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닮았다
나고음
그녀는 깊었다
결코 마르지 않는 물이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스펀지처럼 가슴에 품고
필요할 땐 언제나 내어 준다. 과하지 않게.
활화산 같은 사랑으로 생산한 피붙이들은
큰 가슴 속에서 목마름을 모르고 살 수 있다
누굴 닮았다
단단한 암석 위에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고
그 위로 비용결 응화암과 퇴적암이 쌓여
넘치지 않고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흘려보내
넓은 호수는 메마르지 않고 수량은 늘 풍부하다
그 물에 발 담근 왕버들
물 위로 비치는 모습이 그림 같다
물에 뿌리 박은 우람한 왕버들을 다 품고 있는 넉넉한 주산지
꼭 누굴 닮았다
절반의 포기 절반의 기대
뜨거워도 시원하고
식어도 뜨거운
깨진 작품 꺼낸 가마는
아쉬움 까지 얹어 뜨거움 더하다.
사라진 불꽃 뒤로 엎어져 깨진 놈 바라보는
새까만 마음
금의환향 기다리는 벌건 내 눈길 생각하면
저도 이 터널 나오기 얼마나 민망했을까
엎어진 놈 엉덩이 두들기며 다시 시작하는
사랑은 절반의 포기 절반의 기대
나고음_2002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불꽃가마> <저, 끌림> <페르시안블루, 꿈을 꾸는 흙> <그랑드 자트 섬의 오후로 간다>가 있음. 서울시문학상, 바움작품상, 한국시문학상 등 수상.
ㅡ 『시와소금』(2023,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