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께서 바라시는 실상염불 - 3 / 청화 큰스님
불자님들, 우리의 본래 성품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염불을 하시려면 그렇게 바르게 실상염불을 하십시오.
실상염불을 해야 비로소 참다운 공(功)이 있단 말입니다.
실상염불의 공은 어디에 다가 비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보나,
좋은 사람을 보나 어떤 것이나
다 부처님으로 생각을 하면, 그때는 서로 상통이 됩니다.
내외가 살 때도 부인이 남편을 부처로 보고 남편이 부인을 부처로 보면,
그보다 더 좋은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친지나 사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어떤 것을 보더라도 다 부처로 보는 실상염불을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염불법 입니다.
부르노라고 하는 십육세기에 살았던 분이 있습니다.
도미니꼬 교회의 유명한 수사입니다. 또 니콜라스 콘돌라스라는 신학자가 있어요.
그분은 이른바 범신론자(汎神論者)였습니다.
기독교는 하느님만 믿는 일신론 아닙니까?
우리 불교 또는 힌두교와 같이 천지사물 일체존재와 우주자연이
바로 신이라고 하는 것이 범신론입니다. 그래서 자고로 이
범신론과 일신론 사이에서 서로 잦은 다툼이 있어 왔습니다.
신부인 니콜라스라고 하는 분은 추기경을 지낸 분인데,
교황 다음가는 높은 지위에 있던 분인데도,
일신교가 아닌 범신론을 주장하셨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같은
그리스 철학을 공부해 가지고 거기에서 영향을 받았겠지요.
부르노라는 수사 역시 니콜라스라는 선배를 따라
일신론이 아닌 범신론을 주장했습니다.
그 당시 카톨릭측에서
범신론을 주장하는 사림을 제일의 이단으로 몰았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으로 잡혀가서,
“그대가 살려면 이 범신론 주장을 포기하라”고 강요를 받았습니다.
용기가 없고 신념이 약한 사람이라면, 화형당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그걸 면하기 위해서 “신념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면 될 것을 그 수사는 신조가 굳은 사람이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칠년이나 감금을 당했는데도,
그 분은 칠년동안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칠년 후에 화형을 당했지요.
얼마 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 분한테 대해 로마 교황청에서
재판을을 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이라는 것을
주장했는데, 그 당시는 지동설과 천동설로 다툼이 많았습니다.
당시 카톨릭 사회에서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하는 천동설이 지배했었습니다.
그것이 카톨릭 세계관으로 확립되어 있었으므로,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하면 그 권위가 무너지고 세계관이 흔들리겠지요?
그래서 그 당시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전부 종교재판에 몰아서 화형 시켰습니다.
갈리레오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따라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감금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부르노와 달리
신념이 약했던지 “지동설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현혹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비판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신념을 꺽었습니다.
그러니까 화형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팔년이나 감금을 당했습니다.
칠십팔세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집에서 감금당했습니다.
갈리레오가 재판을 받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자기는 지동설을 주장했는데
그 주장을 폐기하라고 해서 표면적으로는 폐기를 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부정할 수는 없어서“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독단주의, 도그마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 독단주의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앞으로 종교를 어떠한 방식으로 믿든지 간에,
절대로 독단적인 사고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독단주의를 지양해서 정말로 성자의 바른 자세를 종교를 생각할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 현상적인 문제는
상대적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아셔야 합니다.
어떤 문제라도 세상의 인연따라 생기는 것은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독단을 부리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를 다 그 근본 자리에서
원래의 생긴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그 본래있는 대로 보지를 않습니다.
자기 업대로 보지요. 유명한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있습니다.
똑같은 물을 상대 할때도 우리 중생들은 먹는 물로 봅니다.
귀신은 물을 피로봅니다. 고기는 물을 자기가 사는 집으로 봅니다.
천상 사람들은 물을 영롱한 구슬, 보배로 보고, 부처님은 신묘한 불성으로 봅니다.
중생은 업의 거울로 사물을 보는 것이지, 사실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대로 보는 것은 실상관입니다.
실상관이란 우주를 부처님이 보시는 대로 보는 것입니다.
조금도 가림이 없이 전부를 다 하나의 불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의 견해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둘로 나누고 셋으로 나누어 보는데,
부처님의 참다운 혜안, 부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두가 다 하나로 보입니다.
간단 명료합니다. 다만 부처님이 하나로 보는 견해를
중생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업장이 무거운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될 수 있을까 의심하고,
자기가 가진 견해대로, 보고배운 지식대로 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업장이 가벼운 분들입니다.
따라서 업장이 가벼운 사람들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如語)하시고,
참다운 진리를 말씀(眞語)하시고,
헛된말씀(不異語)을 하지 않으시고,
우리 중생을 속이는 말씀은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정말 온전히 인정하고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 말씀을 따르려면,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견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처님의 소견을 따르는 것은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이라 하는데,
우주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다 쉽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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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부처님의 참다운 혜안,부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부처님을 생각합니다.감사합니다.성불하소서~나무관세음보살_()()_
보이는 일체가 부처인데 나는 어찌하여 부처로 보지 못하고 부처를 찿아 헤매이고 있는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일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것"...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반야바라밀 _()_
우주를 하나의 생명으로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반야바라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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