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2009.9.16. 수요일자
자벌레 洪 海 里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다시 쌓았다 무너뜨린다.
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 한평생의 길,
山은 몸속에 있는 무등無等의 산이다.
◆시 읽기◆ 자벌레는 자벌레나방의 애벌레이다. 중간 쌍의 다리가 없어 가늘고 긴 원통형 몸으로 앞부분을 쭉 뻗은 후 꽁무니를 머리 쪽으로 당겨 올리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움직인다. 제 몸의 길이를 다하는 걸음 걸음이 마치 자로 길이를 재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고,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쌓았다 무너뜨리는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삶은 움직임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어떤 절명의 한순간도 건너 뛸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자로 재면 잴수록 질곡의 수렁 속에 빠지는 것임을 알면서도, 한평생을 자로 재어가며 잘 살고 잘 살아야 하지 않는가.
걸음걸음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쌓았다 무너뜨리는 저 조그만 자벌레도 그 이상은 더할 수 없을 정도의 지극한 삶, 그 무등無等의 산을 넘고 있는 것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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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홍해리洪海里의 집 <洗蘭軒> 원문보기 글쓴이: 洪海里
첫댓글 자벌레 삶을 자벌레의 행보를 이렇게 크고 웅대하게 표현하신 선생님 그리고 하나의 횡으로 표현하신 깊은 의미로 담아봅니다 귀한시 아름답게 수놓으신 고운 시향에 젖어봅니다
자벌레나 우리나 다를 것이 없겠지요. 가을 동안 풍성한 수확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무엇하나 작은것 하나 시인의 마음으로 다 고운 노래가 되는군요 벌레는 그냥 다 싫고 징그러운데 ...자벌레의 시심에 그저 경이롭기만 합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징그럽다고 생각하고 보면 징그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보는 각도, 생각하는 방향을 조금만 바꿔서 보시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저 작은 벌레에게서 저렇듯 높은 시선을 가지신 것도 시인님만의 특출한 재주이기에 부럽기만 합니다........그래서 하나의 삶을 배우고 갑니다........깊은 시심에 감사합니다...
파아란하늘 님에게도 위의 주바라기 님에가 드린 말씀을 그대로 되풀이해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