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구 삼촌>
권정생 글 / 허구 그림
2009년 6월 15일 발행 / 46배판(182×256)
40쪽 / 독자대상_ 초등 저학년 이상
값 9,500원 / ISBN 978-89-7650-347-3 73810
● <용구 삼촌>이 서 있는 자리
권정생 선생님은 쉰네 살이 되던 1991년에 <용구 삼촌>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을 쓰기 전, 선생님은 《몽실 언니》《초가집이 있던 마을》《점득이네》 같은 굵직한 소년소설들을 10여 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참혹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사람들 가슴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다룬 장편이었습니다. 이들 작품에 비하면 <용구 삼촌>은 소품에 가깝습니다. 글의 분량도 그러려니와 사건의 구조도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하지만 이 짧은 이야기에는 앞서 발표된 장편과 다른 차원의 압축된 서정과 여운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을 전후로 하여 그의 작품들은 또 다른 갈래를 만들어 갑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와 현실에 대한 생각을 보다 직접적인 산문 형식으로 발언하는 일이 잦아집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과 그의 아들 예수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보고 듣고 느끼며 갖는 절절한 체험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나, 아이들 생활에 보다 밀접하게 다가간 단편동화집 《짱구네 고추밭 소동》에서처럼 소재의 외연과 표현 형식이 한결 넓어지고 다양해집니다.
<용구 삼촌>은 원래 19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모으고 이오덕 선생님이 엮어 도서출판 산하에서 펴낸 작품집 《통일은 참 쉽다》에 실린 동화이며, 1996년 녹색평론사에서 펴낸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에도 실려 있습니다. 작가의 대표적인 동화집에 들어 있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함축된 의미와 긴장감을 자아내는 색다른 분위기로 빼어난 단편동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작품의 줄거리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모든 게 서투른 용구 삼촌. 사람들이 하는 말로, 용구 삼촌은 바보입니다. 그런 삼촌이 언젠가부터 누렁소를 데리고 꼴을 먹이러 다닙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해질녘이 되었는데도 삼촌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들마루에 걸터앉아 태연한 척 담배를 피우고, 할머니는 담장 너머 고샅길을 살피며 하염없이 서성입니다. 이윽고 누렁이의 워낭 소리가 들려오지만, 삼촌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경희 누나와 나는 삼촌을 찾아 나섭니다. 못골 골짜기는 이내 어두워지고, 낙엽송 솔숲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나중엔 마을 아저씨들까지 저마다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나서서 온 산을 뒤집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참나무 숲 쪽 산비탈에서 삼촌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웅크리고 고이 잠든 삼촌의 가슴 안에는 회갈색 산토끼 한 마리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나는 그만 안도감과 까닭 모를 슬픔에 흐느껴 울고 마는데…….
언젠가 권정생 선생님은 “큰길에서 비켜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참 좋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 작품에 그려지는 용구 삼촌이 그런 사람일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에 그려지는 모든 주인공들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하나도 잘난 것 없지만, 결코 다른 이의 앞자리에 서려 하지 않고, 남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사건이 뜻밖에도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곁에 가만히 머무르는 용구 삼촌이 사람다움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우는 것입니다. 해거름부터 한밤중까지 전개되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고조되는 감정의 물결과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담아내어 서정의 깊이를 더한 허구 화백의 그림들도 오래도록 우리의 눈길을 끌어당깁니다.
● 작품 중에서
바보여서 그런지, 삼촌은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특별한 먹을 것이 있으면 우리들 조카들에게 나눠 주고 언제나 삼촌은 나머지만 먹었습니다. 그것이 버릇처럼 되어 으레 삼촌은 찌꺼기만 먹는 사람으로 길들여졌는지도 모릅니다. 새 옷 한 벌 입지 못한 삼촌은 항상 헐렁하고 기워진 바지만 입었고 머리가 덥수룩했습니다. 까만 고무신만 신고 삼촌은 그래도 언제나 웃었습니다.
● 권정생 선생님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권유술과 어머니 안귀순 사이에서 태어난 5남 2녀 중 여섯째였습니다. 어릴 때에는 권경수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골라 온 헌책들 중에서 《이솝 이야기》《그림 동화집》 같은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글을 익혔습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귀국했으나, 가난과 6·25전쟁 때문에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열여섯 살이 되던 1953년 안동 일직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할 돈을 모으기 위해 닭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으로 닭들이 모조리 죽어 버리자 나무, 고구마, 담배 따위를 팔았습니다. 저녁에는 아랫마을에 열린 야간학교에 나가 영어와 수학을 공부했으며, 수업료 대신 나무를 해다 주었습니다.
1955년 부산으로 가서 재봉기 상회에서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용돈이 생기면 헌책방에 가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작가들이 쓴 문학작품을 빌려 읽었으며, 틈틈이 시와 소설을 써 보기도 했습니다. 열아홉 살 무렵 결핵을 앓기 시작하여 평생 동안 병으로 고생했습니다.
1968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자리 잡고, 마을 교회에서 종지기 일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동화를 써서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기독교 교육》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았고, 1973년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1982년부터 조탑동 교회 뒤편에 있는 빌뱅이 언덕에 흙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양철 지붕을 얹고 아주 작은 방 두 개를 들인 여덟 평짜리 집이었지만, “따뜻하고, 조용하고, 그리고 마음대로 외로울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생각에 젖을 수 있어” 참 좋다고 여겼습니다. 선생님은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으며, 책을 펴내고 받은 인세는 북한의 어린이들과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에는 참 많은 주인공들이 나옵니다. 아기 소나무, 찔레꽃잎, 다람쥐, 까마귀, 개구리, 돌멩이, 강아지똥……. 우리가 보기엔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인지 몰라도, 모두가 함께 어울려 지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 서로 나누고 아끼면서 만들어 가는 삶의 가치,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보살피고 자연의 질서를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선생님의 동화를 이끌어가는 힘입니다.
그동안 펴낸 작품으로 《강아지똥》《사과나무 밭 달님》《하느님의 눈물》《몽실 언니》《초가집이 있던 마을》《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점득이네》《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짱구네 고추밭 소동》《오소리네 집 꽃밭》《먹구렁이 기차》《밥데기 죽데기》《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비나리 달이네집》《랑랑별 때때롱》 등이 있습니다.
● 그린이 허구
경기도 동두천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동안 《왕이 된 소금장수 을불이》《니안짱》《고정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장영실》《이원수 선생님이 들려주는 해상왕 장보고》《난 너보다 커, 그런데…》《아기 민들레의 꿈》《요람기》《민족의 영웅 독립운동가》《둥글이 누나》《만길이의 봄》《박뛰엄이 노는 법》《처음 받은 상장》《얼굴이 빨개졌다》 등의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첫댓글 ㅎㅎ
ㅋㅋㅋ 용구 삼촌~~ ^^
저희 서점 카페로 옮겨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