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게 식힌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만든 음식, 냉면(冷麪)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여름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고향이 북쪽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국에 냉면을 말아먹는 것이 진짜 냉면 맛이라고 한다. 첫눈이 온다는 날, 소설(小雪)은 눈이 내릴 정도의 추위가 시작되니 겨울 채비를 하라는 계절의 알림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북쪽 지방인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냉면 계절이 시작 되었다. 이렇듯 냉면은 원래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인 음식이다.
냉면(冷麪)에 관한 현재까지 알려진 관련 기록으로는 1635년(인조 13) 장유(張維)의 문집 < 계곡집(谿谷集) >에 실린 시구(詩句), “자줏빛 육수는 노을빛처럼 비치고, 옥색의 가루가 눈꽃처럼 흩어진다. 젓가락을 입에 넣으니 그 맛이 입속에서 살아나고, 옷을 더 입어야 할 정도로 그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뚫는다(紫漿霞色映 玉紛雪花勻 入箸香生齒 添衣冷徹身 客愁從此破).” 자장냉면(紫漿冷麪, 자줏빛 육수의 냉면)이 처음이다,
이후 <재물보(才物譜)>, <진찬의궤(進饌儀軌)>, <규곤요람(閨壼要覽)>, <시의전서 是議全書 >, <부인필지 夫人必知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시대부터 즐겨 먹던 음식으로 추측되며, 우리의 세시풍속기인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에 “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으로 음력 11월의 시절음식 이었다 ”, 구체적으로 소개 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접어들며 평양에 전문적으로 냉면을 판매하는 식당이 자리를 잡았고, 1927년 평양 대동문 근처에 일본 화학조미료 회사 아지노모도(味の素)가 냉면집을 열어 아지노모도 제품을 판매하면서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동치미 국물 육수와 함께 화학조미료가 첨가된 육수에 만 냉면을 팔기 시작했다.
평양냉면집들은 1920년대 초반에 서울로 진출하였고 1930년대에 배달 음식으로 서울에서 팔렸다. 유기그릇에 담긴 냉면은 15전에 배달되었고, 배달부에게 별도로 10전을 수고비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 얼음 공장이 생기면서 냉면은 겨울만 아니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6 ·25전쟁 후 남한 전역에서 냉면이 유행하여 이제는 계절을 따지지 않고 즐겨 먹는 음식으로 면발도 다양해 졌고 각종 육수를 국물로 이용하고 냉면 위에 얹어지는 고명 역시 각양각색으로 되었다. 특히 불고기나 갈비 같은 고기를 먹고 난 후 냉면을 먹는 관습이 자리를 잡았다.
냉면은 뚜렷하게 구별된 것은 아니지만 그 특징에 따라 평양식냉면과 함흥식냉면으로 대별 된다. 평양식냉면과 함흥식냉면은 면의 성분 함량이 다소 차이가 있는데, 평양식냉면은 메밀이 많이 함유된 냉면이며 함흥식 냉면은 감자전분이나 강냉이, 고구마 전분의 함량이 많은 냉면이다.
평양냉면은 냉면의 원조로 추운 겨울 한 끼 식사로 또는 술을 먹고 난 후 해장국 대신 먹었다 한다. 메밀가루에 녹말을 조금 섞어 반죽을 하면 단단한 덩어리가 되는데, 이것을 국수틀(면자기麵榨機)에 넣고 눌러서 국수를 뽑아낸다. 여기에 편육, 쇠고기볶음, 오이채, 배채, 삶은 계란 중에서 알맞은 재료를 고명으로 골라 국수 위에 올린다. 냉면 육수로는 주로 동치미 국물이 이용되었으며 쇠고기, 닭고기, 꿩고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끓인 육수를 차게 하여 썼다. 식초와 겨자를 곁들여서 먹으며 긴 면발을 앞니를 이용하여 끊어 먹어야 제 맛이다.
함흥냉면은 감자녹말로 만든 삶은 국수를 국물에 말지 않고 홍어회나 가재미의 생선회를 맵게 하여 고추장과 마늘 등으로 양념을 하여 비벼서 먹는다. 질긴 면발과 맵고 진한 냉면 비빔장이 특징이며 함경도 특산물인 감자 전분이 포함되어 있어 정말 쫄깃한 면발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식초와 겨자, 따끈한 육수를 곁들여 먹고 나면 몸에서 따뜻한 열이 올라와 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처럼 함경도 지역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대표 음식으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던 함경도 사람들의 강인한 기질처럼 먹는 사람에게 강인한 인상을 준다.
남한 지역에서 이름난 풍기냉면은 한말에 남쪽으로 피난 온 평양 사람들이 시작하여 ‘평양냉면’과 그 뿌리가 같고, 순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쇠고기를 삶아 수육을 썰고 그 국물을 냉면육수로 사용하는 진주냉면이 있다.
※ 면자기(麵榨機) : 냉면을 내리는 옛날 국수틀의 한자로 쓴 이름으로 사람이 올라가서 힘을 주도록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