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열렸던 구자범 음감회는 여러모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말러 음악을 좋아하고 관심깊게 듣는 이들이 모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악회를 갈수도 있지만 지휘자와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서 설명과 질문 등을 나누는 것은 애호가 입장에선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하나이지요. 아마도 구 지휘자는 적은 인원에서 대화형식을 기대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엔 규모가 커져서 (비가 오는 궃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놀랐습니다) 풍월당에선 말러 1번에 대한 구 지휘자의 느낌과 설명 위주에 약간의 질문이 곁들여진 알찬 진행이었고 2,3차 시간을 통해서 직접 대화하신 분들에겐 더욱 큰 충족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날 진행이 스코어를 위주로 진행이 되었지만 사실 말러이기에 스코어는 매우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실내악이라든가 바로크음악 혹은 고전파 음악까지도 웬만한 것은 악보가 없어도 음악을 충분히 이해하고 즐기는 애호가들이 많지만 말러의 경우엔 특유의 소재적 다양성과 스토리의 장황함 그리고 각 악기파트의 개별성이 두드러지는 폴리포니적 요소로 인해 현장 콘서트 라이브가 아닌 음반감상일 경우에는 늘 소리에 대한 아쉬운 갈증이 일때가 많습니다. LP를 통한 감상일 경우는 폴리포니적 요소가 그나마 살아있어서 괜찮지만 CD를 포함한 디지털 포맷은 그런 아쉬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죠. 또한 말러의 규모로나 파트로나 대편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실제 작곡가가 어떤 지시를 했을까 하는 것을 악보를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러므로 말러의 곡들에 있어서 그냥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스코어를 곁들여서 감상하는 것은 결코 허세나 사치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음악은 들려오는 소리가 제일 중요하므로 스코어 없이 감상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스코어를 통해 듣다 보면 우리가 흔히 들을때 습관적으로 넘기거나 흘려듣거나 하는 부분을 최소화시킬수 있고 음악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또한 말러의 경우 단순한 악보 표기 이상으로 구체적인 지시사항들을 스코어 페이지마다 개별적으로 많이 써놓았는데 이것들이 음표 이상으로 중요한 사항들이라는 것, 또한 그렇기에 말러 음악을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하고 느끼는 재미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의 그림자와 낭만의 재미도 보이지만 현대적인 스펙트럼의 음악까지 남겨서 현대인들에게 그냥 클래식이 아니라 현대인의 심성과 비슷한 코드가 많아서 공감할 부분이 많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구 지휘자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들려주어서 매우 뜻깊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구 지휘자는 위에서 음악과 소리에 대한 관점과 가치를 선명하게 가지고 있고 술자리 모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진짜소리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열정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단 한마디를 위해 지시된 스코어의 악기파트가 수십개지만 그것을 다시 해석하는 지휘자는 탐구자일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것을 하나의 주제로 이끌어 내는 과정에 있어선 예술가일수 밖에 없고요. 구 지휘자가 주말에도 얘기했고 이전에도 얘기했던 음악의 세가지 창조인 작곡자의 작품인 초창조, 연주자들의 연주인 재창조, 감상자들의 감상인 추창조란 세가지 과정에서 주체성이 없다면 의미가 없겠죠. 창조의 외연이 넓어지고 확장되기 위한 주체의 인식이 중요한건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음악을 좋아하는 느낌과 측면은 모두 다를지라도 그 인식의 주체만 서 있다면 의미없는 유행에 동참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공감의 연대만이 남아 있을뿐.
구 지휘자의 스타일과 성향으로 볼때 그가 모든 작곡가들의 곡을 모두 잘 소화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그가 지향하는 쪽이 후기낭만이나 현대음악에 가까운 것을 지향한다면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 현실은 그리 녹록치는 않아 보입니다. 케이팝과 영화 등으로 인해 한류문화와 자산이 커지긴 했지만 아직까진 대중문화의 물량적 측면에서의 갑작스런 성장이지 예술문화의 입장에서 볼때 불균형성은 매우 심합니다. 혹시 구 지휘자가 순수주의자이고 완벽주의자라고 하더라도 국내 문화예술투자의 소홀한 부분들에 대해 아쉬워하지 말고 잘 이겨내고 보란듯이 잘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휘자로선 아직 충분히 젊고 기회가 있으니까요. 설령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현실엔 덜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그려놓기만 하면 언제든 실현되기 마련이니까요.
시간은 분명 젊은 지휘자 편에 서 있습니다.
첫댓글 눈도 귀도 마음도 즐거웠을 듯한 음감회였을텐데 율리시즈님의 글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
안녕하세요? 율리시즈님~음감회 뒷풀이 사진으로 뵈었어요.반갑습니다.^^
그자리에 있지 못해 못내 아쉽고 음감회 내용도 궁금했었는데,후기를 읽고나니 어렴풋이나마 그려지네요.좋은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작곡자의 작품인 초창조, 연주자들의 연주인 재창조, 감상자들의 감상인 추창조란 세가지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세 과정 중에 마지막 감상인 '추창조'가 맞는 표현인가요?
예. 따를 추의 그 추창조입니다. 초창조,재창조,추장조란 말은 구 지휘자가 광주시향 부활때도 언급했던 내용이죠. 음악 작품의 창조와 수용에 관한 주체적인 인식과 표현의 상황을 잘 살려낸 언급이라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아~그럴 줄 알았습니다.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표현이네요.^^상세한 설명에 감사드려요~율리시즈님~참, 진즉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이 캐리커쳐는 직접 그리신 거예요?ㅋ
하하~ 제가 그린건 아니고요. 예전 구 지휘자가 하노버국립오페라극장 지휘자에 취임했을때 동아일보에서 화제의 인물로 일러스트로 나왔던 거에요. 최남진씨가 그린거고 소스는 여깁니다. http://news.donga.com/3/all/20051126/8251233/1
아~그렇군요^^*
근데 그날 행사의 제목부터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 우리는 음악 감상회를 한 것이 아니라 지휘자님의 강연을 들은 것이니 음감회라는 명칭은 좀 어색해 보입니다. 굳이 붙이자면 말러교향곡 강연회(?) 줄여서 말강(?)
ㅋㅋ말강이요??
네. 생초보님 말씀처럼 음감회보다는 말러 강연회가 더 적절한것 같긴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