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2박3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연휴가 짧은 관계로 가까운 일본의 대마도에 있는 주요관광지를
둘러보고, 시라타케산을 올랐다.
서울서 출발 할 때부터 잔뜩 흐렸던 날씨는 부산에 당도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부산에 당도한 시각은 새벽... 태종대를 거쳐 설날의 일출을 보려 했으나 무산되고
우리 일행은 태종대 입구에 있는 온천장에 들어가 피로한 몸을 풀고
부산여객 터미널로 향했다.
출국수속을 마칠 때 까지도 겨울비는 여전히 내리고 잔뜩 흐린 대한해협은
거친 파도로 풍랑이 일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시플라워 선상에 들어서자, 일행은 각자 자리를 잡고 배 멀미약을 먹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잔뜩 흐린 날씨와 파도로 인해,
내게는 익숙지 않은 고역이었다.
3시간여 바다 위를 달리자, 드디어 대마도 무수한 섬들이 희미한 안개 속에서
길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마도 이즈하라항에 도착하여(이때 핸드폰 잃어버렸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바로 한적한 시내를 거쳐 카미자카(시라다케 산)로 향하여 등반을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산속은 을씨년스럽고 추운 빽빽한 측백나무가 우거진 산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산속의 기온은 상당히 추웠고 잠시도 지체할 수 없을 만치
생소한 산행이라, 빠른 보폭으로 나아갔다.
시라다케 정산에 다다를 즈음 여기저기 수만은 비석과 영산으로 숭상되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산속이라 추워도, 계곡에는 벌써 동백나무 빨간 꽃잎이 터지고 있었다.
정상에 다다르니, 여기저기 음산하리 만치 흩어져 있는
영화 "쎈과 히치로의 모험"에 보았던 묘한 비석과 작은 돌집들이
있고 안개가 자욱하여 셔터를 누르고 확인해보니, 정상적으로 나오질 않는다.
절벽 아래로 보이지 않은 막막하기만 한, 정상에서의 운무가 거부하듯이 뿌옇다.
내려오는 길, 등산로는 빗길이 되어 등산화가 물에 젖어 온몸이 다 젖어
부랴부랴 산을 내려왔다.
4시간여의 등산은 묘한 기분과 원시림 속에 대마도사람들에게 영산으로 불리는
시라타케는 맑은 날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시내로 내려와 일본식 온천장에 들러, 40여분을 동안 등산의 피로를 풀었다.
이때 비용이 500엔 정도 했다. 수건 및 그 외가 추가로 200엔 든다.
우리 일행은 버스로 이동하여 한국인 운영하는 민숙(료칸)으로 향했다.
이즈하라 동쪽에 해안가 바로 옆에 있는 이 민숙집은 대마도에 오는
많은 산악인들이 주로 묵고 가는 집이라 한다.
이미, 밤이라 너무 어두워 파도소리만 나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한국인 아주머니가 저녁으로 준비한 멧돼지 바비큐와 가리비를 숯불에
구워먹는 맛은 정말이지 그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다.
민숙에 들르기 전, 일본식 술과 면세점에서 구입한 양주로
우리 일행은 이국의 밤에 간간이 파도소릴 들으며 겨울밤과 함께
한껏 취기에 깊어갔다.
새벽 6시, 파도소리에 깨어 물을 받아 샤워를 했다.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잠시 눈을 감으니, 바닷가 새벽의 서늘한 공기와 아스라이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아직 잠이 덜 깨어난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일출을 보려했으나, 대마도에 넘어와서도 여전히 새벽 날씨는
흐려서 그런지 일출을 보지 못했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두 서너 개의 작은 무인도 섬이 지척에 놓여있다.
아름다운 풍광에 셔터를 누르고 바닷가에서 잠시 망망대해를 만끽하고 있을 때
주인장이 아침식사 준비가 되어 부른다.
아침은 전복죽이 나왔다. 우리나라 해장 국그릇보다 넓고 깊은 그릇에
가득담긴 전복죽을 보고 너무 많아 남기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깨끗이 모두 비웠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대마도에 있는 관광길에 올랐다.
처음 마을안에 있는 수선사에서 최익현 선생의 시비에 잠시, 묵념을 하고
주변 경내를 둘러보았다.
(* 최익현 선생1905년 을사조약이 후, 일본제품 불매 운동,
납세거부, 항일의병운동 전개를 하다 순창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다 폐전
되어 일본군에 의해, 대마도로 포로 신세되어 유배 되었다.
대마도로 압송되어 선생은 적군의 음식을 거부,
단식으로 명예로운 죽음의 길을 선택하여 먼 길로 떠났다. -네이버 지식에서.)
그곳을 나와 역사자료관, 고려문, 조선통신사비, 한국전망대, 등등을 둘러보았다.
다니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은,
70%의 자동차가 국내의 마티즈만한 크기의 차라는 것이다.
버스도 그리 많지 않고 길은 간간히 중간선이 그어있지 않은 외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운전자들과 양보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섬 전체 중에 도심은 그리 크지 않음에도, 거리는 너무나 깨끗하고 고요했다.
시골거리도 쉽게 버린 휴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역시 일본은 우리에게 귀감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대마도가 일본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이라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 때가 되면 도시(더 큰 섬?)로 나간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한국인 관광객 외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곳곳에 한글로 표기해 놓은 간판이나 안내가 아주 생소하지 않을 정도이다.
너무 낙후되어 대마도 주민들이 핵폐기물 이전을 인구의 50%가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나의 생각은 어쨌거나, 우리 한국과 가까운 곳에 위험물질이 옮기는 것은 유쾌하진 않다.
2박3일 동안의 짧은 여행이었으나, 내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글을 읽는 분 중에 대마도 여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참고로 내가 묵었던 민숙집을 알려드리겠다.
민숙집 이름 : 친구 Tel:0920-54-5474 하루 조식 석식 제공 6500엔
여름에 바다낚시나 등산 그리고 관광할 때 이용하면 좋을듯하다.
국경의 섬 쓰시마
민숙집에서 100여m 떨어진 나무 판자집.
밤 파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해안과 무인섬.
영산으로 숭상되는 흔적들이 여러곳 있었다.
함께했던 산악회 회원들과 대마도 정상에서.
시라타케를 들어서자, 길게 이어져 있는 측백나무
수선사의 최익현 선생 순국비
*얼굴나온 사진은 낼 올려볼께요^^;
첫댓글 대마도 기행문, 잘 봤습니다^^
오~~우 전 아직까지 속이 울렁거리는데요 ㅎㅎ후기 너무 잘쓰셔서 ~~~오늘은 짧은 대마도 여행추억이나 생각해야겠네요.....여자분들은 맛없는 밥 먹었는데 ㅠㅠ
깔끔한 후기 잘 읽고 갑니다....5명 민숙갈사람 손들라고 할때 언능 손 들걸...ㅎㅎㅎ 후회가 되는군요~~~^^
크레파스님 반가웠어요^^; 민정님도 또 빕기를! 마나술루님 방가방가^^; 담에 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