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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장
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ㅇ마므레 상수리 수풀 - 예루살렘 남방, 헤브론 근교에 위치한 곳으로 롯과 헤어진 아브라함이 일찍부터 정착지로 삼아 지금까지 거주해 오고 있던 지역이다. ㅇ오정 즈음에(케흠 하욤) - '때'(욤)와 '열'(하맘)이 합쳐진 말로 직역 하면 '더운 그때에', 곧 태양이 하늘 중앙에 치솟은때를 가리키는데 이때 팔레스틴 거민들은 대개 식사와함께 잠시휴식을 취한다(창43:16;아 1:7).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ㅇ사람 셋 - 13절과 19: 1에 의거할 때 이 중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머지 둘은 천사임을 알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과 천사가 이처럼 가시적(可視的) 인 사람의 형상을 입고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까닭은 어디까지나 계시 내용을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무형상적이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월자이시므로 그 본연의 모습으로서는 뜻하는 바 계시 내용을 유한한 인간에게 적절하게 전달할 수 없으므로 이처럼 사람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ㅇ달려나가 - 생면 부지의 나그네들에 대하여 적극적이고도 진실된 사랑 으로 영접한 행위이다. 여행 중에 지친 나그네를 대접하며 그들에게 잠자 리를 제공하는 것이 당시 히브리인들의 관례로 굳어긴 아름다운 풍습이긴 하지만(출 22:21;욥 31:32;마 25:35;딤전 5:10) 이처럼 아브라함이 그들을 보자마자 달려나가 따뜻하게 영접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친절이자 그의 삶이 항상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는 삶이었음을 드러내 준다. ㅇ몸을 땅에 굽혀 - 귀한 방문자에 대하여 갖추는 근동의 인사 양식이다. 야곱이 에서를 맞이할 때(창 33:3), 요셉이 그의 아버지를 환영할 때(창 48: 12) 또한 선지 생도들이 엘리사를 맞이할 때(왕하 2:15)에도 이러한 인사가 행하여졌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의 신분이나 연령등을 묻지도 않고 이러한 예우를 표한것은 그의인격이 평소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3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ㅇ내 주여 -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에 대하여 단수인 '내 주여'(my lord))를 사용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이에 의거해 아브 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중 한 사람이 하나님이심을 즉시로 깨달았다고 해석 하기도 한다. 그러나 (1) 이는 세 사람을 총칭하는 대표 단수이며 (2) '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는 종교적 의미 뿐 아니라 남편(12절)이나 상전 (24:12) 또는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일반적인 의미도 함께 지닌 단어란점 (3) 아브라함이 부지중(不知中)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고 성경이 친히 증거 하고 있는 점(히13:1) 등에 의거할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즉 아브 라함은 이후 서서히 그들의 정체를 깨닫게 되기는 하지만(17,22절) 아직 은 그들을 단순한 나그네로 알고 일반적 차원에서 존칭어를 사용한 것이다.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ㅇ발을 씻으시고 - 아랍과 팔레스틴 지역은 대부분 모래와 먼지가 덮인 거친 사막길로 되어 있다. 따라서 샌들(Sandal) 같은 간단한 신발만 신고 먼지 길을 오래 걸은 여행자들에게는 발 씻을 물이 절실히 요구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 으로 인해 고대 근동에서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가져다 주는것이 필수 관행이 되었는데 이는 손님접대에 있어서 최상 최적의 예우였다. ㅇ나무 아래서 쉬소서 - '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안'은'기대다'. '눕다', '의지하다'는 뜻으로 곧 나무 그늘에서 휴식하며 식사하기에 편한 자세를 취하라는 의미이다. 오늘날도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왼팔로 몸을 바치 고 른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히브리인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식사법 이다(요13:23).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ㅇ쾌활케( , 사아드) - '세아드'(원조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견고케 하다' (잠 20:28), '힘있게 하다'(시 104:15), '원기를 되찾다'는 뜻이다. 장거리 여행으로 인하여 쇠진한 기력을 힘있게 회복할수 있게끔 쉬라는 뜻이다.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ㅇ떡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가'는 '레헴'(떡, 빵)보다 더 고급스런 빵으로 뜨거운 돌에 구운 일종의 '펜 케이크'(pan-cake)를 가리킨다. 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ㅇ나무 아래 모셔 서매 - 나그네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지 않고 '그들이 나무 밑에서 먹는 둥안 곁에 서서 시중든 것'(공동번역)을 의미한다. 이것은 손님에 대하여 극진한 예우를 갖추는 행동이다. ㅇ그들이 먹으니라 - 유대 주석가 및 일부 카톨릭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해석 하기를 그들이 단지 먹는 척하였뿐이지 실제로 먹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Josephus,Philo,Jonathan) 그러나 이것은 본문에 비추어 볼 때 지지될 수 없는 해석이다. 물론 영적 존재가 육적인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과 수행 천사가 기꺼이 음식을 드신 까닭은 마므레의 환대 사건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 사건었다는 점을 족장에게 확신시키고 동시에 아브라함과 보다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Keil,Delitzsch,Lange). 이는 마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신 것(눅 24:41-43)과 같은 이유이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ㅇ사라가 어디 있느냐 - 세 나그네가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보통 여행자 들이아님을 시사해 주는 질문이다. 즉 이들은 이미 족장의 아내인 사라의 이름 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라에 대한 특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아브 라함을 특별히 방문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ㅇ그가 가라사대 - TEV는 '그'를 '그들중 한 사람'(one of them)으로, RSV는 '주'(the lord)로, 공동 번역은 '하나님'으로 각각 번역하였다. 이제 하나님께 서는 자신이 방문한 목적을 밝히려 하시는 것이다. ㅇ기한(에트 하야). '시간'(에트)과 '생명'(하야)이 복합된 말로 직역하면 '생명의 시간'이다. 이는 '소생할 때', '해가 바뀔 때'란 의미로 만사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ㅇ네게로 돌아오리니 - 하나님에게 있어 '임하다' '돌아오다' 등의 표현 (출 3:18; 민 10:36;시 50:3;90:13;슥 14;5)은 그분이 어떤사건에 직접 개입하셔서 사역하시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지금은 약속만을 가지고 너를 방문했지만 다음에는 약속의 실현을 가지고 다시 찾아오겠다'란 뜻이다. ㅇ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 이로 보아 아브라함 가족들의 거처인 장막은 나그네 들이 앉아 쉰 나무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대 유목민 들의 장막은 대개 칸막이가 처져 있어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바깥 부분은 주로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사랑방으로 남자들이 사용하였고, 안쪽은 생활 필수품과 취사 도구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여자들이 내실로 사용되었다. 사라가 하나 님의 말을 들은 곳도 바로 이 내실이었을 것이다. 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ㅇ늙었고 - 문자적 의미는 '생명의 날들이 지나갔다'인데 이는 생식 능력의 때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단어이다.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ㅇ속으로 웃고 -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적 상황이 근거해 자신의 수태 가능성을 불신한 자궤적(自潰的) 웃음이다(Calvin,Keil).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 '내가 어찌 부부간의 즐거움을 가지리요'(Modern Language Bible)라는 뜻으로 자신의 수태 불능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ㅇ사라가 왜 웃으며 - 낯선 여행자로서 족장 아내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9절) 그녀의 심중의 생각까지 감찰하고 있는 점은 하나님의 전지성(全知 性)을 입증해 준다(요 21:17;히 4:13). ㅇ어떻게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움남'은 '참으로', '진실로', '확실히'란 뜻이다. 따라서 사라는 자신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인 줄로 철저히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ㅇ능치 못할 일 - 문자적으로는 '너무 어려워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일'.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는 있을 수 없음을 역설하시면서(렘 32:27;마 19:26;눅 1:37) 사라의 불신을 불식시키는 약속을 거듭 주고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우리는 재삼 죄인에 대한 그분의 인내와 사랑의 열정을 깨달을 수 있다. 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ㅇ두려워서 - 자신의 속마음이 확연히 드러나 버린데 대한 두려움이자, 단순한 나그네로만 알았던 자의 권능에 대해 느끼는 놀라움이다. ㅇ승인치 아니하여 - 자신의 잘못이나 은밀한 생각 등이 폭로될 때 당혹감 내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거짓말, 변명 따위를 늘어놓는 것은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에 기초한 일반적 성향이다(3:12,13). 이러한 태도는 사라에게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는데 그녀는 말하고 있는 상대방의 정체가 하나님일 것이라는 순간적인 생각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불신이 드러난 데 따른 두려움에 못이겨 거짓말을 하고만다. ㅇ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 더 이상의 거짓말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엄숙 한 선언이다.이 말 속에는 자신의 불신앙을 거짓말로 은폐해 보려 했던 사라의 경솔하고도 어리석은 죄악을 책망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이에 대하여 사라가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킨것은 하나님의 책망에 온전히 굴복당하고 말았음을 나타내 준다.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ㅇ소돔으?향하고 - 직역하면 '소돔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마치 심판주 하나님께서 왼편에 있는 저주받을 자들에게 얼굴을 향하듯(마 25:41) 심판을 위한 진노의 얼굴을 소돔 쪽으로 돌리는 장면을 연상시켜 준다. 한편 아브라 함이 기거하고 있는 헤브론 지경에서 소돔까지는 약 30km정도의 거리로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는 지점이다. ㅇ함께 나가니라 - 유대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일행들과 함께 헤브론 북동 쪽에 있는 '카퍼바누케'(Capherbanuche)까지 동행했다고 한다. 이곳은 아주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지역으로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사해와 그 연변의 여러 성읍들을 한 눈에 관찰할 수있다. 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ㅇ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을 멸하시려는 계획을 알려 주신 이유는 이어 나오는 18,19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1) 축복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즉 택한 민족 이스라엘의 조상이될 뿐 아니라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될 아브라함(18절)에게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19절)이 진정한 축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자식과 후손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할 사명과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2) 구속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서였다. 즉 심판이 없는 구속은 의미가 없으며, 구속이 없는 심판 또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요 5:29;롬 5:9) 하나님께서는 구속과 심판, 축복과 저주의 두 길을 아브라함에게 제시함으로써(요 3:18) 오고 오는 그 모든 후손들이 소돔의 멸망을 경고로 삼아 축복받는 구속의 길을 택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ㅇ천하 만민은...복을 받게 될 것 -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 태어날 그의 후손 메시야로 인해 지구상의 온 족속에게 미칠 구원의 축복을 가리킨다.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ㅇ이는...이루려 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로 하여금 '여호와'의 도'를 지키게 하는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12:2,3;15:18-21; 17:1-8)에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여호와는 불변의 하나님으로서 자신이 언약한 바를 반드시 이행하시지만 여기에는 그 언약의 수혜자인 인간측의 마땅한 자세도 아울러 요구되는 것이다.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ㅇ소돔과 고모라 - 아드마, 스보임, 소알과 더불어 사해(死海)남단 싯딤 골짜기에 있던 다섯 도시 중 두 도시이다(14:2,3). 이곳 사람들은 극도로 타락 하였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 있어서 이 두 도시는 '죄악의 도시'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ㅇ부르짖음 -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대한 부르짖음 곧 원성(怨聲)을 뜻한다. TEV는 이를 '고소'(complaint)1로 번역하였다. 억울한 피는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호소한다는 고대인의 사상에서 나온 말로(4:10),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겁고 큰 것이었음을 상징한다.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ㅇ내려가서 - 고지대인 헤브론에서 해안 평지 지역인 소돔과 고모라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적확히 표현한 말이다. ㅇ보고 알려 하노라 -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이는 그분께서 타락상을 직접 보고서 확인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시겠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갈대 아역(Chaldee)에는 '만일 회개하기만 한다면 내가 그들을 벌하기 않겠다'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뒤이어 아브라함이 중보 기도하였을 때 그들 중 열명만이 라도 회개하였더라면 실제로 소돔과 고모라는 멸당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ㅇ가까이 나아가(나가쉬) - 기본 뜻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 접근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경배하다', '함께 눕다'등의 뜻이 파생되었다. 따라서 이는 아브라함이 위치적으로 뿐 아니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영적으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 것을 가리키고 있다 하겠다. 24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찌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ㅇ의인 오십 - 당시 소돔 성의 인구가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소돔이 비옥한 평지에 위치한 성읍이었다는 점(13절)을 감안할 때 오십 명이라는 수는 전체 인구수에 비해 지극히 적은 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아브 라함이 이렇게 적은 수를 내세워 소돔 성읍의 구원을 간구하였던 것은 의인 오십 이라도 크게 생각해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ㅇ공의를 행하실 것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에만 매달려 무조건적인 사유 (赦宥)를 간구하지 않고, 그분의 공의에 근거한 재판상의 공정성을 호소하였음 을 보여 준다(Keil)이러한 아브라함의 신관(神觀)은 당시 근동의 샤마니즘적인 여타 종교의 저급한 신관에 비해 대단히 차원 높고 성숙한 것이었다. 즉 아브라 함은 하나님이 윤리성을 결여한 여타 잡신들과는 달리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는 공의의 신이심을 깊이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ㅇ온 지경을 용서하라 - 하나님께서 대표의 대야의 원리에 입각해 인간을 구원 하심을 보여 준다. 이러한 대표 원리는 한 사람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 를 보시고 셀 수없이 많은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신약 시대 십자가 사건 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롬 5:18,19). 이는 비록 죄인이라도 자기 죄로 말미 암아 죽기보다는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에 기인한 큰 은혜이다(겔 33:11). 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ㅇ티끌과 같은 나 - '티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파르 와에페르'는 '먼지' (아파르)와 '재'(에페르)가 복합된 말이다. 이는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 니라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정확히 파악한 진솔한 신앙 고백이다(롬 9:21-23).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찰할 줄 알았던 아브라함은 먼지에서 시작하여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마는 자신의 존재(3:19)에 대하여서도 정확 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중보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에 근거한 기도 였음을 알 수 있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ㅇ앞 부분(23-25절)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지한 호소였던데 반해 이 부분은 그분의 자비와 긍휼에 더욱 의지한 간절한 호소이다. 마치 황금 사슬이 하나 하나 연결되듯 의인오십, 사십 오인, 사십, 삼십, 이십, 십 인으로 진행되는 이 간절하고 끈질긴 아브라함의 기도속에서 소돔 성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타 는 사랑과 그의 간청을 끝까지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가 엿보 인다. 이런 장면에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면모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데, 특히 그의 중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예표로 간주 하기에 충분하다. 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ㅇ이번만 더 - '창조자에 대한 피조물의 신앙적 파렴치성'(F.Delitzsch)을 드러낸 말이다. 그러나 마치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듯한 이 말은, 인간으로 서는 어쩔 수 없는 기도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 려 이러한 기도와 간구 자세를 원하시는데(사1:18;마 7:7-11; 눅 11:5-13; 18:1-8)그 까닭은 인간의 그러한 파렴치 성에도 불구하고 봇물 같은 사랑을 부어 주시기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ㅇ즉시 가시니 - 하나님께서 이 땅을 떠나 하늘 거처로 올라가신 것 뿐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벗으시고 무형상적 실체로 돌아가신 것을 함께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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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원문보기 글쓴이: 춘천 대우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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