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북쪽 큰 문 숙정문과 동쪽 작은 문
혜화문 구간 밖 첫 동네를 성북동이라 불렀다.
성북동은,
근현대 문학과 예술의 고향이라 불릴 만큼 수많
은 문인, 예술가가 이곳에 깃들였으니 대충 나열
해 본다.
시인: 김광섭. 김일엽. 김기진. 한용운. 조지훈.
백석.
소설가: 염상섭. 이태준. 박태원. 조정래.
작곡가: 채동선. 윤이상.
화가: 김용준. 김기창. 박래현. 변종화. 김환기.
김향안. 장승엽.
그리고, 오세창. 이홍근.전형필. 최순우. 임종국.
이들이,
어쩐 일로 성북동에 이다지 주옥같은 작품을 창
작해 내고 문예의 혼을 남겼는지 아니, 아직도
지독한 생애가 깃들었는지 찾아보지 않는 것은,
여행을 취미로 하는 이의 도리가 아닐 테다.
해서,
그제(2022.8.28 일요일) 손주와 성북동 역사탐방
에 발을 들여 놓았다.
성북동하면,
우선 김광섭 시인의 그 유명한 ‘성북동 비둘기’가
떠올라 거기부터 찾아보는 게 순서이겠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골목길에 45년
된 옛날 중국집이 나온다.
아무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역사탐방이라해도 ‘성북동
도 식후경’이기에 옛날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켰
다.
“얘들아 맛있니?”
“네”
“여행은 먹는 재미가 반이란다”
“그건 할아버지가 지어낸 말 아니예요?”
“쫄쫄 굶어가면서는 힘겹기만하지 재미가 없거
든”
연거푸 맛있다고 입맛을 다시는 손주들을 이
끌고 3분쯤 올라가니, 도로가에 ‘김광섭 집터’ 푯
말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으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원익 스카이빌(성북동
168-34) 이 보이는데 김광섭(1905~1977) 시인
이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시인이 살던 집
시 〈봄〉, 〈생의 감각〉, 〈성북동 비둘기〉 등은,
김광섭 시인이 여기 성북동에 살면서 쓰거나 구
상한 작품들이다.
김광섭 시인은,
시인으로서 흔히 가질 수 없는 독특한 이력을 가
지고 있는데 광복이후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한용운 시인의 ‘심우장’을 지나 골목길로 올라
가면 북정 성곽마을 달빛스케치 ‘월월축제 2009’
의 일환으로 단장한 ‘비둘기 공원’이 나온다.
작은 공원인데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
때문에 비둘기 공원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시인이,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1960년대 후반 성
북동 집 마당에 앉아 하늘을 돌아 나가는 비둘기
떼를 보고 떠올렸다.
성북동 산과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둥지를 빼앗긴
비둘기가 처량해 저렇게 한탄했구나.
역시,
시인은 시인이다.
우리네는 구구대는 비둘기를 보고 고작 새우깡이
나 던지니 말이다.
‘성북동 비둘기’는 재개발로 인한 도시화와 문명화
의 이면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