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제주를 남북으로 걷기를 하다가 못끝내고 온 여정을 마무리하고 왔습니다.
첫날은 오전 비행기로 가서 20키로 잔여일정중 7키로를 오후에 걸었습니다.
여전히 97번 도로를 무심으로.
날씨가 너무 좋아 한라산이 손에 잡히듯 보이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이런 날만 계속된다면 여생이 무슨 더 바램이 있을까요.
군침도는 차림은 작년 가을 1750에 갔던 용두암 근처에 있는 김해식당이라는 곳의 차림입니다.
주방장 요리(오마카세,니 멋대로 하세요란 뜻)라는 메뉴 하나만 달랑 있는 식당입니다.
회와 부침과 각종 젓갈,그리고 미역국(성게)이 나오는 코스입니다.
예약을 안하면 문앞에서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리고,저녁 9시반에 칼같이 문을 닫는 가게입니다.
잘되는 횟집이 그렇듯 회가 아주 싱싱합니다.
화요 반병과 맥주,그렇게 비우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갔습니다.
이튿날,
오전 걷기는 9시반부터.
오늘은 좀 다르게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회사의 젊은 친구한테 골목길까지 스마트폰으로 보는 법을 배워오긴 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잘 모르겠대요.
에라 구식으로 하자.
대충 국도를 벗어나서 해안쪽으로 해서 제주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훨씬 낫더군요.
새소리도 들리고,밭가는 농부도 만나고(손바닥만한 밭도 기계로 갈더군요),그리고 웬 개가 그렇게 많은지.
새소리는 마냥 정겨운데 개소리는 영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도마리(멈춘다는 뜻)하고 고등어,갈치 전문으로 하는 집에 가서 점심 먹으면서 SM을 한잔 걸쳤습니다.
그랬더니 오후 걸음은 훨씬 힘들었습니다.
덥기도 하고,취기도 오르고,졸립기도 하고.
순간의 선택이 오후 내내 괴로움을 안겨줬네요.
그리고 제주항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제주일정을 마친 겁니다.
다음에는 좀 더 공부를 하고와서 샛길 위주로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두에서 먹은 저녁.
별로 식욕도 없고해서 소라,홍삼,고등어 그렇게 회 위주로 SM과 같이 했는데 자꾸 눈이 감겨서 빨리 가서 쉬고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제주도의 풍광,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사색을 하는 것,뭐 그런 기대를 했을텐데 그냥 무심코(사실은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 걸었습니다.
사흘째,
오후 4시 비행기가 예약이 돼있었기 때문에 오전에는 두군데 답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추사 김정희,그리고 이중섭.
뭐했던 사람인지 다들 아시죠?
그런데 5월 6일 이날 제주에 비가 200미리 이상 왔습니다.
장대비 속을 헤치고 추사관에 가긴 했는데 공사중이더군요.
망했다 싶었는데 공사하는 양반이 멀리서 비 쫄딱 맞고 왔는데 그냥 가면 너무 서운하니 돌아보라 하더군요.
단 페인트 냄새가 심하게 날거라고.
들여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습니다.
사진보고 아시겠죠?
그 유명한 세한도,60센티 폭에 길이가 18미터나 되는.
제주 유배시절에 제자에게 그려준 그 그림,글씨.
사족은 달지 않겠습니다.
그냥 당시 청나라와 조선을 통털어 최고의 명필이라는 평이 있었다 하더군요.
글씨만 잘쓴게 아니고 학식이 아주 뛰어났죠.
그리고 타고난 금수저였는데 당파싸움으로 두번이나 귀양을 가고.
추사관 뒤에는 귀양살이를 한 초막이 있습니다.
그 초막집의 울타리를 벗어나선 안되는 귀양살이였다고.
자고 일어나 책읽고,글쓰고,동네 애들 가르치고 그렇게 살았다 하네요.
제주귀양 다음에는 북청귀양을 가고,과천에서 죽습니다.
이 추사에 관한 유품을 가장 많이 모은 사람이 일본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93세에 죽을 때 모든 유품을 한국에 기증을 하지요.
죽일 왜놈도 많지만,돌아가실 일본분도 많지요.
비행기를 댕겨서 두시편으로 돌아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오후에는 결항이 많았다 하더군요.
첫댓글 비가 너무 와서 이중섭은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다음 여정은 전라도 해남입니다.
건강관린지 고행인지 모르겠다,
하여턴 목표관리에 끈기와 충실 감사!귀감!
드디어 땅끝부터 시작되는 여정이 아니 기행문이 벌써 기대됩니다. 무리는 하질 말고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