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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장르물 드라마의 약진이 눈부시다. 스토리 구성의 기교, 입체적 캐릭터 창조, 대상 소재에 대한 전문성 확보 등등.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무대가 병원이면 병원에서, 법정이면 법정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라고 우스개소리가 떠돌던 십여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글로벌 플랫폼에서 전세계 드라마를 동시에 보고 있는 오늘날 관객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빠른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이것은 생존에 관련된 문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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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라마는 그 어떤 장르보다 일반대중의 시대 감정에 민감한 장르가 되었다.
드라마라고 이름 붙기만 하면 두자리수 시청률이 보장되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먹던 이야기가 되었고 이제는 한자리수 시청률이 수두룩할 뿐더러 심지어는 시청률 1%가 안되는 드라마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투자의 규모가 커질수록 ‘폭망’에 대한 제작자의 두려움 또한 더 커질 수밖에 없으니, 최대한 위험을 회피하고 수익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촉을 세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면밀하게 시장을 분석하고 대중이 보내는 신호에 재빨리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대중이 선호하는 드라마를 만들려면 대중의 욕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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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에 종영한 <괴물><빈센조><로스쿨> 등 몇 개의 범죄수사물 드라마가 내게는 무척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대개의 범죄수사물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고 그를 어떻게 잡는지 수사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앞서 거론한 이들 드라마가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범죄사건이나 수사과정의 전제로서 ‘법’에 대한 관점이 두드러진 장치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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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자체가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하는 로스쿨인 드라마 <로스쿨>의 초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문장이 반드시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대략 아래와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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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정의로운가? 법은 정의롭지 않다. 법을 정의롭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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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에서 주인공 양종훈 교수는 아래와 같이 독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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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가르치는 순간, 그 법은 완전해야 한다. 법을 배우는 순간, 그 법은 정의여야 한다. 정의롭지 않은 법은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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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대사가 ‘~하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로 끝나는 점을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의 결말은 모든 것이 순리로 돌아가 죄진 자는 벌받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법은 정의롭다’가 아니라 ‘정의여야 한다’는 당위론적 결구로 드라마의 대단원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작가 일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이 시대 대중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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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비슷한 시기에 ‘법의 정의’를 문제 삼는 드라마 세 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영된 자체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괴물>에서 주인공 이동식은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지만, ‘법’을 신뢰하지 않는다. ‘법대로’ 해서 그의 여동생을 죽인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고, 스스로 법규를 위반하는 함정 수사로 마침내 범인을 체포한다. 그 과정에서 겉으로 ‘법과 질서’를 내세워온 경찰의 거물급 인사야말로 정치세력과 개발업자와 결탁하여 중범죄를 저질러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건의 무대가 된 ‘만안’이라는 가상 소도시는 한 사회의 축도라고도 할 수 있다. 드라마는 그 말미에 콤비 형사 이동식과 한주원에게 그간의 탈법 수사에 대한 정당한 징계를 받게 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안전한 해법을 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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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빈센조>은 이런 도덕적 포장을 처음부터 걷어치운다. 노골적으로 ‘법’을 불신하며 ‘법보다 가까운 주먹과 총’의 길을 택한다. <빈센조>의 메인 카피는 사뭇 자극적이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을 이태리에 입양되어 마피아 보스로 성장한 변호사로 설정하여 사이코패스 ‘악당’으로 표상화된 재벌 2세를 같은 악당의 방식으로 쓸어버리게 한다. 악당의 수하라면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이다. 여기서도 재벌과 정치권력, 언론권력의 유착은 필수적으로 묘사된다. 이미 이러한 유착은 한국사회를 드러내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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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이 상대적으로 리얼리티를 중시한다면 <괴물>은 우화적이며 <빈센조>는 일종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마피아의 총질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이런 과격한 설정을 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 드라마는 코믹 터치를 즐겨 활용한다.
그러나 왜 이런 판타지가 나오게 되었는가? 문제는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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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응징’하는 행위에 대해 윤리적 갈등을 느끼기보다 통쾌함을 느낀다. 왜냐고? 이 시대의 한국인들은 이미 ‘법’이 정의롭다고 믿지 않으며, ‘법’이 최후의 보루라고 믿지 않으며,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어쩌면 ‘법’은 운용하는 사람들에 따라 고무줄이 되기도 한다고 믿으며, 어쩌면 ‘법’은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며...그래서 갑갑함이 목울대까지 차올라 있는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바로 이런 대중의 감정에 조응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실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가 아니라 이런 드라마들이 나오게 한 그 이면, 대중들의 심중이 가리키는 나침반을 보라는 이야기다. 검찰과 법원은 왜 대중의 불신을 받게 되었는가. 차라리 악의 방식으로라도 ‘나쁜놈’을 때려부수고 싶은 욕망을 누가 심어주었는가. 한국사회는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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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의 양종훈 교수는 “법을 정의롭게 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했으나 이 말은 곧 “법을 왜곡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법을 정의롭게 하기를 기대하기도 해야겠으나, 사람의 손에 왜곡되지 않고 그 자체가 정의로울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자체를 정비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시간은 쉴새없이 흐르고 있고, 변화는 너무 더디다.
첫댓글 요즘 악마판사 보면서 법대로 하는 시스템에서 법을 해석하는 인간이 어떤 사고의 소유자인지???가 너무 중요
법이 정의롭다???법은 돈으로 정의로워진다....
법은 해석하기 나름이다...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죠???그러다보니..환타지로 가는 듯,,,,
현실과 따로 국밥.....환타지라는 것을 알면서더 그 순간만큼은 현실이기를 바라죠..ㅋ
알쓸신잡에서 좋아하는 영화 물어봤을 때 유시민 이사장이 한 대답이 생각나네요.
자토이치라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자토이치는 눈 먼 검객이래요. 혼자서 악당들을 다 때려잡는 영화라네요.
저는 예전에는 매트릭스나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를 좋아했는데, 존 윅이라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존 윅은 개연성 같은 거 설명할 시간에 한 사람 더 죽이더라구요.
세상이 워낙에 답답하니까.
빠르게 뭔가 좀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