체를 좀 했다.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
"물론 용서를 해주신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 내 손으로 죽이거나 사기를 친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용서를 받는다는 게 너무 송구스러워 그저 꾹 참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
"그럼 그 때가 언제 입니까?"
"곧 오겠죠. 형제님이 작가시라니 아마 제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면 재미가 있을 겁니다. 자료 제공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
하며 가져온 조그만 손가방에서 다시 경월소주 한 병을 꺼내 땄다. 그리고 내게 함께 마시기를 권했다. 술을 못 하겠다고 하니까 그는,
"저는 이 술이란 놈이 없으면 잠을 못 잡니다 심한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는데 이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게 아니죠. 일종의 뭐랄까? 혈액 순환제라고도 볼 수 있겠죠."
하며 술을 한 모금 병 채로 들이키고 수면제라고 인쇄된 하얀 가루약을 입에 탈탈 털어 넣었다.
그러자 그는 정신적으로 안정이 됐는지 침착해졌다. 그런 그를 내가 제법 어른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스테파노 형제님, 내가 보기엔 그렇게 괴로움을 당할 정도로 큰 죄를 진 것 같지 않군요. 이제 그만 진정을 하시죠."
그는 내 말에 정색을 했다
"아닙니다. 형제님은 제 괴로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이 더 큰 죄를, 일테면 누구를 죽이거나 횡령 등의 큰 범죄를 저지르고 이런 산골짝으로 들어와 내게 일부러 죄에 대해 한 번 떠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의 말투에 엄청난 죄가 묻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다시 그가 물었다.
"형제님도 나와 같은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뭐 그런 건 아니지만‥‥‥‥"
하자 그는 이번엔 말꼬리를 엉뚱 한데로 돌렸다.
"어느 날 밤이었지요. 잠시 피곤해서 눈을 붙였는데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란 걸 안 건 그 분이 십자가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분이 제게 뭐라고 말씀 하셨는지 아십니까?"
꿈에서 그에게 한 이야기를 알 턱이 없어,
"그야 모르죠. "
그는 역시 그랬다는 식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흰 옷을 입으셨습니다. 그 분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런데 스테파노! 너는 이웃,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도대체 무엇을 해주었나? 제가 그 답변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그 분은 제게 앞으로 너는 일년 동안 보속하는 의미로 기도원에 가서 열심히 주모송과 묵주 신공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로 여러 군데의 기도원을 전전했죠, 물론 개신교의 기도원까지 간 적이 있죠. 제가 여기 온 건 두 달 전입니다. "
하면서 나머지 술을 홀짝 마셔버렸다.
내가 물었다.
"이 곳까지 오게 된 동기가 그것뿐입니까?"
"뭐랄까, 예수님의 계시라 할까? 한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시는데 그쪽이 여기 같았어요. 북쪽이었거든요."
하면서 다른 곳의 기도원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즉 다른 기도원은 밥값과 숙박비를 받는데 여긴 그것이 없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다시 약봉지를 꺼내 입에다 그걸 탈탈 털어 넣었다. 수면제를 그렇게 자주 먹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보였다. 그리고 술병을 잡았으나 술은 이미 바닥이 났다.
"술은 일종의 소화제죠 .잠이 안 와요.그 많은 돈을 잃었다는 생각에서 처음엔 미칠 것 같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돈 생각은 나질 않아요. 어차피 남의 돈이었으니까요."
사내는 약간 취한 것 같았다. 사내가 옆방으로 비틀거리고 가자 나는 잠을 청했다. 그러나 웬 일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사내의 행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박의 죄, 낙태의 죄, 인색의 죄, 그리고 근무태만의 죄, 어쩌면 죄될 것 같지도 않은 일 갖고 기도원까지 찾아와 보속을 한다며 매일 아침과 저녁 두 번에 걸쳐 묵주기도 5단씩 바치는 그의 양심이란 신자들이 반드시 본받아야한다고 느꼈으나 웬일인지 사내의 행동에 어떤 헛점이 보이는 것 같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새벽이와 잠시 눈을 붙이려 하자, 옆의 사내의 방에서 웬 여자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그 목소리는 어쩌면 애원에 가까웠다. 똑똑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부탁 하는 투였다. 누굴까?
이 기도원에서 관리를 책임 맡고 있는 이루시아 씨를 제 외하고 정신이 온전한 여자란 한 명도 없다고 했는데 그럼 이루시아란 말인가? 그녀의 목소리도 아닌 것 같았다.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아바바 아바바‥‥‥
그러자 방금 나간 사내의 달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집에 보내 줄게. "
도대체 참으란 말은 무엇인가?
문득 기도실에서 본 20대 처녀의 백치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창백한 얼굴에 갸름하지만 눈동자가 정기를 잃고 있는 처녀. 왜 그녀가 연배는 비록 크게 차이가 나지만 남녀 엄격히 유별한 이 기도원에서 외간 남자의 방에 들어와 사정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아바바"소리만 제 발음이 아 니었고 대부분의 발음은 거의 정확한 것 같았다. 말의 이음새가 그리 어색한 것 같지 않았다.
누굴까? 나는 소리의 주인공을 연상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아래층의 종소리에 놀라 잠을 깬 시간은 여섯시. 이 시간에 기도회가 열렸다. 나로서는 무료 숙식의 대가를 하기 위해서라도 기도회에 참석해야만 했다. 이루시아는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노크를 했다.
"기도 시간입니다. "
여섯시가 채 못돼 기도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벌써 할머니 몇이 무릎을 꿇고 묵주신경을 외고 있었고 어제의 사내, 스테파노 씨가 앉아 있다가 내게 눈짓으로 아는 체를 했다.
이윽고 중풍환자를 제외한 식구들 10여명이 자리에 앉자 사내가 기도를 인도했다.
기도는 돌아가면서 했는데 아마 그날의 새벽기도는 사내의 차례였던 것 같았다. 몇 개의 성가를 끝 절까지 부르고 묵주기도가 시작되었는데 사내의 목소리엔 어떤 근엄하고도 형용하기 힘든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어젯밤의 그 목소리가 생각나 어쩐지 사내의 얼굴을 대하기가 싫어졌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로 시작되는 기도의 말미에 사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마 내게 말한 죄에 대한 참회 같았다. 이루시아 씨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 즘 이상하다고 생각 들지 않아요. 어젯밤 선생님 방에 들어가 약 먹었죠? 그 약이 수상해요. "
"수면제라던데요. "
"내가 보기엔 폐병 약 같아요. 거기다 술까지 마시죠. 폐병 환자 같아서 꺼림칙해요."
내가 이루시아 씨에게 말했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저 그렇다는 거예요. "
사내의 기도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그는 기도서에 들어있는 모든 기도를 달달 외고 있었다. 사내의 말대로 모태 신자임이 분명 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사내가 내게,
"형제님,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합시다. 예수님의 수난 길을 따라 묵상하며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우리 신자들의 의무지요. 나갑시다. "
바깥에는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십자가의 길 14처는 기도원 뒷산에 잘 다듬어 놓았다. 부조(浮彫)로 된 각처를 돌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가 앞장을 섰다.
사내의 반쯤 벗겨진 뒷머리에 눈발이 떨어졌다.
"이번 보속이 끝나면 제 재산을 얼마 바쳐서라도 십자가 의 길을 다시 꾸며 놓겠어요. 너무 낡고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한마디로 영성(靈性)이 깃들어 있지 않거든요."
"보속이라뇨?"
"제 죄의 대가를 말하죠."
"보속을 하려면 고백성사가 있어야 되지 않아요?"
"글쎄. 그걸 생각 중입니다."
"신부님이 오시나요?"
"일주일에 한 번 교구에서 오십니다."
나는 그에게 이 것 저 것 물었다.
내 물음에 그는 자기 재산을 털어서 엉성한 기도원을 영 성이 깃든 시설로 만들어 놓을 것과 이곳의 봉사자, 특히 이루시아 아줌마에게도 적당한 사례를 할 것이 라는 계획을 이야기 했다.
"사실 우리 교회에서는 너무 봉사만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봉사자에게도 급료를 정당하게 지불해야죠. "
그와 함께 십자가의 길 14처를 도는 동안 나는 그에게 한번쯤 물어보고 싶은 것, 즉 어젯밤의 여자 목소리라든가 수면제 등등 이루시아가 의심하는 것들이 잘못되었을 것이라 생각 들었다. 기도서도 없이 긴 문구를 외운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그러나 그는 긴 문구뿐만 아니라 연도문까지 외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것들을 질문한다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았다. 혹시 내가 잠결에 잘못 들었을 수도 있지 않는가,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가자 이루시아가 귓속말로,
"그 사람 이상하죠. 폐병쟁이 같죠. 그 약이 뭐랍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사내의 성스러운 행동과 사재를 털어 기도원을 수리하겠다는 것, 특히 이루시아에게 봉급을 지불할 재원을 희사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금방,
"그런 분인 줄 모르고 괜히‥‥‥‥ "
하며 금방 크게 기대를 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돈은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조금 과장되게 말했다.
"큰 사업을 하다 도박 때문에 조금 날렸지만 그 정도의 돈은 있는 것 같아요. "
이루시아의 대화는 사내가 들어옴으로써 중단됐다. 그는 식사가 끝나자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 십자가의 길 14처에서 보인 그의 행동 때문이었는지 신앙인으로서의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 전과는 달리 무척 고뇌스런 표정이었다.
"형제님, 나는 하느님께 기도하면 모든 걸 다 들어 준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믿지 않게 됐습니다. "
"왜요? 그럴 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있죠. "
하며 그는 청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재물은 내게 주었지만 반대로 제게 죄를 주었으니까요. 그 죄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
"죄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한 것 같군요. 웬만하면 잊으시죠. 죄라면 나에게도 많습니다. 마누라 먼저 죽게한 저 역시 큰 죄인이지요. "
"아닙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영역일 뿐입니다. 형제에겐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
하며 늘 갖고 다니는 손가방에서 여러 종류의 약을 꺼내 보여 주었다. 약 봉지에는 수면제와 영어로 쓴 알 수 없는 약, 신경안정제 같았다.
"제가 잠 못 이루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까짓 돈 몇 푼 잃었다고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배신한 죄책감이죠. "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신앙심으로 다져져 심성이 누구보다 고왔으나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리가 있었고, 이것을 그는 종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나 잘 안 되자 심한 갈등을 느끼고 있다. 아무튼 그를 나이롱 신자들이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요즘 보기 드문 신앙의 소유자로 단정 지을만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위로를 했다. 그를 통해 마모된 내 신앙심을 질책하기로 했다. 그날 아침, 나는 사내를 데리고 산책 겸 친구인 K목사와 최 화백에게 인사를 시키고 싶었다. 그때쯤 돌아왔을 것이라 믿고 함께 가자고 했더니 쉽게 응했다.
나는 K목사와 최 화백에게 사내의 신앙인으로서의 경건한 모습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가능하면 함께 친구가 되길 은근히 바랐던 것이다.
K목사는 없었고 최 화백은 화실로 꾸민 마루에서 물감을 개고 있었다.
"최 화백! "
내가 부르자 그는 일손을 놓고 들어오란 손짓을 했다. 곁의 사내를 보자 누구냐는 듯 손짓을 했다.
"기도원에서 사귄 친구야. 인사하게. "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이런 곳에 교수님이 사시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
"교수는 사람이 아닌가요. 초라합니다. "
사내는 마당을 비롯해 화실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표구가 되질 않아선지 마치 초등학생이 멋대로 그려놓은 그림 같았다. 비구상이라 뜻을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화실은 지난 저녁때와는 대조적으로 정리가 돼 있었으나 여기저기 휴지조각이 굴러다니고 담배꽁초에 깨진 커피 잔은 그대로였다.
"이 분은 요즘 보기 드문 신앙인이지. 이 분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어. "
하며 사내를 소개하면서,
"자네도 신앙을 가져 보게. 그림만 그리지 말고 영적인 것도 가져 봐야지."
하자 그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웃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늘 그랬다. 자신의 그림 이 외에는 아무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 예술가의 특이한 기질이 배어 있었다.
사내가 50호쯤 되는 그림을 가까이서 보더니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이 그림들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최 화백이 대꾸했다.
"뜻이 아니라 그림이죠. 부호를 그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
"죄송합니다. 그림에 대해서 무식해서 그랬습니다. "
그림들이 비구상이라서 알아보기 힘든 건 당연했다.
"산입니다 크고 작은 산입니다. "
사내가 신기한 듯 물었다.
"이 근처의 산인가요?"
"근처의 산도 있고 밀리 떨어져 있는 산도 있죠."
"백두산이나 한라산도 있습니까?"
"그건 없습니다. "
최 화백이 사내의 묻는 말이 불쾌해선지 끓어 말했다. 사내가 다소 심드렁하게 발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산을 그리는데 취미가 있으신 모양이죠. "
최 화백이 이번엔 심히 불쾌한 듯 퉁명스레 말했다.
"제가 그리는 그림은 취미가 아닙니다. 취미로 그리는 건 배우는 학생들이나 돈 많은 부녀자들이죠. "
"아, 죄송합니다. "
사내가 최 화백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 채고 얼른 사과를 했다.
"제 생각입니다만 반고호 처럼 해바라기도 그리고 또 느릅나무라든가 하는 것도 그리시죠. 뭐랄까? 그래야만 구색이 맞지 않습니까?"
사내가 말하자 최 화백은 차마 내 앞에서 화를 낼 수 없었던지 비아냥거리며 대꾸했다.
"잡화점처럼요?"
"그런 건 아니고‥‥‥‥"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반고호가 아닙니다. 서울이 싫어서 내려온 그림쟁이로 생각하면 됩니다. 선생의 평가는 자유겠지만 듣기가 매우 거북합니다. "
나는 그들의 대화가 엇비슷하게 나가자 화제를 다른데로 돌렸다. 사내에 대한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것이 고집이 센 최 화백에게 먹혀지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이 분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다 잠깐 이곳에 내려와 쉬고 있는 중이야. 내가 신앙적으로 본받을 분이지. "
내가 사내를 추켜세우자 최 화백이 눈 꼬리를 올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신앙인이란 걸 싫어했다. 틈만 있으면 성직자, 특히 예수를 앞세우고 비행을 저지르는 개신교회의 목사나 전도사 등을 욕하고 있었다.그 자신 언젠가 전도사에게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림을 팔아준다고 해 맡겼더니 모두 떼먹고 도망했던 사람이 하필 전도사였다는 것이다.
내가 사내를 추켜세우자 사내는 겸연쩍은 듯,
"형제님으로부터 말씀 들었습니다. 제 보속이 끝남과 동시에 이곳에다 투자를 좀 할까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화백님을 위해 화실을 꾸며 드리고 싶군요. "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
최 화백이 말을 막았다.
"그러고 싶습니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 헌신하는 분을 보면 존경심 이 앞서서 ‥‥“
하며 사내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그림에 대한 지식을 털어놓았다. 이중섭을 비롯해 요즘 값나간다는 화가들의 이름과 그들과 친분이 있다는 걸 슬쩍 비추기도 했다.
최 화백은 사내가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내게 불쾌한 듯 말했다.
"저 치 혹시 사기꾼 아냐? 낯짝이 어째 범죄형인데"
" 그렇게 보지 말게. 자네는 너무 부정적으로만 봐. "
"아냐. 저 친구 무슨 일 때문에 이곳까지 파고 들어왔을 거야. 자네는 사람을 쉽게 믿는 게 탈이야. 하긴 신앙인이니까. "
"이 사람 예술가가 순진한 데가 있어야지. 내가 본받을 신앙인이야. "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내 말이 틀렸나?"
"잘 들어둬. 내가 대학에서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 인간의 얼굴형을 교수님으로부터 강의를 받은 적이 있지."
"관상학인가?"
"그런 건 아니고.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 자네 이태리의 롬부로조라는 의사 알고 있나?"
내가 모른다고 하자 그는 룹부로조라는 의사에 대해 설명 했다. 사내는 그때까지 오지 않았다.
"생래적(生來的)으로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의 얼굴이 있네, 그걸 범죄형이라고 하지. 눈 꼬리가 위로 추켜지고 수염이 빈약하고, 뒷통수가 짝 째기고, 눈동자가 고정돼 있지 않고‥‥‥‥“
사내가 변소에서 나오자 우리의 대화는 중단됐다. 최 화백이 내게,
"잘 살펴보게. "
했다. 그 말은 사내가 못 알아들은 것 같아 꺼낸 말이었다.
사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쩐지 사내의 얼굴이 몇 군데 닮은 것 같았다. 벗겨진 뒷머리가 고르지 못한 점과 빈약한 수염, 그리고 눈 꼬리가 위로 추켜진 점 등등‥‥‥‥사내가 최 화백에게 말했다.
"기도원에 가서 쉬워야겠습니다. 이 시간만 되면 머리가 쑤시고 배가 아파서요. 누워 있어야만 합니다. 모두가 죄 때문이지요."
사내는 말을 마치고 기도원 내려가는 밭길로 들어섰다.
눈발이 더욱 세차게 날려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내의 뒷모습은 눈발 때문에 금방 보이지 않게 됐다. 그가 보이지 않자 최 화백이 투덜댔다.
"자네 저 사람 언제부터 알았다고 공치사야, 내가 보기엔 형편없는 치 같던데 "
"아냐. 저 사람은 자신의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어. 내가 보기엔 별 것 아닌데도 회개를 하는 것 보면 요즘 보기 드문 신앙인이야. "
"신앙인 신앙인하지 말게, 재수 없게. "
"자네는 저 사람처럼 괴로워한 적이 있나. 지난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고민한 적이 있나?"
나는 사내를 두둔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네. 요즘 같은 세상에 자네 같은 사람도 드물지. "
그는 마당에 널려있는 그림들을 걷어 들였다. 잉크는 말랐지만 화폭이 눈발에 젖기 때문이었다.
"이 그림들은 모두 산이야. 얼른 보면 잘 알 수가 없지. 산이란 말이야. 거짓이 없네. 우리가 태어날 땐 평지에서 낳지만 떠날 땐 모두가 산으로 돌아간다네. 화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서 나는 산이 좋아. "
"강도 있잖나?"
".물론, 그러나 나는 산이 좋아. 산에는 그릴 것이 많잖아. 내가 묻힐 자리도 봐줬네. 저 앞산이네. "
하며 무슨 영문인지 자신이 터 잡이 한 곳으로 가보자고 했다.
"눈이 이렇게 오는데?"
"눈 맞고 산에 오르는 것도 운치가 있네. "
최 화백이 앞장서자 내가 그 뒤를 따랐다. 그는 털벙거지를 푹 눌러 쓴 채 휘적휘적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밭도랑이 분간되지 않았으나 그는 원주민처럼 잘 찾아 걸었다. 오백 미터쯤 가니 산으로 오르는 고샅이 나왔다.
그는 눈에 맞아 당장 부러질 것 같은 잡목 틈으로 한참 가더니 내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쫓아가자 그는 큼직한 말뚝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곳이야. 저 아래 산자락이 비스듬히 보이지. 그 형상이 마치 공룡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최 화백이 가리키는 산자락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해선지 공룡의 꼬리 같아 보였다.
"이곳이 바로 공룡의 알자리일세. 공룡은 알을 낳았을테니까. 알은 생명을 의미하지. 언젠가 다시 태어남을 믿고 있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이야긴가?"
"그럴지도 모르지. "
"언제부터 불교에 심취했나?"
"심취한 건 아니고 심심해서 책을 좀 들여다보았지. 반야 심경이나 법구경 같은 기초적인 것들이지. "
"그런 곳에 윤회(輪廻) 이야기가 나오나?"
"그런 건 아니고 그저 산이 좋다는 것뿐이야. 일테면 나의 종교는 산이라고 할 수 있지. 아까 그 친구는 내가 생각 하는 산을 마구 망쳐 놓았네. "
"그래서 기분이 나빴던 게로군."
"그런 건 아니고. 그 친구는 뭔가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누군가 자기 행동을 칭찬해 주기를 바라고 있음이 틀림 없어.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를 피해 도망을 왔거나‥‥‥‥"
"사람을 의심하는 건 예술가의 자세가 아니란 것 잘 알텐데."
"내 눈에 그렇게 비치는 걸."
"자기 치수로 남을 재지 말게, "
최 화백은 내 말에 빙긋이 웃었다.
내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자네가 묻힐 곳은 어떤가?"
"바로 자네가 서있는 곳이지. 이 자리에 내가 묻히고 그옆에 마누라가 묻히고 그리고 아이들은 그때 가봐야 알겠지. 그런데 자낸 자네 마누라 묘지에 가끔 가보나?"
"요즘은 뜸해."
"그렇겠지. 자주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 거야. "
하며 그는 눈을 헤집고 흙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손바닥에 올려진 흙을 흡족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질이 좋지. "
나는 자신의 좋은 자리까지 미리 봐둔 최 화백이 부러웠다. 그의 여유 있는 삶, 그것은 정신적 인 풍요였다.
나는 가끔씩 장례미사에 참석하고 나서 어쩌다 장지까지 동행할 때가 있었다. 교우들이 세상을 떠날 때였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화장터나 그 외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을 때 과연 내가 묻힐 곳은 어디인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점차 죽음이 먼 데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다가온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배달되는 신문의 부고란에 아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을 때라든가 동창생의 누가 죽었으니 병원 영안실로 오라는 전화가 걸려 때마다 내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아진 살아갈 날들을 나는 어떻게 기획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그것은 아내가 떠나고 나서 더욱 다급하다고 느꼈다.
최 화백이 혼자 중얼 거렸다.
"누군가 죽은 나를 여기다 묻어주면 되겠지. 그럼 내뜻대로 되는 거야. 못다 그린 그림도 그릴테고‥‥“
그의 긴 머리카락에 눈발이 묻어 있어서 더욱 늙어 보였다. 산에 오르자 눈발은 비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하산을 하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열두시가 넘어 있었다.
“찻길이 끊겼을 거야. 내 집에서 자고 내일 가게, 오래간 만에 막걸리도 한 잔 하고‥‥‥‥“
그럴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최 화백의 집으로 가지 않았다.
스데파노란 이름의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기도원으로 가겠어, "
"말리 진 않겠네. "
기도원으로 가니 점심시간이었고 밥상머리에 기도원 식구들이 죽 둘러 앉아 식사 전 기도를 마치고 있었는데 기도는 내가 맨 처음 보았던 백치모습의 처녀가 했다. 이상한 것은 처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게 기도문을 왼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끝마무리는 역시 "아바바"였다.
사내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애는 짧은 기도문 외는 것은 잘해요. 그런데 이상 하게도 아버지 대목만 아바바로 대신해요. " 했다.
그는 내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나 되는 것처럼 주위를 살피다가,
“형제님한테는 믿고 말씀드리는데 저 애는 사실은 내 친구의 딸이죠. 친구가 부탁 하길래 처음 이곳에 올 때 데리고 왔죠. 머리가 조금 이상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황 테레사라고 하는데 맘은 착해요."
하며 말미에 모두가 주님의 뜻이라는 걸 덧붙였다.
"아바바라고 말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친구가 성격이 포악해서 자주 때렸나봐요. 그때 살려달라고 아버지 소리를 얼떨결에 아바바라고 한 것이 굳어져 버린 것 같아요.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서도, "
오후가 되자 눈은 그쳤지만 바람은 더 거세졌다. 강원도 날씨는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서울 가긴 이미 틀린 것 같고, 나는 잠시 내 방에 들어와 누워 있었다. 사실 마땅히 갈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내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친해져서인지 노크도 없이 들어와,
"형제님, 내일 신부님이 오신다는데 고백성사를 청할까 합니다. "
하고 물었다.
"좋으실 대로 하시죠."
"그런데 친부님은 제게 어떤 보속을 줄까 은근히 걱정이 되는데요. "
하며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
나는 그를 위로했다. 그는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음에 틀림없었다. 흔히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갖는 별 것 아닌 일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것일수록 좋죠.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모송을 두 번 외우라든가 성경 구절을 보면서 묵상을 하라는 것보다 더 힘들고‥‥‥‥"
나는 다시 그를 위로했다. 그의 조그만 눈에서 연민의 빛이 역력 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십자가의 길 14처를 모두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기도를 바칠까 합니다. "
"너무 자학적이로군요. "
"아닙니다. 물론 무릎이 까지고 피가 흐르겠죠. 그러나 그 분이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고통을 통해서 그 분을 영접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형제님에게 말씀은 안 드렸지만 밤새도록 생각했죠. "
사내의 말은 아주 단호했다. 사내의 생각이란 이런 것이 었다.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청했다. 의례적이고도 가벼운 보속을 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이 스스로 온몸을 짓밟으면서 죄에 대한 엄격 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사내의 생각은 기도원 식구들에게 대단한 관심꺼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사내에게 의혹을 갖고 있는 이루시아 씨에겐 그를 다시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십자가의 길이 무엇 하는 것인지는 그동안의 신앙 경험에서 모르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루시아 씨는 사내가 1년 간의 보속을 끝내면 자신의 재산을 기도원과 기도원에서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 하겠다고 한 말이 생각나 여간 반갑고 충격적인 말이 아니었다.
"대단한 결심이지요. 스테파노 씨는 은총을 받을 거예요. 이 기도원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일찌기 이런 은총 받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이튿날은 토요일이었고 오후에 그곳 교구에서 신부가 한 명 기도원으로 신자들의 사목을 위해 오기로 돼 있었다. 일요일 미사집전을 위해서였다.
"신부님이 오시기 전에 죄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가를 치루면 고백성사를 받는다고 해도 한결 맘이 편할 거 아니겠 습니까?"
사내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돌기로 한 계획을 준비하기 위해 그날 저녁 식사를 걸렀다. 나는 그 이튿날 아침에 서울로 갈까 생각했으나 사내의 결과를 보기 위해 더 기다리 기로 했다.
그날 밤 저녁 기도시간에 이 반가운(?) 소식을 이루시아가 신자들에게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한두 명의 할머니들 이 이루시아의 말을 듣고 감탄을 하기도 했고 헬레나라는 일흔 살 된 할머니는 눈물까지 흘렀다.
"기도 시간이지만 잠시 광고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기도원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던 스테파노 형제께서 내일 아침 십자가의 길 14처를 무릎으로 기어서 바치겠다고 합니다. 물론 형제님의 육체적 고통을 생각한다면 만류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워낙 형제님의 결심이 확고하셔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형제님과 행동을 함께 할 순 없지만 그분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을 마칠 때까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함께 십자가의 길에 동참 합시다. 이런 일은 기도원이 개원한 이래 제일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이루시아의 말을 듣는 신자들의 모습은 모두 진지했다. 나 역시 소설이나 영화 또는 해외토픽 같은데서나 보았던 장면들 같아 기대가 켰었다.
이루시아는 종점 사진관에 연락해 이 성스런 모습을 사진에 담기로 했다. 기도원 벽에 크게 붙여 놓을 예정이었다.
사내는 자신의 방에서 꼼짝 않고 묵주신공과 성무일도를 외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비쩍 마른 체구와 약간 길쭉한 얼굴 모습이 성물판매소에 걸어둔 아씨씨 지방의 성인 프란치스코와 어쩐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의 오상(五傷)이 박혔던 성인의 모습, 가난과 고행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며 살다가 떠난 프란치스코 성인, 그러나 나는 사내의 티 없는 양심에 더 점수를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작 도박, 낙태, 인색 같은 하찰은 이유로 그런 엄청난 고행을 하는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내 신앙이 보잘 것 없는가. 나는 내 양심의 초라함을 부끄러워했다.
"오셨군요."
사내가 기척을 느끼고 내게 말했다.
"성경 귀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를 따라오려는 자는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오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라 하는 말이죠. 우리는 십자가의 영광만 알았지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몸으로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
내가 곁들였다.
"그 분 역시 기뻐하실 겁니다. "
"겨우 제가 진 죄의 십분의 일쯤 보상받겠지요. 이 일은 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
"그때까진 필요 없을 것입니다 "
"아닙니다. "
그는 손가방에서 수면제를 꺼내더니 소주와 함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잠시 쉬고 싶다면서 미안하지만 나가 줄 것을 원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무척 차가왔다. 나는 그에게 차라리 나의 고백성사를 하고 싶었다.
"스테파노 형제, 나는 솔직히 형제보다 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남들에게 상처를 입힌 것을 생각하면 열 번 아니라 백 번이라도 기어가야 합니다. 형제님은 생각만으로도 용서를 받았습니다. "
"그럴까요?"
"믿으십시오. "
나는 마치 부흥회의 전도사처럼 힘 있게 대답 했다
이튿날 또 눈이 내렸다. 강원도의 겨울 날씨는 구름이 조금 끼면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중풍 걸린 할머니 한 명만을 제외한 기도원의 열댓 명 되는 식구들 모두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제 1처(處)에 모였다. 그리고 종점 사진관의 아저씨가 큼직한 구식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기도원에 높은 사람이 찾아와 기념촬영을 하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자 조금은 어리둥절해 있었다.
스테파노 씨가 기도서와 함께 1처에 서 있었고 이루시아 씨가 기도서를 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낮은 언덕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은 1처에서부터 14처 까지가 5미터 간격으로 꼭 60여 미터 되었다. 그 밑은 모두 잔돌이 깔려 있어 무릎으로 모두 기어간다면 마지막에 뼈가 드러날 것이 분명 했다.
이윽고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기어가기 위한 기본 자세였다. 제1처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는 것을 묵상하는 장면이었다. 이루시아가 큰 소리로 기도를 했다.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의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우리 주 그리스도여 아무런 죄도 없이‥‥‥
이루시아가 기도를 하자 모두 따라했다. 그리고 잠시 묵상을 했다. 눈발이 거세어져 기도하는 사람들의 앞을 가로 막았다.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외우고 5미터 간격의 제2처로 갔다.
스테파노 씨는 무릎으로 기어서 5미터나 되는 2처로 가는데 고통스런 표정이었다. 그는 일부러 내복조차 입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아플 것인가를 생각했다.
저러다가 뼈라도 다치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마치 앉은뱅이가 기어가듯 그렇게 2처로 향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도와준다는 것이 그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2처와 3처 사이에는 더 굵은 돌들이 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제2처 .
예수의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묵상하는 곳이었다. 스테파노 씨의 무릎 바지는 벌써 떨어져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여기에서 주저 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비장한 모습이었다.
그는 가끔씩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주먹만한 눈송이가 그의 창백한 머리 위로 사정없이 떨어졌다가 녹아 얼굴로 흘러내렸다.
마침내 7처, 즉 기력이 다한 예수가 두 번째 넘어진 것을 묵상하는 장소에 와서 그는 기도서에 적힌 대로 넘어졌다. 이루시아가 사진사를 불렀다.
"빨리 찍으세요. 바로 이 장면이에요."
사진사가 후레쉬를 터뜨렸다. 사진사는 속으로 이 사람들이 연극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5처와 6처 사이는 지형 관계로 조금 더 떨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골이 패어져 있었기 때문에 6처를 설치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자갈길이 아니라 바윗길이었다.
그래도 사내는 5처와 6처 사이를 잘도 갔다. 그러나 문제 7처 에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하늘을 우러러 보았는데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애절한 기원이었다.
마침내 일곱 번째 장소에서 그는 두 번째 넘어졌다. 나는 그가 과연 14처까지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걱정을 했다.
저러다가 진짜 쓰러져 죽는다면 큰일이다 싶었다. 그 모습이 마치 예수의 십자가 제7처를 재현했다고, 기적이 일어났다고까지 했다.
사진사가 물었다.
"이것도 찍을까요?"
"찍으세요. 남겨둬야 하니까. "
이루시아가 말했다.
그의 무릎은 엉망이 되었다. 바지는 갈기갈기 및어졌고 무릎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 내렸다. 피는 눈에 스며들어 더욱 진한 선홍빛을 때었다. 마지막 14처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정말로 고꾸라져 일어나지 못했다. 기절을 한 것 같았다.
이루시아 씨가 신자들을 격려 했다.
"예수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 합시다 "
이루시아는 가져온 약과 붕대를 그의 무릎에 말아 주었고 붕대로 감았다.
그리고 그를 일으켰다.
눈은 계속 그의 몸을 덮고 있었다. 눈사람 같아 보였다. 이루시아가 그를 일으켰다.
"자 이 장면도 찍으세요.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아들을 안고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사진사가 그 장면을 찍었다. 그는 사진을 적으면서 속으로,
"별짓 다하는군.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해. 했으나 그것도 일종의 의식으로 알고"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었다.
스테파노 씨는 기절을 한 것 같았다.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테파노 씨가 말했다.
"약 좀 갖다 주세요."
약이라면 수면제가 아닌가.
나는 그의 방으로 뛰어가 그의 손가방 안에 든 약봉지를 가져와 그에게 주었다. 수면제를 먹고 휴식을 취하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은 조금 후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이루시아가 환희에 들떠 신자들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순교자 스테파노와 같아요. "
스테파노란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돌 던진 사람들을 용서하고 죽은 성인(聖人)이었다.
"형제여. "
내가 그에게 말했다.
"장하십니다.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이 순간 주님도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형제님의 보속은 이미 끝난 것과 같습니다. 고백성사를 보더라도 편하게 볼 수가 있을 겁니다.
신부님도 크게 용서하시리라 믿습니다. "
사내가 일어나 앉으며 숨 넘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럴까요?"
그는 주머니에서 청자담배 한 대를 빼어 물었다. 내가 라이타를 켰다.
이때였다.
기도원 정문 앞에 서울서 온 것으로 보이는 봉고차가 한 대 멎었다. 차벽에는 형사기동대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차에서 형사로 보이는 건장한 사내 두 명이 내렸고 그들은 서로 눈짓을 한 채 기도원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두터운 갈색 잠바를 입고 가죽장갑을 꼈고, 또 한 명은 경찰 정복이었다.
갈색 잠바차림의 사내는 이마에 큰 흉터가 있었다. 생긴 것으로 봐 강력계통의 형사 같았다.
갈색 잠바가 의기양양하게 십자가의 길 쪽으로 올라 오고 있었다. 스테파노 씨가 그 사내를 보자 문득 긴장을 한 얼굴이었다.
갈색잠바가 기도서를 들고 서 있는 신자들을 헤집고 들어 섰다.
"여기 탁동태란 사람있죠?"
하고 물었다.
신자들에 가려 스테파노 씨는 보이지 않았다. 이루시아 씨가 사내에게 물었다.
"스테파노 형제 말입니까?"
"스테파노? 이태리 가수가 아니라 탁동태 씨요."
그러자 기진맥진해 숨을 헐떡이는 스테파노 씨가 사내의 눈에 띄었다
"이 사람 여기 있군. 여기서 뭣하고 있는 거야? 상부에서 당신 잡아들이라고 난리가 났어. 소재파악이 안 돼서 얼마나 욕을 당했는지 알아? 기도원에 갔을 것 같아 모조리 뒤져봐도 있어야지. 이런 촌구석에 있을 줄이야 꿈에나 생각 했겠어?"
스테파노 씨는 사내의 말에 울상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공소시효도 얼마 남지 않아 비벼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소. 나나 당신이나 재수 없다고 생각하쇼. "
신자들은 느닷없는 사내의 방문과 또 알수 없는 말에 어리둥절 했다.
"자, 일어나요. 무슨 연극을 했길래 그렇게 무릎이 까졌소. "
사내가 스테파노 씨를 일으켜 세웠다.
"다른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가쇼."
스테파노 씨가 사내에게 속말로 뭐라고 했는지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서울까지 가는 동안 수갑은 채우지 않겠소. 그리고 당신. "
하며 스테파노 씨를 올려다보았다.
"도망가려면 당신 혼자나 갈 것이지 머리도 온전치 못한 다방 아이는 왜 꿰어 차고 가는 거요. 그 애 아버지가 나타나 주인을 고소한다고 난리 났어. 나이 값도 모르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신자들. 그 가운데 이루시아 씨는 왜 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사내는 가법게 그녀를 밀어젖혔다.
스테파노 씨는 더듬거리는 말로써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갈색잠바를 잘 아는 것 같았다.
"박 경사, 잠깐만 눈감아 줄 수 있겠소?"
"늦었어. "
스테파노 씨는 이내 체념했다.
그의 무릎에는 계속 피가 배었다. 붕대 위에 붉은 피가 배어 애처롭게 보였다.
갈색잠바가 그를 부축했다.
"이 친구 땅 사기꾼에다가 히로뽕 밀매 혐의가 있어요. 공소 시효 만기까지가 너무 멀었소. 한 2년 버티면 됐을 텐데. 종교 속으로 파고들어 꼼짝 않고 있으니 우리가 모르는 건 당연하지. 피해 받은 성당 사람들이 알려줘 알았소."
그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 친구 무릎엔 웬 피요?"
나는 사내에게 천주교에서 행하는 십자가의 길을 설명 하려다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내가 그 이야길 한다면 틀림없이 스테파노 씨는 만화속의 주인공이나 어설픈 삼류 개그맨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의 모습은 여지없이 초라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스테파노 씨는 나를 보자 겸연쩍게,
"잘못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잊어버리세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두 팔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갈색잠바가 내게,
"이 친구 복덕방을 했어요. 남의 땅 챙겨먹을 때 쇼를 했거든요. 성모상을 사무실에 모셔놓고 기도를 드리곤 했어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죠. 신자니까 믿어도 좋다는 이야기죠. 안 그렇소, 노형?"
다시 그가 스테파노 씨에게 말했다.
"청자를 피우시더군. 돈도 떨어졌겠지. "
갈색잠바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스테파노 씨의 손에 쥐어 주었다.
"요즘도 약 먹어?"
스테파노 씨가 대답했다.
"끊으려고 하는데 힘들어요. "
"히로뽕 오래하면 죽어. 오래 살아야지. 그런데 이 사람 이름이 영어로 돼 있던데. 스테파노? 가수 이름 같군. 아냐 김 추기경 이름 뒤에 붙이는 거, 그걸 호라고 하던가?"
나는 모든 걸 짐작했다.
스테파노 씨는 공소시효를 피하기 위해 이곳에 숨어들었고, 여기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기도원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어 놔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사내가 속인 것은 기도원 사람들이 아닌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
결국 그의 고백성사 내용은 갈색잠바가 쓰는 조서기록에 모두 나타날 것이다.
인간의 법을 어긴 것을 그는 엉뚱하게 하늘로 돌렸던 것이다.
이야기꺼리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으나 이번 이야기꺼리는 그리 즐겁지가 않았다. 형사기동대 차가 종점을 벗어나고 있었다. 눈발은 계속 날렸다.
끝
첫댓글 중대문학에 올려주세요 부탁해요
약력 1944년 서울 용산출생
중앙대 문과대 국문학과 69년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예춘추 문학상(2020년 가을)
예, 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