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은 휘장 제거
1917년경 김길창 목사는
함안 기동교회의 조사로 부임하였다.
26세의 젊은 그의 안목으로 볼 때
교회 안에 혁신해야 할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첫 번째가
교회당 안의 남녀 석을 구별하는 휘장 제거였다.
그래서 그는 어느 토요일 밤 기동교회의 청년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서 일대 계몽 강연을 했다.
“여러분, 장터에 가 보이소.
남자들만 모이는 시장이 있고,
여자들만 거래하는 시장이 따로 있습니까?
아니 한 집안에서 남자들끼리 살고,
여자들끼리 따로 삽니까?
주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자매를
이 때 묻은 휘장으로 갈라놓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열 번에 청년들은 크게 지지하였고
이튿날 주일예배를 마친 후 김길창 조사는
교인들에게 휘장 무용설에 대한 열변을
되풀이한 후 휘장을 없앨 것을 제의하였다.
이때 연로한 안영수를 제외하고 모두 찬동하여
함안 기동교회는 한국교회 사상
휘장 제거 운동의 첫 장을 열었다.
이 일이 있은 얼마 후
경남노회가 마산 문창교회에서 열렸는데,
당시 임사부(지금 정치부)에다
안영수가 김길창 파면 신청서를 냈다.
그 내용은
“동방예의지국에 남녀가 유별하거늘
교회를 지도하는 조사가
본 기동교회당의 휘장을 제거하였기로
김길창의 조사직을 파면해 주시길
청원합니다”라는 것이었다.
보수적 성향이 짙었던 경남노회는
안영수의 청원을 받아들였고
김길창은 교회 조사일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길창이 파면당한 1주일 만에
문창교회 한석진 목사가 그를 불렀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문창교회에 부임한 지 1주일째 되던 날,
한석진 목사가 예배 후에 모든 교인들을 남게 하고는
“여러분, 김길창 조사께서
기동교회의 휘장을 걷은 일은 장한 일입니다.
우리 김 조사의 의견을 들어봅시다”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고,
그 자리에서 문창교회의 때 묻은 휘장도 제거되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