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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9, 2013. John 11:40. The unsurpassed intimacy of tested faith 단련된 믿음에 근거한 하나님과의 최상의 친밀한 관계
40, Jesus saith unto her, Said I not unto thee, that, if thou wouldest believe, thou shouldest see the glory of God?
40.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말하기를, 네가 믿고자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
(요한복음 11:40)
(2031) (상식과 믿음은 자연의 삶과 성령의 삶만큼이나 다릅니다. 당신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상식이 ‘이것은 거짓이야’라고 말할 때,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시험을 인내하며 승리자로서 과감하게 나올 수 있습니까?) Every time you venture out in your life of faith, you will find something in your circumstances that, from a commonsense standpoint, will flatly contradict your faith. But common sense is not faith, and faith is not common sense. In fact, they are as different as the natural life and the spiritual. Can you trust Jesus Christ where your common sense cannot trust Him? Can you venture out with courage on the words of Jesus Christ, while the realities of your commonsense life continue to shout, “It’s all a lie”?
(2032) (나의 믿음과 상반되는 상황과 부딪힐 때마다 나의 믿음은 강하여 지거나 실패하여 무너집니다. 나의 힘이 말라지고 나의 미래상이 어두워질 때에도, 나는 그러한 믿음의 시련을 견뎌내어 승리합니까 또는 패배하여 뒤돌아섭니까?) When you are on the mountaintop, it’s easy to say, “Oh yes, I believe God can do it,” but you have to come down from the mountain to the demon-possessed valley and face the realities that scoff at your Mount-of-Transfiguration belief (see Luke 9:28-42). Every time my theology becomes clear to my own mind, I encounter something that contradicts it. As soon as I say, “I believe ‘God shall supply all [my] need,’” the testing of my faith begins (Philippians 4:19). When my strength runs dry and my vision is blinded, will I endure this trial of my faith victoriously or will I turn back in defeat?
(2033) (믿음은 시련을 통하여 확실하게 됩니다. 시련과 도전을 통하여 진실한 믿음이 드러나거나 거짓된 믿음이 없어지거나 합니다.) Faith must be tested because it can only become your intimate possession through conflict. What is challenging your faith right now? The test will either prove your faith right, or it will kill it. Jesus said, “Blessed is he who is not offended because of Me” (Matthew 11:6). The ultimate thing is confidence in Jesus. “We have become partakers of Christ if we hold the beginning of our confidence steadfast to the end ...” (Hebrews 3:14).
(2034) (주님이 당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의지하세요. 믿음이란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시험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지속적인 시험을 당하나 강하고 담대하세요.) Believe steadfastly on Him and everything that challenges you will strengthen your faith. There is continual testing in the life of faith up to the point of our physical death, which is the last great test. Faith is absolute trust in God—trust that could never imagine that He would forsake us (see Hebrews 13:5-6).
(2035-오늘의 idiom)
(때리다, 넘어지게 하다) send someone/something flying (2) = to hit or knock someone/something over. As he fell backwards, Wilcox sent the furniture flying.
ㆍ신생 기업 - startupㆍ기업 인수 - acquisitionㆍ인재 영입에 무게를 둔 기업 인수 - talent acquisitionㆍ(무게를 줄이기 위해) 버리다 - jettison
구글, 페이스북, 징가(Zinga, 소셜 게임 회사) 등은 모두 ‘뛰어난 인재가 바로 경쟁력’이라는 자세로 직원 영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이들이 영입하려는 대상은 경쟁 회사 직원만은 아니다. 갓 시작한 신생 기업(startup)에 근무하지만 탁월한 실력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아주 마음에 드는 직원이 여러 이유로 이직이 힘들 경우에는, 아예 그 기업을 통째로 인수해 인력들을 자사의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인수한 회사는 문을 닫아 버리기도 한다. 즉, 기업 인수의 목적이 유능한 직원의 영입인 셈이다. 기업을 인수함에 있어서 해당 기업의 인재 영입에 무게 중심을 둔 인수를 소위, ‘talent acquisition(인재 영입을 위한 기업 인수)’라고 한다.
[예문 1] Zynga announced another talent acquisition: a mobile software developer. 징가는 또 다른 인재 영입을 위한 기업 인수를 발표했는데, 대상은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이다.
[예문 2] Facebook made a talent acquisition, a two-person New York-based database startup. 페이스북은 뉴욕에 있는 2인이 운영하는 데이터베이스 신생 기업에 대해 인재 영입을 위한 인수를 했다.
기업을 인수했지만 인력만 쓰고 원래 하던 비즈니스는 버려 버린다는 의미로 ‘jettison’이라는 동사를 쓸 수 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항공기나 선박이 운행 중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엇인가를 버리다’는 의미이다.
[예문] He jettisoned the safe career ladder to found his own business. 그는 자신의 사업을 하기 위해 그 안전한 직업을 버렸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과거 영국에서는 'flame'을 '불꽃, 화염' 외에도 '애인, 연인(sweetheart, partner, lover)'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old flame'은 '예전에 사귄 연인'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840년대에 등장한 말로, 요즘에는 이 표현보다는 'ex-boyfriend' 또는 'ex-girlfriend'라는 일반적인 말을 사용합니다.
[예문 1] She rekindled a romance with an old flame. (그녀는 옛 연인과 다시 사귀기 시작했다.)
[예문 2] I saw my old flame with her new lover. (옛 애인이 새로운 연인과 함께 있는 것을 봤어.)
ㆍ I can tell he fell for Tina.
(그는 티나에게 반한 게 분명해.)
ㆍ I think of Tom as quite a catch for Ellen.
(톰은 엘렌에게 정말 멋진 상대야.)
ㆍ Hasn't Arron popped the question yet?
(애런이 아직도 청혼을 안 했단 말이니?)
ㆍ I found she was cheating on me.
(그녀가 바람 피웠어.)
ㆍ Ben enjoys playing the field too much.
(벤은 여러 여자와 만나는 걸 너무 즐긴다고.)
She sold her show out in every city that she went to. sell something out 은 ‘모두다 팔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I was able to buy the car for a song. buy something for a song 은 ‘무엇인가를 싸게 사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He was _____. Everything I bought from him was no good at all. a snake oil salesman 은 가짜약이나 정작은 쓸모없는 물건을 파는 사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China says it plans to its trade surplus this year by importing more and its exports. Well, that’s according to the country’s commerce minister, who says a foreign trade may even cause a trade deficit in a few months. Importing more would help strengthen domestic consumption, which is a key goal in China’s new five-year plan. China’s trade surplus was $182 billion last year, down from a record 296 billion in 2008.
중국 정부가 올해 수입은 늘리고 수출은 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무역수지 흑자 폭을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중국 상무부장의 발언에 따른 것인데, 그는 대외 무역 둔화세로 몇 개월 후에는 무역수지 적자가 야기될 가능성까지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수입 증대 정책으로 중국 내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새로운 5개년 계획의 핵심 목표입니다. 지난해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는 1천 82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의 2천960억 달러보다 감소했습니다.
* trade surplus 무역 수지 흑자 cf. surplus 흑자, 과잉1) shrink 줄어들게 하다, …을 수축시키다2) import 수입하다 3) stabilize …을 안정시키다 4) export 수출; 수출하다 5) slowdown 둔화, 감속 6) trade deficit 무역 수지 적자 7) strengthen 강화하다, 증강하다 8) domestic consumption 국내 소비, 내수9) key goal 주요 목표, 핵심 목표 10) China's new five year plan 중국에서 2016년까지 향후 5년 간 시행할 경제•사회 발전의 청사진을 대내외에 제시한 12차 5개년 규획(계획)을 뜻함. 향후 5년간 연평균 성장률 목표를 7%로 제시하고, 정보화와 공업화의 조화, 전략적 신흥산업 육성, 도농간, 지역간 균등 발전 촉진 등을 구체적 목표로 세웠다.
[acquire(인수하다) vs. merge(합병하다)]
1. merge (주로 자동사) 특정 목적을 위해 함께 하나로 합쳐지다, merge with
▪ The bank announced that it was to merge with another of the high street banks. (그 은행은 시내 중심가의 다른 은행과의 합병을 할 예정이었다고 발표했다.)
▪ proposals to merge the three existing health authorities into one (3개의 기존의 보건 당국을 하나로 합치는 제안)
2. acquire (타동사) 구입이나 받음으로써 얻다, 획득하다
In 2004, the business was acquired by a Dutch company. (2004년에 그 사업체는 독일 회사에 의해 인수되었다.)
ㆍtolerance - 관용, 아량, 톨레랑스ㆍzero tolerance - 절대 허용하지 않음ㆍtolerance to alcohol - 술에 대한 내성ㆍtolerance to cold - 추위에 대한 내성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이란, ‘타인의 생각과 방식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데, 거리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을 욕하는 대신 톨레랑스 측면에서 ‘버리는 사람이 있으니 청소부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식의 너그러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관용, 아량, 톨레랑스’를 의미하는 단어는 ‘tolerance’이다. 참고로, 부시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테러범과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적 등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역설하며 자주 활용하던 표현 중 하나가 ‘zero tolerance’인데, 이것은 범죄나 반사회적인 행동 등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예문] They have a reputation for tolerance towards sex scandals. 그들은 성 스캔들에 대해 너그럽다는 평판이 있다.
tolerance의 다른 의미로 무엇인가를 견디는 ‘내성(耐性)’이 있다. 술에 대한 저항력은 ‘tolerance to alcohol’, 추위에 대한 내성은 ‘tolerance to cold’라 할 수 있다.
[예문] He wants to know how to build up their tolerance to alcohol. 그는 어떻게 하면 술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 통화 기금)는 세계 무역 안정을 목적으로 설립한 국제 금융 기구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97년 외환 위기로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고 총 10차에 걸쳐 195억 달러를 차입했다. 원래 상환은 2004년이었지만 외환 보유액 수준이 크게 증가하여 2001년에 전액 상환한 바 있다. 세계 경제 정책을 좌우하는 IMF의 총재는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존경 받는 자리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프랑스 출신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Domonique Strauss-Khan) 총재가 투숙한 호텔의 여종업원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올해 62세로, 프랑스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었다. 그는 경제 위기 때 IMF를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선 후보 1순위로 거론될 만큼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의 정치 인생은 막을 내리게 됐다. 잡범들과 함께 재판장에 나온 스트로스칸 총재의 모습은 전세계적으로 충격을 줄 만한 광경이었다. 뉴욕 주 법에 따라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칸 총재에게 최장 45년 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고 한다.
Ѿ After Jesus miraculously fed 5,000 people with five loaves and two small fish (John 6:1-13), the crowd followed Him wanting more (vv.24-26). The Lord told them not to work for physical food that spoils, but “for the food which endures to everlasting life, which the Son of Man will give you . . . . I am the bread of life. He who comes to Me shall never hunger, and he who believes in Me shall never thirst” (vv.27,35).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기적적으로 먹이시자(요한복음 6:1-13) 군중들은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예수님을 좇았습니다(24-26절). 주님은 그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27,3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Ѿ As followers of Jesus, we should help those who lack adequate physical nutrition. And with all, we can share the good news that our hunger for inner peace, forgiveness, and hope can be satisfied by knowing Christ the Lord.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적절하게 영양섭취를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내적 평화, 용서, 소망에 대한 굶주림도 채울 수 있다는 복음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Ѿ Jesus Christ, the bread of life, invites us to come to Him for His feast for the soul, urging us to eat until we are full.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주님께로 오라고 초대하시고, 영혼의 잔치에 배부를 때까지 먹으라고 권하고 계십니다.
Ѿ Thank You, Jesus, that You call out to those
who are weary and thirsty and say, “Come to Me
and be filled.” We are hungry and are thankful
that You satisfy us. Amen.
예수님, 지치고 목마른 자들을 부르시며
“내게로 와서 맘껏 먹으라”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배고픈 우리를 만족시키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Ѿ There is a longing in every heart
that only Jesus can satisfy.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예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갈망이 있다.
Ѿ (내가 나의 죄를 깨닫고 주님 앞에 내 놓으면 주님이 찾아오시나, 내가 감추고 있는 곳에서는 주님은 오시지 않으십니다.) Have I ever come to the point in my life where I can say, “I indeed ... but He ...”? Until that moment comes, I will never know what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means. I indeed am at the end, and I cannot do anything more—but He begins right there—He does the things that no one else can ever do. Am I prepared for His coming? Jesus cannot come and do His work in me as long as there is anything blocking the way, whether it is something good or bad. When He comes to me, am I prepared for Him to drag every wrong thing I have ever done into the light? That is exactly where He comes. Wherever I know I am unclean is where He will put His feet and stand, and wherever I think I am clean is where He will remove His feet and walk away.
Ѿ (회개하면 나는 정말 아무런 가치도 없는—주님의 신들메를 들기에도 부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이 완전한 회개에 이르렀을 때 주님이 당신에게 오십니다. 아직도 당신이 주님의 신발을 나르기 위해 힘을 쓰고 있고, 당신이 주님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이 당신에게 오시지 않는 것은 당신이 주님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Repentance does not cause a sense of sin—it causes a sense of inexpressible unworthiness. When I repent, I realize that I am absolutely helpless, and I know that through and through I am not worthy even to carry His sandals. Have I repented like that, or do I have a lingering to carry His sandals. The reason God cannot come into my life is that I am not at the point of complete repentance.
Ѿ (세례 요한이 말한 성령의 세례란 영적 세례의 경험을 말하기 보다는 주님께서 직접 성령을 보내시는 일을 말하며,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 우리가 유일하게 경험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서 참으로 값어치가 없는 것을 의식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fire.” John is not speaking here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as an experience, but as a work performed by Jesus Christ. “He will baptize you ... ” The only experience that those who ar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are ever conscious of is the experience of sensing their absolute unworthiness.
Ѿ (당신의 능력의 끝에서 당신이 당신 자신을 놓게 될 때, 당신은 주님을 만나고 그 곳에서부터 주님이 모든 일을 하기 시작하십니다.) “I indeed” was this in the past, “but He” came and something miraculous happened. Get to the end of yourself where you can do nothing, but where He does everything.
Ѿ (오늘의 idiom)
(해로움을 방지하고 없애다) scotch the snake = to make something (a trouble, false story or danger) harmless or useless. “I want you to scotch the snake by issuing a memo immediately to say it’s not true.”
No one wants to go through life on a selfish, heartless road. But it can happen unless we consider where we are going in life and ask the Lord for His direction. May He give us grace today to embrace His Word and follow Him with all our hearts. 어느 누구도 이기적이고 냉혹한 삶의 길을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도 않는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A: Are you using a smart phone? I’m hooked on mine.B: I’ve got the bug, too. I’m always looking for cool apps.A: I’ve uploaded a few losers, but it’s a barrel of laughs, isn’t it?B: Absolutely! 전화 없이는 이제 못 살아.[해설강의 : 태인영, John Valentine]
A: 스마트 폰 사용해? 난 완전 빠져 있어.B: 나도 만만치 않아. 항상 좋은 앱있는지 검색해 봐.A: 몇 개 실패한 것도 있지만, 엄청 재미있지 않아?B: 당근이지. My phone has become my “right arm”.
[Additional Expressions]* Are you using a smart phone? – Do you have a smart phone? / Are you smart-phoning?*I’m hooked on mine. – I love mine. / I’m addicted to my smart phone.*I’ve got the bug, too. – I’m in the same boat as you are. / I’m right there, too.*I’m always looking for – I’m continuously searching to find / I’ve always got my eye out for*cool apps – useful applications / apps I can use / applications I would enjoy*I’ve uploaded a few losers – I have experience with a couple junk apps / Some of my apps are dumb*it’s a barrel of laughs – it’s a lot of fun / all around, it’s a fun experience*Isn’t it? – Don’t you think? / Don’t you agree? / Wouldn’t you say? / Right?*Absolutely! – No doubt about that! / That’s the plain truth! / I’m with you on that!*My phone has become my “right arm”. – I now use my phone for everything. / I’m never without my phone.
Some companies have a customer service line in the evening, but Benson is one of the____ to have 24-hour customer service line. 몇몇 회사에 야간 고객 서비스가 있지만, Benson은 24시간 고객 서비스를 하는 몇 안 되는 회사 중의 하나이다. on of the few
U.S.-Mexico MeetingFirst up, Mexican President Felipe Calderon travels north of the border for a two-day visit to the U.S. He's scheduled to meet with Americanleaders, leaders in Congress, and he's meeting with President Obama, the two leaders getting together yesterday at the White House. They talked about immigration policies, organized crime and violence along the U.S./Mexico border. And of course, theytrade. Mexico is America's third-largest trading partner. And it's the second-largest market for Americanthat get sold outside the U.S.
미국과 멕시코 정상회담첫 소식은 멕시코의 필리페 칼데론 대통령이 이틀 간 미국 방문을 위해 북쪽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입니다. 칼데론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 리더들, 미 의회 지도자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두 정상은 어제 백악관에서 만났는데, 이민 정책, (멕시코의 마약 관련) 조직 범죄,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따라 발생하는 폭력사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물론 양국의 무역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멕시코는 미국의 세번 째 큰 무역 상대국입니다. 멕시코는 미국 상품이 미국 영토 밖에서 판매되는 두 번째로 큰 시장이기도 합니다.
[Vocabulary]1) awesome 멋진2) be dedicated to ~에게 바치다3) two-day visit 이틀 간의 방문4) get together 모이다5) immigration policy 이민 정책6) trading partner 무역 상대7) Read Across America 로드 어크로스 어메리카, 미국에서 진행되는 독서 강조 캠페인8) bilingual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9) Spanish 스페인어
'cut the mustard'는 '성공하다'는 의미이며, '기대에 부응하다'로 확대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겨자씨는 작고 매끈하여 칼로 자르기 어렵고, 또 겨자풀 역시 매우 억세기 때문에 ‘겨자를 자른다’는 걸 매우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작가인 오 헨리는 자신의 작품에서 "So I looked around and found a proposition[a woman] that exactly cut the mustard.(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딱 맘에 드는 여자를 발견했어요."라고 적었습니다. 또한 'I'm the mustard in the salad dressing.(나는 샐러드 드레싱 중 머스터드입니다.)'라는 말을 통해 mustard가 '최상의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cut above(평균 이상의 것, 좋은 것)'이라는 표현처럼 'cut the mustard'의 'cut'도 ‘좋은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cut the mustard' 대신 구어체로 'cut it'도 많이 사용하는 추세입니다.[예문 1] Peter is hoping he can cut the mustard in the championship game. (피터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잘해내기를 바라고 있다.)[예문 2] Many fans believe that the pairing of Joe and Tim will cut it. (많은 팬들이 조와 팀의 조합이 기대에 부응하리라고 믿고 있다.)
19세기 cowboy들이 쓰던 말로, "something was the proper mustard."라고 하면 "It was OK."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cut the mustard라는 표현으로 변해 '기대에 부응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美 단편소설가 O. Henry는 자신의 저서에서 '귀여운 여자'를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해 "She cuts the mustard all right.(그녀의 행동은 모두 맘에 들었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밖에도 mustard를 사용한 표현이 몇가지 더 있습니다. as keen as mustard라고 하면 겨자의 매운맛을 빗대어 '매우 열심이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표현인 a grain of mustard seed는 한알의 겨자씨, 즉 '크게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작은 일'을 의미합니다.
또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화상ㆍ실명ㆍ질식사를 초래하는 독가스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눈이나 허파에 들어가 격자와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해서 mustard gas라고 불렀습니다.
■ Over the years, thinkers from Newton to Einstein to Hawking to Greene have spent the greater portion of their lives trying to figure out how the universe works—and they have proposed fascinating theories.
지난 오랜 동안, 뉴턴에서 아인슈타인, 호킹, 그린에 이르는 사색가들은 우주가 어떻게 운행하는지를 밝히기 위해 자신들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아주 매력적인 이론들을 제시하였습니다.
■ In reality, for any theory to explain everything in the universe adequately it must begin and end with God. “All things . . . visible and invisible” (Col. 1:16) have their origin in Him and exist for His glory (Ps. 72:19). The first few verses of John’s gospel tell us that our Lord created the universe —and that without His hand of creation nothing would exist.
그러나 실제로는, 우주안의 모든 것을 적절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끝을 맺어야 합니다. “만물......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골로새서 1:16)은 하나님께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시편 72:19). 요한복음의 처음 몇 구절은 우리 주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주님의 창조의 손길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That’s why when we consider the world and everything in it, we can exclaim with Isaiah: “The whole earth is full of His glory!” (6:3). Praise His holy name!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이사야와 함께 다음과 같이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6:3).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십시오!
■ Our God has fashioned earth and sky,
Sun, moon, and stars beyond compare;
His workmanship we can’t deny—
His fingerprints are everywhere.
우리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지으셨네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해와 달과 별들을
하나님의 손자국이 어디에나 있기에
그분의 솜씨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네
■ All creation is an outstretched finger pointing toward God.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는
펴진 손가락이다.
■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that are
in heaven and that are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Colossians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과
—골로새서 1:16
■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생명과 삶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새 생명은 우리 안에서의 의식적인 후회와 무의식적인 거룩함으로 나타납니다.) The answer to Nicodemus’ question,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is: Only when he is willing to die to everything in his life, including his rights, his virtues, and his religion, and becomes willing to receive into himself a new life that he has never before experienced (3:4). This new life exhibits itself in our conscious repentance and through our unconscious holiness.
■ (나의 주님에 대한 지식은 내적인 영혼의 감지에 의해서입니까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입니까? 주님이 나의 개인적인 구주가 되시는 주님으로서, 나와 주님이 하나되게 하는 그 무엇이 나의 삶 속에 있습니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주님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But as many as received Him ... ” (John 1:12). Is my knowledge of Jesus the result of my own internal spiritual perception, or is it only what I have learned through listening to others? Is there something in my life that unites me with the Lord Jesus as my personal Savior? My spiritual history must have as its underlying foundation a personal knowledge of Jesus Christ. To be born again means that I see Jesus.
■ (나는 하나님 나라의 증거만을 찾고 구하고 있습니까 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다스림을 깨닫고 있습니까?) “ ... unless one is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John 3:3). Am I seeking only for the evidence of God’s kingdom, or am I actually recognizing His absolute sovereign control? The new birth gives me a new power of vision by which I being to discern God’s control. His sovereignty was there all the time, but with God being true to His nature, I could not see it until I received His very nature myself.
■ (내가 주님 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있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삶을 순종할 때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Whoever has been born of God does not sin ... ” (1 John 3:9). Am I seeking to stop sinning or have I actually stopped? To be born of God means that I have His supernatural power to stop sinning,. The Bible never asks, “Should a Christian sin?” The Bible emphatically states that a Christian must not sin. The work of the new birth is being effective in us when we do not commit sin. It is not merely that we have the power not to sin, but that we have actually stopped sinning. Yet 1 John 3:9 does not mean the we cannot sin—it simply means that if we will obey the life of God in us, that we do not have to sin.
■ (오늘의 idiom)
(빚이 증가하다) run up an account = run up a bill or a debt = to increase the money someone owes. “You can also run up a bill or a debt, which meas the same as run up an account, Mr Long does this (very easily, I might add!) by using credit cards.
The movie __(laid an egg)___ at the box office. lay an egg 는 ‘공연 등을 망치거나 흥행에서 실패하다’는 의미를 가진 idiom 이다.
Lebanon is _(treading on eggs)____ as fears about another civil war rises. tread on eggs 는 ‘위험한 입장에 처하다’ ‘신중히 처신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idiom 이다.
I want my pay right now and I’m not going to (take eggs for money). take eggs for money 는 ‘돈을 지급하는 대신 나중에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들이다’라는 의미의 idiom 이다.
Now to one of the more popular stories on CNN.com that actually has to do with this predator, the bull shark. Australian are saying that they have reason to believe that some sharks may be after studying the sharks’ retinas. That’s part of the eye that measures the color vision. The study’s ways to reduce shark attacks by equipping swimmers with some special attire.
이제 전해드릴 CNN.com의 인기 기사 중 하나는, 사실 이 포식자, 즉 황소상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호주 연구진들에 따르면 일부 상어류가 색맹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신빙성 있는 근거가 있다고 합니다. 상어의 망막을 연구한 끝에 나온 것인데요. 망막은 눈의 한 부분으로 색을 식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상어의 공격을 줄일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수영객들에게 특수 복장을 착용하게 함으로써 말입니다.
* shark 상어 cf. bull shark 황소상어: 전세계의 따뜻하고 얕은 해안에서 서식하는 상어로,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 잦은 가장 위험한 상어류이다.* colorblind 색맹의, 색각 이상의1) have to do with …와 관련[관계]이 있다2) predator 약탈자, 포식자; 육식 동물3) have reason to …할 이유가 있다, …함은 당연하다4) retina (눈의) 망막5) measure 재다, 측정하다6) color vision 색 식별, 색각(色覺)7) explore (문제 등을) 조사하다, 탐구하다8) equip 설비하다, 장비를 갖추게 하다9) attire 복장
inflict ▶ (남에게) 〔타격·고통 따위〕를 가하다, 주다. 영문정의 ▶ to impose (something unpleasant, eg a blow, defeat or pain) on them, or make them suffer it.News organizations routinely run photographs of victims of war and terrorism because these images convey senseless cruelty inflicted on innocents.보도기관에서는 전쟁이나 테러리즘 희생자들의 모습이 무고한 존재에 가해지는 잔혹성을 보여 준다는 이유로 항상 그러한 모습들을 방영한다.
'crowd-pleasing'은 특별한 숙어가 아니라 'crowd(군중)'를 'pleasing(기쁘게 하는)'이 하이픈으로 합쳐져 하나의 형용사처럼 사용되어 '군중을 즐겁게 하는, 대중을 기쁘게 하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표현입니다. 이런 형태의 표현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cost-effective (비용에서 효율적인),' 'environment-friendly (환경친화적인)' 등과 같은 표현들이 있습니다.[예문] Mr. Johns gave a crowd-pleasing speech. (존스 씨는 대중을 즐겁게 하는 연설을 했다.
A: I feel like a drive out from under the city lights. B: 근사한데. but it’d take an hour to get anywhere else.A: Don’t be like that. Dig deep and find the romanticist in you. B: Yes Dearist. I shall follow wherever you lead.
A: 도시의 불빛 아래서 벗어나 교외로 드라이브 나가고 싶어.B: Sounds peachy. 하지만 어딜 가든 한 시간은 걸릴텐데.A: 그렇게 초치지 마. 네 자신 깊숙이서 로맨티스트를 찾아보라구.B: 네, 그러죠. 어디든 따라가죠.
[Additional expressions]*I feel like a drive– I’m up for a ride / I’m in the mood to go for a drive / I’d like to go driving*out from under the city lights– away from the city / out into the countryside*Sounds peachy– Sounds great / That seems like a cool idea / I like the sound of that*It’d take an hour to get anywhere else.– To go somewhere else would take about an hour.*Don’t be like that.– Don’t be so negative. / Try not to think that way.*Dig deep– Search hard / Try with all your power / Give it your best effort*Find the romanticist in you.– Look for that romantic part of your soul. / Discover romance.*Yes Dearist.– OK, my love. / Your wish is my command, my loving soul mate.*I shall follow wherever you lead.– You point me in the right directions and I shall go there.
ㆍ넌더리가 나다 - be sick and tired of, be fed up with
ㆍ(너무 과해서) 넌더리가 나는, 신물이 나는 - cloying
넌더리가 나다’라고 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이 있는데, ‘be sick and tired of’와 ‘be fed up with’라는 것이 있다.
[예문 1] I’m sick and tired of having to trash junk mail every day. 나는 매일 우송되는 광고지들을 버려야 하는 게 넌더리난다.
[예문 2] Residents are fed up with the disturbance caused by the nightclub. 주민들은 나이트클럽 때문에 발생하는 소동에 넌더리가 난다.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로 cloying이라는 형용사도 있다. 이 단어는 어떤 대상의 한 특징이 과도하게 많아 넌더리가 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예문] I thought the movie would be an action-adventure, but it turned out to be a cloying romance. 난 그 영화가 액션 어드벤처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넌더리 나는 사랑 이야기였어.
■ The same was true for Saul of Tarsus. As a young man, his goal was to destroy the followers of Jesus (Acts 7:58–8:3; Gal. 1:13). But after his conversion, he became the apostle Paul, whose mission was to multiply them. As he journeyed to Jerusalem, facing prison and hardship, Paul said,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Acts 20:24 niv).
다소의 사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년이었던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사도행전 7:58-8:3; 갈라디아서 1:13). 그러나 회심한 후에 그는 바울사도가 되었고, 그의 사역은 제자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여행 중에 감옥에 갇히고 고난을 겪을 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 24)고 말했습니다.
■ When our goal is to honor the Lord, He guides and guards us each step of the way. Whatever our hopes and dreams may be, when we place them in God’s hands we know that everything, including setback or success, is under His control.
우리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할 때, 주님은 우리가 가는 길목마다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십니다. 우리의 희망과 꿈이 무엇이든 그것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실패나 성공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When we give our hopes and dreams to God
And then leave them in His hand,
We can trust His love and care for us
To fulfill what He has planned.
우리의 희망과 꿈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네
■ Live the Christian life in the same way
you began it—by trusting Christ.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삶을 꾸준히 살라.
■ So that I may finish my race with joy, and the ministry which I received from the Lord Jesus, to testify to the gospel of the grace of God. —Acts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사도행전 20:24
■ Sometimes sin is outside. The injustice of others causes our tears to fall like rain, preventing us from seeing the goodness of God. Sin of any kind keeps us from seeing the wonder and glory of life as God designed it.
다른 사람들의 불의가 우리로 하여금 눈물의 비를 쏟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못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듯 죄는 종류에 관계없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설계하신 삶의 경이와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 For now, even though “we see things imperfectly, like puzzling reflections in a mirror” (1 Cor. 13:12 nlt), we see enough to know that God is good (Ps. 34:8). The many wonderful things that God has revealed will help us to forsake sin and work to minimize its consequences in the world.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지만”(고린도전서 13:12),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달을 만큼은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시편 34:8). 하나님이 보여주신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우리가 죄를 떨쳐버리고 이 세상 속에서 죄의 영향력을 힘써 줄여나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 Lord, improve our vision. Clear the fog that
comes from self-centered thinking. Help us
to uphold justice, to offer comfort to others,
and to wipe away the tears that have been
left by the storms of life.
주님, 우리의 시야를 밝게 하시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에서 생겨나는 안개를 거두어주소서.
우리를 도우셔서 정의를 옹호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삶의 고난으로 흘린
눈물을 닦아주는 자 되게 하소서.
■ The only way to see life clearly is
to focus on Christ.
삶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 (주님의 무죄함, 단순함, 하나님과 하나됨이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나요?) If the Son of God has been born into my human flesh, then am I allowing His holy innocence, simplicity, and oneness with the Father the opportunity to exhibit itself in me? What was true of the Virgin Mary in the history of the Son of God’s birth on earth is true of every saint. God’s Son is born into me through the direct act of God; then I as His child must exercise the right of a child—the right of always being face to face with my Father through prayer.
■ (어떠한 상황에서건 내 안에 있는 주님이 하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까?) Do I find myself continually saying in amazement to the commonsense part of my life, “Why did you want me to turn here or to go over there? ‘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Luke 2:49). Whatever our circumstances may be, that holy, innocent, and eternal Child must be in contact with His Father. Am I simple enough to identify myself with my Lord in this way? Is He having His wonderful way with me? Is God’s will being fulfilled in that His Son has been formed in me (see Galatians 4:19), or have I carefully pushed Him to one side?
■ (내 안에 계신 주님과 하나님과 조용하고 친밀하며 하나되는 시간을 나는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또는 나의 욕심만을 주님에게 요구하고 있습니까?) Oh, the noisy outcry of today! Why does everyone seem to be crying out so loudly? People today are crying out for the Son of God to be put to death. There is no room here for God’s Son right now—no room for quiet, holy fellowship and oneness with the Father. Is the Son of God praying in me, bringing honor to the Father, or am I dictating my demands to Him? Is He ministering in me as He did in the time of His manhood here on earth?
■ (주님과 함께한 주님의 자녀들의 내적 삶을 보면, 주님의 나를 향한 목적인 주님의 고통의 부분 중에서 부족한 부분을 나의 육체의 삶에 채워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채울 것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Is God’s Son in me going through His passion, suffering so that His own purposes might be fulfilled? The more a person know of the inner life of God’s most mature saints, the more he sees what God’s purpose really is: to “ ... fill up in my flesh what is lacking in the afflictions of Christ ...” (Colossians 1:24). And when we think of what it takes to “fill up,” there is always something yet to be done.
■ (오늘의 idiom)
범죄자들의 인상착의 전시표) rogue’s gallery = a police file of photographs of dangerous or undesirable people. “Officer Snupp has such an extensive rogue’s gallery in his office.
To me, Central Park has an atmosphere of mystery, as if it were ( )ed with fairies and goblins.
1. shriek 2. preside 3. enchant 4. assign
[해설]
1. shriek 비명을 지르다.2. preside 지배하다, 통솔하다.3. enchant …을 매혹하다, 호리다, 황홀케 하다.4. assign 배정하다, 할당하다.
* 자퇴하다> leave school voluntarily> give up school willingly> quit school voluntarily / 등으로 표현할 수 있구요.
* 퇴학당하다> be expelled from school> be dismissed from school> be sent down from school / 등으로 표현할 수 있네요.*참고]> 퇴학시키다 : expel a student from school> 퇴학생 : dropout / expelled student
미국에서 보통 신앙부흥특별전도집회를'Revival'라고 합니다.좀 더 구체적으로 믿지않는 사람들을 위한 초청전도집회라면,'Special Revival for Newcomers' 정도가 어떨지요~ ^^
숫자 ‘9’는 단일 수 중 가장 높은 수이므로 ‘최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거나, 9 yard 만큼의 직물을 써서 만들 정도로 ‘매우 차려 입었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dressed to the nines'는 누군가가 아주 맵시 있고 신경 써서 차려 입었을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냥 좋은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우아하고 스타일이 살아 나도록 입은 경우에 사용합니다. 'to the nines'라는 표현을 알면 이해가 더 잘되는데, 이 표현은 완벽한 최고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즉, ‘최상의 상태(to the nines)로 옷을 입다(dressed)’는 의미가 됩니다. 같은 의미로, 'dressed to kill' 'dressed to the teeth' 또는 'dressed up'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질문의 “She showed up for the picnic dressed to the nines.”는 “그녀는 우아한 옷차림으로 소풍 장소에 나타났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문] She was dressed to the nines for an evening of partying. (그녀는 저녁 파티용으로 우아한 옷을 차려 입고 있었다.)
bluff ▶ ~에게 허세 부리다; ~을 위협하다, 속이다; (허세를 부려서) ~을 얻다. ▶ to deceive or try to deceive someone by pretending to be stronger, cleverer or more determined, etc than one really is.
He could bluff nobody into believing that he was rich.아무리 허세를 부려도 누구도 그를 부 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ㆍ잠이 부족한 - sleep-deprivedㆍ잠을 안 자도 되는 사람 - sleepless elite, short sleeperㆍ잠을 많이 자야 하는 사람 - long sleeperㆍ저녁형 인간 - night person, night owlㆍ아침형 인간 - morning person, early bird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에서는 하루 4~5시간만 잠을 자고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이들은 이른바 ‘잠이 없는 엘리트(sleeplesselite)’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유전자가 발견되었는데,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잠을 많이 자지 않으면서도 수면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대다수가 평균보다 마른 편이고 낙관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충격을 잘 견뎌낸다는 공통된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은 100명 중 1~3명뿐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를 통해 신체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수면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how to manipulate the sleep pathways without damaging our health)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유명한 sleepless elite로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과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등이 있다고 한다.
밤에 늦게 자는 저녁형 인간(night person)을 night owl, 아침형 인간(morning person)을 early bird라고 하는데, 잠이 없는 엘리트(sleepless elite)는 저녁형 인간이면서 아침형 인간인 셈이다. 이렇게 잠을 적게 자도 아무런 피로를 못 느끼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short sleeper라고 한다. 반대로 일반적인 수면 시간보다 더 많이 자는 사람을 long sleeper라고 한다.
[예문 1] Short sleepers are night owls and early birds simultaneously. 잠을 적게 자도 되는 사람들은 저녁형 인간이면서 동시에 아침형 인간이다.
[예문 2] Long sleepers regularly sleep more than the average member of their age group. 잠을 많이 자야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동일 연령대의 평균 수면 시간보다 많이 잔다.
plant가 들어가 있어서 'physical plant'가 일종의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공장이 아니라 어떤 건물의 유지와 관리를 위한 관리 부서 또는 통제실입니다. 일종의 '시설 관리실' 정도에 해당합니다. 건물마다 있는 보일러실이나 냉난방실 등이 확장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학교의 physical plant라고 하면 학생들이 배우고, 교직원들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 필요한 학교의 모든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 관리실을 말합니다. 즉, 교실, 기숙사, 도서관, 주차장 등의 냉난방, 환기 시설, 전기, 수도, 조경 등 학생과 교직원이 학교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곳입니다. 대학교마다 'Physical Plant Department'가 있어서 대학교 유지에 필요한 모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합니다. 종종 건물 출입에 필요한 열쇠를 발급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난방 조정 장치, 급수 조정실 등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관리실도 일종의 'physical plant'라 할 수 있습니다.
■ As the NFL playoff game ended and the Green Bay Packers celebrated their victory over the Chicago Bears, my daughter Lisa noticed that her little girl, 4-year-old Eliana, was crying. That seemed odd, since neither of Eliana’s parents particularly cared who won the game.
미식축구 전미프로리그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끝나고 그린베이 패커스 선수들이 시카고 베어스에게 이긴 것을 축하하고 있을때, 내 딸 리사는 자기의 네 살 난 어린 딸 엘리아나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아 나의 부모는 누구도 어느 팀이 이기든 특별히 관심이 없었기에 엘리아나가 우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 When Lisa asked Eliana why she was crying, she said, “I feel sorry for the Bears. They look so sad.”
Can we learn something from a preschooler about compassion? In a world where winning is so important and losers get rejected, forgotten, and maligned, we need this reminder: People need compassion. When we see others struggling with a loss are we willing to shed tears with them, put our arms around them, and offer to help?
리사가 엘리아나에게 왜 우는지를 물어보자 아이는 “시카고 팀이 너무 슬퍼 보여 가엾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직 학교도 가지 않는 이 어린아이를 통해 동정심에 대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승리만이 그처럼 중시되고, 패자는 무시당하고 잊혀지고 비난받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는 동정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상실로 인해 힘겨워하고 있을 때, 우리는 기꺼이 그들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고,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도움을 베풀고 있나요?
■ A number of Scripture passages challenge us to treat others with compassion. Philippians 2:1-3 tells us to think of others above ourselves, looking out for their interests—not just ours. First Peter 3:8-12 reminds us that compassion means treating others “as brothers,” and Colossians 3:12-15 says that mercy, kindness, and humility are marks of those God has redeemed.
여러 성경구절들이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1-3은 다른 사람들을 우리보다 낫게 여기고 우리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3:8-12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다른 사람들을 “형제”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골로새서 3:12-15은 긍휼과 자비, 그리고 겸손은 구원받은 자의 표시라고 말합니다.
■ Whenever you feel discouraged, look up some “but God” verses and be reassured of God’s involvement in the lives of those who love Him.
살면서 낙심될 때마다 “그러나 하나님은”이라는 구절이 들어있는 성경구절들을 찾아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다시 확인하십시오.
■ Look around you. See anyone going through a difficult loss? Go beyond feeling bad for them. Reach out with compassion and God’s love. —Dave Branon
당신의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누군가가 상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안됐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십시오.
■ Lord, grant me a heart of compassion
So burdened for others’ needs,
That I will show them Your mercy
In attitudes, words, and deeds.
주님, 연민의 마음을 제게 주셔서
다른 사람의 필요에 부담을 갖고
저의 태도와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긍휼을 그들에게 보여주게 하소서
■ One measure of our likeness to Christ is our sensitivity to the suffering of others. 주님을 닮은 정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우리가 얼마나
민감한가 하는 것이다.
■ In lowliness of mind let each
esteem others better than himself.
—Philippians 2:3
■ (당신이 주님께 순종하고 길을 떠날 때 주님이 오셔서 당신이 염려하는 곳에서 가르치십니다. 당신의 불순종으로 주님의 길을 막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He comes where He commands us o leave. If you stayed home when God told you to go because you were so concerned about your own people there, then you actually robbed them of the teaching of Jesus Christ Himself. When you obeyed and left all the consequences to God, the Lord went into your city to teach, but as long as you were disobedient, you blocked His way.
■ (당신이 생각하는 의무와 주님이 명하시는 것 사이에서 주님과 논쟁을 하고 살펴보세요. 주님과 논쟁하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당신이 믿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Watch where you began to debate with Him and put what you call your duty into competition with His commands. If you say, “I know that He told me to go, but my duty is here,” it simply means that you do not believe that Jesus means what He says.
■ (우리는 섣불리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끼어서 하나님의 역할을 하는 미숙한 배려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그들에 가까이 갈 수 없다고 우리는 가르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입을 닫고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있도록 합시다.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그 방법으로 주님께서는 일하시지 않습니다.) He teaches where He instructs us not to teach. “Master ... let us make three tabernacles ... ” (Luke 9:33). Are we playing the part of an amateur providence, trying to play God’s role in the lives of others? Are we so noisy in our instruction of other people that God cannot get near them? We must learn to keep our mouths shut and our spirits alert. God wants to instruct us regarding His Son, and He wants to turn our times of prayer into mounts of transfiguration. When we become certain that God is going to work in a particular ways, He will never work in that way again.
■ (잠잠히 참아 기다리는 것은 팔짱을 끼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은 내용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입니다.) He works where He sends us to wait. “ ... tarry ... until ... ” (Luke 24:9). But don’t wait sulking spiritually and feeling sorry for yourself, just because you can’t see one inch in front of you! Are we detached enough from our own spiritual fits of emotion to “wait patiently for Him”? (37:7). Waiting is not sitting with folded hands doing nothing, but it is learning to do what we are told. These are some of the facts of His ways that we rarely recognize.
■ (오늘의 idiom)
(노 위에서 쉬다, 힘든 일 후에 잠시 쉬다) rest on one’s oars = to take a rest after a period of hard work. “This has been a difficult week. Thank goodness if’s over so I can rest on my oars this weekend,” Teddy said.
ㆍ자기 연민 - self-pityㆍ자기 연민에 빠지다 - wallow in self-pity
한 미국 교수가, 이질적인 문화의 내용으로 울음을 자아내는 책을 읽으며 “자기 연민에 빠질 것이냐?(Why wallow in self-pity?)”라며, ‘김치 냄새 나는(kimchi-scented) 소설’이라고 비하하는 표현까지 써 가며 혹평을 해 국내 팬들의 공분을 샀다.
“자기 연민에 빠질 것이냐?(Why wallow in self-pity?)”에서 ‘wallow in’은 ‘~에 빠지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예문 1] She spent the entire day wallowing in self-pity. 그녀는 자기 연민에 빠져 하루를 보냈다.
[예문 2] People who wallow in self-pity usually go around in a bad mood.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분이 울적해 있다.
혹평에 사용된 ‘자기 연민’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영국 작가 데이비드 로렌스(1885~1930, David Herbert Lawrence)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 외에도 단편 소설, 시집, 여행기, 평론집 등 다양한 작품을 집필했다. 그의 시 한편이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지.아이.제인(G.I. Jane, 1997)’에 소개된 적이 있다. 네이비씰이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모두 마친 졸업식 날, 선임 교관은 최초의 여성 네이비 씰인 주인공에게 데이비드 로렌스의 시집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 등장한 시(詩)의 제목은 ‘자기 연민(自己憐憫)’을 의미하는 ‘Self Pity’였다. 자기 자신이 불쌍하고, 되는 일도 없이 운도 나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는 우울한 감정인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Self Pity
I never saw a wild thing sorry for itself.A small bird will drop frozen dead from a bough without ever having felt sorry for itself.
자기 연민(自己憐憫)
나는 자신을 동정하는 야생 동물을 본 적이 없다.꽁꽁 얼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죽은 작은 새 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는 않는다.
jurisdiction ▶ 권력(authority); 지배[관할](권). 영문정의 ▶ the right or authority to apply laws and administer justice.School admissions are not under our jurisdiction.학교 입학 허가는 우리 관할권 밖입니다.
swarm ▶ 1. 무리, 떼. 2. 북적이다, 붐비다. 영문정의 ▶ 1. any large group of insects or other small creatures, especially ones that are on the move. 2. to move as a swarm.Swarms of locusts migrating from Kazakhstan have devoured large tracts of cropland in central Siberia over the past few days.카자흐스탄에서 이동해 온 메뚜기 떼가 지난 며칠 사이에 중앙 시베리아 일대의 농경지를 황폐화시켰습니다.
* 북적이다, 붐비다.The convention hall was swarmed with a galaxy of dignitaries.회의장은 기라성 같은 고관들로 북적였다.
'get someone's goat'는 '누군가를 성가시게 하다, 누군가를 화나고 짜증스럽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오래 전 경마(horse racing)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경기에 참가하는 말들은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긴장해 있는데, 경주마의 긴장을 풀기 위해 염소들을 마굿간에 같이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염소와 함께 있으면 신기하게도 말들이 평정심을 찾았고 경기 결과까지 좋아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이 염소들을 몰래 가져가 버렸더니, 말들이 너무 동요하고 긴장하여 경기 출전조차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goat은 ‘평정심, 평화로움’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하게 되어 goat와 함께 있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지만, 누군가 goat를 훔쳐가 버리면 ‘마음의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화를 내게 만든다’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get on one’s nerve’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문] I'm sorry. I didn't mean to get your goat.(죄송해요. 화나게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예문] Just get on with your life. You are getting on my nerves.(그냥 하던 일 해.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 “You meant evil against me; but God meant it for good, in order to . . . save many people alive” (Gen. 50:20).
“Their beauty shall be consumed in the grave . . . . But God will redeem my soul from the power of the grave” (Ps. 49:14-15).
“My flesh and my heart fail; but God is the strength of my heart and my portion forever” (Ps. 73:26).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만인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러나) 하나님은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시편 49:14-15).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그러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편 73:26).
■ “For scarcely for a righteous man will one die; yet perhaps for a good man someone would even dare to die.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Rom. 5:7-8).
“Eye has not seen, nor ear heard . . . the things which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But God has revealed them to us through His Spirit” (1 Cor. 2:9-10).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7-8).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그러나)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린도전서 2:9-10).
■ Whenever you feel discouraged, look up some “but God” verses and be reassured of God’s involvement in the lives of those who love Him.
살면서 낙심될 때마다 “그러나 하나님은”이라는 구절이 들어있는 성경구절들을 찾아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다시 확인하십시오.
■ He whose right was heaven’s glory
Chose to serve on earth below,
Leaving us a clear example
Of the love He’d have us show.
하늘의 영광을 가지신 주님께서
낮은 이 땅에서의 섬김을 택하셔서
우리가 남에게 베풀 수 있도록
사랑의 명확한 모범을 남겨주셨네
■ Creator of the universe
Who reigns in awesome majesty:
How can it be that You’re involved
With such a one as me?
장엄한 위엄으로 다스리시는
우주의 창조주께서
나 같은 사람의 삶속에 관여하고 계시다니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 God’s involvement in our lives
should reassure us of His love.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관여하심은
그분의 사랑을 재확인시켜 준다.
■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Romans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 [산상수훈은 너무 성령적이고 일상생활에서는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달래는 아름다운 교훈이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무의식 밑으로 산상수훈은 가라앉습니다.] When we first read the statements of Jesus, they seem wonderfully simple and unstartling, and they sink unnoticed into our subconscious minds. For instance, the Beatitudes initially seem to be merely soothing and beautiful precepts for overly spiritual and seemingly useless people, but of very little practical use in the rigid, fast-paced workdays of the world in which we live.
■ [우리가 산상수훈을 기억하고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그것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엄청난 성령의 지각변동을 의미합니다.] We soon find, however, that the Beatitudes contain the ‘dynamite“ of the Holy Spirit. And they ”explode“ when the circumstances of our lives cause them to do so. When the Holy Spirit brings to our remembrance one of the Beatitudes, we say, ”What a startling statement that is!“ Then we must decide whether or not we will accept the tremendous spiritual upheaval that will be produced in our circumstances if we obey His words.
■ [산상수훈을 글자대로 해석하는 것은 어린이극을 해석하는 것처럼 아주 쉽지만,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That is the way the Spirit of God works. We do not need to be born again to apply the Sermon on the Mount literally.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the Sermon on the Mount is as easy as child’s play. But the interpretation by the Spirit of God as He applies our Lord’s statements to our circumstances is the strict and difficult works of a saint.
■ [산상수훈은 우리가 성령님에게 완전하게 인도될 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이루기 위해 한걸음씩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The teachings of Jesus are all out of proportion when compared to our natural way of looking at things, and they come to us initially with astonishing discomfort. We gradually have to conform our walk and conversation to the precepts of Jesus Christ as the Holy Spirit applies them to our circumstances. The Sermon on the Mount is not a set of rules and regulation—it is a picture of the life we will live when the Holy Spirit is having His unhindered way with us.
■ (오늘의 idiom)
(다음 기회를 이용하다) a rain check = an extension of an offer. “I can’t join you for dinner tonight. Can I have a rain check on that until tomorrow?”
_____ often don't look alike and only share approximately half of the same genes.
fraternal twins 는 이란성 쌍둥이를 의미한다.
_____ are three babies born at the same time to the same mother.
세쌍둥이는 triplets 라고 한다.
_____ look alike and share the same DNA.
일란성 쌍둥이는 identical twins 라고 한다.
'shrinking violet'은 ‘수줍어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violet'은 보라색이라는 의미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보라색이나 자주색을 띄는 꽃을 가진 '제비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제비꽃은 향기가 좋은 꽃으로 알려져 있는데, 파르마 제비꽃(Parma violet)은 장미, 튤립 등과 더불어 19세기 말 유럽에서 관상용으로 많이 키웠습니다. 야생 제비꽃의 경우, 예쁜 보라색 꽃잎을 잎사귀 뒤로 감추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런 모습이 19세기 초 몇몇 시인들의 감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시인들은 이 예쁘고 부끄러워하는 제비꽃을 '수줍어하는 제비꽃'이라는 의미로 'shrinking violet'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복지 체감도'란 복지의 혜택을 느끼는 정도를 말하는 말입니다. 어떤 나라에서 복지 정책을 위해 복지 예산은 늘려 왔지만, 국민들이 복지 정책이 바뀌거나 나아진 게 없다고 생각하면 '복지 체감도는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것까지 나라에서 해 주는구나.”라며 국민들이 국가의 복지 정책이 확대된 것을 직접 느낀다면 “복지 체감도가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복지 체감도에 정확히 대응하는 표현은 없지만, ‘perception for welfare,’ "Welfare Perception Index (peoples' Welfare Perception Index)' 정도면 적당하겠습니다.
참고로, 실제 온도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온도를 의미하는 '체감 온도'는 영어로 'sensory temperature' 또는 ‘apparent temperature’라고 합니다.
[예문] In contrast to the general Welfare Perception Index (peoples' Welfare Perception Index, a study finds that many middle class people consider themselves poor. (일반적인 복지 체감도와는 달리 한 연구에 따르면 많은 중산층이 그들이 빈곤층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A: 건강식이 주는 기쁨을 이제 알았어. 이젠 제대로 먹으려고 노력 중이야.B: Nothing trumps being healthy. 유행하는 다이어트대로 하는 거야?A: 아니. 그냥 최대한 잔머리 안 굴리고 정석대로 자연스럽게 하려고.B: 바람직하네. 네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길 바래.
[Additional Expressions]* discovered – found out about / learned something about / turned on to* the joy of health food – the rewards that come from eating healthful food* I’m trying to eat right. – I’m making an effort to eat foods that are good for me.* Nothing trumps being healthy. – Nothing is more important than good health. / Health is Number One.* on a fad (=trendy, fashinable) diet – into some kind of popular diet / following some trendy diet plan* I’m keeping it all real and natural – I’m sticking with what nature provides us with* no short cuts – not looking for the easy way / not trying to use man-made stuff* That’s good to hear. – I’m happy to hear that. / That sounds great.* I hope you see the results you expect. – It would be nice of it helps you like you want it to.
■ He told reporter Ricardo Gándara that one of the longtime employees always reminded them, “Why are we making ice cream? It’s a happy food. We’re here to make people happy.” And that’s why Joe Morris makes ice cream.
그는 리카르도 간다라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 회사에서 장기 근속한 한 종업원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술자들에게 항상 상기시켜 주었던 말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왜 아이스크림을 만들지요? 아이스크림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조 모리스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이유입니다.
■ If any of you lacks wisdom, let him
ask of God. —James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 야고보서 1:5
■ Wisdom is the beauty of holiness. James says wisdom is reasonable; flexible; forgiving; peaceful; caring; given to friendly visits, small acts of courtesy, and kind words. It is humble, transparent, simple, gentle, and gracious to the core (James 3:17).
지혜는 거룩함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야고보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분별력이 있으면서 유연하고, 관대하고 온화하며, 배려심이 있어 다른 사람을 다정하게 방문하고, 조그만 일에도 공손하고 친절한 언행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면서 솔직하고, 순수하고 친절하며 자비롭습니다(야고보서 3:17).
■ Where can wisdom be found? It comes from heaven (1:5). “Wisdom,” wrote Charles Spurgeon, “is a beauty of life that can only be produced by God’s workmanship in us.”
It’s good to ask from time to time: “Am I growing in wisdom?” After all, life is relentlessly dynamic. We’re either growing sweeter and wiser as the days go by, or we’re growing into foolish or even sour-faced curmudgeons. Into what are we growing? 그러면 지혜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1:5). 찰스 스펄전 목사는 “지혜란 우리 안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이다.”라고 기술하였습니다.
“나는 더 지혜로워지고 있는가?”라고 가끔씩 물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인생은 어떻든 냉혹하게도 역동적입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더 착해지고 더 지혜로워지든지, 아니면 어리석게 되거나 심지어는 심술궂은 얼굴을 한 구두쇠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가고 있습니까?
■ It’s never too late to begin growing in wisdom. God loves us with an ardent, intense affection that can deliver us from our foolishness if we yield ourselves to Him. His love can make the most difficult nature into a miracle of astonishing beauty. It may hurt a little and it may take a while, but God relentlessly seeks our transformation. When we ask, His wisdom will begin to rise in us and pour itself out to others.
지혜로 자라가기 시작하는데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불타는 열정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우리의 어리석음으로부터 구해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까다로운 천성도 기적같이 놀랍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조금은 아프고 시간도 걸릴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가차 없이 우리의 변화를 추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안에서 자라기 시작하여 다른 이들에게까지 부어질 것입니다.
■ 비호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유행어처럼 만들어진 것이라 이것에 딱 맞는 단어는 없습니다. 하지만 비호감의 어감이 있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으므로,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비호감'을 의미하려면 “He believes he is unattractive to women. (그는 자신이 여성들에게 비호감이라고 믿고 있다.)”와 같이 사용하고, '고용주나 사장님에게 비호감으로 보이는 직원'의 경우라면 “He is out of favor with his employer. (그는 자기 사장님의 눈 밖에 나 있다.)”와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능력이 없어서 감독의 눈 밖에 난 비호감 선수'인 경우에는 “He is out of favor with the coaches due to his lack of blocking ability. (그는 블로킹 능력이 없어서 감독의 눈 밖에 나 있다.)”와 같이 말할 수 있고, '대통령 후보로 비호감'이라고 할 때에는 “He is viewed unfavorably as a presidential candidate. (그는 대통령 후보로 비호감이다.)”와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 A: You seem to be a regular “newsie”. Do you read the whole paper?
B: From front to back, sure.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해주거든.
A: Some say that the news media is often very biased.
B: That’s why I get my information from several sources.
A: 넌 신문을 매일 읽는 것 같은데, 신문 전체를 다 읽니?B: 처음부터 끝까지, 물론이지. It keeps me up on things.A: 뉴스 매체가 종종 한쪽에 편향된다고들 하던데.B: 그래서 여러 군데에서 정보를 취합해서 얻지.[Additional expressions]*You seem to be a regular “newsie”.– It seems like you pay a lot of attention to current news.*Do you read the whole paper?– Do you read every article in the newspaper? / Do you go over the entire paper?*From front to back, sure.– Every page, of course. / I don’t skip one page, certainly.*It keeps me up on things.– It helps me to know what the current events are. / I stay current, like that.*Some say that– According to some people / The opinion of many people is that*The news media is often very biased.– News media print and broadcast their own slanted views.*That’s why– That’s the reason / For that reason / Because of that*I get my information from several sources.– I find out the news by confirming with a variety of providers.
■ Some hours later my father nudged me awake and turned his flashlight into the darkness. Illuminated by the light, we saw pairs of yellow eyes peering out of the shadows. A pack of snapping and snarling coyotes were closing in on the dog. Although we chased them off and our neighbors put the dog in their tent, we slept fitfully. 그런데 몇 시간 후에 아버지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어두운 곳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었습니다. 손전등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몇 쌍의 노란 눈들이 어둠 속에서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 무리의 코요테들이 위협적으로 으르렁대며 개에게 접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코요테들을 쫓아내고 그 부부는 텐트 안에 개를 들여놓았지만, 우리는 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 I think of that night when I read Psalm 59 and David’s twice-repeated imagery: “At evening they return, they growl like a dog” (vv.6,14). David was thinking of Saul’s army that was closing in on him. I think, however, of the thoughts that return to menace us. They come back at nightfall, snapping and snarling: “You’re stupid.” “You’re a failure.” “You’re useless.” “Who needs you?”
나는 시편 59편에서 “저희가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6,14절)라고 다윗이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비유를 읽을 때면 그날 밤의 일이 생각납니다. 다윗은 그때 사울의 군사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를 위협하며 찾아오는 생각들이 연상됩니다. 해질녘이면 이러한 생각들이 “너는 바보야”, “너는 실패자야”, “너는 쓸모없어”, “너는 도움이 안 돼.”라고 큰 소리로 으르렁대며 찾아옵니다.
■ When we have such thoughts, we can revel in God’s unconditional, unending love. His steady devotion is our refuge in the dark night of self-doubt and fear (v.16).
그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끊임없는 사랑을 마음껏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의 한결같은 헌신은 회의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어두운 밤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우리의 피난처입니다(16절).
■ Dear Lord, I am so thankful that You love me unconditionally. Please chase away destructive thoughts that keep returning to take away my confidence in You and Your work in me.
I want to rest in You and Your love.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주님에 대한 확신과 주님이 제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계속 빼앗아가는
파괴적인 생각들을 몰아내 주시옵소서.
주님과 주님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고 싶습니다.
■ Knowing that God loves us can dispel doubt.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면
의심을 떨쳐버릴 수 있다.
■ Let the brilliance of the treasure of Christ
shine through you as you live for Him.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을 통해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광채가 빛나게 하라.
■ You have been my defense and refuge
in the day of my trouble. —Psalm 59:16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시편 59:16
■ This hope we have as an anchor of the soul, both sure and steadfast. —Hebrews 6: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 히브리서 6:19
■ When it comes to our salvation, our hope is anchored in the promise of God and the work of Jesus Christ. The winds and waves of doubt, discouragement, and spiritual attack by the evil one can cause us to think that we are adrift and salvation from God is not secure. Not so! God has given His promise that our salvation is sure, and He cannot lie (Heb. 6:18-19). Our hope is securely fastened in Jesus Christ who redeemed us once and for all when He died, rose again, and ascended to heaven.
우리의 구원에 관한 한, 우리 소망의 닻은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일에 내려져 있습니다. 의심과 낙심, 그리고 악한 세력으로부터 오는 영적 공격이라는 풍랑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표류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도 확실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은 거짓말하시지 않습니다(히브리서 6:18-19). 우리의 소망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우리를 단번에 확실히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단단히 매여 있습니다.
■ Our anchor is the Rock unmovable—Jesus Christ. His limitless love holds us sure and steadfast.
우리의 닻은 움직이지 않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의 한없는 사랑이 우리를 확실하고 견고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 We have an anchor that keeps the soul,
Steadfast and sure while the billows roll;
Fastened to the Rock which cannot move,
Grounded firm and deep in the Savior’s love.
거친 파도가 다가와도
우리의 영혼을 튼튼하고 확실히 잡아줄 닻이 있다네
움직일 수 없는 반석이신 예수님께 매여서
구주의 사랑 안에 단단하고 깊이 박힌 닻이 있다네
■ The only way to see life clearly is
to focus on Christ.
우리의 닻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Ӂ The Scriptures were important to Jesus (Matt. 5:17-18), but He looked at them differently than the religious leaders of His day. To Him, “You shall not murder” was on the level of being “angry with [a] brother without a cause” (vv.21-22). Far from customizing Scripture, He was concerned about the motivation of people’s hearts in applying all of it.
성경말씀은 예수님에게도 중요했습니다(마태복음 5:17-18).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는 다르게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유 없이 형제에게 노하는” 것과 “살인하지 말라”는 것을 동일한 수준으로 보셨습니다(21-22절).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결코 맞춤화 하지 않으셨고, 그보다는 말씀을 적용함에 있어 사람들 마음에 동기를 부여하는데 더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Ӂ As we embrace God’s Word more fully, we’ll know Him more deeply and desire to honor Him.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온전히 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Ӂ Lord, I don’t want to treat Your Word lightly or
to dismiss what seems too difficult. Show me
my heart and help me to obey from the heart
whatever You tell me. In Jesus’ name, amen.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여 대충 지나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나의 마음을 알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마음으로부터
순종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Ӂ When you open your Bible,
ask the Author to open your heart.
성경을 볼 때, 마음을 열어달라고
저자이신 하나님께 간구하라.
* (아래 내용은 다음에서 인용함) http://bethelpress.org/dailybread.php
The entirety of Your Word is truth. —Psalm 119: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 시편 119:160 Pandora is one of the musical marvels of the Internet agel. It helps you create your own station by allowing you to “customize” your music. It plays a song and you then click a thumbs up or thumbs down sign to indicate whether or not you like it. You end up with a grouping of only songs that you like. 판도라(인터넷 음악 서비스: 역주)는 인터넷 시대가 이룬 음악방면의 획기적인 성과 중의 하나입니다. 판도라는 당신의 음악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맞춤화”함으로써 당신만의 라디오 방송국을 설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것이 음악을 들려주고 나면, 당신은 그 음악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나타내기 위해 좋아함 또는 싫어함 표시를 선택합니다. 결국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들만 모아놓게 되는 것입니다. Unfortunately, sometimes we do that with the Bible too. People may choose some Scripture passages they especially like and ignore others, and so they “customize” it to their preferences. The psalmist looked at God’s Word this way: “The entirety of Your Word is truth” (Ps. 119:160). And the apostle Paul told Timothy, a young pastor,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2 Tim. 3:16). 유감스럽게도 때때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도 이렇게 합니다. 사람들은 특별히 좋아하는 성경구절들을 선별하고 좋아하지 않은 것들을 무시해버리면서, 그들의 좋아하는 구절들을 따로 “맞춤화” 합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시편 119:160)라고 보았습니다. 바울사도도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유익하니”(디모데후서 3: 16)라고 말했습니다.
The Scriptures were important to Jesus (Matt. 5:17-18), but He looked at them differently than the religious leaders of His day. To Him, “You shall not murder” was on the level of being “angry with [a] brother without a cause” (vv.21-22). Far from customizing Scripture, He was concerned about the motivation of people’s hearts in applying all of it. 성경말씀은 예수님에게도 중요했습니다(마태복음 5:17-18).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는 다르게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유 없이 형제에게 노하는” 것과 “살인하지 말라”는 것을 동일한 수준으로 보셨습니다(21-22절).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결코 맞춤화 하지 않으셨고, 그보다는 말씀을 적용함에 있어 사람들 마음에 동기를 부여하는데 더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As we embrace God’s Word more fully, we’ll know Him more deeply and desire to honor Him.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온전히 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Lord, I don’t want to treat Your Word lightly or to dismiss what seems too difficult. Show me my heart and help me to obey from the heart whatever You tell me. In Jesus’ name, amen.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여 대충 지나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나의 마음을 알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마음으로부터 순종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When you open your Bible, ask the Author to open your heart. 성경을 볼 때, 마음을 열어달라고 저자이신 하나님께 간구하라.
Let the brilliance of the treasure of Christ shine through you as you live for Him.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을 통해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광채가 빛나게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