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예전에는 탐라(耽羅)라 하였다.
탐라(耽羅)가 무슨 뜻일까?
섬? 아니다. 잘못 파악한 것이다.
수만 년 혹은 수십만 년 전부터 원시인류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말 중에 [달/tar]이 있다. 현대한국어 ‘땅’의 어원에 해당하는 말이다. 원시어소 [달/tar]이 분화되면서 ‘담, 언덕, 산, 둑, 성곽, 읍성,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어원에서 갈라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음운에 대한 개념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달/tar]이라고만 발음하지는 않았다. [달]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닥]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단]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당]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담]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 두고 [다/달/닥/당/담...] 음이 부전(浮轉)되었다는 말을 쓴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한국인들이 [ta kur um (多屈音)], [tar gi (達己)], [tang moi (唐牟伊)], [tak bar (卓發)]로 다르게 발음하는 것이 있는데, 기실은 똑같은 동물 chicken을 가리키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글로 쓰면 “닭”인데, 말로 하면 [다/달/닥/당]으로 조금씩 다르게 난다. 이처럼 똑같은 말임에도 말하는 사람들의 발음이 조금씩 다르게 나는 것을 두고 음이 부전(浮轉)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이라면 다굴음(多屈音) 달기(達己) 당모이(唐牟伊) 탁발(卓發)이라 표기된 ‘多(다), 達(달), 唐(당), 卓(탁)’이 모두 동일한 “닭(chicken)”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다. ‘담장, 읍성, 성곽, 국가’를 뜻하는 말 [달/tam]은 [달/닭/닥/닮/담/단/당...] 등으로 쉽게 부전되었다. [tarm]처럼 발음하는 사람도 있고, [tamr]처럼 발음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글로 표기하자면, “달, 담, 닮, 다믈...”처럼 될 것이다.
탐라(耽羅)를 탐모라(耽牟羅) 혹은 담라(憺羅)라고도 적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제주도를 ‘섭라(涉羅)’라고도 했다는데, 이 부분은 별도의 고찰이 필요하다. ‘섭라(涉羅)’는 후대인의이 잘못 쓴 와기자(訛記字)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유어병용(類語竝用)으로 인한 혼동착변이 일어났거나. 일단 여기서는, 지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건널 제(濟)’자와 같은 의미를 가진 ‘건널 섭(涉)’자를 잘못 가져다 쓴 것으로 보아 그냥 넘어가기로 하겠다.
[달, 다라, 닮, 담, 닮라, 다믈, 다무르...] 등으로 일컫는 이름을 저마다 다른 한자로 적은 것이다. 백제 22담로의 ‘담로(擔魯)’도 같은 말을 그렇게 적은 것일 뿐이다. 대마도(對馬島) 역시 [담마]를 한자로 그렇게 음차하여 적은 것으로 같은 이름이나 다름없다.
원시어소 [달/tar]을 “濟(제)”라는 한자로 적었는데, 한자 “濟”는 하천을 건널 수 있게 쌓아올린 ‘둑’이나 ‘다리’를 가리키는 글자다. 한국어로 [돌, 달, 담, 둑, 덕]이라 하는 것을 “濟”라는 한자로 적은 것이다. “濟(제)”는 “渡(도)”라는 한자와 같으며, 일본어로는 “와타루(わたる)”라 한다.
그러니까 읍성이나 국가를 [닮/tarm]이라 하였는데, 그것을 음차표기한 것이 ‘耽羅(탐라), 탐모라(耽牟羅), 담라(憺羅)’인 것이며, 훈차표기한 것이 ‘제주(濟州)’인 것이다. 경남 거제도(巨濟島)나 서울 홍제동(弘濟洞), 인천 제물포(濟物浦) 등의 지명에 쓰인 “濟”가 모두 그러하다.
<삼국유사>에는 탐라를 ‘탁라(托羅)’라고 기록해 놓았는데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닭라”라는 지명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달라(→다라)]라고 하거나 [탁라(→당라)]라고 발음하게 된다. [다라/담라/닥라/당라...]가 같으며, 앞에서 그것을 부전(浮轉)이라고 설명한 이유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주(濟州)’ 즉 ‘탐라(耽羅)’는 섬이란 뜻이 아니고 ‘땅, 언덕, 읍성, 성곽, 국가’를 뜻하는 이름이며, 원시어소 [달/tar]의 부전인 [닮/tarm]을 훈차 혹은 음차하여 다르게 적었을 뿐이란 얘기다.
백제(百濟)라는 국명이 바로 이와 똑같은 원시어소 [달/tar]을 사용한 이름인 바, 좀더 자세한 것은 『국명풀이 백제』라는 전자책(ebook)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국명풀이 백제> : http://www.upaper.net/soburdori/107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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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원주민의 발상지와 관련하여 삼성혈(三姓穴) 신화가 있다.
삼성혈은 3명의 신인(神人)이 솟아올랐다는 3개의 구멍이다.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라는 신인(神人)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毛興穴, 현삼성혈)에서 솟아나온 것이 원주민의 시초라는 것이다. 이들 신인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살았는데,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 등을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와 결혼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신화는 황당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은유적으로 변해 담겨진 내용이 있다. 건국신화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삼성혈 신화도 예외는 아니다.
모흥(毛興)은 순우리말 [털불/터럭불]을 사음훈차한 것이다. ‘크고 넓은 벌판’이란 뜻이다. 대구광역시를 일컫는 [달벌, 달불, 닭불, 달구벌]과 같은 말이다.
고을나(高乙那)는 “고을”을 말하고, 부을나(夫乙那)는 “부락”을 말한다. 원시어소 [굴/kur]과 원시어소 [불/bur]에서 비롯된 말이다. 양을나(良乙那)의 良(량)은 누군가가 잘못 쓴 와기자다. 당연히 梁(량)으로 써야 맞다. 梁(량)은 우리말 [돌]을 적을 때 쓰던 글자다. ‘둑’이나 ‘다리’란 뜻도 가지고 있다. 濟(제)나 渡(도)와도 의미가 통한다. 양을나(梁乙那)는 우리말로 “다라(=달)”을 말한다. ‘땅, 동네, 읍성, 성곽, 나라’를 가리킨다. 앞에서 설명한 그 원시어소 [달/tar]이다.
그러니까 梁乙那, 高乙那, 夫乙那라는 신인 운운하는 신화의 내용은 여러 “동네(=달)”와 “고을”과 “부락”이 형성되었다는 걸 말하고자 한 것이다. 원시어소 [달, 굴, 불]을 음차한 표기란 얘기다.
벽랑국의 ‘벽랑(碧浪)’도 우리말 [부른/푸란/벼랑...]을 음차한 것으로, 성산가야(星山伽倻)나 벽비리국(辟卑離國), 또는 그와 유사한 [불/bur] 계열의 지명을 표기한 것으로 추측된다.