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동주문학상 수상작〉
언니, 우리 물류창고에서 만나요(외 1편)
이 은 창고가 보이면 십자 성호를 굿습니다 그것이 창고에 대한 예의이니까요 어제는 S푸드, 훈제된 고깃덩어리들을 포장했어요 그제는 올포유, 당신을 위해 사정없이 옷을 갰어요 하마터면 옷에 깔려 죽는 줄 알았어요 오늘은 아이스크림 공장, 우주선이 희미한 빛을 내며 지나가요 떨어지는 것들은 모두 속도가 됩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는 얼음이 쏟아져요 얼어붙은 손가락이 비명을 질러요 손가락은 가만히 둔 채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려요 빵과 빵 사이 너무 많은 눈보라, 빵또아에 끼어 있는 손가락이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설렘의 구멍에 얼음을 가득 채워요 설렘과 설렘 사이 너무 많은 눈보라, 꼿꼿이 서서 눈보라를 맞고 있는 설렘, 재빠르게 히말라야산맥의 눈을 퍼담아요 몸속에 가득한 눈보라,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눈보라, 눈보라에 갇혀서, 뜨거운 어둠 속에서 오소소 돋아나는 눈보라, 눈보라를 혜치고 깨진 얼음 조각 같은 달이 따라옵니다 버스 안에 몸을 숨기고 얼어붙은 손가락을 문지릅니다 오늘따라 버스 안은 엄숙합니다 강 건너에 오늘의 일용할 해가 떠올랐습니다 언니, 우리 내일 또 만나요!
한 처음에 아웃소싱이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몸으로 나무 위의 과일을 따고 있었다 그 나무 아래로 고양이 두 마리 지나다녔다 고양이가 도로로 뛰어들 었고 납작해 졌다 바닥에서 떼어내려 했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빨간 버스를 타고 그곳에 도착했다 계단을 따라 4층으로 올라갔고 인력센터 출근부에 나를 기입했다 체온과 휴대폰 번호를 기입하고 나의 신체를 기입했다 소지품 검사대를 통과하고 바코드를 찍고 와이파이를 껐다 우리는 완전히 물류창고에 편입되었다* 나와 닮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잠깐 밤 산책 나온 사람들로 착각했다 밤고양이들이 떼로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는 창고마다 고양이들로 그득했다 뺨이 움푹 들어간 고양이가 반장이었다 고양이들은 일제히 두 손을 벌리고 나에게 일을 다오! 일을 다오! 다른 고양이들이 달려오기 전에 그들의 손은 재빨랐다 두 발이 공중에 떠 있었다 점 점 점 늘어나고 점 점 점 커지는 창고에서 몸집을 키우기 위해, 고양이들의 대화는 금물이므로 눈짓으로만 소통해야 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쌓여가는 상자들 사이에서, 당신은 겨드랑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몇 번씩 식혔다 다른 고양이들이 밀려오기 전에 다시 뜨거워지는 우리들의 성실한 노동의 의무를 위해 우리는 서로 모른 체하기로, 역시 알바의 배치는 날카로웠다 오늘도 어떤 결함도 불량도 발생하지 않았다 밤새 꺼지지 않은 창고의 불빛이 우리를 밀어낼 때까지 빨간 버스를 앞질러 바퀴 안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헤드라이트가 도로에 납작하게 들러붙은 고양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고양이 두 눈이 어둠을 빨아먹고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밀려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같이 우리는 그곳에 편입되었다
* 외부하청.
〈제8회 동주문학상 수상작〉
―계간 《시산맥》 2023년 겨울호 --------------------- 이은 / 강원도 동해 출생. 2006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불쥐』 『우리 허들링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