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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遺産)을 찾아서 - 경주 남산 언제 : 2008.02.21 누구랑 : 산악회 따라서 아내랑 유산(遺産)의 사전적인 의미는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이나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라고 정의되어 있으니 나의 선대에 어디 땅속에 묻어둔 값진 보물이 있었거나 혹은 등기 안내고 묵혀논 땅이 있어 그걸 찾아 나서자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사 토지 보상액이 억울해서 그랬다지만 인생 칠십에 무얼 그리 더 갖고 싶다고 온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그런 몹쓸 짓을 저질르다니?...그러고 보니 있을 때는 그저 그런게 있구나 싶었는데 막상 불타고 있는 남대문의 기와지붕이 와그르르 무너질때 우리네의 약팔한 자존심 마저 폭삭 무너져 내리는 엄청난 수모를 당하고 말었으니 이를 우짜문 좋노? 더 이상은 안되여!...아! 남대문이여!!..... 그런 내 속내를 알고 있기나 한 듯이 모 산악회에서 경주 남산에 간다는 문자 메시지가 날라왔다. 일진을 짚어보니 내가 쉬는 날과 아내의 쉬는날이 아다리가 맞기는 맞는데 문제는 아내의 몸상태가 영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감기 몸살이 걸리면 약이든, 밥이든, 술이든 죽어라고 먹어대면서 견디는데 아내는 병원에 데려다 준대도 고개를 외로 꼬며 죽어라고 안먹고 견디니 내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안타까운 마음을 꾹꾹 누르며 찹쌀죽이라도 쑤어서 억지로 멕일수 밖에?...허~참! 그래 곧 죽어도 산에는 간다니 나는 어떠캐해?..ㅋㅋㅋ
다녀온 길
10:53 4시간여 달려온 서남산 주차장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소남산 입구에는 해병대 빨간 모자를 쓴 젊은 산불 감시인이 해병대 조교처럼 허리에 양손을 턱 걸치고 헛폼을 잡고 서 있지만 내 눈은 용틀임 하듯 꾸불텅 거리는 소나무에 머문다. 쭉쭉뻗은 소나무도 멋있지만 이렇게 지멋대로 꾸부러진 소나무도 참 멋있지 않은가? 금강형 소나무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안강형 소나무는 산림생태계의 파괴가 극심했던 경주 인근의 지역에 자라는 줄기가 굽어 있고, 수관이 빈약한 볼품 없는 소나무를 말한다. 또 경주와 안강 지역은 여름철 강우량이 제일 적고, 6월과 7월의 온도 교차가 가장 심한 지역으로, 수목 생장에 좋지 않은 환경임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별개로 학계에서는 지리적으로 10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경북 청송의 소나무와 경주의 굽은 소나무가 형태적으로 차이가 심한 이유를 신라인들이 숲을 이용하던 양태에서 찾기도 한다. 다른 문명권과 마찬가지로 신라 역시 문명발달을 위해서 숲을 희생시켰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궁궐과 집을 짓고자 곧고 좋은 소나무만 줄곧 골라 썼기 때문에 남아 있던 좋지 않은 나무에서 씨가 떨어지고, 그 자손 중에서 또 좋은 나무는 베어지고 나쁜 나무는 남아 씨를 남기는 일이 1000년이 넘도록 반복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 진골은 진골대로 성골은 성골대로 천 년전 신라의 왕자들이 이 솔숲을 뛰어다나며 호연지기를 키웠을테니 어디 나도 왕자가 된 기분으로 한바탕 남산을 휘젓고 돌아댕겨 볼꺼나?...ㅋㅋㅋ
11:00 삼릉이다. 삼릉은 배리삼릉으로 불리며 3기모두 원형 봉토분이며 서쪽 가장 아래 8대 아달라왕릉(154~184), 중앙 53대 신덕왕릉(912~917), 동쪽 54대 경명왕릉(917~924)으로 전한다. 능의 구조는 도굴로 확인 된 傳신덕왕릉으로 인하여 모두 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무덤 주인공에 관해서는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이라고 불리지만 그 근거는 미약하다. 모두 박씨계 무덤으로 보고 추정한 것이지만 아달라왕과 신덕왕 사이에 700년이라는 공백이 있는 바 이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11:28 솔향이 짙게 묻어나는 삼릉의 솔숲을 지나 물마른 소계류를 건너 우회전 하니 야트막한 산길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원체 얕고 펑퍼짐한 산이다 보니 애들은 학교로 보내고 신랑은 일터로 보내놓고 비무장에 운동화 차림인 동네 줌마들이 삼삼오오 어울어져 산행의 즐거움을 재잘거리며 내려 오다가 완전군장으로 혼자서 삘삘거리며 올라오는 나를 보더니 쌤통이 났는지 어디 만만한 노인네 엿좀 먹어 보라는 듯 염장(?)을 질러댄다. 어떤줌마 : 옴마야?....얄구져라!...이 아자씨는 지팽이를 2개씩이나 짚고 올라온데이!...ㅋㅋㅋ 빵과버터 : (오~잉?....???) 예...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런 나이가 됐네요!....
11:42 원래는 이 그림을 볼 수 없어야 했는데 선두조가 한걸음 잘못 디디는 바람에 엉뚱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11:42 비록 잔가지에 마른 잎은 버석거리고 있지만 남도의 봄은 진즉 와 있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 모르지만 춘정에 겨운 산새는 내가 지켜보는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둥지를 꾸밀려고 물어온 잔가지를 열불나게 다듬고 있다. 거기다가 한놈은 보초까지 서가며....그래!...둥지는 정말 좋은거여....
11:48 얼핏보면 유치한 듯한 약수골 마애석불 이정표가 익살 맞은데 필경 여기서 아내와 K씨는 석불을 보러 내려 갔을거라고 짐작하고 잠시 쉬는데 아래 쪽에서 두 여인이 올라오더니.... 산자고여인 : 옴마?...형부!...여기 계셨네요?...언니는요?... 빵과버터 : (얼굴이 벌개지며...)아마 석불보러 내려갔을꺼요...어떻게 같이 내려 갔다가 오실려우?... 산자고여인 : 우짜노?...함 같이 가볼까나?...
11:53 석불위 키큰 산죽 터널이다. 아내는 자기 입맛에 맞는 산행지를 골라가며 여기 저기 산악회를 따라 다니다 보니 좁은 지역사회에서 제법 안면이 알려져 왕언니 대접을 받으니 얼떨결에 나도 형부가 된다. 앞모습을 담자니 민망스러워 할까봐 몰래 뒷모습만 담었는데 살결 고운 처제한테 실례가 안될지 모르겠다?....
아내와 K씨는 이미 석불에 와 있었고 로프를 잡고 10여메타를 내려가야 하니 희미한 석불을 보느니 차라리 약수나 한바가지 퍼먹자고 약수 쪽으로 또 다른 로프를 잡고 내려갔더니 꽝!....물이 없다.
12:23 정상석과 소나무...
K씨와 동행하는 산행은 마음이 널널해진다. 지리종주의 조그만 인연이 언제나 내 대신 아내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이기 때문이다...ㅋㅋㅋ
12:38 아내와 K씨는 부석을 가까이 볼려고 내려가고 나는 주초만 남은 팔각정터에서 산불감시 아저씨의 경주 유적 설명을 듣는다. 맥칼없이 그저 멍하니 산불 감시만 할께 아니라 이분처럼 유적설명을 자상하게 해준다면 큐레이터가 따로 없는 거 아닌가?...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서 여총무님과 몇분의 일행을 만나니....여총무님을 미안해서 어떻하나? 하면서 선두가 길을 잘못잡고 올라와서...금오정 전망대 길은 오층석탑밖에 볼게 없으니 정상까지 되돌아가서 상선암쪽으로 내려가 석불들을 보고 포석정으로 오란다... 어쩐지 홍선생님과 황권사님이 정상에서 마애석불 보시겠다고 내려가더라니?..쩝,쩝...
부석과 서출지(오른쪽 조그만 연못) “신라 제21대 소지왕 10년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갔을 때 까마귀와 쥐가 앞에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을 하여 왕에게 고하기를 `이 까마귀의 가는 곳을 찾아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왕이 기사를 명하여 쫓아가게 하였는데, 남산의 동쪽에 있는 피촌(避村)에 이르러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서서 보다 그만 까마귀의 간 곳을 잊어버리고 길가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 때 한 노인이 못 가운데서 나와 글이 써진 편지를 올렸는데, 겉봉에 쓰여 있기를 `이 편지를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을 것이다'고 하였다. 기사가 와서 왕께 편지를 드리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게 된다면 차라리 떼보지 말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천기를 보는 일관이 아뢰되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두 사람은 일반 백성을 말하는 것이요,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도 그렇게 여겨 편지를 떼어 보니 그 글에 이르기를 `거문고 집(琴匣)을 쏘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곧 궁궐에 들어가 무사를 시켜 활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거기에는 궁궐의 내전에서 불공드리는 승려와 지체 높은 여인인 궁주(宮主)가 서로 간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왕은 두 사람을 처형시켰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신라의 풍속에 매년 정월의 첫 돼지날(上亥)·쥐날(上子)·말날(上午)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정월 15일은 까마귀를 기리는 날인 오기일(烏忌日)로 정해서 찰밥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이 풍습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세속 말에는 이것을 `달도'라고 하는데, 이 뜻은 모든 일을 구슬프게 금지한다는 것이다. 편지가 나왔다고 하여 그 연못을 서출지(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소재)라 하였다.”
13:31 상사바위
상사바위에서
상선암
어떤 사람은 뛰어가고...어떤 사람은 기어가고...어떤 사람은 움직이지도 않고...그러나 결국 가는 길은 거긴데...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진을 찍는다고 늦으감치 아내와 K씨가 상사바위에 이른다
상사바위에서
상사바위에서
늦게나마 절의 의미를 알고나니 기쁘기도 하지만 조심스럽기도 하다. 작년 여름 대미산 산행 하산할 때 앞으로 고꾸라져 허리를 다친 일이 있었는데 지인인 한의사 백산선생은 절운동을 완곡하게 권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시큰둥하게 들어 넘겼지만 년말에 108배 절운동이 TV에 소개되고 나서부터 종교와는 관계없이 나의 관심을 끌게 되었던 것이다. 몸의 자세를 낮춰라. 행복이 시작하는 자리이다.
마애석가여래좌상
눈을 크게 떠서 다 보지도 말고 입을 크게 벌려서 다 말하지도 말아라!!....나무관세음보살!!
상선암
상사바위
13:51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선각여래좌상에서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14:27 삼릉계곡 석존여래좌상
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계곡에서
14:39 결국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래!...못생긴 나무가 숲을 이루는 거여!...
14:45 망월사에서
14:45 망월사에서
14:45 망월사에서
14:45 망월사에서
14:45 망월사에서
14:55 무릎을 굽혀야 볼수 있는 좁쌀 만한 풀꽃이다. 하심(下心)이리라.
망월사를 나와 아내와 K씨가 화장실쪽으로 올라 가길래 뭐 특별히 볼꺼리가 있을까 싶어 기다려도 강원도 포수가 되고 말었다. 삼불사가 지척인줄도 모르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총무님에게 나의 현위치를 알려주고 포석로를 따라 유유자적 걸어간다. 아쉬운 것은 유네스코 지정 유적지인 고도 경주의 포석로가 좌측은 그래도 깔끔한 도보인데 우측은 40년전 세멘 블록 그대로다...아직은 우리가 허평더평 살때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NOT YET!!...
15:00 포석정 주차장에서
16:13 천마총 앞에서
16:13 천마총 앞에서
16:13 천마총 앞에서
19:50 승용차 9대를 탑재한 트레일러(청원휴게소에서) (산행을 마치고) 산행기 타이틀을 거창하게 "유산을 찾아서" 라고 하다보니 멋쩍기는 하지만 남대문이 불타고 난 후의 산행이다 보니 각별하게 선조들의 유산이 정말 소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년 고도 경주의 유산들 중에 남산리 삼층석탑, 용장사곡 삼층석탑, 능지탑지, 배리 석불입상, 미륵곡 석불좌상, 침식곡 석불좌상, 삼릉계 석불좌상, 용장사곡 석불좌상, 불곡 석불좌상, 칠불마애석불 등을 한꺼번에 다 둘러 볼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경주를 찾아 나머지 유산들을 둘러보고 싶은 소박한 심정을 추스리며 산행을 마친다. (산행기 끝) |
첫댓글 에효... '누님의 병원은 곧 산이다. '란 걸 아직도 모르시고 계시다니... ㅋ 매형처럼 숭례문 기왓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상기하면서 남산길을 걸었더라면 더욱 의미가 있었을텐데 저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네요. ^^; 불자보다 더 불자같으시고 웬간한 유적탐사꾼 빰칠 정도의 해박하심에 슬며시 꼬리를 내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